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이때 그 아버지가 다시 집에 돌아오니, 모든 아들이 독을 마시어 혹은 본심을 잃고 혹은 본심을 잃지 않았음이라. 멀리서 그 아버지를 바라보고 다 크게 환희하며 무릎 꿇어 배례하고 문안하되, 편안히 잘 돌아오셨나이다.
 우리들이 어리석어 잘못하여 독약을 먹었으니 원하옵건대 보시고 구원하시어 다시 수명을 주시옵소서.(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2)
시시기부 환래귀가 제자음독 혹실본심 혹불실자 요견기부 개대환희 배궤문신 선안온
是時其父 還來歸家 諸子飮毒 或失本心 或不失者 遙見其父 皆大歡喜 拜跪問訊 善安隱
귀 아등우치 오복독약 원견구료 갱사수명
歸 我等愚癡 誤服毒藥 願見救療 更賜壽命

 [강의] 둘째, 부처님께서 삼계중생이 고통에 쌓여 있음을 보시고 세상에 나타내심(보리를 얻음)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생이 아니면서 생을 나타내 교화하신 취지를 비유한 것이다. 여기에는 형체와 설법의 소리를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한 일을 비유하였다.    이 단락은 형체를 나타내 아들들을 이익되게 하신 일이다.
 “그 아버지가 다시 집에 돌아옴”이란 인연이 익어 부처님께서 다시 출현하신 것이다.
 “아들들이 독을 마심”이란 여래께서 멸도하신 후 제자들이 삿된 가르침에 빠진 것을 가르킨다.
 “본심을 잃음”이란  중생들이 어떤 이는 사악한 독에 걸려 그 본심을 잃어서 윤회에 떨어져 있고, 또 어떤 이는 아직 본심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는 취지이다. 본심을 잃은 것은 삼계에 탐착하여 선세(先世)에 심은 삼승의 선근을 잃은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을 위하는 까닭에 멸도가 아닌데 멸도를 외친 것이다.
 “혹은 본심을 잃지 않음”이란 비록 오욕에 집착하고 있으나 삼승의 선근은 잃지 않음이다. 이런 사람을 위하는 까닭에 부처님이 생이 아니면서 생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선(善)이 강하고 악이 가벼우면 부처님을 만나 곧 도를 닦고 맺힌 번뇌를 끊을 수가 있으니 이는 이 글에서 말한 “아들들이 아비를 만나 약을 구해서 병을 고친 일”과 같다.   그러나 선(善)이 가볍고 악이 무거우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어도 역시 보호해주시기를 구하고 도는 닦지 않으니 이는 마치 아들들이 아비를 만나 구제하여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약은 복용하려하지 아니하는 일과 같다.
 “멀리서 아버지를 바라보고”란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실 때 중생들도 부처님의 색신은 보았으나 견혹과 사혹이 가로막아 가려놓았기 때문에 몸소 부처님의 법신을 얻을 수 없었음을 가리킨다. 그런 까닭에 “멀리”라고 말한 것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다는 말을 듣고 본 사람에게는 모두 기쁘고 공경할 일이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때 범천왕 등이 법문을 요청한 등등의 예는 아들들이 아비에게 구제해달라고 요청한 말에 해당하는 것이다.
 “잘못하여 독약을 먹음[誤服毒藥]”이란 아들들이 잘 사악한 길로 잘못 들어선 것을 뉘우침.
 “원하옵건대 보시고 구원하시어[願見救療]”란 법을 설해서 치유해 주시기를 바람이다.
 “다시 수명을 주시옵소서[更賜壽命]”란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겨 방편으로 교화하시어 다시 지혜의 수명을 내려 달라는 뜻이다.

