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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9년 04월 - 사자왕과 같으리라如師子王 - 행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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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산법화사 댓글 0건 조회 5,403회 작성일 19-08-2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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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오는 4월 5일은 식목일입니다. 식목일을 맞아 조사 큰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보탑을 건립하고 도량을 가꾸는데 정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식목일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면, 이날은 옛날 삼국시대 신라가 완전히 삼국통일을 완수한 날이고, 조선 성종이 백성에게 모범을 보여 선농단에서 농사를 시작한 데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산림청 자료). 신라는 삼국통일의 서원을 세우고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제압하고 마침내 삼국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연합군으로 참여했던 당나라가 가만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 도독부를 설치하고 지배하려 한 것입니다. 이에 신라에서는 김유신 장군을 위시하여 온 백성이 합심하여 당나라와 8년간의 지루한 전쟁을 하게 됩니다. 신라는 마침내 당나라 세력을 물리치는데 성공합니다. 이날이 문무왕 17(677)년 2월 25일이었습니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이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유래는 조선 성종은 봄이 되어 새로 농사일을 시작하는 봄에 서울 동대문 밖 선농단에 제사를 올리고 뽕나무밭을 직접 가꾸는 농사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 날을 기념하여 1946년 4월 5일 서울 사직공원에서 첫 식목일 행사를 가지게 되었고, 이후로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여하튼 역사 깊은 식목일날을 맞아 한번쯤 이날의 의미를 상기하고, 단지 심는데 그치지 않고 푸른 숲을 가꾸는 일에 동참하시는 것도 좋은 것입니다.

 영산법화사 법화행자 여러분!
 영산법화사를 개창하신 조사 큰스님의 큰 뜻을 상기하면서 4월의 신행주제를 “법화행자의 길”로 제창하고자 합니다. 우리종단의 소의 경전인 '묘법연화경' 곳곳에서는 법화행자의 길을 설하고 있습니다. 법사품 제10에서는 일대사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세하신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실천하는 법화홍통의 법사를 여래의 사도라고 지칭합니다. 오탁악세 불쌍한 중생을 단 한사람을 위해서 능히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설하면 이러한 사람은 여래가 보낸 법사로서 여래의 일을 행하는 법화행자라고 합니다.  

 법화경은 삼계의 대도사이신 부처님의 정법이 들어 있는 경이고, 천중의 왕이신 부처님의 심중이 들어 있어서 부처님이 항상 호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삼계의 중생들로부터 공양을 받으실만한 응공應供이신 부처님의 본회가 담긴 이 경을 천룡팔부와 일체 천중이 어찌 수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경에서는 이 법화경을 읽고 실천하는 법사는 “사자왕과 같이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모든 동자가 시봉하리라. 칼과 막대기로 때리지 못하고 독毒도 능히 해치지 못하며 만일 사람이 미워하고 꾸짖으면 입이 곧 막히리라. 다닐 때는 두려움 없어 사자왕과 같고 지혜의 광명은 해가 비침과 같으리라.
천제동자 이위급사 도장불가 독불능해 약인악매 구즉폐색 유행무외
天諸童子 以爲給使 刀杖不加 毒不能害 若人惡罵 口則閉塞 遊行無畏
여사자왕 지혜광명 여일지조
如師子王 智慧光明 如日之照(금장본 안락행품 제14, p.652)

 위와 같이 오탁악세에 법화경을 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무한한 인내력忍耐力(참고 견디는 힘)과 인욕력忍辱力(욕됨을 참음)이 있어야 하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는 굳은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처럼 어려운 일이므로 그것을 실행한다면 부처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법화경에서는 이와 같이 경을 실천하는 사람은 불보살이 항상 수호해 주신다고 합니다. 「다라니품」에서는 약왕보살 용시보살 비사문천왕 지국천왕 10나찰녀 등이 다라니주를 수호하겠다고 하였고, 「보현보살권발품」에서는 보현보살이 다음과 같이 수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후오백세에 흐리고 악한 세상에서 이 경전을 받아 가지는 자가 있으면 내가 마땅히 수호해서 그의 쇠환衰患을 없애고 그가 안온을 얻게 하며 잘못을 엿보는 자가 편리를 얻지 못하게 하오리다.
세존 어후오백세탁악세중 기유수지시경전자 아당수호 제기쇠환 영득안온
世尊 於後五百歲濁惡世中 其有受持是經典者 我當守護 除其衰患 令得安穩
사무사구득기편자
使無伺求得其便者(금장본 보현보살권발품 제28, p.1000)

