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또 문수사리야 보살마하살이 후의 말세에 법이 멸하고자 할 때 이 경전을 받아 가져 읽고 외우는 자는 
우문수사리  보살마하살  어후말세 법욕멸시  수지 독송 사경전자
又文殊師利  菩薩摩訶薩  於後末世 法欲滅時  受持 讀誦 斯經典者

 [강의] 사안락행중의 의안락행(意安樂行)이다. 여기서는 먼저 지행(止行)을 설하고 뒤에서는 관행(觀行)을 설한다. 먼저 지행에는 첫째 질투와 아첨하지 않고, 둘째 업신여기지 않으며, 셋째 의혹하고 후회치 않게 하며, 넷째 다투지 않음이다.  

 [경] 질투와 아첨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무회질투첨광지심
無懷嫉妬諂誑之心

 [강의] 의안락행 지행중 첫째 질투와 아첨하지 않음이다. 자세히 보면, “질투(嫉妬)와 아첨[諂誑]”이란 질투심과 아첨하고 속이는 거짓된 마음을 뜻한다. 번뇌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삼독이다. 질투는 성냄[瞋]의 번뇌이고, 대중을 미혹시킴은 탐(貪)과 어리석음[癡]이다. 질투하고 시기함은 자비의 마음에 어긋나므로 중생을 제도하는 화타(化他)의 법이 아니며, 아첨하고 속이는 일은 지혜의 도에 어긋나 자기수행의 도인 자행(自行)의 도에 어긋난다. 그러므로 보리를 구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안락행의 보살은 반드시 버려야할 일이다.

 [경] 또 불도 배우는 자를 가벼이 하여 꾸짖으며그 잘잘못을 찾지 말라
역물경매학불도자  구기장단
亦勿輕罵學佛道者  求其長短  

 [강의] 지행중 둘째,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불도 배우는 이는 원교행을 닦는 이를 말한다. 따라서 원교행을 내세워 별교의 사람들을 꾸짖지 말라는 것이다. 욕하고 가벼이 여기면 선근을 퇴전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찾음[求其長短]”이란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일부러 엿 보는 것을 말한다.

 [경] 만일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성문을 구하는 자와 벽지불을 구하는 자와 보살도를 구하는 자를 뇌란케 하여, 그로 하여금 의심하고 후회하게 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 말하되 너희들은 불도와 거리가 심히 멀어서 끝내 일체종지를 능히 얻지 못하리라고 하지 말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너는 방일(放逸)한 사람이라, 도에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라.
약비구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구성문자 구벽지불자 구보살도자 무득뇌지
若比丘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求聲聞者 求辟支佛者 求菩薩道者 無得惱之
영기의회 어기인언 여등 거도심원 종불능득일체종지 소이자하 여시방일지인
令其疑悔 語其人言 汝等 去道甚遠 終不能得一切種智 所以者何 汝是放逸之人
어도해태고
於道懈怠故 

 [강의] 지행중 셋째,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원교를 내세워 통교의 무리를 꾸짖지 말라는 취지이다. 본래 대승의 근기가 없는데도 원교를 가지고 꾸짖는 다면 마음에 고뇌가 생기므로 통교는 이미 배격 받고 또 원교도 이해하지 못하므로 대승의 도리를 상실하는 것이다. 통교는 삼승에 공통하는 가르침이니 삼장교⋅별교⋅원교가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제까지의 삼장교를 배격하니 의혹하게 되고 원교를 배우기는 했어도 이해가 가지 않으므로 후회하게 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불도와 거리가 심히 멀음”이란 별교의 수행인을 괴롭히는 일이다.
“끝내 일체종지를 얻지 못하리라”란 공에 빠져 있어 열반을 집착함이다.
“방일한 사람”이란 성품이 방탕하고 안일한 사람. 곧 소승인 자를 말한다. 생사를 싫어하여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소승에서 보면 정진이지만, 보리를 구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대승의 입장에서는 방일이 된다.
 
 [경] 또 모든 법을 희론(戲論)하여 말다툼하는 일이 없게 하라
우역불응희론제법  유소쟁경
又亦不應戱論諸法  有所諍競

 [강의] 지행중 넷째 다투지 않음이다. 대승법과 소승법을 구별하고 공에 있어서 치우침과 원융함을 다투어 삼독이 일어남을 말한다. 이것은 아직 의근이 청정하지 못하여 안락행에 머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희론(戲論)”은 온갖 견해로 희롱하는 말.
“말다툼하는 일이 없게 함”이란 일체법에 억지로 희론하여 법문을 문란시켜 어느 한쪽은 폐기하고 다른 한 쪽은 인정해주는 논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것.

