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야경의 공관과 용수의 공관>
1) 반야경의 성립
공을 설한 반야경류의 성립은 경전 성립사적으로 볼때, 먼저 팔천송반야(32음절을 1송으로) 곧 '소품반야경'에서 2만 오천송반야 곧 '대품반야경' 그리고 '십만송반야'로 증광되었다. 이와 같이 소품반야로부터 시작하는 대경군(大經群)이 먼저 성립되고 이어, 금강반야와 문수반야와 같은 개별적인 경들이 그 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반야경의 번역은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27권 구마라집 408년역(대품반야大品般若), 408년역 동경 10권(소품반야小品般若)이 있고, 이어서 반야사상을 요약한 구마라집역본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摩訶般若波羅蜜大明呪經)'(현장역은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과 '금강반야바라밀경'이 한역되었다.
'금강반야'의 경우 그 교리적 표현이 비교적 소박하고 ‘공空’이라는 말도 나타나지 않으므로 원시대승의 기준에 적합하지만, 이 경을 라집이 최초로 번역 했다든가 용수의 저작에도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보아 늦게 성립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후오백세’의 구절도 원시대승보다 후기에 가까워 보인다. '팔천송반야' 등에서 반야경이 남쪽에서 일어나 서 북인도로 퍼져 나갔다고 하고 있는데, 금강반야도 남인도로 추정하려하고 있으나 증거는 불충분하다.
팔천송에서 이만오천송은 초기 대승에 속하고, 이만오천송은 '팔천송'의 「초품」을 26품('대품반야')으로 부연 확대하였고, 「촉루품」 뒤에 20품 정도를 추가했던 점이 특징이다. 초품에서 확대된 내용은 ‘보살대사’를 논하고, ‘대승’을 논하며, ‘십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십팔공’을 언급하며, 다양한 삼매의 명칭을 열거하는가 하면 다라니문을 나열하고, 일체의 법을 공으로써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후오백세(後五百世)를 언급하고 있어서 정법 오백년이 끝나감에 따라 이 경전이 성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이 반야경과 밀착하여 보살도를 고양시킨 것이 '수능엄삼매경' 등의 문수계 경전이고, '유마경'도 여기에 속한다. 보살의 계위는 초발심보살(初發心菩薩)-행도(行道)-불퇴전(不退轉)-일생보처(一生補處)의 4계위를 설하고 있다.
2) 반야경의 교리
반야경에서 교리는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경전이 성립되어 초기 대승불교사상을 담고 있다. “위대한 갑옷으로 몸을 굳건히 하고 있는 대사(大士)”라는 내용에서 보듯이 유정(有情)의 대집단, 유정의 대군집의 상수라는 의미에서 보살을 대사라고 한다. 보살은 수승한 지혜를 가지고 일체법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으며 중생을 부모 형제 내지는 자기 몸과 같이 보아 절대로 버리지 않으며 자기가 대신 고통을 받더라도 중생을 위하여 살며 그러므로 결국 성불할 수 있는 이들 중에서 상수가 된다.
“보살은 자성공법(自性空法) 중에 마땅히 집착하지 않아 경동(傾動)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보살은 일체법의 불이상을 알아 경동(傾動)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대품반야 권4)
“보살은 어찌하여 마하살(대사)라고 하는가. 이는 필정취 중에서 제일 상수가 되기 때문이다”(대품반야 권4)라고 하는 보살의 개념들이 반야경에 정착하였다.
다음으로는 십선도(十善道: 不殺生 不偸盜 不邪婬 不妄語 不兩舌 不惡口 不綺語 不貪慾 不嗔恚 不邪見. 여기서 재가의 중시로 불음주 대신 구계口戒가 중시되었다)가 중시되고, 육바라밀이 중시되었다. 팔천송에는 육재일 십선도 사선 사무량심 사무색정 육신통 삼십칠보리분법(四念處 四正勤 四神足 五根 五力 七覺支 八正道) 등의 전통적인 계행이 언급되는데 이들은 모두 지혜의 완성에서 생기며 지혜의 완성으로 세상에 유포된다. 육바라밀 각 덕목은 6가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만, 지혜의 완성에 근거하여 인도되며 지혜의 완성으로 지향한다.
