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무엇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친근할 바라 하느뇨. 보살마하살은 국왕 왕자 대신 관장(官長)을 친근하지 말며,
운하명보살마하살친근처 보살마하살 불친근 국왕 왕자 대신 관장
云何名菩薩摩訶薩親近處 菩薩摩訶薩 不親近 國王 王子 大臣 官長
[강의] 보살이 친근할 바(가까이 할 것)를 설하였다. 이는 계율과 선정에 근본이 되는 행위를 밝힌 것으로, 위와 같은 나쁜 행위를 행하는 자는 악습에 물들어 있어서 올바른 수행[淨行]을 막는다. 이와 같은 보살의 청정한 계율의 행으로부터 선정이 생기고, 선정으로부터 지혜가 나오기 때문이다. 보살이 친근히 할 바에는 10가지가 있다.
첫째, 보살마하살은 국왕 관장 등을 친근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이는 권세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권세는 바른 생각(正念)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관장”이란 높은 관리. 관직에 있는 우두머리.
[경]모든 외도의 범지 니건자 등과 세속의 문필과 외서를 찬영하는 자 및 노가야타와 역노가야타를 친근하지 말 것이며,
불친근 제외도 범지 니건자등 급조세속문필 찬영외서 급노가야타 역노가야
不親近 諸外道 梵志 尼犍子等 及造世俗文筆 讚詠外書 及路伽耶陀 逆路伽耶
타자 역불친근
陀者 亦不親近
[강의] 보살이 친근할 바 둘째, 그릇된 사람의 가르침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邪人法].
“모든 외도∼니건자 등”이란 삿된 사람들과 멀리하라는 것이다. 삿된 소견으로 바른 견해[正見]가 막히기 때문이다.
“세속의 문필과 외서∼친근하지 말며”란 삿된 법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삿된 말로 바른 사유[正思惟]가 훼방받기 때문이다.
“범지(梵志 brāhmaṇa)”란 바라문. 바라문교 제일, 사제 계급.
“니건자(Nigraṇṭha)”란 속박을 벗어난다는 뜻. 자이나(Jaina)교를 받드는 사람들.
“노가야타(Lokāyata)”란 순세파(順世派)라고 한다. 육사외도의 하나인 아지타(Ajita)가 주장하였는데, 실재하는 것은 오직 지 수 화 풍 네 요소뿐이라는 유물론(唯物論)을 주장했다.
“역노가야타(Vāmalokāyatika)”란 세상의 도리에 역행하는 주장을 하는 일파. 극단적인 쾌락주의자. 중국말로 번역하면 악론(惡論)의 뜻이며 또한 파론(破論)이란 뜻도 된다. 또 역로(逆路)란 말은 임금과 아비에 거스르는 논의라는 뜻이다. 또한 노(路)는 선론(善論)이라 하며, 또한 사파제자(師破弟子)라고도 한다. 역로는 악론(惡論)이라 하며 제자사파(弟子師破)라 한다. 사파제자란 스승이 제자의 주장을 논파하는 것. 제자사파란 제자가 스승의 사상을 논파함이니 거스르는 것이 되어 악론(惡論)의 역로가야타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거스르는 것이 아니어서 선론(善論)의 의미 노가야타가 된다는 것.
[경] 또한모든 흉희(凶戲), 즉 서로 치고 서로 겨루는 것과 위험한 기술과 가지가지로 변화하는 장난을 친근하지 말며
제유흉희 상차상박 급나라등종종변현지희 우불친근
諸有兇戲 相扠相撲 及那羅等種種變現之戲 又不親近
[강의] 보살의 친근할 바 셋째, 흉측한 놀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적정(寂靜)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흉희(凶戲)”란 흉악한 놀이.
“서로 침(相扠, mauṣṭika”이란 주먹으로 치는 놀이. 권법.
“서로 겨룸”이란 원문은 상박(相樸), 곧 씨름하는 것을 말한다.
“위험한 기술”이란 원문은 나라연(那羅延, Narāyaṇa): 원래 천상에 있는 금강역사 등을 부르는 말. 여기서는 이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재주부리는 사람을 뜻하고 있다. 힘 겨루는 장난. 나라는 재주부리는 사람. 광대.
