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푸돈이 전하는 나가르주나의 생애(전편에 이어)
가르침의 실천면에 전념하고 있는 여러 책들은 『제경집성(諸經集成)』인데 성전에 따라 가르침을 논술하고 있다.
『꿈속의 여의주에 대한 이야기』- 논리적 방법에 의해 진리를 증명하고 대승 인들의 마음을 청정히 하며, 소승수행자들(성문)의 종성(수행자들만의 본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세속인들의 행동하는 원칙을 논술하고 있는 책은 『친구에 주는 편지』이다. 수행승의 행동을 주로 논하고 있는 책은 『깨달음의 무리』이다.
딴뜨라 부문에 있어서 저작은 『딴뜨라 집성'-딴뜨라의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양면에 대한 간결한 해설이다.
『깨달음의 마음의 해명』-이론으로 명석하게 해명하고 있다.
『요약해논 수행』-새로이 발심해서 수행해 나아가는 차례를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제경의 융성(隆成)』『만다라의규(儀規)』 20수의 시구로 이루어져 있다.
『오차제(五次第)』-梵名Pan~cakrama,西藏名Rim-pa chen-po, 구극(究極)의 성취를 논술하고 있다.
다시 『요가백편』 등의 의학서도 그가 저술하였다.
세속의 학문에 있어서는 『인간양성개론』을 그가 저술하였다. 여기에는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라고 하는 훈계를 포함하고 있다.
『지혜백편』-대신들에 대한 가르침을 서술하고 있다.
다시 『보석의 연열(連列)』(라트나-바리)에 있어서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의 이론면과 실천면이나 국왕들의 실수를 위해서 설하고 있다.
다시 그는 『연기의 바퀴』 『정화(淨化)요가의 보석의 연열(連列)』, 연금술에 대한 여러 책들을 저술하였다. 이상의 저술은 모두 독립된 논서들이다.
다른 전적에 대한 그의 여러 주해서에 대해서는 『구히야사마쟈 딴뜨라주해』 『도간경송(稻幹經頌)』 등이 있다.
『사인결정(四印決定)』에 관해서는 이것이 나가르주나의 저술이 아니라고 『성전의 화방(花房)'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나가르주나보살은 똑같은 『계율강요(戒律綱要)』를 저술했다고 하고 『깨달음의 행에 들어가는 입문』에 대한 주해가운데에서 뿌라지니야-카라마티가 서술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나가르주나는 불교의 가르침을 위해서 6백년간 활동했다.
그때 안테이-바-하나 또는 우다야나바트라라고 하는 왕은 샤크티마트왕자라고 하는 한 아들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상당히 멋진 윗옷을 주었을 때 그가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내가 왕위에 올랐을 때에 임무에 어울릴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머니가 말했다. “그대는 왕위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요. 그대의 부왕과 나가르주나대사는 불노장수의 약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그대의 아버지의 수명이 긴 것은) 대사의 수명이 긴 것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 왕자는 나가르주나대사가 살고 있는 장소인 길상산(吉祥山)으로 찾아왔다. 나가르주나가 머리를 들어 왕자에게 가르침을 설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하가 칼로 대사의 목을 참하여 떨어뜨리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때 대사가 말했다. “이전에 나는 쿠샤의 풀잎에 살고 있는 벌레를 베어서 벌레가 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업의 힘이 남아서 나에게 크게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머리는 쿠샤풀잎이 잘려 떨어뜨려야 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그때 그의 부하가 말한 바와 같이 하여 머리를 참하여 떨어뜨렸다. 이와 같이 하자 머리에서 시구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제 극락에 가게 되었구나.
그러나 나는 이 신체 속에 아직 들어가 있네.”
그때 부하는 머리를 껴안고 가버렸다. 그러나 야쿠샤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신체와 1요자나 거리 안에 놓았다. 머리와 신체는 썩지 않고 있다가 매년 서로 가까이 가더니 마침내 둘이 합해져서 다시 가르침을 위해서 살아있을 때 살아있는 생명들 모두를 위해 했던 것과 같이 하였다.
나가르주나라고 하는 이름 속에 나가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실제로 나가(용)가 바다에서 사는 것과 같이 진리의 영역인 법계라고 하는 바다에서 태어났다.
둘째, 실제 용이 자신의 거처에 대해서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상주(常住)라는 극단설과 단멸이라는 극단설의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의 두 가지 극단설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셋째, 용이 황금 보석의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설전의 보배 창고를 확보하고 있다.
