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의 논리

1. 부정 논리의 문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1) 『중론』의 주석서
 『근본중송(根本中頌)'의 원어는 Mūlamadhyamaka-kārikā로, 『중론(中論')』은 4권 500수 게송으로 중송(中頌, Mūlamadhyamaka-kārikā , 中에 기초하는 詩頌)이라고도 한다. 서력 기원후 150∼250년경(불멸후 600∼700년경) 남인도를 중심으로 교화를 폈던 용수의 저작이다. 『근본중송(根本中頌)'은 전체 27장 450여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론'이 나가르주나의 대표 저술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중론'은 『근본중송'에 대하여 청목(靑目)이 쓴 주석서이다. 이 『중론'은 구마라집에 의해 번역되어 한역 대장경을 신행하던 동북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중시되었다.
 용수 당시 불교계는 아비달마의 20여 부파가 난립하여 혁신적인 사상의 불교도들로부터 대승경전이 편찬되어 대승불교가 흥기하고 있었다. 불교계 밖에서는 바라문교의 육파철학(六派哲學)이 정비되어 가고, 힌두교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용수는 이러한 당시상황에서 아비달마 교학의 법유론적(法有論的) 교리 해석에 대해 파사현정을 가하였으며 실재론적인 바라문의 철학체계도 타파하였다. 용수의 노력에 힘입어 인도 불교는 결국 대승 불교로서의 꽃을 피우게 되었고, 최고의 힌두 사상가 상캬(samkhya)의 불이론(不二論 Advaita)철학 역시 용수의 사상을 모태로 출현하였다.
 '중론』은 아비달마의 실재론적 교리 이해를 타파하기 위해 저술된 것으로, 비교적 용수의 초기 저작에 속한다. 당시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붓다 재세 시 교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교설 자체의 법상을 정밀하게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부처님 설법하신 근본 의도는 잊어버리고 교설의 문자에만 집착하여 논구하는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해탈을 위해 교시된 교법을 철저하게 신봉하다 보니 거꾸로 그 교법에만 속박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한편 아비달마적인 전통 불교를 소승(小乘)이라고 폄하하던 대승불교에서는 반야계 경전의 공(空)사상을 추구하는 일군에서 인식의 진정한 정화 없이 공사상을 수용하다 보니 공을 실재론적으로 이해하는 부류가 생기게 되었다. 이를 후대 유식불교에서는 악취공자(惡取空者)라고 부르지만, 용수가 『중론』>을 저술할 당시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중론』에서는 이들을 대승 불교 내의 사견인(邪見人)이라고 부른다. 『중론』은 이렇게 소승의 실재론적 교리 해석과 대승의 실재론적 공관(空觀)을 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하였다고 한다.

 『중론』 부정의 논리를 해명하는데 있어서, 우선 그 책의 입론(立論)의 원의를 알기 위해서는 어떤 주석에 의하여만 할까 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사상론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논하고자 한다.
 현재 출판되고 있는 '중론』의 주석이 6종류가 있는데, 그것을 순차적으로 고찰해보기로 한다.

<중관파의 중요 전적>
① 『무외소(無畏疏 Mūlamadhyamaka-vṛtti-Akutobhayā)』: 나가르주나 자신의 주석서, 또는 작자미상(티베트본 9C 북경판 No.5229)
② 『중론(中論)』4권 : 천축 청목석(靑目釋)(5C. 초 한역漢譯 요진姚秦 구마라집鳩摩羅什譯, 大正 No. 1564)
③ 『근본중소(根本中疏 Buddhapālita-mūlamadhyamaka-vṛtti)』 : 불호(佛護) 주석서. 티베트본(북경판 No.5242)
④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 Prajñāpradīpa-mūlamadhyamaka-vṛtti,)』: 청변(淸辯釋  Bhāvaviveka)주석서. 15권(5C 당대한역 석론釋論 분별명보살分別明菩薩저, 당바라파밀다역唐波羅頗蜜多羅譯, 大正 No. 1566 : 티베트본 북경판(No.5253)
⑤ 『대승중관석론(大乘中觀釋論)』 9권 : 안혜석(安慧釋) 송宋 유정등 한역(惟淨等漢譯, 大正 No.1567) 7세기에 산스크리트어로 쓰여 유일하게 현존, 티베트어로 번역.
⑥ 『명구론(明句論 Mūlamadhyamaka-vṛtti-Prasannapadā』 : 월칭주석서(月稱 Candrakīrti) 산스크리트본, 티베트본 북경판 No.5260)
⑦ 『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蜜經初品法門)』2권 : 무착보살석(無著菩薩釋), 원위(元魏) 구담반야유지역(瞿曇般若流支譯, 大正 No.1565)