[경] 또전다라와 돼지 양 닭 개를 먹이는 이와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는 나쁜 율의(律儀)에 친근하지 말지니라. 이와 같은 사람들이 혹시 오거든 곧 위하여 법을 설하되 무엇을 바라지 말며,
전다라급축저양계구 전렵어포제악율의 여시인등 혹시내자 즉위설법 무소
旃陀羅及畜猪羊鷄狗 畋獵漁捕諸惡律儀 如是人等 或時來者 則爲說法 無所
희망
希望
[강의] 보살이 친근할 바 넷째, 전다라 등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까이 하면 자비심을 해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전다라(栴陀羅, cạṇdala)”란 수렵 도살 사형집행 등 생명을 해치는 일에 종사하는 천민을 말한다. 이들로 하여금 자비심이 없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사냥하고 물고기 잡음(畋獵漁捕)”이란 사냥과 물고기를 잡는 일을 일삼는 자는 악한 무리이니 이러한 사람들과 가까이하면 도심(道心)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나쁜 율의[諸惡律儀]”란 수렵 도살 등 생계를 위해 생명을 살해하는 선하지 않은 행위.
[경] 또, 성문을 구하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친근하지 말며, 또 문안하지도 말며, 혹은 방이거나 경행(經行)하는 곳이나 강당에서도 같이 머물지 말며, 혹시 오거든 근기를 따라 법을 설하되 무엇을 바라지 말라.
우불친근구성문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역불문신 약어방중 약경행처 약
又不親近求聲聞 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亦不問訊 若於房中 若經行處 若
재강당중 불공주지 혹시내자 수의설법 무소희구
在講堂中 不共住止 或時來者 隨宜說法 無所希求.
[강의] 보살이 친근할 바 다섯째, 성문을 구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면 보리를 구하는 뜻이 훼손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문안[問訊]”이란 안부를 물음. 도가 이미 같지 않으므로 방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
“경행(經行)”이란 좌선에 들었다가 잠시 피로를 풀기 위해 일어나 뜰을 거니는 것.
“무엇을 바라지 마라”란 근기를 따라 법을 설하되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것.
[경] 문수사리야, 또보살마하살은 여인에게 욕망의 생각을 내는 모습으로 법을 설하지 말며, 또한 보기를 즐겨하지 말며, 혹은 타인의 집에 들어갈지라도 젊은 여자나 처녀나 과녀와 같이 말하지 말며,
문수사리 우보살마하살 불응어여인신 취능생욕상상 이위설법 역불락견 약입
文殊師利 又菩薩摩訶薩 不應於女人身 取能生欲想相 而爲說法 亦不樂見 若入
타가 불여소녀 처녀 과녀 등 공어
他家 不與小女 處女 寡女 等 共語
[강의] 보살이 친근할 바 여섯째, 애욕을 일으키는 것에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 이들과 가까이하여 애욕이 생기면 보리심을 해치기 때문이다.
“욕망의 생각[欲想]”이란 보살은 여인의 몸에 애욕을 일으키는 상을 취해 설법하지 않는다는 것.
“보기를 즐겨하지 말며[亦不樂見]”란 여인의 몸을 보기를 좋아해서도 안 된다는 것.
[경] 또는 다섯 가지 완전치 않은 사람과 가까이하여 깊이 친하지 말며,
역부불근오종불남지인
亦復不近五種不男之人
[강의] 보살이 친근할 바 일곱째, 신체가 비정상적인 사람(불순한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신체 불구로 인하여 비정상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면 구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완전치 않은 사람[五種不男之人]”이란 남성이 불구인 다섯 부류 사람. 선천적인 성불구자[生不能男], 반월만이 성행위가 가능한자[半月不能男], 남의 성행위를 보아야 가능한자[妬不能男], 성기가 상대에 따라 변하는 사람[精不能男], 병으로 성기능이 상실된 사람[病不能男]. 이런 사람은 불순하여 도심에 해가 되기 때문에 친근하지 않는다.
[경] 홀로 남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니, 만일 인연이 있어 홀로 들어갈 때에는 다만 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라.