 [경] 아버지는 아들들의 괴로움이 이와 같음을 보고 모든 방법에 의해서 좋은 약초에 빛과 향기와 아름다운 맛을 다 구족한 것을 구하여 방아에 찧고 체로 쳐서 화합하여 아들들에게 주어 먹게 하고(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2)
부견자등 고뇌여시 의제경방 구호약초 색향미미 개실구족 도사화합 여자영복
父見子等 苦惱如是 依諸經方 求好藥草 色香美味 皆悉具足 擣篩和合 與子令服

 [강의] 설법으로 교화하여 이익 준 것을 비유 했다. 여기에도 둘이 있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의 청을 받아 들이시어 이제(二諦: 진제와 속제)의 법륜을 굴리고, 다음으로는 “이런 말을 하되∼”부터는 경계하여 권함을 비유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부처님의 법식에 의거하여 중생근기에 따라 교화하기 위해 일승법을 삼승으로 나누어 설법하므로 방문에 의해 좋은 약초를 골랐다고 했다.                 
 “모든 방법에 의함[依諸經方]”이란 약방문으로 병을 치료하는 약의 조제 방법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십이부경(十二部經)의 내용을 뜻한다.
 “좋은 약초”란 가르침에 나타난 팔만의 법문이다. 부처님으로부터 십이부경이 나오는 것을 돈교의 약초를 내시는 것이라 하고, 부처님으로부터 수다라가 나오는 것을 점교의 약초를 내시는 일이라 한다.
 “빛과 향기와 아름다운 맛”이란 빛깔은 계(戒)를 가리키니 신업 구업의 악을 막는 일이다. 향기란 정(定)을 비유하니 공덕의 향기가 두루 풍기는 것이다. 좋은 맛이란 혜(慧)를 비유하니 진리의 맛을 체득함이다. 이 계정혜는 곧 팔정도의 수행으로 얻어지고 능히 불성을 보게 된다. 또는 빛깔은 반야로 법성의 빛을 비추어 막힘이 없음이고, 향기는 해탈이니 단덕으로 추(臭)함을 떠남이며, 좋은 맛이란 법신이니 진리의 맛을 가리킨다. 이 삼법을 비밀장이라 하니 가르침에 의해 수행함으로써 비밀장에 들어 갈 수 있다.   
 “방아에 찧고 체로 쳐서”란 찧고 체로 침[擣篩]에서 도(擣)는 방아로 찧는 것. 사(篩)는 체로 치는 것. 난폭한 자를 꺾어 굴복하는 것을 방아 찧는 것에, 악을 물리치고 선으로 나아가게 함을 체로 거르는 것으로 비유했다. 삼승을 설하는 데 있어서 제법의 실체를 관하는 공삼매(空三昧)의 힘은 찧는 것과 같고, 무작(無作)은 ‘화합(和合)’과 같으니 하나하나의 삼매에 계정혜를 갖추고 있음이다. 또는 공관은 찧는 것, 가관은 체로 치는 것과 같고, 중관은 화합과 같아서 삼관은 계 정 혜를 떠나지 않음을 가리킨다.
 “아들들에게 주어 먹게 함”이란 점교 돈교의 가르침을 중생에게 주어 수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경] 이런 말을 하되, “이는 크게 좋은 약이라 빛과 향기와 아름다운 맛을 다 구족하였으니, 너희들은 잘 먹으면 속히 고뇌를 제하고 다시 모든 환난을 없이 하리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2~714)
이작시언 차대양약 색향미미 개실구족 여등 가복 속제고뇌 무부중환
而作是言 此大良藥 色香美味 皆悉具足 汝等 可服 速除苦惱 無復衆患

 [강의] 경계하여 권하는 법문이다. 이중에서 “이런 말을 하되…너희들이 잘 먹으면”의 글은 권하는 법문이고, “속히 고뇌를…환난을 없이 하리라”는 경계의 법문이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경계와 권하는 두 가르침을 가지고 중생으로 하여금 법의 약을 먹게 하는 것이다.
   
