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체(一切)의 의의(意義)
② 내용에 한정되었던 일체
어쨌든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일체유(一切有)”란 “일체법이 실유한다”는 의미이다. 법을 이루는 것은 곧 거북의 털 토끼의 뿔과 같은 명유(名有), 푸트갈라와 같은 화합유, 혹은 차 병과 같은 가유(假有, 자연적 존재)는 일체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 일체란 각각의 입장에 있어서 법의 체계이다. 그러므로 일체는 지극히 내용에 한정된 것으로 일체를 문자로 통하여 “모든 것”이라고 하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일체유(一切有)를 everything exists로 번역하는 것은 내용적으로는 바르지 않다.
'대지도론'에 의하면, “일체”에는 ‘명자(名字:명칭과 형태)의 일체’와 ‘실제의 일체’가 있다고 하는데, “일체유”라고 하는 경우의 일체는 이 ‘실제의 일체’에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명자의 일체’ 때문에 문자로 통하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라고 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일부는 존재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없음[無]’도 또한 ‘있음[有]’이 된다('존바수밀보살소집론(尊婆須蜜菩薩論)' 9권 대정장 28권 p.795). 그러나 이것은 유부의 정통설은 아니었다.
유부에서는 거북의 털 토끼의 뿔과 같이 모순을 포함하는 개념은 실유하는 것이 아니고 명유(名有)로 있다고 하지만, 볼차노에 의하면 “원만한 삼각”과 같은 모순을 포함하는 개념은 그것 자신은 참도 거짓도 아니고, “삼각은 원만하다”라고 했을 때에는 거짓이 된다고 한다.
유부는 실재하지 않는 대상(無境)을 지향하는(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나 보루차노에 의하면, 무(無)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질료(stoff)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대상을 갖지 않는다. 또한 “황금의 산”은 모순을 포함하지 않지만 여기에 대응하는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③ 유부의 약점
그런데 인도 일반의 집합설(集合說)과 공통인 “존재방식”이 있다고 해석하는 입장에 따른다면 철저하게 실유하는 법의 범위를 확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는 불교에 있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유라고 하는 개념의 범위를 확대한다면 점점 경험논적 실재론의 입장에 서서 바이세시카설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부의 약점이 있다. 경량부는 극력 이런 모순을 지적해 마지않았다. 또한 나가르주나의 '중론'의 파사(破邪) 논법도 확실히 법유(法有) 입장의 이런 약점을 꿰뚫고 있다.
(4) 항유(恒有)의 의의
① 삼세의 구별의 성립
유부의 근본사상은 중국 일본에서 예부터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라고 정리되고 있으나, 이것은 지극히 불명료한 표현이기 때문에 ‘말의 앞 뒤’를 보충하여 말하면 “삼세에 있어서 실유하는 법체(법 그것)가 항상 존재한다”라고 하는 의미이다.
법체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있어서 존재한다면 삼세의 구별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대비바사론'에는 다르마트라다(法救) 고샤카(妙音) 바스미트라(世友)붓다데바(覺天)이라고 하는 4인의 학자들 사이에 이설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대비바사론' '잡아비담신론' '구사론' 등에 의하면 제3의 바스미트라의 “위(位)의 부동(不同)”에 의해 해석하는 설이 정통설(정의)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더구나 '구사론'에는 존자 다르마트라다의 “부류의 부동”이라고 하는 설은 상키아설에 유사하다고 하여 배척되고 있으나, 상카파트라에 의하면 그의 학설도 결코 유부의 정통설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하며, 바스미트라의 설과 같은 취지라고 한다('아비달마현종론' 제26권 대정장 29, p.902상). '대비바사론'에서 보더라도 원래 유부는 상키야설과 같은 현상적 존재의 본질의 변화에 있는 자체전변(自體轉變)을 부정하고 있으나, 작용에 의해서 변화하고 있는 작용전변, 또는 가능력(可能力)에 의해 변화하고 있는 공능전변(功能轉變)은 승인하고 있다('대비바사론' 제39권, 대정장 27, p.200중).
따라서 다르마트라다의 설이 작용전변 또는 공능전변의 의미라면 상카바트라라고 하는 것처럼 반드시 배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약해 보면 유부로서는 바스미트라의 설을 정통설로 하고 다르마트라다의 설을 이것과 같은 취지라고 이해해도 좋을까 어떨까에 관해서는 후세의 제학자들 사이에 두 가지 설이 있었다고 한다.