이위친후 부독입타가 약유인연 수독입시 단일심염불
以爲親厚 不獨入他家 若有因緣 須獨入時 但一心念佛
[강의] 보살이 친근할 바 여덟째, 혼자서 남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 그 이유는 나쁜 습기에 오염되거나 위해 입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경] 만일 여인을 위하여 법을 설하려거든 이를 드러내어 웃지 말고 가슴을 헤쳐 놓지 말라. 오로지법을 위해서라도 깊이 친하지 말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다른 일일까 보냐.
약위여인설법 불로치소 불현흉억 내지위법 유불친후 황부여사
若爲女人說法 不露齒笑 不現胸臆 乃至爲法 猶不親厚 況復餘事
[강의] 보살이 친근할 바 아홉째, 여인에 법을 설할 때 단정히 하라는 것. 단정치 못한 행위는 남의 악한 마음을 일게 한다. 그러므로 음란한 기운을 막아 계율을 깨뜨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를 드러냄[露齒]”이란 웃어서 이를 드러내 보이는 것. 근엄함을 해침.
“가슴을 헤쳐 놓지 말라[不現胸臆]”란 가슴을 여미는 것은 몸가짐을 단정히 하기 위한 것이다.
[경]즐겨 연소한 제자나 사미와 어린아이를 기르지 말며, 또한 함께 한 스승 섬기기를 즐기지 말 것이며,
불락축 연소제자 사미 소아 역불락여동사
不樂畜 年少弟子 沙彌 小兒 亦不樂與同師
[강의] 보살이 친근할 바 열째, 어린아이를 기르지 말라. 이러한 행위는 수행에 방해가 되어 안락행에 방해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 열 가지는 좋지 않은 사람에 가까이 하지 않음을 나타냄으로 ①먼 것에서 친근처를 논하였다. 또한 이하의 단(항상 좌선을 좋아하고…)에서부터는 마음에서 친근처를 논함이므로 ②가까운데서 친근처를 논함이다. “또 다시 보살마하살은…”부터는 ③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것에서 친근처를 논함이다.
“사미(沙彌, sāmaṇera)”란 비구가 되기 이전의 도제승. 7세에서 20세 미만의 남자 출가자로 십계(十戒)를 받고 비구가 되기 위해 수행 중에 있는 사람.
“사미와 어린아이”란 사미는 나이가 어려 아직 구족계를 받지 못하였고, 어린 아이는 방자하고 나약하여 아직 도를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하는 자들이다.
[경] 항상 좌선을 좋아하되 한적한 곳에 있어 마음을 닦을지니라. 문수사리야, 이것을 첫째의 친근처(親近處)라고 이름하느니라.
상호좌선 재어한처 수섭기심 문수사리 시명초친근처
常好坐禪 在於閑處 修攝其心 文殊師利 示名初親近處
[강의] 가까운 데서 논하는 친근처이다.
“항상 좌선을 좋아하되”란 선정의 마음(정심)이고, ‘한적한 곳에서’란 선정하는 장소이며, ‘마음을 닦을 지니라’란 선정의 방법이다.
“한적한 곳[閑處]”이란 고요한 곳. 공한처.
“마음을 닦음[修攝其心]”이란 마음을 통일함. 마음이 오래 미혹한 상태에 있으면 병통이 되므로, 도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음을 다스려 본연의 맑은 상태를 회복하고 항상 바른 생각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경] 또 다시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법이 공(空)함을 관하되
부차 보살마하살 관일체법 공
復次 菩薩摩訶薩 觀一切法 空
[강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것에서 친근처를 논함이다. 먼저 경계를 관조하는 지혜를 총체적으로 나타내고, 둘째 이를 자세히 해석하고, 셋째 맺는 내용이다. 먼저 지혜의 경계를 바라보는 지혜를 총체적으로 나타낸다.
“관하되”란 중도관의 지혜를 말한다.
“일체법”이란 십법계의 경계를 말한다.
[경] 실상(實相)과 같이 하여, 전도(顚倒)하지 않고 동(動)하지도 않으며 퇴(退)하지도 않고 전(轉)하지도 아니하며 허공과 같이 해서 있을 바의 성품도 없음이니일체의 말도 도(道)도 끊어져서 생(生)하지도 않고 나(出)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며이름도 없고 상(相)도 없어서 실로 소유도 없고 헤아림도 없고 끝도 없고 걸림도 없고 장애도 없건마는
여실상 부전도 부동불퇴부전 여허공 무소유성 일체어언도단 불생불출불기
如實相 不顚倒 不動不退不轉 如虛空 無所有性 一切語言道斷 不生不出不起
무명무상 실무소유 무량무변 무애무장
無名無相 實無所有 無量無邊 無礙無障
[강의] 대상을 관조하는 지혜를 자세히 해석하였다.