다음으로 언급되는 교리가 반야바라밀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반야바라밀은 불모(佛母)로서 생각하고 있고, 자리이타의 보살수행은 육바라밀을 실천하는데 그 중에서 반야바라밀이 주가 된다. 반야바라밀은 부처의 본질이며 마치 어머니와 같이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를 낳는 것이며 반야바라밀이야말로 수투파나 사리보다 더욱 존중된다. 여래는 완전한 신체를 얻고 있기 때문에 여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일체지를 얻고 있기 때문에 여래라 불리는 것이다. 이 여래의 일체지는 반야바라밀의 소산이다.
“만약 보살이 마음이 법에 주하여 보시하면 사람이 어둠 속에 들어가 보는 바와 같고, 만약 보살이 법에 주하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사람이 눈이 있어 햇빛이 밝게 비춰 여러 가지 색을 보는 것과 같다(금강경 제14)”라고 한다. 또한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주하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느니라[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금강경 제10)” 라는 구절을 통해서, 반야바라밀의 실천을 통하여 주함이 없는 마음 무집착 무소득 공의 교학으로 발전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불타관[법신法身]에서는 부처의 물리적인 신체에 비하면 반야바라밀은 부처의 정신적 본질이고 동시에 공성의 절대적 진리로서 중시된다. “실로 여래는 색신으로서 보아져서는 안되고 여래는 법신이다. 모든 것은 알려지지 않으며 보여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공하기 때문이다.”라고 공성을 강조한다. 반야바라밀이 가리키는 śūnya는 특징이 없는 것[무상無相], 원할 것이 없는 것[무원無願] 열반, 깨달음의 세계[법계法界], 진여와 동일시 된다.
이러한 바탕에서 반야경에서는 지혜가 있다면 공의 이치를 알고 공의 이치를 알면 곧 지혜를 앎이니 공과 반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반야경의 공관이 수립된다. 교학적으로 보면 공관은 근본불교의 아공(我空) 법공(法空), '대비바사론'에 십공설(十空說), 능가경(楞伽經)에 7공, '대반야경'(제44권)에는 20공설, '대품반야'(제3권)에는 18공설, '대지도론' 18공을 설하고 있다.
반야경의 수행계위는 육바라밀을 실천하여 자리이타행이 이루어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성불하는데 목적이 있다. 바라밀행을 하면 간혜지(乾慧地) 성지(性地) 팔인지(八人地) 견지(見地) 박지(薄地) 이욕지(離欲地) 이작지(已作地) 벽지불지(辟支佛地) 보살지(菩薩地: 9지)를 거쳐 불지(佛地 제10지)에 오른다.
반야경에서는 명주공덕(明呪功德)을 강조하고, 수지(受持) 독송(讀誦) 서사(書寫) 해설(解說)을 설하여 경을 실천하도록 한다.
'소품반야경'에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수지 독송하라. 네가 이것을 수지 독송하면 아수라가 생각을 내어… 그때에 너는 반야바라밀을 독송하라. 그러면 그 인연으로 아수라의 악심이 곧 멸하리라.⋯ 반야바라밀은 대명주며 무등등주니라. 왜냐하면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명주로 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명주는 '반야심경'에도 “이는 대신주요 대명주요 무상주 무등등주이니 능히 일체의 고통을 제거하여 허망하지 아니하니라(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라고 설하고 있다.
3) 용수의 중관사상
용수의 공사상은 대승불교의 공관기초가 된다. 그의 공관을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용수(龍樹)의 공 : 대승(大乘)의 공관: 연기(緣起)⇒무자성(無自性)⇒공(空)
ⓐ연기(緣起)하는 것들은 상의상관(相依相關)관계가 있다.
