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이 보살 대중 가운데 네 도사(導師)가 있으니 첫째 이름은 상행(上行)이요, 둘째 이름은 무변행(無邊行)이요, 셋째 이름은 정행(淨行)이요, 넷째 이름은 안립행(安立行)이라. 이 네 보살이 그 대중 가운데서 가장 상수(上首) 창도(唱導)의 스승이라. 대중 앞에서 각각 함께 합장하고 석가모니불을 우러러보고 문안하여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조그마한 병환도 조그마한 괴로움도 없이 안락히 행하시나이까. 제도 받을 자가 가르치심을 쉽게 받나이까. 세존으로 하여금 피로를 내시게 하지나 않나이까.
그때 사대보살이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세존이시여,
안락하시어 조그마한 병환도 괴로움도 없으시며 중생을 교화하심에 피곤은 없으시옵니까.
또 모든 중생이 교화를 쉽게 받으옵나이까.
세존께서 피로를 내게 하지는 않나이까.
시보살중중 유사도사 일명상행 이명무변행 삼명정행 사명안립행
是菩薩衆中 有四導師 一名上行 二名無邊行 三名淨行 四名安立行
시사보살 어기중중 최위상수창도지사 재대중전 각공합장 관석가모
是四菩薩 於其衆中 最爲上首唱導之師 在大衆前 各共合掌 觀釋迦牟
니불 이문신언 세존 소병소뇌 안락행부 소응도자 수교이부 불령세
尼佛 而問訊言 世尊 少病少惱 安樂行不 所應度者 受敎易不 不令世
존 생피로야
尊 生疲勞耶
이시사대보살 이설게언
爾時四大菩薩 而說偈言
세존안락 소병소뇌 교화중생 득무피권
世尊安樂 少病少惱 敎化衆生 得無疲倦
우제중생 수화이부 불령세존 생피로야
又諸衆生 受化易不 不令世尊 生疲勞耶

 [강의] 둘째, 사대 지용보살들이 부처님께 안부를 여쭙는 일을 나타낸다. 네 명의 보살을 든 것은 개시오입의 사십이 계위에 비유한 것이다. 화엄의 설법으로 비유하면 법혜(法慧) 덕림(德林) 금당(金幢) 금장(金藏)의 네 보살을 들어 사십위를 설하신 것과 같다.
부처님께 안부 여쭙는 일에서는 먼저 여래의 안락하심을 여쭈었고, 다음에는 중생을 제도하시기 쉬운지 여쭈었다.
“도사(導師)”란 중생을 정법으로 인도하시는 분의 경칭. 여기서는 상수(上首) 법사의 뜻.
“상행(上行)”이란 공들여 수행함이 훌륭하여 가장 으뜸이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무변행(無邊行)”이란 끝없는 청정묘행을 구족하였다는 뜻.
“정행(淨行)”이란 맑고 깨끗하게 익힌 수행이 구족하였다는 뜻.
“안립행(安立行)”이란 적멸에 안주하여 청정한 행을 성취하였다는 뜻.
“창도(唱導)함”이란 대중들 앞에서 제창하고 인도하는 것.
“조그만 병환도 없으시고…”이란 문안인사 내용. 원문은 소병(小病) 소뇌(小惱) 등.
“피곤함[疲倦]”이란 피로하고 권태로움. 중생의 근기가 교화를 쉽게 받아들이면 스승이 피로하지 않다.

