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에서 용수(龍樹)사상의 의의
 
1. 공(空)의 철학 시작

나가르주나[용수]는 불타 석존의 종교적 정신에 대한 재인식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이전까지 전통으로 되어 있던 출가중심의 아비다르마 불교(부파불교)와는 사상적 입장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학문 수행에 의한 나한(羅漢)이라고 하는 성자가 되는 깨달음을 목표로 하였다. 그가 공성의 입장을 세워서 대승불교 사상의 기반을 확립했다고 하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에 의해서 밝혀졌다. 공성(śūnyatā)은 '반야경'을 시작으로 하는 초기 대승경전에서 특히 강조되었다. 이 시대에는 이런 공사상을 세운 불교를 ‘새로운 도’라고 불렀다. 이 불교운동은 새로운 도에 의해서 부처님에 가르침의 진의가 밝혀진다고 하였다. 불교가 새롭게 바뀌었다고 하는 점이 불타의 가르침과 다른 새로운 불교를 설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물론 불타가 입멸한 지 수백 년이 지난 당시에서 볼 때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현저한 변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사상과 실천면에 있어서도 새로운 생각이나 활동이 추구되었다. 종교와 철학 등의 사상계에서는 불타의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과제가 생겼고 또한 문제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가르주나는 기본적으로 “불타의 정신에 돌아간다”고 하는 입장을 취하여, 새로운 사상과 실천 과제에 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불타의 가르침을 충실히 계승하여 이를 다시 재현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그의 주저로 주목되는 '중론' 제2장에 “연기하는 것은 공하다”라고 설하고 있는 명제를 통해서 그러한 용수의 입장을 명료히 보여주고 있다(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밝힘). 연기란 불타가 깨달아 설해 보여준 것으로, 존재의 진리를 밝히는 근본 사상이다. 연기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서로 상관되어 존재하는 것은 관계성에 있어서 성립한다”고 하는 것이다.
“'가트야 야나의 가르침'에 있어서 ‘이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나 ‘이것은 없다’고 하는 양자도 존재와 비존재를 아는 세존에 의해서 부정되었다.”
이 게송은 '중론' 415게송 중에 원시불전의 출전을 명시하고 있는 오직 한 곳으로, 특히 이곳이 주의를 끈다. 게다가 이 가르침은 불타 최초의 설법으로서 알려진 '초전법륜경'에서 설하는 중도와 깊이 관계되어 있다. “무엇이 있다”는 것은 유(有)의 입장이고, 실상론(실재론)에 떨어진다. 한편 “무엇이 없다”란 무의 입장으로, 단멸론(허무론)에 떨어진다. 이 유와 무가 함께 부정되고 중(中 또는 중도)의 입장에서 대개 참된 존재법을 설하고 있는 것이 이 가르침이며, 바로  이 중의 입장에서 연기 사상이 설해져 있다. 연기가 공성이라고 하는 것은 중의 입장에서 연기가 설해졌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불타의 가르침을 재인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나가르주나 연기에 대한 이해의 입장은 찬드라끼르티(Candrakirti 월칭 7세기경)에 의해서 특히 주목받았다. 여기서는 연기와 공이 불타에서 나가르주나로 계승되어 발전하였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나가르주나가 활약했던 지역은 주로 남인도의 안드라 지방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은 그의 저작에서 더욱 잘 나타나는데, 여행기나 고고학상의 자료를 통해서도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시 인도 사상계를 한번 보아도 불교 외부에서는 관념론적인 이원론 철학을 설하는 초기 상키야철학을 시작으로 니야야 학파의 논리학도 형성되어 있고, 또한 다원론을 전개하여 후기 바이세시카철학에 보이는 것과 같은 자연철학도 존재하였다. 그래서 나가르주나는 이러한 철학사상과 대결해서 불타의 실천적인 가르침의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공의 논리를 가지고 불교사상의 기초를 마련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와 같이 나가르주나의 공의 철학이 탄생하면서 다른 종교와 철학 사상의 입장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공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은 불타의 가르침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고, 동시에 그의 사상을 풍부하게 해주었다는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2. 세계적인 철학자

그런데 공의 논리라든가 공의 철학이라고 하는 경우, 공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가 우선 의문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답하기란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나가르주나는 '반야경'의 공사상을 이어받아 그 사상에 논리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모든 것은 공하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렵고 또한 사상으로서도 의미 있는 표현은 아니다.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가르주나는 이 과제에 대하여 응하고자 했던 것이다.
공의 논리란 한마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