단지 어떠한 설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으나, 여기서는 모든 사상(事象)의 생기 및 소멸을 의식의 흐름에 있어서 붙잡고 있어서 윤회의 문제로부터는 떨어져 있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법이 시간적 양태에 있어서 존재한다고 생각되고 있다.
② 삼세에 있어서 항유
다음에는 어째서 삼세에 있어서 항유하는가 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유부의 제논서에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이것을 근거로 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식신족론'이 최초이다.
같은 논서 제1권에는 마우드가리야-야나(목건련)로 불리었던, 과거 미래는 없이 현재와 무위만 존재한다고 하는 설을 대략 9절로 나누어 배척하고 있다. 그 나머지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삼세실유법체항유”를 주장하고 있다('대비바사론' 제76권, '구사론' 제20권, '아비달마순정리론' 제50권, '아비달마현종론' 제26권 등). 이제 그 이유를 하나하나 검토할 여유는 없지만, 이러저러한 이유에 공통인 근본적인 논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법이란 우리가 경험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아니고, 따라서 자연적 존재도 아니고, 자연적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존재양식이다. 자연적 존재로서 사물은 현재 일순간 없어지고 말지만, 우리들의 의식에 있어서 지향하고 있는 존재양식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곧 형태로서의 순수한 법이 먼저 없어지고 후에 존재하며, 먼저 있다가 뒤에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없다. 자연적 존재는 과거 미래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으나 법은 삼세에 걸쳐서 존재한다고 하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삼세실유법체항유”의 증명 때문에 사용되고 있는 이른바 논거를 모두 설명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제 여기서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삼세실유법체항유”라고 하는 것에 관해서 일본에서는 고래로 체멸설(體滅說)과 용멸설(用滅說)이 행해졌다. 양파 모두 여러 유부의 논서에서 전거를 모아서 가능한 한 논하고 있으나, 이것은 결국 “체”라고 말하는 문자의 해석여하에 의한다.
한자의 체(體)는 인도 원어로는 일정하지 않고 다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체란 추상적 일반적인 존재양상 본질로 해석된다. 이것은 멸하지 않지만 시간적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여튼 체멸설도 체용설도 유부의 사상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
③ 서양철학과 다른 점
이상 법공의 사상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유부의 근본사상을 약설해왔으나,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유부의 철학이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보통 일반에 유부는 실재론을 설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부는 병이나 옷과 같은 자연적 존재의 실재를 부정하고 이것을 가유(假有)라 하며, 오온 십이처 십팔계와 같은 법의 체계만의 실유를 설하고자 하기 때문에 서양철학이라고 하는 보통의 실재론과는 매우 의미를 달리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로젠베르크는 유부도 관념론적인 데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제학자들에 의해서 플라톤 철학과의 유사함이 지적되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비록 이것을 realism으로 부른다 하더라도 실재론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실념론(實念論:唯名論 nominalism에 대한)으로 번역하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른다. 인도학자들 가운데에도 이 점에 이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 예를 들면 사이에루는 유부를 “개념의 실재론(Bergriffsrealism)"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사이에루의 명명도 엄밀히 말하면 바른 것은 아니다.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유부에 의하면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중에 ‘구(句)’는 개념은 아니고 명제이다. 개념만이 아니라면 명제의 자체 유(有: Ansichsein)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념론” “개념의 실재론”이라고 하는 말이 딱 맞게 적합하지는 않다. 예부터 현상학의 선구사상 예를 들면 볼차노철학과 유사하다는 점이 있다. 볼차노, 토왈토프스키의 철학에서는 “원만한 삼각”과 같은 모순된 개념, 혹은 “푸른 덕”과 같은 의미를 이루지 않은 개념도 문제가 되지만, 유부는 제13처 등은 실유가 아니라고 한다.
결국 유부의 사상에 서양철학의 “어떠어떠한 논”이라고 하여 간단히 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된다.