넷째, 용이 용맹한 눈을 가지고 있듯이 밝게 빛나는 불꽃과 같은 통찰력의 눈을 가지고 있다.
‘아루자나’라고 하는 것은 힘을 얻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대사는 아루자나이다. 왜냐하면 그는 첫째 가르침 곧 정법의 왕국의 수호자요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적군 곧 이 세상의 갖가지 죄악의 힘에 대한 정복자이다. 이 둑자지 부분이 결합해서 나가루주나라고 하는 합성어를 만들게 되었다. 이와 같이 '푸라산나빠다'(잔드라끼르티에 의한 '중론'의 주석서)라고 하는 책 속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두 가지 극단 설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고 계시고,
정각을 이룬 붓다의 지혜 바다에서 태어나,
정법의 창고 깊은 바다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비심을 가지고 설하신,
그의 사람을 보는 위신력은 이단론자의 견해라고 하는 장작,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의 암흑을 태워 없애는,
그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지혜와 말은 화살이 빗물 속을 흘러가는 것과 같고,
인도해야할 세상 사람과 신들을 위해 삼계의 왕위에 다행스럽게 몸을 받아서,
사람들 세상의 적군을 제거하고 멸해버린 그 나가르주나께 경례합니다.”
또한
“그의 머리를 바쳐서 그것을 구해 온 사람에게 그것을 건너게 하였고,
극락에 향하여 가는 구도자 나가르주나에 의해 만들어진…….”
『대운경』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고 어떤 사람은 주장한다. “내가(석존) 입멸한 후 4백년이 되어 릿차비인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나가라고 하는 이름의 비구 수행자가 되어 나의 가르침을 선설(宣說)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밝은 빛을 드날린다고 불리는 세계가 있는데 그는 지장광(智藏光)이라고 하는 이름의 부처가 될 것이다.” 또한 『대운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남방의 리시라라고 하는 나라에 있는 비빳티지키사카(불행을 치료하는 자)라고 하는 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왕이 80세가 되었을 때 바른 가르침(불교)은 파괴되기에 이르고 그 잔재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때에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는 마하바르카촌에 가까운 슨다후티라고 하는 작은 강의 북쪽언덕에 브라고젠이라고 하는 서민계급(바이샤)에 속하는 땅에 리차비족의 한 청년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 그의 이름을 칭송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게 될 것이다. 이 청년은 나가크쿠라뿌라티하부처님 앞에서 법(진리)과 부처님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다 바치겠다고 서원을 세우게 될 것이다. 가르침을 선포해 주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읽혀지고 있는데 그러나 이 한 구절이 실제 나가르주나를 언급하고 있는가 어떤 가는 확실하지는 않다. 어떤 사람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이라고 하는 구절은 나가르주나 출가한 후 이름 샤키야트라라고 하는 곳에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더구나 '대운경'에 의하면 나가르주나는 제8지에 도달한다고 예언(수기)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똑같이 검토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6. 전적에 나타난 나가르주나 전설의 공통점
이상 나가르주나 생애와 활동을 『용수보살전』 푸돈의 다라나다에 따라서 소개해 보았으나, 이들에 설해진 내용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서 또한 어떤 것이 공상적인 전설인가, 다시 공상적 전설 속에 무언가 역사적 사실이 있는가도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자료 외에도 검토한 소전의 기록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나가르주나는 AD150-250년 무렵의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힌두이즘이 성행했던 이전의 인물이지만, 그의 학파는 그 후에 모두 힌두기(期)를 통하여 존속하였다. 인도에는 나가르주나상의 조각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그림도 없다. 그런데 일본에는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남아 있다(예를 들면 금강정사에 있다). 이 나가르주나가 공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기초하여 세웠다. 대승불교라고 불리는 것은 모두 그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가 남도육종(南都六種: 율종·구사종·성실종·삼론종·법상종·화엄종) 천태 진언의 ‘팔종의 조사’로 추앙되고 있다. 그 후 불교의 여러 사상은 그에 의지한 것이 매우 많다. 나가르주나 생애의 전기로 그 전거가 되는 전적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었다.
① 『용수보살전』은 구마라집이 번역. 싼스크리트 원전은 없고 한역만이 남아 있다. 고대로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나가르주나 생애는 이 책에 근거하여 이해하고 있다.
② 푸돈의 '불교사' 속에 있는 나가르주나에 관한 기술.
③ 다라나다 '불교사' 속에 있는 나가르주나에 관한 기술.