 그 가운데 『대승중관석론(大乘中觀釋論)』 18권은 스테이라마티(Sthiramati 안혜)의 저작이다. 그는 요가행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으며, 나가르주나의 원의를 전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라고 하는 염려가 있다.
 이 위에 '중론』의 시구는 후세에 이를 때까지 변화를 받은 것이 근소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역을 보면 전반(유정역), 후반(법호역)도 모두 원문을 과감히 생략해서 의역하고 있어서 탈락도 있는데 이런 점만을 보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에는 바하바비베카(Bhāvaviveka 淸弁 청변)의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Prajñāpradīpa-mūlamadhyamaka-vṛtti,)』은 『중론』을 상세히 주석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참고가 되지만 새로운 독자적인 설을 주장해서 스바탄트리카파(自立論證派, 자립논증파 Svatantrika)로 불리는 학파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주석 만으로는 나가르주나의 원의를 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또한 이 티베트본은 처음의 2장만이 비평적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한역은 티베트역에 비교해서 역본의 현행이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한역만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다만 참고로 언급하는 데에 머물고자 한다.
 바하바비베카(청변)이 그의 논쟁의 상대로 공격의 예봉을 향하고 있는 것은 붓다빠리타(불호佛護)이다. 붓다빠리타는 아리야데바(제바提婆 170년경∼270년경) 라훌라파트라(라후라羅候羅 200년경∼300년경) 이후 약 200년 가까이 지나 중관파를 부흥시켰던 사람이지만, 붓다빠리타의 생각은 대체적으로 볼 때 나가르주나의 원의를 얻었다고 하는 것이 이미 대부분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붓다빠리타의 주석서는 신뢰할 수 있으나, 그의 티베트문은 처음 부분(제2장까지)이 비평적으로 출판되었는데 중요한 사상을 포함한 후반의 부분은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도 출판되었던 부분을 참고하는데 머물고 있다고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2) 가장 중요한 찬드라키르티의 주석
 다음으로는 붓다빠리타의 제자로 되어 있는 찬드라키르티(월칭)가 쓰고 주석한 '뿌라산다빠다』의 산스크리트문이 잔존하여 출판되었다. 제학자들의 설에 따라서 붓다빠리타의 해석이 대체로 나가르주나의 원의를 얻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받았다고 하는 찬드라키르티의 주석도 대체로 나가르주나의 원의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다만 현재 산스크리트본의 시구는 원래의 옛 형태를 다소 개변시킨 자취가 보이는데 그 점이 주의를 끌지만 그러나 그것도 지말(持末)에 관한 것으로 『중론』의 사상 전체를 움직일 정도의 개변(改變)은 아니다.
 찬드라키르티 주석은 『중론』연구에 있어 필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첫째 자세히 주석을 베풀기 위해서 사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둘째 산스크리트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상을 명백히 이해할 수 있어서, 종래 구마라집의 역에 의존하였던 해석상의 오역을 교정하고 불명확한 여러 문장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셋째 연대는 후기에 속하지만 대체로 나가르주나의 원의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된다.
 상술한 이유에 의하여 '중론'의 사상 해석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찬드라키르티의 주석에 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3) 고주(古註)의 취급
 이제 고주로서 『무외론(無畏論)』과 구마라집역의 청목석(靑目釋: 핑가라 청목에 의한 주석서)이 있다. 『무외론』은 티베트에 전하는 설에 의하면 나가르주나의 진작(眞作)이라 하며, 서양학자들에 의해서 일반에 승인되어 있으나, 근래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몇 편 안되지만 현존의 『무외론』은 나가르주나의 진작이 아니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고주(古註)에 있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고, 그 점에서 중요시해야만 할 것이 있으니 그 주석의 글은 단지 시구(詩句) 문장의 어순을 변경해서 알기 쉽게 산문으로 써서 바꾸었다고 하는 정도에 머무르는 곳이 상당히 많다. 아무래도 상세한 찬드라키르티(월칭)의 주석 정도에는 해석의 도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구마라집역의 청목석 『중론』 4권이 있다. 종래 중국 일본의 『중론』 연구는 대부분 여기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중요한 것은 구마라집이 극도의 의역을 한데다가, 중국에 있어서 청목소의 결점이 언급되었으며(승예僧叡에 의한 『중론』서 및 길장의 『중론소』를 참조), 또한 한문의 성질상 여러 종류의 해석이 가능하게 되고, 해석자는 자신이 아는 한자의 상식을 가지고, 후에 지적하는 것처럼, 제멋대로 해석하는 일이 중국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산스크릿트본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중론』의 사상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대체 찬드라키르티의 주해를 중심으로 하되 고주(古註)로 있는 『무외론』이나 청목석을 항상 참조하고 다시 붓다빠리타(불호)의 주석과 『반야등론석』 『대승중관석론』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     