 [경] 그 모든 아들 중에서 마음을 잃지 않은 자는 이 좋은 약이 빛과 향기를 갖추어 있음을 보고 좋아하면서 곧 이를 먹으니 병이 다 없어지고 나았느니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4)
기제자증 불실심자 견차양약 색향구호 즉변복지 병진제유
 其諸子中 不失心者 見此良藥 色香俱好 卽便服之 病盡除愈

 [강의] 부처님의 교화로 인해 이익 얻음이 거짓 아님을 비유했다. 앞에서 부처님 말씀에는 “다 진실이고 헛되지 아니함”의 경문을 비유한 내용이다.
 “곧  이를 먹으니”란 상근기가 가르침을 받자마자 믿어 받아들임으로써 교화를 쉽게 수용함이다.
  “병이 다 없어지고 나았느니라”는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설하시어 여래가 본래 멸함이 없지만 멸도한다고 멸도를 설함으로써 중생들이 이익 얻은 내용을 비유한 것이다. 병이 나은 것은 법답게 수행하여 생사를 벗어남이다.
 
 [경] 다른 마음을 잃은 자는 그 아버지가 오심을 보고 또한 비록 기뻐하며 문안하고 병 치료할 것을 찾아 구하였으나 그러나 그 약을 주었건만 즐겨 먹지 아니함이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독한 기운이 깊이 들어가 그 본심을 잃은 까닭으로 이와 같이 좋은 빛과 향기로운 약을 좋지 않게 여김이라. 아버지는 이같이 생각하되, 이 아들이 가히 불쌍하구나. 중독이 되어서 마음이 다 전도되어 비록 나를 보고 기뻐하며 구원과 치료를 구하여 찾으나 이와 같이 좋은 약을 즐겨 먹지 아니하니(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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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失心者 見其父來 雖亦歡喜問訊 求索治病 然 與其藥 而不肯服 所以者何 毒氣深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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失本心故 於此好色香藥 而謂不美 父 作是念 此子可愍 爲毒所中 心皆顚倒 雖見我喜
구색구료 여시호약 이불긍복
求索救療 如是好藥 而不肯服

 [강의] 중생이 교화를 받아 들임에 있어서 쉽고 어려움의 차이가 있음을 비유했다. 이 문단은 앞에서 부처님께서 멸도를 보이신 연유가 되는 내용이다. 중생이 박덕하여 부처님이 항상 주하여 계시면 나태해져서 수행하려 하지 않음으로 부처님이 방편으로 멸도를 보이신 다는 것이다. 중생들이 수행하려 하지 않음은 여기서는 아이들이 약을 먹으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마음을 잃은 자”란 바른 믿음과 선법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이들을 가르킨다.
 “약을 주었건만 먹지 않음”이란 중생들에게 교법을 가르쳐 주어도 닦으려 하지 않음이다.
 “독한 기운이 깊이 들어가 본심을 잃음”이란 약에 중독이 된 것[爲毒所中]으로 이는 마음이 바른 생각이 없고 모두 전도된 것. 삿된 법이 그 마음속 깊이 들어가 선근을 무너뜨림을 말한다.  
 “좋은 약을 좋지 않게 여김”이란 좋은 약을 먹으려 하지 않음이니 이는 곧 중생들이 바른 법을 받들어 행하려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경] 내가 지금 마땅히 방편을 만들어서 이 약을 먹게 하리라 하고(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4)
아금 당설방편 영복차약
我今 當設方便 令服此藥

 [강의] 이 대문은 멸도함이 아니지만 방편으로 멸도할 것임을 선언하시는 것을 비유했다.
 아버지가 응당 돌아갈 것을 선언하시니 이는 부처님께서 멸도함이 아니면서 멸도를 선언하시는 일을 비유한 것이다.
 “방편을 만들어서 약을 먹게 하리라”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다고 방편으로 말함으로 써 정법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
 
 [경] 곧 이런 말을 하되,
 “너희는 마땅히 알라. 나는 지금 늙고 쇠해서 죽을 때가 이미 이르러, 이 좋은 약을 지금 여기 남겨두니, 너희는 반드시 먹되 차도가 없을까 근심하지 말라.”
 이런 교훈을 하여 놓고 다시 다른 나라에 가서 사람을 보내 다시 이르되,
“너희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함이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4~716)
즉작시언 여등 당지 아금 쇠로 사시이지 시호양약 금류재차 여가취복 물우불차 작시
卽作是言 汝等 當知 我今 衰老 死時已至 是好良藥 今留在此 汝可取服 勿憂不差 作是
교이 부지타국 견사환고 여부 이사
敎已 復至他國 遣使還告 汝父 已死