 [경] 마땅히 일체 중생에게는 대비상(大悲想)을 일으키고,
당어일체중생 기대비상
當於一切衆生 起大悲想

 [강의] 의안락행의 관행(觀行)을 밝힌 것이다. 첫째 일체중생에게 대비의 마음을 일으킴이니, 이는 앞의 질투와 아첨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다.
“대비상(大悲想)”이란 일체 세간의 중생들을 불쌍히 여겨 고통에서 구해주기 위해 큰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경] 모든 여래를 자부(慈父)로 생각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어제여래 기자부상
於諸如來 起慈父想

 [강의] 관행중 둘째 자부의 생각이다. 이는 앞의 업신여기는 것에서 벗어남이다.
“자부상(慈父想)”이란 모든 여래는 자애로운 아버지를 대하듯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킴이다.
 
[경] 모든 보살을 큰 스승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일으키어, 시방의 모든 대보살에게 항상 마땅히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고 예배할지니라.
어제보살 기대사상 어시방제대보살 상응심심 공경예배
於諸菩薩 起大師想 於十方諸大菩薩 常應深心 恭敬禮拜

 [강의] 관행의 셋째 큰 스승이라는 생각[大師想]을 일으킴이다. 이는 괴롭혀 어지럽게 하는 일을 떠남이다.
“큰 스승으로 생각함[大師想]”이란 모든 보살들에게 법을 받은 큰 스승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라는 것이다. 보살은 부처님의 행을 잘 배워 오로지 중생을 이롭게 하므로 중생을 스승이나 보호자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에게는 대사로 공경하고 예경하는 것이다.
“항상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고 예배함”이란 불도를 구하는 대보살에게는 부처님같이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고 예배해야 함을 말한다.

 [경] 일체 중생에게 평등하게 법을 설하되, 법에 순종하는 연고로 많이도 하지 말고 적게도 하지 말라. 깊이 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또한 많이 설하지 말라.
어일체중생 평등설법 이순법고 부다불소 내지심애법자 역불위다설
於一切衆生 平等說法 以順法故 不多不少 乃至深愛法者 亦不爲多說

 [강의] 관행의 넷째 평등하게 설법함이다. 평등설법은 앞의 모든 법을 희론하여 말다툼하는 일이 없게 함이다.
“평등하게 법을 설함[平等說法]”이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설법해 주는 것이다.
“법에 순종함[順法]”이란 도리를 따르는 것이다.
“많이도 말고 적게도 말며[不多不小]”란 법을 너무 많이 설하면 싫증을 내고 적게 설하면 충분히 도리를 이해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많이 설하지 말라[不爲多說]”란 매우 법을 사랑하는 자가 있다고 해서 더 많이 설한다면 평등설법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경] 문수사리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후의 말세에서 법이 멸하고자 할 때에 이 제삼의 안락행을 성취하는 자가 이 법을 설하면 능히 뇌란(惱亂)할 일이 없으리라.
문수사리 시보살마하살 어후말세 법욕멸시 유성취시데삼안락행자 설시
文殊師利 是菩薩摩訶薩 於後末世 法欲滅時 有成就是第三安樂行者 說是
법시 무능뇌란
法時 無能惱亂

 [강의] 행의 성취를 맺는 내용이다. 첫째 악을 그치므로 말미암아 악을 더할 수 없어서, 지행(止行)에 의해 마음의 악을 제거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어떠한 악도 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삼의 안락행을 성취한 자”란 안락행중 제3 의안락행(意安樂行)의 청정한 수행을 성취한 사람이다.


 [경] 좋은 동학(同學)을 얻어 같이 배우고 같이 이 경을 읽어 외우며 또한 대중이 와서 듣고 받으리니. 듣고는 능히 가지고, 가지고는 능히 외우며,
외우고는 능히 설하고, 설하고는 능히 쓰며 혹은사람을 시켜 쓰게 하여경권을 공양하고 공경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리라.
득호동학 공독송시경 역득대중 이래청수 청이능지 지이능송 송이능설 설이능서
得好同學 共讀誦是經 亦得大衆 而來聽受 聽已能持 持已能誦 誦已能說 說已能書
약사인서 공양경권 공경존중찬탄
若使人書 供養經卷 恭敬尊重讚歎

 [강의] 행의 성취 중 둘째 관행 때문에 뛰어난 사람이 모여들어 좋은 동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동학을 얻어 경을 읽어 외움”이란 착하고 좋은 법우를 만나 함께 배워 이 경을 지니고 독송함이다.
“듣고는 능히 가짐[聽而能持]”이란 귀로 들은 다음에는 마음에 기억하여 지님.
“가지고는 능히 외움[持而能誦]”이란 기억하여 지닌 다음에는 외운다는 것.
“외우고 능히 설함[誦而能說]”이란 외운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설법한다는 것.
“설하고는 능히 씀[說而能書]”이란 다른 사람위해 설법한 다음 다시 베껴 쓴다는 것이다.

