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셋째로 동일함을 인용한 것 중에 또 셋이 있다. 처음의 것은 *인과(因果)에 대해 서로 나타내고 있으므로 뜻이 동일한 경우다.
三引同中又三. 初就因果互現, 故義同.
12175인과에 대해 서로 나타냄. 원문은 ‘就因果互現’. 법화경의 안락행은 안락한 절대적 깨달음을 얻기 위한 행인 점에서 인(因)에 서 있고, 대경의 여래행은 개달음을 완성한 부처님의 행이시므로 과(果)에 해당한다. 그러나 깨달음을 남김없이 실현하기 위해서는 안락행도 여래행처럼 완전할 것이 요구되니, 그러므로 안락행과 여래행은 같다고 해야 한다.
[석첨] *이 경에서 안락행(安樂行)을 밝히고 있는 것에 대해 살피건대, ‘안락’은 열반을 이른 말이어서 곧 원교의 과(果)요, ‘행’은 곧 원교의 인(因)이다. *이렇게 열반과 뜻이 같으므로 여래행이라 일컫는 것이다.
此經明安樂行者. 安樂名涅槃, 卽是圓果. 行卽圓因. 與涅槃義同, 故稱如來行.
12176이 경에서 안락행을 밝힘. 원문은 ‘此經明安樂行品’. 안락행품 一四를 가리킨다. 안락행은 신(身)․구(口)․의(意)의 삼업(三業)에서 과오를 떠나고, 온갖 중생의 깨달음을 이끌고자 서원을 일으키는 일. 이를 四안락행이라 하는데, 앞의 셋은 자리(自利)와 연관되고 뒤의 서원은 이타(利他)에 속한다.
12177이렇게 열반과 뜻이 같음. 원문은 ‘與涅槃義同’. 열반만이면 과(果)에 속할 뿐인 듯도 하나, 앞에 나온 대로 ‘대승대발열반’의 처지에서 보면 ‘대승’은 인이요 ‘열반’은 과여서 안락행과 같아진다.
[석첨] 다음으로 ‘入空’ 아래서는 사람과 법을 서로 들었으니, 그러므로 뜻이 같아진다.
次入空下, 人法互擧, 故義同.
[석첨] *방에 드는 일․옷을 입는 일․자리에 앉는 일을 다 ‘여래’라 일컬은 것, 이는 사람에 입각해 말한 것이요, 열반은 법에 입각해 말한 것이니, *사람에 상즉(相卽)해 법을 논하면 여래가 곧 열반이요, 법에 상즉해 사람을 논하면 열반이 곧 여래다. 그러므로 두 경의 뜻은 같다.
入空著衣坐座, 悉稱如來者, 次就人爲語. 涅槃就法爲語. 卽人論法, 如來卽涅槃. 卽法論人, 涅槃卽如來. 二經義同也.
12178방에 드는 일․옷을 입는 일․자리에 앉는 일을 다 ‘여래’라 일컬음. 원문은 ‘入空著義坐座, 悉稱如來’. 법화경 법사품에서 ‘여래의 방에 들며, 여래의 옷을 걸치며, 여래의 자리에 앉고 나서야, 사부대중을 위해 이 경을 설할 수 있다’고 하신 일. 그리고 여래의 방이란 일체중생에 대한 대자비심이요, 여래의 옷이란 유화인욕심(柔和忍辱心)이요, 여래의 자리란 일체법공(一切法空)이다 하셨다.
12179사람에 상즉해 법을 논함. 원문은 ‘卽人論法’. 법이 있는 까닭에 깨닫는 사람이 있게 되며, 사람에 의해 법은 드러난다. 이렇게 사람과 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사람과 불이(不二)인 관점에서 법을 논하며, 법과 불이인 관점에서 사람을 논하는 것이다.
[석첨] 셋째로 ‘涅槃’ 아래서는 *차제(次第)․불차제(不次第)에 입각해 서로 나타냈으니, 그러므로 뜻이 같아진다.
三涅槃下, 次不次互現, 故義同.
12180차제․불차제. 원문은 ‘次不次’. 차제는 단계적으로 수행해 감이니 별교요, 불차제는 순서를 좇지 않고 바로 깨닫는 일이니 원교의 도리다.
[석첨] 열반경은 *일행(一行)의 이름을 나누어 자세히 차제(次第)의 오행(五行)을 해석하고, 법화경은 안락행을 표방하여 *자세히 원교의 취지를 해석했다.
涅槃列一行名, 而廣解次第五行. 法華標安樂行, 廣解圓意.
12181일행. 오직 하나의 행. 절대적인 여래행.
12182자세히 원교의 취지를 해석함. 원문은 ‘廣解圓意’. 별교를 융통하면 원교가 되며, 원융함을 잃으면 별교가 되는 일.
[석첨] *앞에서 이해한 바와 같다.
如前所會.
12183앞에서 이해한 바와 같음. 원문은 ‘如前所會’. 앞에서 열반에 대해, 지전(地前)․지상(地上)에 따라 별교․원교가 갈린다고 한 일.
