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종지용출품 제15-

 [경] 곧 부처님께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태자로 계실 때 석씨(釋氏) 궁성을 나오시어 가야성에서 멀지 않은 도량에 앉으사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이룩하셨나이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겨우 40여 년이 지났거늘, 세존께서 어찌 이 짧은 시간에 큰 불사(佛事)를 하셨나이까. 이와 같은 한량없는 큰 보살들을 교화해서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이룩하게 하신 것은 부처님의 세력으로 하셨나이까. 부처님의 공덕으로 하셨나이까.
    즉백불언 세존 여래위태자시 출어석궁 거가야성불원 좌어도량 득성아뇩 
卽白佛言 世尊 如來爲太子時 出於釋宮 去伽耶城不遠 坐於道場 得成阿耨
    다라삼막삼보리 종시이래  시과사십여년 세존 운하어차소시 대작불사 이
多羅三藐三菩提 從是已來 始過四十餘年 世尊 云何於此少時 大作佛事 以
   불세력이불공덕  교화여시무량대보살중 당성아뇩다라삼막삼보리
佛勢力以佛功德 敎化如是無量大菩薩衆 當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강의] 의혹을 들어 다시 부처님께 물음을 청하는 것이다. 법설과 비유설로 말씀드리는데 법설에는 셋이 있다.
 첫째, 세존의 자취는 가까운데 그 가리키는 뜻은 오래 된 일이므로 대중이 의혹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석씨궁성(釋宮)”이란 석가족의 궁전을 말한다.
 “40여 년”이란 19세에 가필라 성을 떠나 6년간을 고행하시고, 5년 동안 유행하다가 30세에 도를 성취하셨는데 법화경을 설한 때는 72세였으므로, 겨우 4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 불사(佛事)”란 부처님께서 하셔야 할 일. 곧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가리킨다.

 [경] 세존이시여, 이 큰 보살들을 설혹 어떤 사람이 천만 억겁을 두고 셀지라도 능히 다하지 못할 것이며 그 끝을 얻지 못하오리다. 이들은 구원으로부터 한량이 없고 가없는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어 보살도를 이룩하고 항상 닦아 맑은 행을 하였느니라.
세존 차대보살중 가사유인 어천만억겁 수불능진 부득기변 사등 구원이래
世尊 此大菩薩衆 假使有人 於千萬億劫 數不能盡 不得其邊 斯等 久遠已來
어무량무변제불소 식제선근 성취보살도 상수범행
於無量無邊諸佛所 植諸善根 成就菩薩道 常修梵行

 [강의] 둘째, 교화된 보살이 많아 수행의 계위가 깊고 미묘함이니 그 가리키는 바가 매우 깊으므로 의문을 일으키게 되었음을 말한다.
 “모든 선근(善根)”이란 깨달음의 과를 가져오는 모든 선행. 온갖 덕본(德本)을 말한다.
 “보살도(菩薩道)”란 보살의 수행. 보리를 구하고 그 공덕으로 중생을 교화한다.
 “맑은 행(범행)”이란 청정한 수행을 가리킨다.

 [경]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일은 세상에서 믿기 어렵나이다.
세존 여차지사 세소난신
世尊 如此之事 世所難信

 [강의] 셋째, 법설을 맺으면서 청하는 내용이다. 위에서 밝힌 가야성에서 도를 이룬 지 40여 년인데, 무수한 보살을 교화하여 불사를 이루었는지 불가사의 하다는 것이다.  

[경] 비유하건대 만일 빛이 아름답고 머리는 검어 나이 스물다섯 된 사람이
비여유인 색미 발흑 년이십오
譬如有人 色美 髮黑 年二十五

 [강의] 미륵보살이 비유를 들어 의심의 답을 청하는 비유설법이다. 비유설은 둘로 나눈다. 첫째는 비유를 여는 개비이고, 둘째 비유의 뜻을 밝히는 합비이다. 개비는 세 부문으로 나눈다. 첫째, 부처님께서 성도하신지가 멀지 않는 취지를 비유한 것이다.
“얼굴빛이 아름답고 머리는 검으며”란 원문은 색미발흑(色美髮黑). 
“나이 스물다섯 된 사람”이란 젊은이를 들어서 부처님께서 성도하신지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비유 한 것이다.

