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수사리 여래멸후 어말법중 욕설시경 응주안락행
又文殊師利 如來滅後 於末法中 欲說是經 應住安樂行
[강의] 사안락행 중에서 두 번째 구안락행(口安樂行)을 설하였다. 바른 언행(正語)으로 안락행에 머물 것을 설하셨다. 지행(止行)과 관행(觀行)을 설한다. 이 부분부터는 지행이고, “이와 같이…”이하부터는 관행이다. 지행에는 첫째 허물을 말하지 않음, 둘째 업신여기지 않음, 셋째 찬탄 헐뜯지 않음, 넷째 원망하고 싫어하지 않음 이다.
“말법(末法) 중에서”란 부처님 법에는 정법 상법 말법시대가 있다고 한다. 이중에서 말법시대에는 부처님께서 멸하신 지 이미 오래되어 그 가르침만이 남아 있을 뿐 수행이나 깨달음이 없는 시대를 말한다.
[경] 혹은 입으로 선설하고 혹은 경을 읽을 때에 즐겨 사람과 경전의 허물을 설하지 말라.
약구선설 약독경시 불락설인 급경전과
若口宣說 若讀經時 不樂說人 及經典過
[강의] 구안락행 수행법을 해석했다. 경전에 허물이 있는 듯 보이더라도 실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방편법을 설하셨기 때문이다.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설한 법은 중생을 진실로 이끄시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니 법에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법의 과실을 지적한다면 그 가르침으로 제도 받아야 할 근기에게 신심을 해치게 되므로, 오히려 죄가 되니 법의 과실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근기따라 법을 설하므로 수타의어(隨他意語)라 하고, 방편법은 인⋅천⋅성문⋅연각⋅삼장보살⋅통교보살⋅별교보살의 칠방편에게 설하신 가르침을 말한다.
“즐겨∼설하지말라[不樂說]”란 지행을 말한다. 불요(不樂)는 바라지 않다는 뜻.
[경] 또는 모든 다른 법사를 가벼이 하여 업신여기지 말며,
역불경만제여법사
亦不輕慢諸餘法師
[강의] 원교(圓敎)에 의해 편교(偏敎)를 얕보거나 진실의 가르침만을 존중하고 방편의 가르침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일을 말한다.
“다른 법사(諸餘法師)”란 '법화경'이외의 가르침을 설하는 법사.
“가벼이 하여 업신여김[輕慢]”이란 남을 경멸하는 것을 말한다.
[경]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쁘고 잘하고 잘못함을 말하지 마라. 또한 어떤 성문의 이름을 지칭해서 그의 허물과 나쁜 것을 말하지 말며, 또한 이름을 지칭해서 그 좋은 점을 찬탄하지 말며,
불설타인 호오장단 어성문인 역불칭명 설기과악
不說他人 好惡長短 於聲聞人 亦不稱名 說其過惡
역불칭명 찬탄기미
亦不稱名 讚歎其美
[강의] “잘하고 잘못함을 말하지 마라”란 한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이를 비난하게 되며, 안보는 데서 남을 헐뜯으면 그 사람은 또한 자신을 헐뜯는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남의 선악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쳐야 한다.
“성문의 이름을 지칭해서 허물을 말하지 마라”란 성문승 사람들이란 근성이 확정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만약 이승을 찬탄한다면 혹 대승에서 퇴전해 소승으로 취하게 하고, 만약 이승을 비난하면 대승 소승을 모두 상실해 둘 다 취할 수 없게 만들 우려가 있으므로 칭찬도 비방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 또는 원망과 혐의의 마음을 내지 말지니라.
우역불생 원혐지심
又亦不生 怨嫌之心
[강의] “원망과 혐의의 마음[怨嫌之心]”이란 그 사람이나 법이 내 도를 방해한다고 여기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것이 내 것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면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니 마음이 일어나면 곧 말이 생겨나므로 남의 허물을 말하는 근원인 원망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하는 것이다.
[경] 이와 같이 잘 안락의 마음을 닦는 고로 모든 듣는 자들이 그의 뜻을 거역하지 않으며, 어렵운 질문을 하면 소승의 법으로 대답하지 말고, 다만 대승으로 해설해서 일체종지를 얻도록 할지니라.
선수여시안락심고 제유청자 불역기의 유소난문 불이소승법답
善修如是安樂心故 諸有聽者 不逆其意 有所難問 不以小乘法答
단이대승 이위해설 영득일체종지
但以大乘 而爲解說 令得一切種智
[강의] 관문행을 설한 내용이다.
“안락의 마음을 닦는 고로”란 이와 같이 구업(口業)을 잘 다스리면 그 마음을 안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음”이란 일체 것들에 대해 공함을 관해서 집착함이 없어서 마음이 진실로 얽매이지 않음을 말한다.