종래 중국 일본불교에서는 유부는 소승불교의 대표적인 학파로서 불교에서 가장 저급한 가르침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유부의 사상이 대승불교의 그것과 정반대의 점이 있고, 또한 사회적으로는 유부가 가장 유력했기 때문에 대승불교 측에서 빈번히 논란하고 또한 핍박했다고 할 수 있다. 유부의 사상은 이런 자체로서 깊은 철학적 의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더욱더 잘 이해하고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주: 1)베르나르트 플라키두스 요한 네포무크 볼차노(Bernard Placidus Johann Nepomuk Bolzano, 1781~1848년). 그는 체코의 수학자 및 철학자, 논리학자이다. 볼차노 정리로 유명하다. 프라하의 상인 가정에서 태어나 1796년 이래 철학·수학을 배우고, 가톨릭 신학을 연구, 1805년 사제(司祭)에 서품되었다. 이후 프라하 대학의 종교학 교수가 되었으나 이단이라 하여 1819년 면직을 당했고, 저서의 출판도 금지되었다. 저서로는 4권의 '지식학(知識學)' 1837에서 '명제 자체(命題自體)' '표상(表象) 자체' '진리 자체'라는 세 개의 개념을 기본으로 한다. 명제 자체는 사고나 판단의 내용이지만 결코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의미이다. 표상 자체는 그 요소이며, 진리 자체는 객관적인 진리로 명제 자체의 일종이다. 이 논리주의는 후설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수학에서 무한(無限)의 역설(逆說)을 생각했다.
2) 바이세시카(Vaisecika)는 인도 바라문 육파 철학의 하나. 정리학파(Nayaya)와 함께 논의 되었다. 이 학파는 극단적인 실재론을 펴서 불교철학과 대립하였다. Vaisecika는 특수 구분을 의미하는 Vaisesa에서 유래하였다. 중국에서는 뛰어나다(주승)의 뜻으로 이해하여 승론(勝論)이라고 불렀다. 이 파에서는 세계를 실체(dravya)· 성질(guna) · 행위(Karma) 연동 · 보편(samanya) · 특수성 · 내재(samavaya) 여섯 실재를 여섯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3) 다르마트라다(Dharmatrata, 法救)는 고대 인도 간다라국 고승, 한자로는 법구(法救)로 의역한다. 심신 수양을 쌓고 자비를 베풀도록 부처님의 사상을 가장 잘 전해준 고승 중 한 분이다. '법구경(法句經)' 2권의 편찬자이고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의 비평가이다.
4) 고샤카는 묘음이라 한다. 대월지국의 카니쉬카왕이 500명의 비구를 카습미라(迦濕彌羅, Kashmira)에 모아 제4결집을 단행할 때 참석하였다. 이때에는 바스미트라(世友)를 상좌로 협존자(脇尊者), 묘음(妙音)등 대아라한 들이 참석하여 경장의 주석 10만송, 율장의 주석 10만송, 논장의 주석 10만송 등을 결집하였다. 이 결집을 카습미라결집이라 한다.
5) 바스미트라(Vasumitra)는 한역으로 세우(世友). 불멸후 400여년에 비바사 4평가의 한분이다. 카니시카왕의 카시미르 결집에서 살바다부 삼장을 결집할 때 오백 대중의 상수였다. '異部宗輪論'을 지었다고 한다.
6)붓다데바(Buddhadeva)는 한역으로 각천이라 한다. 각은 발타(勃陀), 천은 제바를 번역한 것이다.
7) 역사적으로는 여러 가지 실재론이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참다운 실재라고 생각한다. 중세의 실념론(實念論), 즉 관념실재론은 플라톤을 계승하여 보편(普遍)이 고체물(固體物)에 앞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인식주관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고, 인식은 이러한 실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인식론의 입장이 대두하기도 하였다.
8) 실념론이란 실재론(實在論)의 한 가지. 관념론(觀念論)과 대립되는 입장이지만 보편개념의 실재를 인정하는 의미에서는 대립되지 않는다. 즉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의 스콜라신학의 정통파, F.브렌타노, B.볼차노, E.후설 등의 현상학(現象學)이나 A.마이농 등의 대상론(對象論)의 입장과 같이 개물(個物:하나하나의 책상이나 건물 등)의 실재를 인정하는 입장도 실재론이라 하는 경우가 있으나, 실념론은 경험적 실재로서의 개물과는 다른 초월적(超越的) 관념론적(觀念論的) 대상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관념론적이다. 그 때문에 이 경향은 개물 이외에 보편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명론(唯名論)과 대립되고 용어로서의 ‘실념론(實念論)’이라고 한다. 곧 실념론은 개개의 물건[個物]보다 먼저 존재(存在)한 객관적(客觀的) 존재(存在)라고 주장(主張)하는 학설(學說).
9) '구사론' 오위 75법 중에 오위중의 하나. 오위는 심법(心法) 심소유법 색법 심불상응행법 무위법이다. 심불상응행법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법. 물(物)도 심(心)도 아닌 그것들의 관계 힘 개념과 같이 특수한 법 14가지가 있다. 유식종에서도 14종을 들고 있다(전호의 오위 75법 참조).