다만 이상의 전설을 통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가 공통이다.
첫째, 그는 남인도와 관계가 있고, 그래서 남인도 싸다바하나왕조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있다고 상상되고 있다. 남인도의 안드라 푸라티슈주에 있는 나가르주나콘다라고 하는 고대 항구도시 유적은 다수의 불교사원 유적이 발견되고 있으나 하지만 대승불교의 철학자 나가르주나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대 비명에도 어떤 증거가 될 자취가 없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발견된 비명에 의하면 그곳에 영위했던 불교는 전통적 보수적인 불교 이른바 소승불교였다고 하는 것이 알려져 있다.
둘째, 그는 바라문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셋째, 그는 박학다식한 학자였으며 특히 바라문 종족으로서의 여러 학문을 배웠다. 때문에 그의 사상에는 바라문교의 철학사상의 영향이 있다고 하는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넷째, 그는 일종의 연금술을 체득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연금술을 시바교의 일파인 수은파에서 옛날부터 행해졌다고 한다. 이 수은파의 개조를 역시 나가르주나라고 한다. 나가르주나에 귀속되어 있는 수은파 전적은 아직 간행되지 않았지만, 이들과 대조연구는 이후 과제이다.
7. 나가르주나 복교설(複敎說)
그런데 나가르주나에 속한 저작이 다수 있지만, 이들이 모두 같은 사람에 의해 쓰였는지 그렇지 않은지 크게 논의가 되고 있다. 갑서(甲書) 을서(乙書)가 별도의 사람에 의해 쓰였다고 하는 주장을 고려해보면 복수의 나가르주나가 있다고 생각된다(각 저작에 대해서는 다음 ‘저작개관’에서 다룬다).
① 『중론』 등의 공사상을 전개시켰던 저자.
② 불교백과사전이라 불리는 『대지도론』의 저자.
③ 『화엄경』 십지품의 주석서로 되어 있는 『십주비바사론』의 저자.
④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보행왕정론』 등의 저자.
⑤ 진언 밀교학자로서 나가르주나.
⑥ 화학(연금술)의 학자로서 나가르주나.
이중에서 ⑤ ⑥은 전체적인 특색과 다른 별도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것도 후대 연구에 위임하기로 한다.
가르침의 실천면에 전념하고 있는 여러 책들은 『제경집성(諸經集成)』인데 성전에 따라 가르침을 논술하고 있다.
『꿈속의 여의주에 대한 이야기』- 논리적 방법에 의해 진리를 증명하고 대승 인들의 마음을 청정히 하며, 소승수행자들(성문)의 종성(수행자들만의 본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세속인들의 행동하는 원칙을 논술하고 있는 책은 『친구에 주는 편지』이다. 수행승의 행동을 주로 논하고 있는 책은 『깨달음의 무리』이다.
딴뜨라 부문에 있어서 저작은 『딴뜨라 집성'-딴뜨라의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양면에 대한 간결한 해설이다.
『깨달음의 마음의 해명』-이론으로 명석하게 해명하고 있다.
『요약해논 수행』-새로이 발심해서 수행해 나아가는 차례를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제경의 융성(隆成)』『만다라의규(儀規)』 20수의 시구로 이루어져 있다.
『오차제(五次第)』-梵名Pan~cakrama,西藏名Rim-pa chen-po, 구극(究極)의 성취를 논술하고 있다.
다시 『요가백편』 등의 의학서도 그가 저술하였다.
세속의 학문에 있어서는 『인간양성개론』을 그가 저술하였다. 여기에는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라고 하는 훈계를 포함하고 있다.
『지혜백편』-대신들에 대한 가르침을 서술하고 있다.
다시 『보석의 연열(連列)』(라트나-바리)에 있어서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의 이론면과 실천면이나 국왕들의 실수를 위해서 설하고 있다.
다시 그는 『연기의 바퀴』 『정화(淨化)요가의 보석의 연열(連列)』, 연금술에 대한 여러 책들을 저술하였다. 이상의 저술은 모두 독립된 논서들이다.
다른 전적에 대한 그의 여러 주해서에 대해서는 『구히야사마쟈 딴뜨라주해』 『도간경송(稻幹經頌)』 등이 있다.
『사인결정(四印決定)』에 관해서는 이것이 나가르주나의 저술이 아니라고 『성전의 화방(花房)'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나가르주나보살은 똑같은 『계율강요(戒律綱要)』를 저술했다고 하고 『깨달음의 행에 들어가는 입문』에 대한 주해가운데에서 뿌라지니야-카라마티가 서술되어 있다. 이와 같이 나가르주나는 불교의 가르침을 위해서 6백년간 활동했다.
