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정통파 기독교에 말살되는 초기 기독교

                                                            

1945년 나그 하마디에서 발견된 문서나 그보다 더 오래된 사해문서(死海文書)의 일련의 많은 사본은(52편) 진지한 초기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정통파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게 되는 순간 이 문서들은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코프트어로 쓰여진 이 사본군은 서기 120년 이전에 쓰여진 희랍어 원전을 필사筆寫한 것이다. 그 가운데 <토마스 복음서>에는 부성내재론을 강조한 토마스 복음서도 끼어있다. 순수한 기독교도들은 정통파 기독교의 탄압과 학살을 견디어내면서 그 문서를 땅속에 묻어두었고 다행히 2000년간 그들이 감추어둔 사복음서보다 더 오래되고 보다 진실한 사본이 나타난 것이다. 그 당시 이 순수한 기독교 신앙의 문서를 소유한 자는 사형이 선고되었다.
순수한 기독교도에 있어서의 유일한 선택은 이 문서를 감추거나 태워서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이 사본들이 특별히 제조된 도자기 속에 봉인되어 절벽 구멍 속에 감추어진 것도 이 무렵이다. 1600년 후에 우연히 발견된 이 문서는 정통 기독교의 위선과 기만과 범죄의 끔찍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처럼 이단자로 취급되어 생사의 경지를 헤맨 순수 기독교도들은 당시 로마에서 기독교 사상보다 전부터 우세했던 미트라교의 가르침이나 불교의 아미타 사상에 접근하였다.
아미타불은 나무아미타불의 아미타불로 대승불교의 성립 후 생긴 것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에 사는 부처님(신적 존재)으로 아미타불을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누구나 극락(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정통 기독교 확립 전에 로마의 미트라교가 매개가 되어 기독교는 불교와 유사한 경향성을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 유사성을 보자면 첫째, 아미타불과 크리스트가 살고 있는 방향이 같은 점이다.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극락세계는 천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경전에 의하면 사바세계에서<서방십만억국토西方十萬億國土>에 위치하는 극락정토에 살고 있다. 크리스트의 강생의 땅은 인도나 한 때 로마를 지배한 미트라신이 거주하는 페르시아보다 서쪽인 팔레스타인이다.
중국의 고승 도작(道綽 562~645)은 서방을 아미타불의 거처로 보고 서쪽을 등지고 앉거나 자지 않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을 금했다.
둘째로 아미타불은 크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생명>이나 <빛>으로 불리운다. 크리스트도 마찬가지이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크리스트에 대해서 <말씀 속에 생명이 있었다. 생명은 인간을 비추는 빛이었다: 1장 4절>라고 말하고 있다. 크리스트는 무량광의 구세주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과 빛의 구세주이다. 이것은 불교, 미트라교와 관련이 있다.
셋째로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력사상인데 비해 인간을 보는 방식에 있어 아미타불과 크리스트는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자기가 선하다고 믿는 인간도 아미타여래와 크리스트의 눈으로 보면 죄가 많은 것이다. 인간이 최선을 다하고도 되지 않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을 기도로써 이루게 하는 아미타불과 크리스트의 눈빛은 자비로 넘쳐 있다.
넷째로 아미타불이나 크리스트의 경우 또 하나의 다른 위대한 존재자 밑에서 인류 구제의 결의를 굳힌 점이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처음에는 어느 나라의 왕이었으나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밑에서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마음을 일으켜 나라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수행하였다. 그 이름은 <이 세상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고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왕>이라는 뜻으로 크리스트의 하나님 아버지가 바로 그러한 존재이다. 아미타불은 <세자재왕불> 아래서 예수는 하나님 밑에서 인류 구제의 결의를 하고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다섯 번째로 양자兩者의 속죄와 구제를 위한 기반이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무량수경>에서는 아미타불이 수행함으로써 그를 믿는 자를 구제하고 <성서>에서는 크리스트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한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世自在王佛> 밑에서 결의를 굳힌 사람들이 그 이름만 불러도 구제받게 된다. 그는<5겁五劫>이라는 긴 세월동안 수행을 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을 위해 오랜 수행을 하였으며 예수처럼 처참한 죽음을 겪지 않고 편안한 마음속에서 중생을 구제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나무아미타불 이라는 염불이 시작된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 구원을 받는다: 사도행전 2장 21절>의 뜻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므로 자기 힘으로 구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