ⓑ상의상관하므로 실체적 자성이 없다[무자성無自性].
ⓒ자성(自性)이 없어 무집착(無執著) 무소득(無所得)이므로 공(空)하다.
용수(龍樹 150-250)는 대승 8종의 조사로 일컬어지면서 대승불교의 건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 알려진 '대지도론(大智度論)'100권,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門論)' '회쟁론(廻諍論)' '공칠십론(空七十論)'과 제바(提婆 170-270) '백론'2권은 특히 중국에서의 대승 종파의 토대가 되었다.
그의 공관을 가장 잘 나타내는 유명한 '중론'의 다음 구절은 대승불교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 나는 곧 공이라고 하네/ 또한 가명이며 또한 중도의 뜻이네/ 일찍이 어떠한 법도 인연으로 생기지 않은 법은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공하지 않음이 없네(衆因緣生法 我說卽是無(空)\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未曾有一法 不從因緣生\ 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中論' 「觀四諦品」
여기서 용수는 연기한 제법이 상의상관하므로 실체적인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으므로 무집착 무소득 공이라고 하는 공관을 적용하여 제법이 공하므로 곧 가이고 중이라는 삼제 삼관을 세우고 있다. 여기서 용수의 공관은 공 가 중의 중도로 귀착된다.
용수의 중관은 팔부중도론에서 일단 정리되고 있다.
② 중도(中道), 팔부중도론(八不中道論)
용수는 세상의 중요한 철학적 카테고리로서 생멸(生滅) 상단(常斷) 일이(一異) 거래(去來)를 취하여 이 8가지 극단적인 관점은 일종의 사견이며, 이를 파하므로써 바른 정도가 세워진다고 한다. 이는 사견을 시정하고 중도적인 진리를 올바로 관찰하는 지혜, 곧 파사현정(破邪顯正)과도 통한다(不生不滅 不一不異 不常不斷 不去不來). 팔부중도론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불생불멸(不生不滅): 생멸의 양극단을 부정. 제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나타난 것이며, 멸하는 것도 인연이 다 되어 사라지고, 생과 멸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데 인연의 유무에 따라 생과 멸이 있게 되는 연기를 모르고 범부들은 실제로 생(아주 생기고)과 멸(영원히 멸)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함을 파하고 있다.
ⓑ불일불이(不一不異): 일체 모든 법은 진리의 본체에서 보면 동일한 원리이지만 현상계의 사물이 서로 다른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다른 것처럼 집착하는 견해를 부정하는 것이다. 내면의 원리와 현상계의 모습이 영원히 다르다는 극단적인 편견을 버리게 하고 진리는 하나이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하나의 원리인 중도사상을 주장한다.
ⓒ불상부단(不常不斷): 범부는 현상계의 모든 것은 인연화합으로 생긴 것을 모르고 겉모습만을 믿으며 윤회상의 중생의 몸은 항상 생멸의 가능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인 줄을 모르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기대하고 집착하는 것을 부정한다. 생멸을 뒤풀이하면서 윤회하는 주체이므로 불상(不常)이다. 사람의 죽음은 인연이 흩어져 가는 현상이고 또 인연을 만나면 출생하는 것인데도 영원히 생명체가 단절되었다고 생각하는 사견을 부정하는 것이다. 상견과 단견을 타파하고 현상계는 무상한 것으로 변천하면서 존재하면 없어지는 것. 현상계는 무상한 것으로 변천하면서 존재하며 없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죽었다고 해도 다시 태어나고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상주하지도 단멸하지도 않는다.
ⓓ불거불래(不去不來): 삼계 육도를 윤회하는 중에 이 세상에 온 것으로 영원히 온 것으로 착각한다. 마음을 닦고 복잡한 번뇌를 끊음으로써 삼계윤회를 해탈하여 본원의 진여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망각한 중생들을 깨우치는 것. 본래 진리의 당체는 오고 감이 없는 여여한 것이라는 중도론이다.