그때 안테이-바-하나 또는 우다야나바트라라고 하는 왕은 샤크티마트왕자라고 하는 한 아들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상당히 멋진 윗옷을 주었을 때 그가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내가 왕위에 올랐을 때에 임무에 어울릴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머니가 말했다. “그대는 왕위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요. 그대의 부왕과 나가르주나대사는 불노장수의 약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그대의 아버지의 수명이 긴 것은) 대사의 수명이 긴 것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 왕자는 나가르주나대사가 살고 있는 장소인 길상산(吉祥山)으로 찾아왔다. 나가르주나가 머리를 들어 왕자에게 가르침을 설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하가 칼로 대사의 목을 참하여 떨어뜨리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때 대사가 말했다. “이전에 나는 쿠샤의 풀잎에 살고 있는 벌레를 베어서 벌레가 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업의 힘이 남아서 나에게 크게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머리는 쿠샤풀잎이 잘려 떨어뜨려야 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그때 그의 부하가 말한 바와 같이 하여 머리를 참하여 떨어뜨렸다. 이와 같이 하자 머리에서 시구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제 극락에 가게 되었구나.
그러나 나는 이 신체 속에 아직 들어가 있네.”
그때 부하는 머리를 껴안고 가버렸다. 그러나 야쿠샤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신체와 1요자나 거리 안에 놓았다. 머리와 신체는 썩지 않고 있다가 매년 서로 가까이 가더니 마침내 둘이 합해져서 다시 가르침을 위해서 살아있을 때 살아있는 생명들 모두를 위해 했던 것과 같이 하였다.
나가르주나라고 하는 이름 속에 나가라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실제로 나가(용)가 바다에서 사는 것과 같이 진리의 영역인 법계라고 하는 바다에서 태어났다.
둘째, 실제 용이 자신의 거처에 대해서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상주(常住)라는 극단설과 단멸이라는 극단설의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의 두 가지 극단설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셋째, 용이 황금 보석의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설전의 보배 창고를 확보하고 있다.
넷째, 용이 용맹한 눈을 가지고 있듯이 밝게 빛나는 불꽃과 같은 통찰력의 눈을 가지고 있다.
‘아루자나’라고 하는 것은 힘을 얻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대사는 아루자나이다. 왜냐하면 그는 첫째 가르침 곧 정법의 왕국의 수호자요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적군 곧 이 세상의 갖가지 죄악의 힘에 대한 정복자이다. 이 둑자지 부분이 결합해서 나가루주나라고 하는 합성어를 만들게 되었다. 이와 같이 '푸라산나빠다'(잔드라끼르티에 의한 '중론'의 주석서)라고 하는 책 속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두 가지 극단 설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고 계시고,
정각을 이룬 붓다의 지혜 바다에서 태어나,
정법의 창고 깊은 바다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비심을 가지고 설하신,
그의 사람을 보는 위신력은 이단론자의 견해라고 하는 장작,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의 암흑을 태워 없애는,
그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지혜와 말은 화살이 빗물 속을 흘러가는 것과 같고,
인도해야할 세상 사람과 신들을 위해 삼계의 왕위에 다행스럽게 몸을 받아서,
사람들 세상의 적군을 제거하고 멸해버린 그 나가르주나께 경례합니다.”
또한
“그의 머리를 바쳐서 그것을 구해 온 사람에게 그것을 건너게 하였고,
극락에 향하여 가는 구도자 나가르주나에 의해 만들어진…….”