 1)중국 삼론종의 길장(吉藏)의 『중관론소』 서문에 의하면, "라십삼장의 문하생인 담영(曇影)은 수십 명의 주석가가 있었고, 하서(河西)의 도랑(道朗)은 70개가 있었음"을 들었다고 한다. 티베트의 기록에 의하면, 8대 주석가를 말한다. 곧 용수(Klu-Sgrub)·불호(Buddhapalita, 470~540)·월칭(Candrakirti, 600~650)·제바설마(Devasarman, 5~6세기)·구방사리(Gunasari, 5~6세기)·덕혜(Gunamati, 5~6세기)·안혜(Sthiramati, 510~570)·청변(Bhavya, 500~570) 등이 주석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현존하는 주석서로는 450여 게송 모두를 해석한 것들(漢譯 3종, 티베트역 5종 이상, 산스크리트본(1종)이 있으며, 그 일부만 다루었던 것들(漢譯 1종, 藏譯 3·4종)로 나누어 정리해 볼 수 있다. 『중론본송(中論本頌)』의 일부 품이나 게송만을 주석한 것으로 무착석(無着釋) 『순중석(順中釋)』2권(6C. 초 한역)이 현존하고, 최근 연구에 의해 덕혜(德慧, 5c말)가 일부 게송의 전 2구를 해석한 내용이나 제바설마(提婆設摩)의 『난생론(煖生論)』, 적천(寂天, 8c.)의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과 이 논의 '세소(細疏)'에 일부 게송을 주석한 내용들이 밝혀졌다.
2) 『대승중관석론' : 안혜보살(安慧 510∼570) 석. 송(宋) 유정등역(惟淨等譯, 大正 No.1567) 18권. K-1482(41-101). T-1567(30-136). 송(宋) 시대(A.D. 1009∼1041).  약하여 『중관석론(中觀釋論)'이라고 한다. 『고려대장경』에는 18권 27품으로 수록되어 있으나, 『대정장'에는 9권 13품만이 수록되어 있다. 이를 보충하여, 『만속장경(卍續藏經)』에는 법호(法護)가 번역한 후반부에 속하는 제14품 이하를 추가해 모두 27품을 수록하고 있다. 『중론』의 주석서로서 유식 논사(論師)인 안혜의 관점이 돋보인다. 8불(不)과 인연법 등을 통해 존재와 관념들이 근거해 있는 모순과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그것들의 공상(空相)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중론』을 해석하면서 청변(淸辯)의 정언 논법을 비판하여 청변 논법의 대표적인 논서로 통한다.
3)『반야등론석』 : 약하여 반야등론(般若燈論)이라 한다. 분별명(分別明) 곧 청변(淸辯, Bh vaviveka)의 범어로 Praj prad pam lamadhyamakav tti. 티베트어로 Dbu-ma i rtsa-ba i grel-pa es-rab-sgron-ma. K-578(16-401). T-1566(30-51). 당(唐) (A.D. 630∼632) 바라바밀다라(波羅頗蜜多羅) 부처의 근본 교설인 연기설을 반야경의 사상에 입각해서 무자성 공 등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귀류법(歸謬法) 등의 논법을 예리하게 구사하여 외도와 소승의 사견과 편견을 논파하는 용수(龍樹)의 중송(中頌)에 대한  주석서이다. 먼저 외도 및 소승의 각종 사견과 편견만을 논파의 대상으로 하였고, 중관학파의 논사인 불호(佛護)의 학설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논리의 운용이 지극히 정연하다는 것이다.
4)불호 : 산스크리트명 붓다빨리타(Buddhapālitita), 티베트어 Saṅs-rgyas bskyaṅs. 인도 중관불교의 논사로 중관 구연파(Mādhyaṇika-Prāsaṅgika)의 시조. 『중론』8대 주석가 중의 한 분. 서력기원 470∼540년경 활약하였다.
5)중론에 있어서 연기는 불생불멸 등의 '팔불', 공 ·가 ·중의 3제, 그리고 제일의제와 세속제로써 설명되고 있다. 이 용수의 2제설을 계승하여 중도를 해명한 것이 길장(549-623)의 『중론소(中論疏)』이다. 이에 대해 월칭 Candrakirti (600-650년경)의 『중론주』 『프라산나파다 prassnnapada』에서는, 연기에 포함되는 '상호의존(paraspar pek   관대(觀待), 인대(因待)라고도 함)'이 자세히 설해지고 있으며, 상호인대로부터 공성을 설명하고 있다.
6)용수의 저작으로 알려진 『무외론(無畏論, 梵 Mūla-madhyamaka-vṛtti Akutobhayā)』 2100게송은 티베트본과 일역본이 있는데 지금은 친찬에 의심을 받고 있다. 일역은 이케다 죠다츠(池田澄達譯, 1932)역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