[석첨] 넷째로 지금의 법화경에 의거해 해석한 것 중에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표방하고, 다음으로 ‘文云’ 아래서는 간략히 배당하고, 셋째로 ‘云何’ 아래서는 자세히 해석했다.
四依今經中三. 初標. 次文云下, 略對. 三云何下, 廣釋.
[석첨] 이제 법화경에 의거해 원교의 오행을 해석컨대, *오행이 일심(一心) 중에 있어서 *구족(具足)하여 결여함이 없음을 여래행(如來行)이라 하는 것이다.
今依法華, 釋圓五行. 五行在一心中, 具足無缺, 名如來行.
12184오행이 일심 중에 있음. 원문은 ‘五行在一心中’. 오행은 새로이 닦아 얻는 법이 아니라, 본래부터 우리 모두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 이것을 알면 미혹과 깨달음 사이에 어떤 차별도 있을 수는 없다.
12185구족. 고루 갖추는 것.
[석첨] 처음의 것은 글 그대로다.
初如文.
[석첨] 다음으로 배당하는 중에 둘이 있다. 먼저 간략히 배당한다.
次對中二. 先略對.
[석첨] *글에 이르되 ‘*여래의 장엄(莊嚴)으로 스스로 장엄한다’ 함은 곧 원교의 성행(聖行)이다. ‘여래의 방’이란 곧 원교의 범행(梵行)이다 ‘여래의 자리’란 곧 원교의 천행(天行)이다. ‘*여래의 옷’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유화(柔和)는 곧 원교의 영아행(嬰兒行)이며, 인욕은 곧 원교의 병행(病行)이다.
文云. 如來莊嚴而自莊嚴, 卽圓聖行. 如來空, 卽圓梵行. 如來座, 卽圓天行. 如來衣有二種. 柔和卽圓嬰兒行, 忍辱卽圓病行.
12186글에 이르되. 원문은 ‘文云’. 법사품을 가리킨다.
12187여래의 장엄으로 스스로 장엄함. 원문은 ‘如來莊嚴而自莊嚴’. 경에서는 ‘以佛莊嚴而自莊嚴’으로 되어 있다. 법화경을 펴는 법사의 공덕을 찬탄하여, ‘약왕아. 법화경 독송하는 사람 있으면 알지니, 이 사람은 부처님의 장엄으로 스스로 장엄하며 여래의 어깨에 메시는바 됨이니……’라고 하신 일. 장엄은 치장하는 일. 부처님이 선정과 지혜로 자신을 미화하시듯, 법화경을 받드는 사람도 그 같은 결과가 된다는 뜻.
12188여래의 옷에 두 종류가 있음. 원문은 ‘如來衣有二種’. 경에서 여래의를 해설해 ‘유화인욕심’이라 하셨으므로, ‘유화’와 ‘인욕’을 분리하여 두 가지 행으로 본 것이다.
[석첨] 다음으로 ‘此五行’ 아래서는 융통하여 묘(妙)임을 드러냈다.
次此五行下, 融通顯妙.
12189융통. 7455의 주.
[석첨] *이 오종(五種)의 행(行)은 곧 일실상(一實相)의 행이다. 그렇다고 *一은 五가 되지 않고 五는 一이 되지 않아 *공(共)도 아니며 이(離)도 아닌 것이니, 이렇게 *불가사의함을 일오행(一五行)이라 이른다.
此五種行, 卽一實相行. 一不作五, 五不作一, 非共非離, 不可思議, 名一五行.
12190이 오종의 행은 곧 일실상의 행임. 원문은 ‘此五種行, 卽一實相行’. 오종의 행은 오행(五行). 일실상의 행은 실상의 오직 하나의 행이니, 곧 일행(一行). 오행은 인(忍)을 닦아 깨달음(果)에 이르는 과정을 보인 것이나, 원교의 오행은 바로 일행일 뿐이라는 것.
12191一은 五가 되지 않고 五는 一이 되지 않음. 원문은 ‘一不作五, 五不作一’. 五행이 곧 一행이라 해도, 一이 바뀌어서 五가 되는 것은 아니고, 五가 바뀌어서 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뜻. 사람의 수행에 의해 얻어지는 것과 법의 본성은 불이(不二)의 관계인 까닭이다. 이를 수성불이(修性不二)라 한다.
12192공도 아니며 이도 아님. 원문은 ‘非共非離’. 공(共)은 공통인 것. 동일한 것. 이(離)는 분리의 뜻. 서로 다른 것. 수덕(修德)․성덕(性德)이 다르므로 ‘공’이 아니고, 수덕․성덕은 본체(本体)가 같으므로 ‘이’가 아닌 것이 된다.
12193불가사의. 수덕․성덕이 불이(不二)인 점을 이른다.
12194일오행. 一행이 곧 五행이어서, 一행에 五행이 포함되고 五행에 一행이 포함되므로,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