 [강의] 응당 멸도하실 것을 선언하시니, 바로 멸도를 나투심을 비유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께서 일대의 교화를 곧 끝내려 하시는 것이다.
 “좋은 약[好良藥]이란 부처님의 법장. 곧 대장경을 가르킨다.
 “지금 여기에 남겨둠”이란 세간에 유포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 가서”란 부처님이 다른 국토에 응화하여 그 국토의 중생을 교화함을 말한다.
 “사람을 보냄[遣使]”이란 사람[使者]은 곧 보살이니 부처님의 부탁을 받고 경을 유통시킬 책임을 맡은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한 사자에 대해서는 '열반경'에서 큰 음성을 내어 널리 이르신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 내용은 부처님이 사라쌍수에 이르러 열반을 앞두고 큰 소리를 내어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열반에 들 것이니 의혹이 있거든 들으라”하신 일을 말하는데 그 음성이 매우 커서 유정천에까지 들렸다 한다. 이는 곧 일체 중생에게 부처님의 뜻을 전달한 지금의 사자와 같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경에서 “혹은 신통을 쓰며, 혹은 사리를 쓰며, 혹은 경의 가르침 등을 쓰시는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신통을 쓰신 일은 부처님께서 경에서 보이신 신통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법화경에서는 육서(여섯 가지 상서)를 보이신 일이 법화경을 설할 뜻을 전한 것으로 신통이 곧 부처님이 뜻하시는 일을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사리를 보이심도 중생들이 사리를 뵈면 부처님을 뵙는 것처럼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경의 가르침은 부처님을 대해서 법을 설하기 때문에 사자와 같다는 것이다.
 천태대사는 이 부분의 사자는 사의보살(四依菩薩)을 서서 중생들에게 뜻을 전하신 것이라 한다. 사의보살은 중생이 의지할 보살로 오품 십신의 보살을 초의보살이라 하고, 십주보살을 이의보살, 십행 십회향보살을 삼의보살로 하며, 십지 등각을 사의 보살로 한다.   이 보살을 통해 “부처님께서 이미 멸도하시고 이 가르침만을 남겨 두셨는데 내가 이제 그 가르침을 설하리니 너희들은 마땅히 수지해 실천하라”고 이르시는 내용을 말한다.

 [경] 이 때 모든 아들이 아버지의 세상 떠나심을 듣고 마음에 크게 근심하여 이 같은 생각을 하되 “만약 아버지가 계시면 우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생각하시어 능히 구해서 지켜 주시련만, 지금은 우리를 버리시고 먼 다른 나라에 가셔서 세상을 떠나셨도다.”(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16)
시시제자 문부 배상 심대우뇌 이작시념 약부 재자 자민아등 능견구호 금자 사아 원상
是時諸子 聞父 背喪 心大憂惱 而作是念 若父 在者 慈愍我等 能見救護 今者 捨我 遠喪
타국
他國

 [강의] 아들들이 깨어난 일로 이는 부처님께서 멸도를 나타내시어 중생들이 이익 입음을 비유했다. 여기에는 둘이 있다. 첫째는 중생들이 손실과 이익 됨을 밝히고, 둘째는 손실과 이익을 해석한 부분이다. 지금은 부처님께서 멸도를 나투신 일로 인해 중생들이 이익 얻음을 나타낸다.
 “아버지의 세상 떠나심[背喪]”이란 부처님이 입멸을 보이신 것을 말한다.
 “불쌍히 생각하심[慈愍]”이란 사랑하고 가엾이 여김이다.
 “능히 구해서 지켜주심[能見救護]”이란 방편을 써서 구호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