“대승으로 해설해서”란 대승의 근기가 없음을 알고서 소승으로 설해준다면 소승에게 방편의 이익이 되게 하지만, 만약 대승의 근기가 있는데도 소승을 설하면 대승의 연을 방해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대승의 근기를 보지 못한 바에는 오직 대승을 설하는 것이 오히려 허물이 되지 않는다.
[경]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보살은 항상 즐겨 안온의 법을 설하되,
청정한 땅에 법상의 자리를 펴고
기름을 몸에 발라 먼지와 때를 씻고,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안팎을 함께 깨끗이 하고서
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世尊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보살상락 안온설법 어청정지 이시상좌
菩薩常樂 安隱說法 於淸淨地 而施床座
이유도신 조욕진예 착신정의 내외구정
以油塗身 澡浴塵穢 著新淨衣 內外俱淨
[강의] 게송은 바른 언행(정어행)을 노래한 것이다(16항 반). 처음은 안락행에 주함을 노래하고(2항), 다음에는 행법을 노래하며(9항 반), 뒤에서는 수행의 성취를 노래했다(5항).
이 구절은 바르게 말하는 행이다.
“안온의 법을 설하되”란 편안한 도의 과를 얻도록 해 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여래의 방에 들어가는 도리이다.
“법상의 자리 펴고(而施床座)”란 마땅히 청정하여 탁한 오염이 없는 곳을 가려서 설법할 높은 법상을 설치 한다는 것이다.
“청정한 땅”이란 여래의 자리에 앉는 도리이다.
“기름을 몸에 발라”란 여래의 옷을 입는 도리이다.
[경] 법자리에 편안히 앉아
묻는 데 따라 설할지니라.
안처법좌 수문위설
安處法座 隨問爲說
[강의] 이하부터 “…안락공양이로다”(p.632:3) 지행(止行) 수행법을 게송하였다.
“법자리에 편안히 앉아[安處法座]”란 일체법이 공한 자리에 앉음에 안팎이 모두 공해진다는 것이다. 법좌란 부처님 법을 설하는 자리. 여기에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을 안처(安處)라고 한다.
“묻는데 따라 설할지니라”란 다만 도리에 의거해 말할 뿐, 남의 좋은 점 나쁜 점을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 만일 비구 비구니와 모든 우바새 우바이와
국왕 왕자 군신(群臣) 사민(士民)이 있거든
미묘한 뜻을 화평한 얼굴로 설할지니라.
만일 어려운 질문이 있으면 뜻에 따라 대답하되
약유비구 급비구니 제우바새 급우바이
若有比丘 及比丘尼 諸優婆塞 及優婆夷
국왕왕자 군신사민 이미묘의 화안위설
國王王子 群臣士民 以微妙義 和顔爲說
약유난문 수의이답
若有難問 隨義而答
[강의] 2행 반으로,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게송했다.
다만 도리에 따를 뿐 사람의 좋고 나쁜 점은 말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질문이 있으면 뜻에 따라 대답함”이란 지자어(智者語)는 대답해도 되는 경우[可答]이고, 왕의 말[王者語]과 어리석은 자의 말[愚者語]은 모두 대답해서는 안 되는 경우이다[不可答]. 지혜로운 자의 말은 곧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할 줄 아는 자의 말이다. 왕의 말이란 왕과 같이 남을 따르도록 하고 따르지 않으면 벌주듯이 하는 말을 가리킨다. 어리석은 자의 말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허망하게 자신의 뜻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화평한 얼굴”이란 온화하고 기쁜 얼굴빛을 말한다.
[경] 인연과 한량없는 비유로 자세히 설해 분별할지니라.
이 같은 방편으로 다 발심케 하여
점차로 이익을 더해 주어
불도에 들게 할지니라.
인연비유 부연분별 이시방편 개사발심
因緣譬喩 敷演分別 以是方便 皆使發心
점점증익 입어불도
漸漸增益 入於佛道
[강의] 사람과 법의 허물을 즐겨 말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추가하여 게송한 것이다. 남의 허물을 말한다면 상대로 하여금 악한 생각을 낳게 할 것인데, 지금은 남의 과실에 대해 말하지 않으므로 발심해서 불도에 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불도는 기쁨을 따라 생긴다.
“자세히 설해 분별함[敷演分別]”이란 두루 펴서 설명하고 명백하게 설명하는 것.
[경] 게으른 마음과 게으른 생각을 없애고,
모든 근심 걱정에서 떠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설하되
제나타의 급해태상 이제우뇌 자심설법
除懶惰意 及懈怠想 離諸憂惱 慈心說法
[강의] 원망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게으른 생각이나 근심이 생길 것이나 지금은 자비심으로 설법하여 원망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정진해 근심이 없는 것이다.
“게으른 마음[懶惰意]”이란 게으르고 산만한 마음을 말한다.