 [경] 그 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만일 이 경을 설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질투와 성냄과 아만과 아첨과
간사함과 거짓의 마음을 버리고
항상 질직한 행을 닦을지니라.
사람을 가벼이 보고 업신여기지 말며
또 법을 희론하지 말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후회하게 하여
너는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지 말라.
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世尊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약욕설시경         당사질에만
若欲說是經         當捨嫉恚慢
첨광사위심         상수질직행
諂誑邪僞心         常修質直行
불경멸어인         역불희론법
不輕懱於人         亦不戱論法
불령타의회         운여부득불
不令他疑悔         云汝不得佛

 [강의] 제3친근처 의안락행을 게송한 것이다.
의안락행의 게송은 지행과 관행의 둘에 각각 네 가지 취지가 있음을 노래하고(5항) 행의 성취를 노래했다(1항).
먼저 지행의 네 가지 취지이다.
①“질직한 행을 닦아서”라는 부분은 앞의 지행 장행에서 “질투와 아첨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의 취지이다.
② “가벼이 하여 업신여기지 말라”란 지행으로는 “가벼이 하여 꾸짖고 잘잘못 찾지 말라”는 취지이다.
③ “법을 희론하지 말라”란 앞의 지행으로는 “희론하여 말다툼하지 말라”는 취지이다.
④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후회케하여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지 말라”란 지행으로 “뇌란케하여  의심하고 후회하게 하지 말라”는 취지이다.
“간사함과 거짓의 마음”이란 원문은 사위심(邪僞心)이다.
“질직한 행”이란 진실하고 정직한 법다운 수행. 곧은 행실.

 [경] 불자가 법을 설하려거든
항상 유화하고 능히 인욕하고
일체를 자비로 대하고 게으른 마음을 내지 말지니라.
시방의 대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도를 행하거든 응당 공경하는 마음을 내되
이는 곧 나의 큰 스승이라고 할지니라.
모든 부처님 세존을 위 없는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내어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고
법을 설함에 장애와 걸림이 없게 하라.
제삼의 법이 이와 같음이니 지혜 있는 자는
마땅히 지켜 일심으로 안락히 행하면
한량없는 중생이 공경하리라.
시불자설법         상유화능인
是佛子說法         常柔和能忍
자비어일체         불생해태심
慈悲於一切         不生懈怠心
시방대보살         민중고행도
十方大菩薩         愍衆故行道
응생공경심         시즉아대사   
應生恭敬心         是則我大師
어제불세존         생무상부상
於諸佛世尊         生無上父想
파어교만심         설법무장애
破於憍慢心         說法無障礙
제삼법여시         지자응수호
第三法如是         智者應守護
일심안락행         무량중소경
一心安樂行         無量衆所敬

 [강의] 관행의 네 가지 취지이다.  끝의 1항(“제삼의 법이 이와 같으니∼중생이 공경하리라”)은 행의 성취를 맺는말이다.
① “자비로 대하고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않음”은 관행의 대비심을 일으키는 취지이다.
②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나의 큰 스승으로 함”이란 관행의 큰 스승의 생각을 일으키라는 취지이다.  
③ “세존을 위 없는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냄”이란 여래를 자부로 생각하는 마음을 일으키라는 취지이다.
④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고 장애와 걸림이 없음”이란 평등하게 법을 설하는 취지이다.
“유화하고 능히 인욕함”이란 항상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으로 잘 참는다는 것이다.
“도를 행함[行道]”이란 시방의 모든 보살들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자비의 도를 행하는 것이다.
“나의 큰 스승[我大師]”이란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해주므로 이 분은 내게 법을 전수한 스승이라는 것이다.
“위 없는 아버지라는 생각[無上父想]”란 모든 여래께는 위 없이 높은 아버지라는 생각.
“제삼의 법[第三法]”이란 사안락행의 셋째인 의안락행(意安樂行)을 말한다.

※법화경 보살의 친근처와 사안락행
보살들이 악세에서 이 경을 펴기 위한 사안락행
 첫째, 제일친근처는 신안락행으로 경을 지녀 잘 펴기 위한 몸을 바로 하는 수행이니, 수행자의 행동에 대한 기본적인 규범을 밝힌 행처(行處)와 대인관계에서의 규범을 친근처(親近處)로 설하신다. 여기서는 인욕지(忍辱地)에 머물러 마음을 다스리고, 수행에 방해되는 사람이나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제시했다. 인욕지에 머무는 보살행처는 다음과 같다.
둘째, 제이친근처는 구안락행으로 바른 언행을 통한 수행을 설하여 다른 사람이나 경전⋅법사 등의 허물을 함부로 설하지 말 것과 대승의 가르침으로 설법하라는 것이다.
셋째, 제삼친근처는 의안락행으로 바른 마음가짐이니 질투하는 마음과 아첨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부대중⋅이승⋅삼승에게 자비심을 가지고 평등하게 설법하라는 것이다.
넷째, 제사친근처는 서원안락행으로 법화경을 수지하는 자가 있으면 다 자비심을 내어 다 교화 인도하겠다는 서원을 가지고 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