“실상과 같이 하여”란 일체법의 본성이 공함을 깨달아 알고, 비록 공(空)하기는 하나 그 작용을 나타내는데 걸림이 없으니 가의(假義)이고, 공과 가가 둘이 아닌 것이 중도(中道)이며, 다르지도 같지도 않음을 여실한 모습이라 한다.
“전도하지 않고”란 깨달음을 등지고 번뇌에 합한 모습이라 한다. 여덟 가지 전도(顚倒)가 있다. 곧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부정(不淨) 고(苦) 무상(無相) 무아(無我)임에도 불구하고 정(淨) 낙(樂) 상(常) 아(我)로 생각하는 것이 범부의 전도라고 한다.
“있을 바 성품도 없음[無所有性]”이란 갖가지 허망한 성품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허망한 생각이 본래 공함을 알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없어진다. 스스로[自] 남에 의해[他] 함께[共] 원인 없음[無因] 등의 성질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일체의 말도 도(道)도 끊어짐”이란 절대의 진리(실상)는 말로 설명되거나 표현할 수 없으니 언어를 초월해 있다는 것.
“나지도 않고[不出]” 라 한 것은 여래께서 번뇌를 다스리신 것은 구경이어서 다시 발생하지 않음이다. 여래의 지혜를 써서 미혹을 대치하고 영원히 조복하여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어나지도 않으며[不起]” 란 모든 방편이 모두 적멸했음을 말한다. 진실의 이치에 들어갔으므로 치우친 방편 법을 폐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고[無名]”란 이름으로 이름 지을 수 없음이다. 진리의 이치는 언어로 미칠 수 없으므로 이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상도 없음[無相]”이란 상으로 상을 나타낼 수 없음이다.
“참으로 있는 바 없고[無所有]” 라 한 것은 두 치우친 존재가 없음이다. 중도의 이치에서는 공⋅가의 대립된 존재를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무량(無量)”이라 한 것은 헤아릴 수 있는 법이 아님을 말한다. 색심(色心)의 상이 끊어진 경지이기 때문이다.
“상도 없어서”란 사물에는 고정적 실체가 없는 것.
“실로 소유도 없고[實無所有]”란 법신이 청정하여 비추는 본체만이 있는 것일 뿐, 눈앞의 대상은 진실한 모습이 아니다.
“걸림도 없고 장애도 없건마는”이란 체성(體性)이 공적하므로 아무 걸림이 없고, 체성이 물들지 않아서 일체의 막힘에서 벗어난 것이다.
[경] 다만 인연으로 해서 있을 뿐 전도(顚倒)에 따라서 생하는 까닭으로 설함이니라. 항상 즐겨 이와 같이 법의 상을 관할지니라. 이를 보살마하살의 제이의 친근처라 하느니라.
단이인연유 종전도생고설 상락관여시법상 시명보살마하살 제이친근처
但以因緣有 從顚倒生故說 常樂觀如是法相 是名菩薩摩訶薩 第二親近處
[강의] 대상을 관조하는 지혜를 맺음이다.
“다만 인연으로 있음[但以因緣有]”이란 본체가 공적하지만 인연을 생기는 것을 장애하지 않는다. 무명으로 인연을 삼으면 범부의 세계가 일어나고, 탐진치를 지니면 삼악도가 생기고, 없어지면 십선도(十善道)가 일어난다. 교행(敎行)을 인연으로 삼아, 사제법(四諦法)을 인연으로 닦으면 성문(聲聞)의 세계가 일어나고, 십이인연(十二因緣)을 닦으면 연각(緣覺)의 세계가 일어나고, 육바라밀행을 닦으면 보살의 세계가 일어나고, 무연자비(無緣慈悲)의 불가사의한 신통스런 작용을 갖추면 부처님의 세계가 일어난다.
“법의 상[法相]”이란 일체법의 진실한 모습. 본연의 여실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