[경] 그 때 세존께서 보살 대중 가운데서 이 같은 말씀을 하시되,
이와 같고 이와 같으니라. 모든 선남자야, 여래는 안락하여 조그마한 병도 조그마한 괴로움도 없으며, 모든 중생들도 가히 교화 제도하기 쉬우니 피로가 없음이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이 모든 중생은 세세로부터 항상 나의 교화를 받았으며 또한 과거 모든 부처님을 공경 존중하고 모든 선근을 심었느니라. 이 모든 중생이 처음에 나의 몸을 보고 내가 설한 바를 듣고 곧 다 믿고 받아서 여래 지혜에 드니, 전부터 닦고 익히고 배운 소승(小乘)은 제(除)함이라. 이와 같은 사람도 내가 지금 또한 이 경을 얻어 듣게 하여 부처님 지혜에 들게 함이니라.
이시세존 어보살대중중 이작시언 여시 여시 제선남자 여래 안락
爾時世尊 於菩薩大衆中 而作是言 如是 如是 諸善男子 如來 安樂
소병소뇌 제중생등 이가화도 무유피로 소이자하 시제중생 세세이
少病少惱 諸衆生等 易可化度 無有疲勞 所以者何 是諸衆生 世世已
래 상수아화 역어과거제불 공경존중 종제선근 차제중생 시견아신
來 常受我化 亦於過去諸佛 恭敬尊重 種諸善根 此諸衆生 始見我身
문아소설 즉개신수 입여래혜 제선수습 학소승자 여시지인 아금 역
聞我所說 卽皆信受 入如來慧 除先修習 學小乘者 如是之人 我今 亦
령득문시경 입어불혜
令得聞是經 入於佛慧
 
