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연기에 의하여 발생하지 않은 고(苦)가 존재하겠는가. 무상은 고라고 설하고 있다. 그러한 무상성은 자성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인연으로 발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苦가 존재하겠는가. 무상한 것은 고라는 뜻이지만, 그러한 무상한 자성의 결정적 성품에서는 무상이 없다.
22. 그렇게 자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다시 生起하겠는가. 그러므로 空에 있는 것을 배척하는 사람에서는 고가 일어나는 원인(집성제)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苦가 결정적 자성을 갖는다면 어떻게 그 원인(집제)으로부터 생기겠는가. 그러므로 공의 이치를 파했기에 고의 원인인 집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23. 그것 자체로서 존재하는 苦에 소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것의 자체를 고집하기 때문에 소멸을 파괴하게 된다.
*苦가 만일 확고한 자성이 있다면 소멸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대는 확고한 자성에 집착하므로 멸제(滅諦, 고의 소멸의 진리)를 파괴하게 된다.
24. 만약 道가 자성으로서 존재한다면 (道의) 修習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道가 수습된다면 그대가 말한 자성으로서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苦가 만약 결정적 자성이 있다면 修道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못한다. 만일 道가 修習할 수 있다면 확고한 자성은 존재하지 못한다.
25. 고제와 집제와 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고제와 멸제로부터 있게 되는 도제를(니르바나를)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고제가 존재하지 않고 집제나 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苦를 滅하는 道는 결국 어떻게 도달되겠는가.
26. 만약 (고가) 그것 자체로서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의 완전한 파악이 다시 있겠는가. 그것 자체(자성 본체)는 실로 확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전한다.
*만일 苦가 결정적 자성이 있다면 앞서서 보지 못한 것인데 지금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그 자성은 변이(變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완전히 (고제를) 파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번뇌) 끊는 것도, (니르바나를) 직접 체득하는 것도, 도를 수습하는 것도, 네 가지 과보[四果]를 얻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에서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사과란 견혹과 사혹의 번뇌를 끊어 얻어지는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의 네 계위)
*苦를 파악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集을 끊고 滅을 증득하며, 道를 닦는 것 및 四果를 얻는 것도 역시 모두 옳지 않다.
28. 자체의 성품[自性]이 있다고 고집하는 사람에게 자성으로서 증득되지 않는 사과를 어떻게 다시 증득할 수 있겠는가.
*이 네 가지 도과(道果)의 자성은 원래 얻을 수 없는 것인데, 모든 존재의 자성이 결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지금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하겠는가.
29. 사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果에 도달하는 자도 없고 그 과로 향해 나아가는 자도 없다. 만일 이들 여덟 종류의 사람들[8賢聖]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행자들의 승가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여덟 종류의 사람이란 사향사과를 말한다. 곧 수다원향 수다원과, 사다함향 사다함과, 아나함향 아나함과, 아라한향 아라한과)
*四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四向을 획득한 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八聖이 존재하지 않기에 승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30. 또한 사성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바른 가르침[正法]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法과 僧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佛이 존재하겠는가?
*사성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보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법보와 승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불보가 존재하겠는가.
31. 그대는 깨달음을 緣하지 않고도 佛이 있다는 오류가 따라서 일어난다. 또한 그대에게는 佛을 緣하지 않고도 깨달음이 있다는 오류가 발생한다.
* 만약 결정적인 자성이 있다고 한다면 菩提를 因하지 않고서 佛이 있고, 또 佛을 因하지 않고서 보리가 있다고 말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32. (그대의 말에 의하면) 그러한 자성을 가진 자신으로서 부처가 아닌 자는 그자가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여도 보살행에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리라.
*비록 다시 부지런히 정진하여 보리도를 수행하여도 원래 佛性이 없는 자성으로 확정되어 있는 자라면 성불할 수 없기 때문이다.
33. 또 어떠한 사람도(확고한 자성이 있다면) 선법을 행할 수도 없고 악법도 행할 수 없을 것이다. 空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 作爲되겠는가. 왜냐하면 자성은 작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존재가 空하지 않다면 죄나 복을 짓는 자도 없다. 空하지 않은 것은 그 자성이 확고히 있는데 어떻게 선행과 악행을 지을 수 있겠는가.
34. 그대(의 주장)에서는 法과 非法(을 행함)이 없이도 과보가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대(의 주장)에서는 법과 비법으로 인한 과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 그대는 (공하다면) 죄와 복을 지어도 과보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면서 不空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죄나 복을 떠나서 모든 과보가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이는 확고한 자성이 있으면 인(因) 없이도 과보가 나타난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곧 죄와 복의 인연이 있어도 전혀 그 과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죄나 복의 인연이 없어도 과보를 받는다는 말이 된다.
