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유위(有爲)의 존재에 대한 고찰

1. 만일 생겨난 것[生]이 만들어진 것(유위)이라고 한다면 그 생에는 세 가지의 특질[相]이 있으니, 곧 생겨나는 생(生), 존속하는 주(住), 소멸하는 멸(滅)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생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무위), 어떻게 만들어진 것의 특질(유위상)이 있을까.
*만일 생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마땅히 생 주 멸의 특징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생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무위법이라면 어떻게 유위상의 생 주 멸이 있을 수 있는가.

2. 생(生) 등의 세 가지 모습이 여러 가지로 다른 것이라고 한다면 유위의 것(생 주 멸)의 특질을 이루는 데 충분하지 않다. 그것이 합일한다면 어떻게 같은 때에 같은 장소에서 있는 것이 가능할까.   
*생한 것이 다른 상을 가진다면 생 주 멸의 독립된 세 가지 다른 모습은 지닐 수 없으며, 세 가지 상이 하나라면 어떻게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존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3. 만약 생 주 멸에 다시[그것을 성립시키는 것] 다른 유위상이 있다면 이러한 것이 무한 소급(무궁)이 된다. 만약[그러한 생 주 멸에 다시 다른 유위의 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생 주 멸)은 유위가 아닌 것이 된다. 
*생 주 멸에 만들어지는 상(유위상)이 존재한다면 생에는 다시 생이 있고 주가 있고 멸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생의 세 모습은 다시 3모습을 갖게 되어 무궁하게 계속 된다. 또한 생의 세 모습이 없다면 이 세 모습은 유위법이라 할 수 없고 유위법의 상을 만들지도 못하는 것이 된다. 

[반대파에 대하여]
4. 생을 생기시키는 것(생생)[이라고 부르는 생]은 단지 생이라고 하는 원리(본생)의 생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본생은 생생을 생기게 한다.
*본생의 생에서 생을 생기시키는 것을 생생이라 하는 데, 이런 본생은 생생에서 생하는 것인데 어떻게 능히 생생을 생하겠는가. 지금의 생생은 본생을 생기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나가르주나가 반론을 제기하기를)
5. 당신의 말에 의하면, 만약 생생이 본생을 생기시킨다고 한다면 본래의 생에 의해서 아직 생하지 않은 생생이 어떻게 본생을 생기 할 수 있는가.

6. 당신의 말에 의하면, 만약 본래의 생에 의해서 생기했던 생생이 본래의 생을 생기시킨다면 그의 생의 생에 의해서 아직 생기되지 않은 본래의 생이 어떻게 그의 생생을 생기시킬 수 있는가.
*생생이 본래의 생에서 생한 것인데 어떻게 능히 본래의 생을 생기시키겠는가.

7. 당신의 말을 따른다면, 이 현재 생기하고 있는 본래의 생이 바라는 바대로 이 생생을 생기할 수 있다. 만약 아직 생하지 않은 본생이 이런 생생을 생할 수 있다면, 
(반대자에게 말한다)
8. 등불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함께 비추는 것 처럼, 생도 또한 이와 같아서 자체(자성)와 남을 함께 생하는 것이리라.
(답하여 말한다)

9. 등불 속에도 또한 등불이 있는 곳에도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등불은 무엇을 비춘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비추는 광명은 어둠을 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10. 현재 생하고 있는 등불에 의해서 어떻게 어둠이 멸해지는가. 왜냐하면 현재 생기고 있는 등불은 아직 어둠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 혹은 만약 등불이 어둠에 도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등불이 어둠을 멸할 수 있다면 여기에 존재하는 등불이 전 세계에 있는 어둠을 멸해버릴 수 있으리라.

12. 만일 등불이 그 자체와 남을 비추는 것이라면 어둠도 또한 그 자체와 남을 덮어서 어둡게 하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다.

13. 아직 생하지 않은 생이 어떻게 그 자체를 생하게 할 수 있을까. 만약 이미 생긴 것이 생하고 나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생하고 났는데 어떻게 다시 생길 수 있는가.

14. 지금 현재 생하고 있는 것, 이미 생한 것, 아직 생하지 않은 것, 이런 것은 결코 생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사라지고 있는 것, 이미 사라져버린 것,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이와 같이 설명된다.

