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의 내용은 2007년 5월호 "4. 번역과정"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4. 라집의 경전번역과정

구역(口譯)은 입으로 번역하는 것으로 음역(音譯)이라고도 한다. 라집은 중국말에도 능통하여 옛 번역(舊譯本)들을 살펴보고, 이들이 범어본을 제대로 대조하지 않고 번역하여 잘못된 곳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라집은 범본을 가지고 구역해가고 여기에서 모시고 보좌하던 제자들이 그대로 받아서 필록(筆錄)했던 것이다.
『고승전』 역경론에 의하면, 그때 도생(道生) 도융(道融) 승예(僧叡) 엄(嚴) 혜관(慧觀) 도항(道恒) 승조(僧肇)가 있었는데, 이들은 라집에게 뜻을 묻고 공부해서 말이 주옥을 굴리듯 원만히 통하였다. 붓을 잡고서 종지를 이어가는 것이 소임을 맡은 관리가 적어 나가는 모습과 같았다고 밝히고 있다.
『대품반야경』을 번역할 때는 라집이 범본을 들고 구역하고, 요흥(姚興)은 구역본을 들고 서로 대조하고 교정하여 새로운 말로 바꾸어 나갔다. 이에 경의 의미가 원만하게 통하게 되었다. 다음 (3)필수(筆受)가 있었다. 여기서는 축법호의 필수에 해당하고 당대 송 대의 것과는 다르다. 이와 같이 집본(執本: 범어 원본을 가지고) 구역(口譯-입으로 번역해 내고) 필수(筆受-한문으로 받아서 적어감)의 차례로 한 문장 혹은 한 권의 단락까지 계속되었다.
라집의 번역이 지금까지와 크게 다른 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점일 것이다. 곧 라집이 구역하여 제자들이 필수한 역문(가역의 한문)을 원문 곧 구역본의 한문본과 대조해서 라집이 (4)강경(講經)을 하고, 다시 질의(質疑)를 포함한 (5)대론(對論)의 장을 마련하여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는 것이다. 역경의 장(場)이 그 대로 강경 대론의 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본 『대품경서』에 “라집법사는 손에 범(법)어본을 들고 한문으로 선양하여 서로 다른 언어를 양쪽으로 풀이하면서 양 문장의 종지를 번갈아 가면서 밝혔다”라 하고 있다. 그래서 “진나라 왕은 몸소 전에 번역된 『방광경』『광찬경』을 열람하면서 그 옳고 그름을 알아보고 그 통하는 방도를 물어서 근본 종치(宗致)를 분명히 하였다”라고 한다. 통하는 방도를 물었다는 것은 요흥 한 사람에게만 허용된 것은 아닐 것이다.
승예가 법화경 번역에 참여했던 에피소드를『고승전』 승예전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옛날 축법호가 역출한 『정법화경』 수결품(受決品)에 말하기를, “하늘은 사람을 보고, 사람은 하늘을 본다.”라고 했는데, 라집법사는 경을 번역해서 여기에 이르자 말하기를, “이 말은 서역말 뜻과 똑같다. 다만 말에 있어 질박함이 뛰어나다” 고 했다. 승예가 말하기를, “장차 인천이 서로 접해서 양쪽에서 서로 보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라집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참으로 그렇다 깨달은 것을 표출함이 대개 이와 같은 부류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해서 라집의 훌륭한 구역(口譯)은 (4)강경(講經) (5)대론(對論)을 통해서 다시 1단을 다듬어 나아갔기 때문에 훌륭한 번역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라집의 번역문에는 당시의 한인 귀족 문체의 좋은 점이 다분히 반영되어 있다. 이 강경 대론은 동시에 (6)윤문(潤文) (8)정본(正本)의 번역작업이 진행되어 완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삼장기집』 제11권 『백론서』에는 “이치를 잘 아는 사문을 모아 라집과 함께 정본을 살피고 교정해서, 단련하고 거듭 살펴서 소(疏)를 붙였는데, 논의 종지를 보존하는데 힘써서 문장이 질박하면서도 비속하지 않고 간략하면서도 반드시 종지에 나아가 종치를 분명하게 하여 한 치의 틈도 없게 하였다”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그런데 『대품반야경』의 번역이 완료된 것은 1년이 경과한 404년 4월 23일이었다. 그러나 라집은 만족스럽지 않아서 개정을 요구해서 다른 사람에게 서사(書寫)를 허락했다. 특히 이 경전의 주석서로 되어 있는『대지도론』을 번역함에 있어서도 그 본 경전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에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승예의 『대품경서』에도『대품반야경』을 번역하여 문장이 일단 정리되긴 했지만 『대품반야경』의 논서인『대지도론』을 계속해서 번역하고 있어서 이것과 비교 검토하면 그 문장이 불충분하여 이를 교정했다고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품반야경』의 완성을 1년이 더 경과한 405년 12월, 『대지도론』의 번역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이『대품반야경』과 『대지도론』의 번역에 걸었던 라집법사의 열정이 대단히 깊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앞의 『대품경서』의 후문에도 “『대품반야경』의 번역이 (403년) 12월 15일 모두 역출했다.
그러나 더욱 자세히 교정을 보고 검토해서 다음해 4월 23일에서야 끝마쳤다. 문장이 확정된 것은 『석론』에 따라서 검토해 보면, 미진한 부분이 오히려 많았다. 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