 후오백세後五百世란 말법의 세상을 가리킵니다. 부처님 법이 세상에 머무는 기간을 보통 정법正法 ‧ 상법像法 ‧ 말법末法의 세 시대로 나눕니다. 경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부처님 입멸 후 1000년을 정법시대로 하여 그 전후 500년으로 나누고, 상법의 1000년을 전후의 각 500년으로 나누고, 거기에 말법의 처음 500년을 합하여 다섯 개의 500년이 되는데, 이를 다섯 개의 오백세五百歲라 합니다. 여기서 말법의 처음 500년을 오오백세五五百歲 또는 후오백세後五百歲라고 합니다. 이는 말법의 처음인 동시에 이로써 말법의 전체를 표시하기도 합니다.
 정법의 시대는 부처님의 바른 법을 가르치고[교敎], 바른 법을 배워 행하여[행行], 누구나 도를 증득하여 널리 선양되는 시대[증證]입니다. 상법시대에는 부처님의 가르침[교敎]과 수행修行은 있으나 증득이 없다고 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외형적인 불사나 겉치레 신행에 더 신경을 쓰다 보니 법을 듣기는 하지만 정작 불도를 증득하는 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말법시대에는 교설은 있으나, 수행과 증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참다운 진리는 몰락하고 교파 간이나 종교 간에 다투고 투쟁과 다툼이 횡행하여 선법은 숨어버리게 됩니다.

해탈견고解脫堅固 500년    
선정견고禪定堅固 500년
정법시대

다문견고多聞堅固 500년
다조탑사견고多造塔寺堅固 500년
상법시대
   투쟁언송백법은몰견고鬪諍言訟白法隱沒堅固 500년〓말법시대

 보현보살은 후의 오백년五百年(세존 입멸 후 2500년 즉 지난 丙申년을 말함) 말법의 세상에서 법화경을 수행하고 펴는 사람을 수호하여 편안하게 해주고 만약 행자의 틈을 엿보는 악마가 있을 때에는 자기의 힘으로 단연코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법화경을 몸으로 체득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지혜는 마치 해와 달이 밝은 빛으로 어둠을 없이 하는 것과 같이 미혹한 사람들의 삿된 마음 악한 마음을 비추어 그 어두움을 없애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화홍통에 떨쳐 나아가는 법화행자의 길을 밝혀주는 모범을 보인 분이 천태대사입니다. 천태대사는 과원사 법서法緖에게서 출가하고 혜광율사慧曠律師에 구족계를 받은 후 대현산에서 법화삼부경(법화경 무량의경 보현관경)을 독송하여 마쳤습니다. 대사는 법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를 뚫고 스승 혜사惠思를 찾아가 법화삼매를 닦고 약왕보살본사품을 독송하다가 깨달음을 열었습니다. 대사는 세상에 나와 법화의 법을 펴면서, “제법실상을 제외한 여타의 논의는 모두 마구니의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실상묘법연화경의 깊은 진리를 전파하여 제법실상諸法實相으로부터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을 제창하였습니다.
법화경 방편품에는 이 법계의 실상을 제법실상이라고 하고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모든 법의 실상을 능히 연구하여 다함이니 이른바 모든 법의 이와 같은 상相이며, 이와 같은 성性이며, 이와 같은 체體이며, 이와 같은 역力이며, 이와 같은 작作이며, 이와 같은 인因이며, 이와 같은 연緣이며, 이와 같은 과果이며, 이와 같은 보報이며, 이와 같은 본말구경本末究竟 등이니라.
유불여불 내능구진제법실상 소위제법 여시상 여시성 여시체 여시력
唯佛與佛 乃能究盡諸法實相 所謂諸法 如是相 如是性 如是體 如是力
여시작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여시본말구경등
如是作 如是因 如是緣 如是果 如是報 如是本末究竟等
(금장본 방편품 제2, p.76)

 이렇게 설하신 법화경은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세존께서 증득證得하신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설하신 것이니, 다시 말하면 세존의 정각正覺의 지혜 위에 비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모든 사물의 실상=제법諸法 곧 참된 모습을 아는 것이 정각이요 성불이므로 법화경이야말로 중생이 성불하는 최고의 경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천태대사는 이것을 의문依文으로 해서, 모든 물질의 성립과 존재와 소멸을 말하여, 이른바 일념삼천론一念三千論을 제창한 것입니다.