『대운경』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고 어떤 사람은 주장한다. “내가(석존) 입멸한 후 4백년이 되어 릿차비인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나가라고 하는 이름의 비구 수행자가 되어 나의 가르침을 선설(宣說)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밝은 빛을 드날린다고 불리는 세계가 있는데 그는 지장광(智藏光)이라고 하는 이름의 부처가 될 것이다.” 또한 『대운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남방의 리시라라고 하는 나라에 있는 비빳티지키사카(불행을 치료하는 자)라고 하는 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왕이 80세가 되었을 때 바른 가르침(불교)은 파괴되기에 이르고 그 잔재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때에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는 마하바르카촌에 가까운 슨다후티라고 하는 작은 강의 북쪽언덕에 브라고젠이라고 하는 서민계급(바이샤)에 속하는 땅에 리차비족의 한 청년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 그의 이름을 칭송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게 될 것이다. 이 청년은 나가크쿠라뿌라티하부처님 앞에서 법(진리)과 부처님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다 바치겠다고 서원을 세우게 될 것이다. 가르침을 선포해 주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읽혀지고 있는데 그러나 이 한 구절이 실제 나가르주나를 언급하고 있는가 어떤 가는 확실하지는 않다. 어떤 사람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이라고 하는 구절은 나가르주나 출가한 후 이름 샤키야트라라고 하는 곳에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더구나 '대운경'에 의하면 나가르주나는 제8지에 도달한다고 예언(수기)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똑같이 검토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6. 전적에 나타난 나가르주나 전설의 공통점
이상 나가르주나 생애와 활동을 『용수보살전』 푸돈의 다라나다에 따라서 소개해 보았으나, 이들에 설해진 내용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실에 있어서 또한 어떤 것이 공상적인 전설인가, 다시 공상적 전설 속에 무언가 역사적 사실이 있는가도 확실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자료 외에도 검토한 소전의 기록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나가르주나는 AD150-250년 무렵의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힌두이즘이 성행했던 이전의 인물이지만, 그의 학파는 그 후에 모두 힌두기(期)를 통하여 존속하였다. 인도에는 나가르주나상의 조각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그림도 없다. 그런데 일본에는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남아 있다(예를 들면 금강정사에 있다). 이 나가르주나가 공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기초하여 세웠다. 대승불교라고 불리는 것은 모두 그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가 남도육종(南都六種: 율종·구사종·성실종·삼론종·법상종·화엄종) 천태 진언의 ‘팔종의 조사’로 추앙되고 있다. 그 후 불교의 여러 사상은 그에 의지한 것이 매우 많다. 나가르주나 생애의 전기로 그 전거가 되는 전적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었다.
① 『용수보살전』은 구마라집이 번역. 싼스크리트 원전은 없고 한역만이 남아 있다. 고대로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나가르주나 생애는 이 책에 근거하여 이해하고 있다.
② 푸돈의 '불교사' 속에 있는 나가르주나에 관한 기술.
③ 다라나다 '불교사' 속에 있는 나가르주나에 관한 기술.
다만 이상의 전설을 통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가 공통이다.
첫째, 그는 남인도와 관계가 있고, 그래서 남인도 싸다바하나왕조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있다고 상상되고 있다. 남인도의 안드라 푸라티슈주에 있는 나가르주나콘다라고 하는 고대 항구도시 유적은 다수의 불교사원 유적이 발견되고 있으나 하지만 대승불교의 철학자 나가르주나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대 비명에도 어떤 증거가 될 자취가 없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발견된 비명에 의하면 그곳에 영위했던 불교는 전통적 보수적인 불교 이른바 소승불교였다고 하는 것이 알려져 있다.
둘째, 그는 바라문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셋째, 그는 박학다식한 학자였으며 특히 바라문 종족으로서의 여러 학문을 배웠다. 때문에 그의 사상에는 바라문교의 철학사상의 영향이 있다고 하는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넷째, 그는 일종의 연금술을 체득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연금술을 시바교의 일파인 수은파에서 옛날부터 행해졌다고 한다. 이 수은파의 개조를 역시 나가르주나라고 한다. 나가르주나에 귀속되어 있는 수은파 전적은 아직 간행되지 않았지만, 이들과 대조연구는 이후 과제이다.
7. 나가르주나 복교설(複敎說)
그런데 나가르주나에 속한 저작이 다수 있지만, 이들이 모두 같은 사람에 의해 쓰였는지 그렇지 않은지 크게 논의가 되고 있다. 갑서(甲書) 을서(乙書)가 별도의 사람에 의해 쓰였다고 하는 주장을 고려해보면 복수의 나가르주나가 있다고 생각된다(각 저작에 대해서는 다음 ‘저작개관’에서 다룬다).
① 『중론』 등의 공사상을 전개시켰던 저자.
② 불교백과사전이라 불리는 『대지도론』의 저자.
③ 『화엄경』 십지품의 주석서로 되어 있는 『십주비바사론』의 저자.
④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 『보행왕정론』 등의 저자.
⑤ 진언 밀교학자로서 나가르주나.
⑥ 화학(연금술)의 학자로서 나가르주나.
이중에서 ⑤ ⑥은 전체적인 특색과 다른 별도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것도 후대 연구에 위임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