 [강의] 셋째, 부처님께서 안락하시다고 두루 대답해 주신 내용이다. 중생들의 오묘한 수행을 밝힌다. 중생들이 세세생생 교화를 입어 불법과의 인연이 성숙해졌고 부처님께 공양 올려 선근 복덕이 쌓였다.
“여래는 안락하여∼모든 중생도 가히 제도하기 쉬우니”란 안락과 제도하기 쉬움이 서로 의존해 성취함을 말한다. 여래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쉬우므로 안락하시며, 안락하시므로  중생은 제도하기 쉽다는 것이다. 중생을 제도하기 쉬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근기가 뛰어나고 덕이 두터운 자들이다. 이들은 세세에 걸쳐 항상 대승의 교화를 받아서 처음 부처님을 뵙자 화엄의 가르침을 받아서 여래의 지혜에 들 수 있었다. 이런 중생들은 제도하기 쉬우시다고 했다. 둘째 근기가 둔하고 덕이 박한 중생이다. 오랫동안 대승의 교화를 받은 적이 없으므로 돈교를 열어 점교를 설해야 한다. 삼장 방등 반야의 가르침으로 조복하고 나서 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 법화경을 설하여 불혜에 들게 하시는 것이다. 앞의 근기보다는 어려우나, 부처님께는 이것도 쉬우시다는 것.
  “이 모든 중생이 처음에 나의 몸을 보고∼이와 같은 사람도 내가 지금 또한 이 경을 얻어 듣게 하여”란 ‘곧 다 믿고 다 받아서 여래 지혜에 드니’는 화엄의 가르침으로 교화를 입음이고, ‘소승을 배운 이’는 이승에 집착하여 화엄에서 제외된 후 법화에 의해 교화입음을 말한다. 화엄과 법화의 가르침을 설한 취지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처음 성도하신 때에 뵈온 것을 ‘처음 나의 몸을 보았다’고 했는데 이는 화엄 돈교를 이해한 것이다. ‘지금 이경을’이란 법화경을 설하는 여기에 있으므로 오랜 후에야 진실을 이해하여 지금 뵙는다고 한 것이다. 오랫동안 점교 속에서 대소승의 가르침을 받아오다가 이제야 방편을 열어 진실을 밝히는 도리를 깨달아 진실을 안 것이니 부처님을 뵈온 것이 된다.
  둘째 화엄은 마치 해가 높은 산을 비추듯이 돈교를 설하여 열지도 합하지도 않았으나, 법화는 진실의 경지에 들지 못한 자를 위해 돈교를 열어 점교를 설하시어 점차 번뇌를 조복하여 돈교에 돌아오게 했다. 셋째 돈교는 곧바로 세로(竪)로 들어가 법계에 들지만, 지금은 오미(五味:오시의 가르침)를 통해 가로로 넓은 가르침이었고 ‘불혜에 들도록 했다’고 하시므로 가로 세로를 함께하는 것이다.
  넷째 화엄은 천 잎으로 된 한 대좌에 법신불이 계시어 본지와 수적이 제한되어 그 본지도 수적중에 있으나, 법화는 진실과 방편을 하나로 포괄하는 근본이 되어있어 진실한 본지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화엄은 네 명의 보살(법혜 공덕화취 금강당 금강장)에 가피하여 사십위를 설하게 하셨고, 법화는 스스로 개시오입을 설하셔서 다른 이에 가피하지 않으셨다.
  여섯째 화엄은 비로자나 연화장세계이므로 국토를 바꾸지 않았는데 법화에서는 분신불들을 수용하기위해 세 번에 걸쳐 국토를 바꾸셨다.
  일곱째 화엄은 칠처구회(七處九會:적멸도량회 보광법당회 도리천궁회 야마천궁회 도솔천궁회 타화천궁회 중회보광당 서다원림회의 일곱 장소 여덟의 모임)로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설법이나, 법화는 기사굴산과 허공에서 설해졌을 뿐(二處九會)이니 많은 장소에서의 설법이 아니다. 법화회는 처음 10품이 기사굴산(영축산)에서 설해지고 「견보탑품」이하 11품이 다보탑이 있는 허공에서 설해진 후 나머지 7품은 다시 기사굴산에서 설해졌으므로 두 곳 세 번의 법회라 한다.
  여덟째 법화에서는 화성을 없애고(화성유) 머슴을 바꾸는(궁자유) 등 견해를 박탈하는데 화엄은 이러한 박탈과 배척이 없다. 법화는 이승 삼승의 집착을 깨어 일불승에 들게 하기위해 방편으로 화성도 짓고 장자 궁자로 인도하지만 화엄은 처음부터 이승이 없으므로 이러한 일이 없다.   
  아홉째 화엄은 바로 현실(顯實)함이고 법화는 개권현실(開權顯實)함이다. 화엄은 원교에 별교가 섞이어 크다고 하고, 돈교이므로 곧다고 한다. 법화는 성문의 법이 무엇인지를 밝혀 방편을 열었으므로 개권이며 일불승도를 밝혀 이들을 인도하므로 현실이다.
  열째 근기가 뛰어나고 인연이 성숙한 사람은 화엄경이 설해졌을 때 바로 불혜에 들었고, 근기가 둔하여 인연이 뒤에야 성숙한 이들은 이제야 법화경을 듣고 불혜에 들었다는 것이다.
“세세(世世)로부터”란 생마다. 오랜 세월 동안을 뜻한다.
“선근(善根)”이란 좋은 과보를 낳을 선행을 말한다.
“처음에 나의 몸을 보고”란 많은 선근을 쌓은 사람들이 처음 적멸도량에서 여래의 화엄법좌(華嚴法座)를 본 것.
“전부터 닦고 익히고 배운 소승은 제함”이란 소승을 익힌 둔근기는 화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처님 지혜에 들게 함”이란 둔근기를 위해 방편을 열어 근기가 총명해 지기를 기다려 일승을 설해 부처님 지혜에 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법화경'의 취지이다.

 [경] 그 때, 모든 큰 보살이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착하고 거룩하시도다 대웅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들을 가히 쉽게 교화 제도하심이라.
능히 모든 부처님의 심히 깊은 지혜를
여쭈어 듣고서는 믿고 행하오니
우리들도 따라 기뻐하나이다.

이시제대보살 이설게언
爾時諸大菩薩 而說偈言
선재선재   대웅세존   제중생등  이가화도
善哉善哉   大雄世尊   諸衆生等  易可化度
능문제불   심심지혜   문이신행  아등수희
能問諸佛   甚深智慧   聞已信行  我等隨喜