“게으름 피울 생각[懈怠想]”이란 권태롭게 여기는 생각을 말한다.
[경] 항상 주야로 무상도(無上道)의 가르침을 설할지니,
모든 인연과 한량없는 비유로
중생에게 열어 보여 다 환희케 하라.
의복 와구(臥具) 음식 의약 등
그런 것을 바라지 말고,
다만 일심으로 설법의 인연을 생각하여
불도를 이루고 중생으로 하여금
또한 이와 같음을 원할지니라.
이것이 크게 이로운 안락 공양이니라.
주야상설 무상도교 이제인연 무량비유
晝夜常說 無上道敎 以諸因緣 無量譬喩
개시중생 함령환희 의복와구 음식의약
開示衆生 咸令歡喜 衣服臥具 飮食醫藥
이어기중 무소희망 단일심념 설법인연
而於其中 無所希望 但一心念 說法因緣
원성불도 영중역이 시즉대리 안락공양
願成佛道 令衆亦爾 是則大利 安樂供養
[강의] 장항에서의 구안락행의 관행(觀行)을 게송한 내용이다.
“주야로 무상도(無上道) 무상의 도법(최고의 진리. 여기서는 일불승의 진실법) 가르치심을 설법하고” 라고 한 구절부터는 둘째 4행이 있어, 윗글에서의 관문(觀門) 수행하는 내용을 게송했다. 장행에서는 “이와 같은 안락심을 잘 닦음으로써~일체종지를 얻게 할지니라”의 내용.
“무상도의 가르침[無上道敎]”이란 곧 일승의 가르침이다.
“중생에게 열어 보임[開示衆生]”이란 중생을 이해시켜 밝게 보여주는 것이다.
“의복 와구 음식 의약”이란 곧 사사(四事)이다. 수행 승려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물건.
“안락공양”이란 안락한 경지로 이끄는 수행. 안락하고 청정한 공양.
[경] 내가 멸도한 후에 만일 비구가 있어
능히 이 묘법연화경을 연설하면,
아멸도후 약유비구 능연설사 묘법화경
我滅度後 若有比丘 能演說斯 妙法華經
[강의] 이하에서는 구안락행 성취를 게송했다. 먼저 그 행의 성취를 표시한 내용이다.
[경] 질투와 성냄과 모든 번뇌의 장애가 없으며,
또는 근심과 슬픔과 꾸짖는 자가 없으리라.
또는 겁나고 두려운 일이나,
칼과 막대기로 때리는 일이 없으며
또는 쫓겨나는 일도 없으리니
인욕해서 편안히 머물기 때문이니라.
심무질에 제뇌장애 역무우수 급매리자
心無嫉恚 諸惱障礙 亦無憂愁 及罵詈者
우무포외 가도장등 역무빈출 안주인고
又無怖畏 加刀杖等 亦無擯出 安住忍故
[강의] 이 구절은 안으로 허물이 없으면 밖으로 환란이 생기지 않음을 밝혔다.
“질에(嫉恚)”란 시샘하고 성냄을 가리킨다.
“꾸짖는 자[罵詈者]”란 나쁜 말로 욕하고 꾸짖는 자를 말한다.
“칼과 막대기로 때리는 일[加刀杖] 없음”이란 무기로 해를 가하는 것이 없음. 자비와 인욕을 지닌 사람은 그 마음이 항상 편안하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니 남도 그를 괴롭히지 않아서 칼과 몽둥이로 맞는 일이 없는 것이다.
“쫒겨남[擯出]”이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대중 밖으로 내쫓기는 일. 교단에서 추방함.
[경] 지혜 있는 사람이 이같이 그 마음을 잘 닦으면,
능히 안락에 머물되 내가 설한 바와 같으리라.
지자여시 선수기심 능주안락 여아상설
智者如是 善修其心 能住安樂 如我上說
[강의] 선법에 있어서 수행을 성취함을 밝혔다. 바른 언행을 결론적으로 읊었다. 보살이 자기 마음을 잘 닦아 안락행에 머무르면 온갖 난관도 만나지 않게 되어 진리의 큰 이익을 받게 되고 중생을 교화해 그 이익을 나눠주게 된다. 따라서 그의 공덕이 무궁해 지고 설법도 다함이 없을 것이다.
“안락에 머무름[住安樂]”이란 능히 구안락행(口安樂行)을 닦음이다.
[경] 그 사람의 공덕은 천만억 겁을 두고
산수의 비유로 설할지라도
능히 다 말할 수 없느니라.
기인공덕 천만억겁 산수비유 설불능진
其人功德 千萬億劫 算數譬喩 說不能盡
[강의] 공덕을 다른 것에 비교하여 찬탄하였다.
“그 사람의 공덕”이란 경전을 널리 편 사람이 얻는 공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