이 팔부중도론은 전생과 현생과 후생의 관점으로 보면,
나는 전혀 무(無)에서 생긴 것인가 계속 전해져 내려온 것:불생(不生)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에서 나온 것이고 이전의 나는 아주 멸한 것이 아니다.:불멸(不滅)
이전의 나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고 항상 그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불상(不常)
그 모습이 아니라고 아주 없어진 단절된 것이 아니다:부단(不斷)
단절되지 않았다고 같은 것은 아니다.:불일(不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다른 것은 아니다:불이(不異)
다른 것이 아니라고 거기에서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다.:불래(不來)
지금 내가 다른 것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불거(不去)
라고 보기도 한다.
③ 삼관[공가중空假中]과 일심삼관(一心三觀)
용수의 삼관은 대승불교 수행의 근본 관법(觀法)으로, 제법은 공(空)하고 가(假)이며 중(中)이라고 관(觀)하는 것. 인연에 의하여 이루어진 제법은 실체적 자성이 없으므로 그 본성이 공하다고 보는 것이 공관(空觀)이다. 이들은 또한 현상적인 존재하므로 현존하는 이것들은 가(假)라고 관하는 것이 가관(假觀)이다. 그런데 진실상(眞實相)에서 보면 공(空)이라고도 가(假)라고도 볼 수 없으니, 비공비가(非空非假)이고 공 가를 넘어선 중도제일의관(中道第一義觀)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중관(中觀)의 입장이다. 중관은 곧 정관(正觀)을 말한다.
1) 반야경의 성립
공을 설한 반야경류의 성립은 경전 성립사적으로 볼때, 먼저 팔천송반야(32음절을 1송으로) 곧 '소품반야경'에서 2만 오천송반야 곧 '대품반야경' 그리고 '십만송반야'로 증광되었다. 이와 같이 소품반야로부터 시작하는 대경군(大經群)이 먼저 성립되고 이어, 금강반야와 문수반야와 같은 개별적인 경들이 그 후에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반야경의 번역은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27권 구마라집 408년역(대품반야大品般若), 408년역 동경 10권(소품반야小品般若)이 있고, 이어서 반야사상을 요약한 구마라집역본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摩訶般若波羅蜜大明呪經)'(현장역은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과 '금강반야바라밀경'이 한역되었다.
'금강반야'의 경우 그 교리적 표현이 비교적 소박하고 ‘공空’이라는 말도 나타나지 않으므로 원시대승의 기준에 적합하지만, 이 경을 라집이 최초로 번역 했다든가 용수의 저작에도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보아 늦게 성립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후오백세’의 구절도 원시대승보다 후기에 가까워 보인다. '팔천송반야' 등에서 반야경이 남쪽에서 일어나 서 북인도로 퍼져 나갔다고 하고 있는데, 금강반야도 남인도로 추정하려하고 있으나 증거는 불충분하다.
팔천송에서 이만오천송은 초기 대승에 속하고, 이만오천송은 '팔천송'의 「초품」을 26품('대품반야')으로 부연 확대하였고, 「촉루품」 뒤에 20품 정도를 추가했던 점이 특징이다. 초품에서 확대된 내용은 ‘보살대사’를 논하고, ‘대승’을 논하며, ‘십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십팔공’을 언급하며, 다양한 삼매의 명칭을 열거하는가 하면 다라니문을 나열하고, 일체의 법을 공으로써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후오백세(後五百世)를 언급하고 있어서 정법 오백년이 끝나감에 따라 이 경전이 성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이 반야경과 밀착하여 보살도를 고양시킨 것이 '수능엄삼매경' 등의 문수계 경전이고, '유마경'도 여기에 속한다. 보살의 계위는 초발심보살(初發心菩薩)-행도(行道)-불퇴전(不退轉)-일생보처(一生補處)의 4계위를 설하고 있다.