 [강의] 넷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취지를 깨달아 기뻐함[領解隨喜영해수희]이다.
“능히 모든 부처님의 심히 깊은 지혜를 여쭈어”란 화엄회상의 여러 보살들과 법화회상의 사리불(舍利弗)과 같은 분을 말한다. 화엄경의 사대보살인 법혜(法慧) 공덕림(功德林) 금강당(金剛幢) 금강장(金剛藏)이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사십위를 설했는데 이는 곧 부처님의 뜻을 생각하며 설했으므로 부처님의 깊은 지혜를 여쭙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법화에서는 사리불의 삼청(三請)이 있었으므로 함께 잘 부처님께 질문하였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부처님의 지혜(佛慧)에 관해 여쭈었다.
“중생들을 가히 쉽게 교화 제도하심[易可化度]”이란 상근기는 쉽게 교화되어 방편을 기다릴 필요가 없지만, 중 하근기는 방편을 통해 제도하여 원만한 일불승에 들게 하므로 쉽게 제도 한다고 했다.
“우리들도 따라 기뻐하나이다” 세존께서 설법을 통해 대중을 쉽게 제도하시는 것을 보고 각각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또한 이 법을 듣고 믿어 행했으므로 따라 기뻐하는 것이다.

 [경] 이 때 세존께서 상수(上首)의 모든 큰 보살을 찬탄하시되,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능히 여래를 따라 환희심을 일으키느뇨

어시세존  찬탄상수제대보살 선재선재  선남자 여등 능어여래 발
於時世尊  讚歎上首諸大菩薩 善哉善哉  善男子 汝等 能於如來 發
수희심
隨喜心

 [강의] 다섯째,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이해와 깨달음을 인정하시고 찬탄해 주시는 것이다.
“너희들이 여래를 따라 환희심을 일으키느뇨”란 화엄의 대보살과 땅에서 나온 지용보살의 대보살 등은 사실 본지가 고불(古佛)이시니 수적(垂迹)하여 보살이나 성문이다. 이들이 부처님의 지혜에 대해 잘 묻고 듣고 나서 잘 실천하여 여래께 수희심을 일으켰으므로 그 모습에 기뻐함이고 그 대상은 여래에 기뻐함이다.   
 
 [경] 그때 미륵보살과 팔천 항하사의 모든 보살대중이 다 이런 생각을 하되,
우리들이 예로부터 이와 같이 큰 보살마하살 대중이 땅에서 솟아나 세존 앞에 머물러 합장하고 공양하며 여래께 문안하는 것은 보지도 못하였고 듣지도 못하였도다.
이때, 미륵보살마하살이 팔천 항하사의 모든 보살들이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알고, 아울러 자신도 의심하는 바를 결정하고자,

이시미륵보살 급팔천항하사제보살중 개작시념 아등 종석이래 불견
爾時彌勒菩薩 及八千恒河沙諸菩薩衆 皆作是念 我等 從昔已來 不見
불문 여시대보살마하살중 종지용출 주세존전 합장공양 문신여래
不聞 如是大菩薩摩訶薩衆 從地涌出 住世尊前 合掌供養 問訊如來
시 미륵보살마하살 지팔천항하사제보살등 심지소념 병욕자결소의
時 彌勒菩薩摩訶薩 知八千恒河沙諸菩薩等 心之所念 幷欲自決所疑