② 내용에 한정되었던 일체
어쨌든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일체유(一切有)”란 “일체법이 실유한다”는 의미이다. 법을 이루는 것은 곧 거북의 털 토끼의 뿔과 같은 명유(名有), 푸트갈라와 같은 화합유, 혹은 차 병과 같은 가유(假有, 자연적 존재)는 일체 가운데 포함되지 않는다. 일체란 각각의 입장에 있어서 법의 체계이다. 그러므로 일체는 지극히 내용에 한정된 것으로 일체를 문자로 통하여 “모든 것”이라고 하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일체유(一切有)를 everything exists로 번역하는 것은 내용적으로는 바르지 않다.
'대지도론'에 의하면, “일체”에는 ‘명자(名字:명칭과 형태)의 일체’와 ‘실제의 일체’가 있다고 하는데, “일체유”라고 하는 경우의 일체는 이 ‘실제의 일체’에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명자의 일체’ 때문에 문자로 통하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라고 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일부는 존재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없음[無]’도 또한 ‘있음[有]’이 된다('존바수밀보살소집론(尊婆須蜜菩薩論)' 9권 대정장 28권 p.795). 그러나 이것은 유부의 정통설은 아니었다.
유부에서는 거북의 털 토끼의 뿔과 같이 모순을 포함하는 개념은 실유하는 것이 아니고 명유(名有)로 있다고 하지만, 볼차노에 의하면 “원만한 삼각”과 같은 모순을 포함하는 개념은 그것 자신은 참도 거짓도 아니고, “삼각은 원만하다”라고 했을 때에는 거짓이 된다고 한다.
유부는 실재하지 않는 대상(無境)을 지향하는(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나 보루차노에 의하면, 무(無)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질료(stoff)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대상을 갖지 않는다. 또한 “황금의 산”은 모순을 포함하지 않지만 여기에 대응하는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③ 유부의 약점
그런데 인도 일반의 집합설(集合說)과 공통인 “존재방식”이 있다고 해석하는 입장에 따른다면 철저하게 실유하는 법의 범위를 확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는 불교에 있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유라고 하는 개념의 범위를 확대한다면 점점 경험논적 실재론의 입장에 서서 바이세시카설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부의 약점이 있다. 경량부는 극력 이런 모순을 지적해 마지않았다. 또한 나가르주나의 '중론'의 파사(破邪) 논법도 확실히 법유(法有) 입장의 이런 약점을 꿰뚫고 있다.
(4) 항유(恒有)의 의의
① 삼세의 구별의 성립
유부의 근본사상은 중국 일본에서 예부터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라고 정리되고 있으나, 이것은 지극히 불명료한 표현이기 때문에 ‘말의 앞 뒤’를 보충하여 말하면 “삼세에 있어서 실유하는 법체(법 그것)가 항상 존재한다”라고 하는 의미이다.
법체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있어서 존재한다면 삼세의 구별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대비바사론'에는 다르마트라다(法救) 고샤카(妙音) 바스미트라(世友)붓다데바(覺天)이라고 하는 4인의 학자들 사이에 이설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대비바사론' '잡아비담신론' '구사론' 등에 의하면 제3의 바스미트라의 “위(位)의 부동(不同)”에 의해 해석하는 설이 정통설(정의)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더구나 '구사론'에는 존자 다르마트라다의 “부류의 부동”이라고 하는 설은 상키아설에 유사하다고 하여 배척되고 있으나, 상카파트라에 의하면 그의 학설도 결코 유부의 정통설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하며, 바스미트라의 설과 같은 취지라고 한다('아비달마현종론' 제26권 대정장 29, p.902상). '대비바사론'에서 보더라도 원래 유부는 상키야설과 같은 현상적 존재의 본질의 변화에 있는 자체전변(自體轉變)을 부정하고 있으나, 작용에 의해서 변화하고 있는 작용전변, 또는 가능력(可能力)에 의해 변화하고 있는 공능전변(功能轉變)은 승인하고 있다('대비바사론' 제39권, 대정장 27, p.200중).
따라서 다르마트라다의 설이 작용전변 또는 공능전변의 의미라면 상카바트라라고 하는 것처럼 반드시 배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약해 보면 유부로서는 바스미트라의 설을 정통설로 하고 다르마트라다의 설을 이것과 같은 취지라고 이해해도 좋을까 어떨까에 관해서는 후세의 제학자들 사이에 두 가지 설이 있었다고 한다.