15. 이런 현재에 생하고 있는 것이 생 속에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타방에서 생에 연해서 현재 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생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함이 있는 것이요, 이미 생한 것은 생하는 인연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 생함이 없다.

16. 연(緣)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라고 해도 모두 본성상에서는 쉬고 있는 것이다(적정). 그러므로 현재 생기고 있는 것은 쉬고 있다.  생 그것도 쉬고 있다.

17. 만약 어떤 생하지 않은 것이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런 것은 생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것이 생하겠는가.

18. 만약 이 생이 지금 현재 생하고 있는 것을 생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생을 다시 능히 생할 수 있을까.

19. 만약 다른 생이 이 생을 생하게 한다면 거기서 생은 무한 소급될 것이다. 또한 만약 생하지 않게 하는데 생한 것이라면 일체는 모두 이와 같이 생겨날 것이다.

20. 요컨대, 유(有 존재)가 생긴다고 하는 것은 이치로 합당하지 않다. 또한 무(無)가 생긴다고 하는 것도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 유에서도 무로서도 생기하는 것은 없다. 이런 것은 이전에도 논증하였다.

21. 지금 현재 소멸하고 있는 것에서 생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현재 법이 소멸하고 있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없다.   

22. 이미 주(住)한 것은 다시 주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주하지 않은 것도 또한 주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 주하고 있는 것도 아직 주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이 어떻게 주하는 것이 있겠는가.

23. 지금 현재 소멸하고 있는 것이 주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지금 현재 소멸하고 있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없다.

24. 일체의 것들은 항상 노 사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이것들이 노 사가 없어진다면 주할 수 있을 것인가.

25. 주(住)가 머무른다고 하는 것은 다른 주(住)에 의해서도, 또한 그것 자체에 의해서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생의 생하는 것이 그것 자체에 의해서도 또한 다른 것에 의해서도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26. 아직 멸하지 않은 것도 멸하지 않는다. 이미 멸해버린 것도 멸하지 않는다. 지금 멸하고 있는 중인 것도 똑같이 멸하지 않는다.
*어떤 법이 아직 멸하지 않았어도 멸하지 않음은 이때는 멸하는 상이 이미 떠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법이 이미 멸했다면 이 법이 이미 앞에서 멸했기 때문에 지금 다시 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7. 요컨대 이미 주한 것이라면 소멸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직 주한 것이 아니라면 소멸하는 것도 또한 있을 수 없다.
*이미 주하고 있는 것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 주하고 있는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주하는 것이 소멸한다고 하면 주하는 모습과 멸하는 모습의 두 가지를 띠게 되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28. 실로 그 우유의 상태에 의해서는 그와 똑같은 우유의 상태는 소멸하는 일이 없다. 또한 을의 상태인 낙소의 상태에 의해서도, 그 갑의 상태(우유의 상태)가 소멸하지 않는다.
*법이 주하고 있는 상태는 머물러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멸할 수 없다는 것이다.

29. 일체 법들의 생기가 일어나지 않을 때에는 똑같이 일체의 법들이 소멸하는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체법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이 멸하는 모습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30. 우선 유(有)가 존재하고 있는 한 소멸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이 유(有)로 있다거나 무(無)로 있다거나 하는 일은 하나의 사물에 있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31. 없다고 하는 것이나 소멸한다고 하는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제2의 머리를 자르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다.
*제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멸하는 모습도 일어날 수가 없다. 마치 첫 번째 머리를 자르면 이미 머리가 없기 때문에 두 번째 머리를 자르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32. 소멸한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에 의해서는 있을 수 없다. 소멸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에 의해서도 있을 수 없다. 마치 생기가 생기하는 것은 그것 자체에 의해서도 다른 것에 의해서도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33. 생과 주와 멸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유위(有爲)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유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무위도 성립하지 않는가.

34. 마치 환(幻)과 같고 마치 꿈과 같고 마치 신기루와 같이 존재한다고 비유를 가지고 그와 같이 생기(生起)를 설하고 소멸을 설한다.
*생 주 멸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모습으로 일정한 사물이 아닌데 중생들은 이것에 현혹되어 실체로 알고 집착하므로 이를 파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