 [경] 백살 된 사람을 가리키며 이는 나의 아들이라 하고, 그 백살 된 사람이 또한 나이 젊은이를 가리켜 이는 나의 아버지니 우리를 낳아서 길렀다 하면 이 일은 믿기 어려우니라. 
지백세인 언시아자 기백세인 역지연소 언시아부 생육아등 시사 난신
指百歲人 言是我子 其百歲人 亦指年少 言是我父 生育我等 是事 難信

 [강의] 개비의 둘째, 교화된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취지를 비유한 것이다. “이 일은 믿기 어렵다”라고 한 부분은 개비에 대한 맺음이다.
젊은이란 성도하신지 40여 년이 지난 석가모니부처님이시고, 백세노인이란 부처로부터 교화받은 지가 오래된 분이다. 백세노인이 젊은이를 아버지라 하니, 젊은 아버지가 비록 성도하신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먼 옛날 제자들을 교화했는데, 그들이 바로 백세 노인들로서 젊은이의 법의 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여래의 수명이 무량하다는 취지를 나타낸다.
 “나의 아들”이란 부처님께서 대중을 가리켜 나의 제자라고 하는 것을 비유했다.
 “백세 노인”이란 대보살들도 세존을 가리켜 우리를 교화한 스승이라 하는 것을 비유했다.

 [경]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도를 얻으심이 그 실은 오래지 않고
불역여시 득도이래 기실미구
佛亦如是 得道已來 其實未久

 [강의] 비유의 뜻을 합하여 밝히는 합비이다. 합비는 부처님 성도가 가깝다는 근비(近譬)와 성도하여 교화한지가 오래라는 원비(遠譬)로 나눈다. 이 구절은 부처님의 성도가 얼마 전의 일이라는 비유를 합해서 말했다.

 [경] 이 대중의 모든 보살들은 이미 한량없는 천만 억겁에 불도를 위해  부지런히 행하고 정진하여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삼매(三昧)에 잘 들고 나고 머물러서 큰 신통을 얻고, 오래 맑은 행을 닦아 능히 차례로 모든 선법(善法)을 잘 익혀 배우고 문답에 교묘하여 사람 가운데 보배니 일체 세간에서 심히 희유함이라.
이차대중제보살등 이어무량천만억겁 위불도고 근행정진 선입출주무량백
而此大衆諸菩薩等 已於無量千萬億劫 爲佛道故 勤行精進 善入出住無量百
천만억삼매 득대신통 구수범행 선능차제 습제선법 교어문답 인중지보 일
千萬億三昧 得大神通 久修梵行 善能次第 習諸善法 巧於問答 人中之寶 一
체세간 심위희유
切世間 甚爲希有

 [강의] 땅으로부터 솟아오른 보살들이 발심하여 대보살이 된 것은 아주 오래되었다는 비유[遠譬]이다. 보살들은 무량한 삼매 속에 자재하게 출입하지만 법회대중들은 이를 미처 알아채지 못하였다. 다만 미륵보살만은 지용보살들이 삼매를 얻어 묘한 작용이 자재하다는 것을 알고 후에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다고 밝힌다.
 “백천만억 삼매에 잘 들고 나가고 머무르고”란 사교보살의 입장이 차이가 있다. 모든 삼매에 잘 들고 나가고 머무름이 다르다. 먼저 장교 통교의 보살은 구차제정(九次弟定 : 사선 사무색정 명진정)은 잘 들고,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는 잘 나감이잘 들어감이라 하고, 십지에서 중현문(重玄門 : 등각의 계위에 오를 때 매우 현묘한 경지를 깨달으므로 현이 되고, 그 후 다시 내려와 범부 때 닦았던 일을 다시 닦으므로 다시 현이 되어 중현이라 한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범부의 일을 다시 닦는 것을 잘 나간다고 하며, 묘각의 계위에서 두루 채워짐을 잘 머문다고 한다. 원교보살의 경우는 필법성삼매(畢法性三昧)를 잘 들어간다고 하고,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를 잘 나간다고 하며, 왕삼매(王三昧)를 잘 머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온갖 삼매에 들어 머무르므로 백천삼매에 잘 들고 머문다고 한다. 곧 하나의 문으로 관련훈수를 잘 익혀 통달하면 백천삼매에 자재한 힘이 된다.
 “큰 신통을 얻고”란 신통의 힘은 선정에서 생기니 고요한 선정에 들어 본성을 환하게 비추어서 미음이 통하여 걸림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차례로 모든 선법을 잘 익힌다”란 수행의 인의 단계에 있을 때를 잘 익힌다고 하고 과에 나아감을 잘 들어간다고 한다.
 “문답에 교묘하다”란 복덕을 장엄하고 지혜를 장엄하였으므로 교묘하다고 한다. 복덕을 장엄함은 육바라밀중 앞의 오바라밀을 닦아 이루어지고, 반야바라밀을 닦아 지혜바라밀을 장엄하게 된다.
 “모든 사람 가운데 보배”란 칠방편(인 천 성문 연각 장교보살 통교보살 별교보살)이 존중하는 바가 되므로 보배라고 한다. 
 