단지 어떠한 설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으나, 여기서는 모든 사상(事象)의 생기 및 소멸을 의식의 흐름에 있어서 붙잡고 있어서 윤회의 문제로부터는 떨어져 있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법이 시간적 양태에 있어서 존재한다고 생각되고 있다.
② 삼세에 있어서 항유
다음에는 어째서 삼세에 있어서 항유하는가 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유부의 제논서에 여러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이것을 근거로 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식신족론'이 최초이다.
같은 논서 제1권에는 마우드가리야-야나(목건련)로 불리었던, 과거 미래는 없이 현재와 무위만 존재한다고 하는 설을 대략 9절로 나누어 배척하고 있다. 그 나머지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삼세실유법체항유”를 주장하고 있다('대비바사론' 제76권, '구사론' 제20권, '아비달마순정리론' 제50권, '아비달마현종론' 제26권 등). 이제 그 이유를 하나하나 검토할 여유는 없지만, 이러저러한 이유에 공통인 근본적인 논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법이란 우리가 경험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아니고, 따라서 자연적 존재도 아니고, 자연적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존재양식이다. 자연적 존재로서 사물은 현재 일순간 없어지고 말지만, 우리들의 의식에 있어서 지향하고 있는 존재양식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곧 형태로서의 순수한 법이 먼저 없어지고 후에 존재하며, 먼저 있다가 뒤에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없다. 자연적 존재는 과거 미래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으나 법은 삼세에 걸쳐서 존재한다고 하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삼세실유법체항유”의 증명 때문에 사용되고 있는 이른바 논거를 모두 설명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제 여기서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삼세실유법체항유”라고 하는 것에 관해서 일본에서는 고래로 체멸설(體滅說)과 용멸설(用滅說)이 행해졌다. 양파 모두 여러 유부의 논서에서 전거를 모아서 가능한 한 논하고 있으나, 이것은 결국 “체”라고 말하는 문자의 해석여하에 의한다.
한자의 체(體)는 인도 원어로는 일정하지 않고 다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체란 추상적 일반적인 존재양상 본질로 해석된다. 이것은 멸하지 않지만 시간적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여튼 체멸설도 체용설도 유부의 사상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
③ 서양철학과 다른 점
이상 법공의 사상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유부의 근본사상을 약설해왔으나,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유부의 철학이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보통 일반에 유부는 실재론을 설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부는 병이나 옷과 같은 자연적 존재의 실재를 부정하고 이것을 가유(假有)라 하며, 오온 십이처 십팔계와 같은 법의 체계만의 실유를 설하고자 하기 때문에 서양철학이라고 하는 보통의 실재론과는 매우 의미를 달리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로젠베르크는 유부도 관념론적인 데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제학자들에 의해서 플라톤 철학과의 유사함이 지적되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비록 이것을 realism으로 부른다 하더라도 실재론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실념론(實念論:唯名論 nominalism에 대한)으로 번역하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른다. 인도학자들 가운데에도 이 점에 이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 예를 들면 사이에루는 유부를 “개념의 실재론(Bergriffsrealism)"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사이에루의 명명도 엄밀히 말하면 바른 것은 아니다.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유부에 의하면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중에 ‘구(句)’는 개념은 아니고 명제이다. 개념만이 아니라면 명제의 자체 유(有: Ansichsein)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념론” “개념의 실재론”이라고 하는 말이 딱 맞게 적합하지는 않다. 예부터 현상학의 선구사상 예를 들면 볼차노철학과 유사하다는 점이 있다. 볼차노, 토왈토프스키의 철학에서는 “원만한 삼각”과 같은 모순된 개념, 혹은 “푸른 덕”과 같은 의미를 이루지 않은 개념도 문제가 되지만, 유부는 제13처 등은 실유가 아니라고 한다.
결국 유부의 사상에 서양철학의 “어떠어떠한 논”이라고 하여 간단히 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된다.