 [강의] 여기부터는 의혹의 내용을 질문한 것으로 전체 본문의 서(序)가 된다. 의혹해 물은 것에는 첫째 이 땅의 보살들이 지용보살(地踊菩薩:땅에서 솟아오른 보살)에 대한 의혹이고, 둘째는 타방보살의 의혹이다. 먼저 이 땅의 보살들에 대해서는 처음은 의혹한 생각을 나타내고, 게송부터는 의문을 질문한 것이다.
 법화경은 영취산에서 석가불이 모습을 드러내서 설법하는 적문(迹門)과 그 부처는 사실 구원겁전에 성불했다는 본불(本佛)을 밝혀 현재의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부처는 수적(垂迹)의 부처임을 밝히는 본문(本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적문의 중심이 「방편품」이라면 본문의 중심이 「여래수량품」이다. 또한 적문의 법문을 여는 서막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품이 「서품」이고, 본문의 법문을 여는 서막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품이 「종지용출품」이다.
 적문의 방편품에서는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근본 취지를 밝히는데 이러한 설법을 열게 해주는 도입의 역할을 하는 곳이 서품인 것이다. 서품에서는 차방육서 타방육서의 상서를 보여주어 부처가 장차 위대한 '묘법연화경'을 설할 것이며, 이 법문에서는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근본 뜻과 그 본의(本意)에 의해 부처의 일대 교화 법문의 진실을 밝히게 된다.
한편 본문의 중심인 「여래수량품」에서는 가야성에서 성불한 줄로 알고 있는 부처는 사실, 이미 구원겁 전에 이미 성불한 본불의 수적(垂迹)임을 밝힌다. 이보다 앞에 있는 「종지용출품」에서는 이 세상을 법화경으로 교화할 사대보살이 땅에서 출현하여 이들은 모두 과거에 제도했다고 선언함으로써 여래의 수량이 원래 무량함을 설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의혹을 질문함-----------차토보살의 의혹--------------------1) 의혹의 생각(장항)  
  (疑念序)                 ------3) 타방보살의 의혹           ------2) 의문을 질문함(게송)
                                    
 이 단락은 미륵보살과 많은 이 땅의 보살들이 1) 의혹을 일으킨 생각을 나타냈다. 법화경을 설하는 자리 이 법석에는 수많은 시방의 보살들이 와서 부처님의 본회를 들었고, 이제 지용보살의 용출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보처보살인 미륵보살의 지혜로 헤아리건대 대부분의 보살무리에 대해서는 알 수 있건만, 지금 하방에서 보살들이 솟아오른 이 보살 무리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륵보살은 시방세계를 노닐어 여러 부처님과 보살대중을 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보살대중을 아는 터이나 지금 이 대중은 안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곧 보살대중이 찾아왔거나 자신이 찾아가 보았어도 알지 못하였다는 것. 이는 저 용출의 보살들은 불도수행에 있어서의 선배들이요 자신은 아직도 수행 중에 있는 후학이니 뒷사람은 앞사람을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방에서 솟아오른 보살들은 실상의 도리를 본지로 하여 시방세계에 응현한 것이거니와 불가사의한 특별한 교화와 중생을 위한 갖가지 진신과 응신을 나타내는 분들이니 미륵의 경지가 아니므로 미륵보살과 그 밖의 대중들이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부처님께서는 경을 펴시는 일을 위탁하시고자 하방의 여러 보살을 부르시고 보살은 스승의 분부를 알았기에 여기 와서 은밀히 여래수명이 무량한 도리를 여니, 이에 대중들이 아직 이 같은 깊은 뜻을 알지 못하기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 하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Ajita)로 미래에 성불하여 석가세존께서 교화하지 못한 중생들을 제도 한다는 것. 부처님의 교화를 돕는 보처(補處)보살이다. 적문의 「서품」에서는 대중의 의심을 대표로 문수보살께 물었는데, 본문의 서인 이 품에서도 역시 대중의 의심을 대표로 부처님께 여쭙고 있다.

 [경]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서 게송으로 여쭈어 말씀하되,
한량없는 천만억 대중의 모든 보살은
예로부터 일찍이 보지 못한 바이오니
원컨대, 양족존께서는 설해 주시옵소서.
이들은 어느 곳에서 왔으며
 
합장향불 이게문왈
合掌向佛 以偈問曰
무량천만억    대중제보살
無量千萬億    大衆諸菩薩
석소미증견    원양족존설
昔所未曾見    願兩足尊說
시종하소래
是從何所來
 
 [강의] 2) 미륵보살과 많은 이 땅의 보살들이 바로 부처님께 의문을 여쭌 것이다. 질문은 어디에서 왔고, 둘째 어떤 인연으로 왔는지 여쭈는 것이다. 이 단락은 첫 번째 질문으로 어디에서 왔는지를 여쭈었다.
“양족존이란” 부처님의 존칭. 가장 존귀하신 분. 지혜와 복덕, 방편과 진실, 계와 정 등을 구족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