 일념삼천이라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일순간 일찰나에 일어나는 마음에서 그 한 순간에의 마음속에 삼천이라는 사물의 존재 곧 우주전체가 포함되어 있다는 법문입니다. 이 일념삼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천태육조 담연湛然이 처음입니다. 

 십여시가 만물의 진실상이라면 만물에 평등하게 십여시가 존재합니다. 여기에서 만물의 존재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 성문 연각 보살 불의 열 가지 세계[십계十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십계는 '대지도론'과 '화엄경'에서도 설해지지만, '법화경' 「법사공덕품」과 그 밖의 여러 품에서 십계의 이름을 들고 있습니다. 십계를 깨달음의 가능성 위에서 그 십계 하나하나에 다른 십계를 본래 구족하고 있음을 보게 되면[십계호구十界互具] 백계가 됩니다. 예를 들면 지옥계의 중생은 아귀 내지 불계를 본래 갖추어 있고, 마찬가지로 불계에도 다른 9계를 구족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계에서는 수행에 의해서 능히 지옥으로부터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십계에 갖가지 십계를 구족해서 백계가 되는 것이 수행상에서 보았던 진실의 세계상입니다. 이 백계는 하나하나에 똑같이 십여시라고 하는 존재의 성립 방식에 의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 백계에 십여시가 갖춰있으니 백계 천여시가 됩니다. 이 천여시의 하나하나는 중생(주체), 오음(주체를 구성하는 물질과 마음의 다섯 요소), 국토(환경)의 세 가지 세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천여시千如是에 세 가지 세간에 걸쳐있는 삼천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삼천의 법속에는 삼라만상 온 우주가 갖추어져 있으므로 제법의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삼천의 법은 범부가 현재 순간순간 느끼고[수受] 생각하고[상想] 작용하고[행行] 인식분별[식識]하는 마음을 토대로 상호 작용하여 눈앞에 나타나는 사물의 실상입니다. 따라서 십계의 각각은 미혹과 깨달음의 차이에 따라 이루어지는 세계로써 지옥계에도 다른 9계의 측면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옥계의 작용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뿐이고 나머지 다른 9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아귀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본래 부처나 보살 또는 악도에 갈 소질을 본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佛이 되고 또한 초목도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부처도 지옥이 될 수 있고, 성문도 아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아가면 불계를 제외한 9계의 중생 속에도 각각 불계가 갖춰져 있고 또한 역으로 불계에도 지옥에도 나머지 9계가 낱낱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비록 지옥일지라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선善이 있다고 하는 성선설性善說이 나오고, 그리고 불계에도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악惡이 있다고 하는 성악설性惡說이 이루어집니다('관음현의'). 따라서 지옥의 성불도 가능하게 되고 부처님의 악의 구제도 가능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천태대사는 십여시에 의해서 일념삼천의 법문을 세우고 수행자가 체득할 구극의 목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4월을 맞아 마음의 창을 열고 법화행자의 길에 사자왕과 같이 나섭시다.

 우리는 법화경의 진리를 높이 받들고 실천해야 합니다. 경에서는 법화경의 한 구절이나 한 게송을 듣고 오로지 일념으로 따라 기뻐하는 자에게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어 불도를 이루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법문을 듣고 그 마음에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낸다는 것은 그 부처님 법문이 심금을 울려 수희심을 일으킨 것이니 이 사람은 다시 다음사람에게 부처님의 이 마음을 다시 전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전하고 전해서 50번째에 이른 사람의 공덕을 무량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곧 50번째 전전상교展轉相敎한 공덕은 어떤 시주가 염부제에 가득 찬 보배로 80년 동안 공양하고 방편법을 설하여 아라한과를 얻게 한 것보다도 훨씬 크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하니 그 첫 번째 법을 전한 사람의 공덕이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큰 공덕이 된다고 한 것입니다.

 법화행자 여러분!
 만물이 소생하는 봄, 4월을 맞아 수희심으로 법화홍통하여 무량공덕과 부처님의 가피가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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