35. 혹은 만일 그대에게 있어서 法과 非法으로 인한 과보가 존재한다면 법과 비법에서 生起한 과보가 그대에게 있어서 어떻게 不空이겠는가.
*만일 죄나 복에서 과보가 생기는 것이라면 과보는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죄나 복에( 의존해)서 생기(기에 실체가 없)는데 어떻게 不空이라고 말하는가.
36. 그대가 緣起이고 空性인 것을 파괴한다면 그대는 일체의 세속 활동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그대가 일체법의 모든 인연과 空한 이치를 파괴한다면 그것은 곧 세속에 있는 다른 모든 법들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세간의 인연법칙과 공한 이치를 파괴한다면 세속의 일체 존재법칙을 파괴하고 무시하는 것이 된다.
37. 空하게 존재하는 도리를 파괴하는 자에게는 행위 할 그 어떠한 것도 없다. 작용이 시작함도 없으며 행위 주체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게 되리라.
*空의 이치를 파괴하는 자에게는 작위 할 그 어떤 대상도 없으며, 지은 것도 없으며 지었다고 하고 짓지도 않았는데 지은 자라고 부른다.
38. 그것 자체로서 자성이 있다면 세간(활동계)은 갖가지 상태를 떠나서[연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 常住하면서 존재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만일 결정적인 자성이 있다면 세간의 다양한 모습들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常住하여 괴멸(壞滅)되지 않는 것이리라.
39. 만일 空하지 않다면 아직 획득되지 않은 것이 획득하는 것도 苦를 끊어 멸하는 행위도, 일체의 번뇌를 끊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만일 空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직 획득되지 않은 것은 획득할 수 없고 번뇌도 끊을 수 없으며 苦가 모두 사라지는 일도 있을 수 없다.
40. 이런 緣起를 보는 자는 곧 苦 集 滅 및 道를 보리라.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연기법을 본다면 능히 佛을 볼 수 있고, 苦, 集, 滅, 道를 본다."고 설한다.
제25장 열반(니르바나)에 대한 관찰[관열반품(24게)]
[반대자는 말한다]
1. 만일 이 모든 것이 空하다면 (어떠한) 生起하는 것도 없고, 또한 소멸 하는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것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또한 어떠한 것을 멸하기 때문에 열반이 얻어진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모든 존재가 空하여 발생도 없고 소멸도 없다면 무엇이 끊어지고 무엇이 소멸되기에 열반이라 稱하겠는가.
[중관파가 답한다]
2. 만일 이 모든 것이 空하지 않다면 어떠한 생기하는 것도 없고, 또한 소멸하는 것도 없다. 어떠한 것을 끊기 때문에 또한 어떠한 것을 멸하기 때문에 열반이 얻어진다고 생각하는가.
*(그대의 말대로) 만일 모든 존재가 空하지 않다면 (오히려) 발생도 없고 소멸도 없으니 무엇이 끊어지고 무엇이 소멸되기에 열반이라 부르겠는가.
만일 일체법이 공하지 않다면 생기함도 없고 소멸도 없게 되는데, 무엇이 소멸되고 무엇이 끊어져서 열반이라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3. 버려지는 것도 없고 얻어지는 것도 없으며, 斷滅의 상태도 아니고 常住하는 것도 아니며 소멸하는 것도 아니고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이것을 열반이라고 설한다.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도달되는 것도 아니며 단멸된 것도 아니고 상주하는 것도 아니며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닌 것 이것을 열반이라고 말한다.
*열반 적정은 행위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도달될 곳이 있는 것이 아니며, 일체법이 공하여 끊을 것도 없고, 적멸한 경지는 분별할 수 있는 법이 없어서 상주라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우선 열반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열반이 어떤 존재라면) 늙어서 죽는다고 하는 특질을 갖는다는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늙고 죽는다는 특질을 떠난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열반은 존재라고 할 수 없다. 존재라면 老死의 모습을 띈다. 老死의 모습을 떠난 존재는 전혀 없다.
5. 열반이 만일 존재(존재하는 것이)라면 열반은 作爲된 것[有爲法]이리라. 왜냐하면 그 어디서건 그 무엇이건 작위 되지 않은 것[=無爲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열반이 존재라면 열반은 有爲法이리라. 無爲法인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