종래 중국 일본불교에서는 유부는 소승불교의 대표적인 학파로서 불교에서 가장 저급한 가르침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유부의 사상이 대승불교의 그것과 정반대의 점이 있고, 또한 사회적으로는 유부가 가장 유력했기 때문에 대승불교 측에서 빈번히 논란하고 또한 핍박했다고 할 수 있다. 유부의 사상은 이런 자체로서 깊은 철학적 의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더욱더 잘 이해하고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주: 1)베르나르트 플라키두스 요한 네포무크 볼차노(Bernard Placidus Johann Nepomuk Bolzano, 1781~1848년). 그는 체코의 수학자 및 철학자, 논리학자이다. 볼차노 정리로 유명하다. 프라하의 상인 가정에서 태어나 1796년 이래 철학·수학을 배우고, 가톨릭 신학을 연구, 1805년 사제(司祭)에 서품되었다. 이후 프라하 대학의 종교학 교수가 되었으나 이단이라 하여 1819년 면직을 당했고, 저서의 출판도 금지되었다. 저서로는 4권의 '지식학(知識學)' 1837에서 '명제 자체(命題自體)' '표상(表象) 자체' '진리 자체'라는 세 개의 개념을 기본으로 한다. 명제 자체는 사고나 판단의 내용이지만 결코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의미이다. 표상 자체는 그 요소이며, 진리 자체는 객관적인 진리로 명제 자체의 일종이다. 이 논리주의는 후설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수학에서 무한(無限)의 역설(逆說)을 생각했다.
2) 바이세시카(Vaisecika)는 인도 바라문 육파 철학의 하나. 정리학파(Nayaya)와 함께 논의 되었다. 이 학파는 극단적인 실재론을 펴서 불교철학과 대립하였다. Vaisecika는 특수 구분을 의미하는 Vaisesa에서 유래하였다. 중국에서는 뛰어나다(주승)의 뜻으로 이해하여 승론(勝論)이라고 불렀다. 이 파에서는 세계를 실체(dravya)· 성질(guna) · 행위(Karma) 연동 · 보편(samanya) · 특수성 · 내재(samavaya) 여섯 실재를 여섯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3) 다르마트라다(Dharmatrata, 法救)는 고대 인도 간다라국 고승, 한자로는 법구(法救)로 의역한다. 심신 수양을 쌓고 자비를 베풀도록 부처님의 사상을 가장 잘 전해준 고승 중 한 분이다. '법구경(法句經)' 2권의 편찬자이고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의 비평가이다.
4) 고샤카는 묘음이라 한다. 대월지국의 카니쉬카왕이 500명의 비구를 카습미라(迦濕彌羅, Kashmira)에 모아 제4결집을 단행할 때 참석하였다. 이때에는 바스미트라(世友)를 상좌로 협존자(脇尊者), 묘음(妙音)등 대아라한 들이 참석하여 경장의 주석 10만송, 율장의 주석 10만송, 논장의 주석 10만송 등을 결집하였다. 이 결집을 카습미라결집이라 한다.
5) 바스미트라(Vasumitra)는 한역으로 세우(世友). 불멸후 400여년에 비바사 4평가의 한분이다. 카니시카왕의 카시미르 결집에서 살바다부 삼장을 결집할 때 오백 대중의 상수였다. '異部宗輪論'을 지었다고 한다.
6)붓다데바(Buddhadeva)는 한역으로 각천이라 한다. 각은 발타(勃陀), 천은 제바를 번역한 것이다.
7) 역사적으로는 여러 가지 실재론이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참다운 실재라고 생각한다. 중세의 실념론(實念論), 즉 관념실재론은 플라톤을 계승하여 보편(普遍)이 고체물(固體物)에 앞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인식주관으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고, 인식은 이러한 실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 인식론의 입장이 대두하기도 하였다.
8) 실념론이란 실재론(實在論)의 한 가지. 관념론(觀念論)과 대립되는 입장이지만 보편개념의 실재를 인정하는 의미에서는 대립되지 않는다. 즉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의 스콜라신학의 정통파, F.브렌타노, B.볼차노, E.후설 등의 현상학(現象學)이나 A.마이농 등의 대상론(對象論)의 입장과 같이 개물(個物:하나하나의 책상이나 건물 등)의 실재를 인정하는 입장도 실재론이라 하는 경우가 있으나, 실념론은 경험적 실재로서의 개물과는 다른 초월적(超越的) 관념론적(觀念論的) 대상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관념론적이다. 그 때문에 이 경향은 개물 이외에 보편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명론(唯名論)과 대립되고 용어로서의 ‘실념론(實念論)’이라고 한다. 곧 실념론은 개개의 물건[個物]보다 먼저 존재(存在)한 객관적(客觀的) 존재(存在)라고 주장(主張)하는 학설(學說).
9) '구사론' 오위 75법 중에 오위중의 하나. 오위는 심법(心法) 심소유법 색법 심불상응행법 무위법이다. 심불상응행법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법. 물(物)도 심(心)도 아닌 그것들의 관계 힘 개념과 같이 특수한 법 14가지가 있다. 유식종에서도 14종을 들고 있다(전호의 오위 75법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