 [경] 오늘 세존께서 방금 불도를 얻었을 때 처음으로 발심시켜 교화하여 보이시고, 이끌어 아뇩다라삼막삼보리에 향하도록 하셨다고 말씀하시니, 세존께서 성불하심은 오래지 않으시니 이 큰 공덕의 힘을 능히 하셨나이까.
금일세존 방운 득불도시 초령발심 교화시도 영향아뇩다라삼막삼보리 세
今日世尊 方云 得佛道時 初令發心 敎化示導 令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 世
존 득불미구 내능작차대공덕사
尊 得佛未久 乃能作此大功德事

 [강의] 대답해 주시도록 청한 부분이다. 여기에는 세 부분이 있다. 먼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처음 발심시켜 교화함”이란 부처가 옛적에 성도하시고 지용보살들을 처음으로 발심하게 하여 교화 인도했음을 말한다.
 “세존께서 성불하심은 오래지 않으심”이란 석가모니가 가야성에서 성불하신 것은 사십 여년이라는 것을 말한다. 
  
 [경] 우리들은 부처님께서 근기를 따라 설하신 바와 또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아직 일찍이 허망함이 없다고 믿으며 부처님께서 알려 주신 바는 비록 다 통달하였다고 하오나, 
아등 수부신불 수의소설 불소출언 미증허망 불소지자 개실통달
我等 雖復信佛 隨宜所說 佛所出言 未曾虛妄 佛所知者 皆悉通達 

 [강의] 부처님께 대답을 청하는 중에 둘째, 현재의 대중을 위해 설해 주실 것을 청하는 것이다. 비록 이치를 통달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오직 믿을 뿐이라는 뜻이다.
 “근기를 따라 설하신 바[隨宜所說]”란 듣는 상대의 소질에 맞게 적절히 설하시는 것.
 “알려 주신 바[所知]”란 알아야 할 일. 알아야 할 대상. 부처님의 지혜는 걸림이 없어 아시는 바가 모두 여실하니 통달하지 못함이 없다는 것이다.
 
 [경] 그러나 모든 새로 발심한 보살이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 만일 이 말씀을 들으면 혹 믿어 받지 아니하고 법을 파하는 죄업의 인연을 일으키게 되오리다.
연제신발의보살 어불멸후 약문시어 혹불신수 이기파법죄업인연
然諸新發意菩薩 於佛滅後 若聞是語 或不信受 而起破法罪業因緣

 [강의] 미래의 보살들을 위해 대답을 청한 것이다. 수행이 얕은 신발의 보살들은 비방을 일으키고 비방을 일으킨 끝에 악도에 떨어질 것이며, 불퇴전에 오른 보살들은 믿기 때문에 비방은 하지 않을지언정 도를 증장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들을 위해 바로 말씀해 주신다면 비방하던 자들은 믿음을 일으키고 믿음을 낸 자들은 도를 증장시키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새로 발심한 보살(新發意菩薩)”이란 새로 보리심을 일으킨 수행이 얕은 보살. 이들은 수행이 얕으므로 비방을 일으켜 악도에 떨어진다는 취지이다.
 “죄업의 인연”이란 믿지 못하면 헐뜯게 되고 헐뜯으면 과오를 초래하여 죄업(罪業)이 된다.
   
 [경]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해설하시어 우리들의 의심을 제하심과 아울러 미래 세상의 모든 선남자가 이 일을 듣고서 또한 의심나지 않게 하시옵소서.
유연세존 원위해설 제아등의 급미래세 제선남자 문차사이 역불생의
唯然世尊 願爲解說 除我等疑 及未來世 諸善男子 聞此事已 亦不生疑

 [강의] 대답해 주시도록 청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 대중들의 의혹을 제거해 주시기를 청하고, 미래의 대중들도 의혹이 일면 믿지 않아 죄를 짓게 되므로 의혹을 풀어 주시기를 청한 것이다.
 “의심내지 않게 함”이란 의혹하기 때문에 법을 믿지 않으니,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질문한 취지는 오직 후인들이 믿지 않을 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 그때 미륵보살이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되,
부처님께서 옛적 석씨로부터 출가하시어
가야성에서 가까운 보리수 아래 앉으시니
이로부터 이제까지 아직 오래지 않거늘,
이시미륵보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彌勒菩薩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불석종석종        출가근가야
佛昔從釋種        出家近伽耶
좌어보리수        이래상미구
坐於菩提樹        爾來尙未久

 [강의] 게송은 모두 14항으로 앞의 법설(5항)과 비유설(9항)을 노래하였다. 법설에는 셋이 있는데 처음은 가까운 40여 년 전의 부처님만이 진실한 부처님인줄 알고 집착하고 구원겁 전에 성불하신 부처님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은 것을 노래했다.
 “가야성 가까운 보리수”란 옛날 부처님께서 석가족으로 태어나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셨던 가야성 근방 오 육리 쯤 떨어진 곳.
 “오래지 않거늘[爾來尙未久]”이란 보리수 아래에 앉았을 때부터 지금(법화를 설할 때까지)까지 4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