2) 반야경의 교리
반야경에서 교리는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경전이 성립되어 초기 대승불교사상을 담고 있다. “위대한 갑옷으로 몸을 굳건히 하고 있는 대사(大士)”라는 내용에서 보듯이 유정(有情)의 대집단, 유정의 대군집의 상수라는 의미에서 보살을 대사라고 한다. 보살은 수승한 지혜를 가지고 일체법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으며 중생을 부모 형제 내지는 자기 몸과 같이 보아 절대로 버리지 않으며 자기가 대신 고통을 받더라도 중생을 위하여 살며 그러므로 결국 성불할 수 있는 이들 중에서 상수가 된다.
“보살은 자성공법(自性空法) 중에 마땅히 집착하지 않아 경동(傾動)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보살은 일체법의 불이상을 알아 경동(傾動)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대품반야 권4)
“보살은 어찌하여 마하살(대사)라고 하는가. 이는 필정취 중에서 제일 상수가 되기 때문이다”(대품반야 권4)라고 하는 보살의 개념들이 반야경에 정착하였다.
다음으로는 십선도(十善道: 不殺生 不偸盜 不邪婬 不妄語 不兩舌 不惡口 不綺語 不貪慾 不嗔恚 不邪見. 여기서 재가의 중시로 불음주 대신 구계口戒가 중시되었다)가 중시되고, 육바라밀이 중시되었다. 팔천송에는 육재일 십선도 사선 사무량심 사무색정 육신통 삼십칠보리분법(四念處 四正勤 四神足 五根 五力 七覺支 八正道) 등의 전통적인 계행이 언급되는데 이들은 모두 지혜의 완성에서 생기며 지혜의 완성으로 세상에 유포된다. 육바라밀 각 덕목은 6가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지지만, 지혜의 완성에 근거하여 인도되며 지혜의 완성으로 지향한다.
다음으로 언급되는 교리가 반야바라밀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반야바라밀은 불모(佛母)로서 생각하고 있고, 자리이타의 보살수행은 육바라밀을 실천하는데 그 중에서 반야바라밀이 주가 된다. 반야바라밀은 부처의 본질이며 마치 어머니와 같이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를 낳는 것이며 반야바라밀이야말로 수투파나 사리보다 더욱 존중된다. 여래는 완전한 신체를 얻고 있기 때문에 여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일체지를 얻고 있기 때문에 여래라 불리는 것이다. 이 여래의 일체지는 반야바라밀의 소산이다.
“만약 보살이 마음이 법에 주하여 보시하면 사람이 어둠 속에 들어가 보는 바와 같고, 만약 보살이 법에 주하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사람이 눈이 있어 햇빛이 밝게 비춰 여러 가지 색을 보는 것과 같다(금강경 제14)”라고 한다. 또한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주하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느니라[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금강경 제10)” 라는 구절을 통해서, 반야바라밀의 실천을 통하여 주함이 없는 마음 무집착 무소득 공의 교학으로 발전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불타관[법신法身]에서는 부처의 물리적인 신체에 비하면 반야바라밀은 부처의 정신적 본질이고 동시에 공성의 절대적 진리로서 중시된다. “실로 여래는 색신으로서 보아져서는 안되고 여래는 법신이다. 모든 것은 알려지지 않으며 보여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공하기 때문이다.”라고 공성을 강조한다. 반야바라밀이 가리키는 śūnya는 특징이 없는 것[무상無相], 원할 것이 없는 것[무원無願] 열반, 깨달음의 세계[법계法界], 진여와 동일시 된다.
이러한 바탕에서 반야경에서는 지혜가 있다면 공의 이치를 알고 공의 이치를 알면 곧 지혜를 앎이니 공과 반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반야경의 공관이 수립된다. 교학적으로 보면 공관은 근본불교의 아공(我空) 법공(法空), '대비바사론'에 십공설(十空說), 능가경(楞伽經)에 7공, '대반야경'(제44권)에는 20공설, '대품반야'(제3권)에는 18공설, '대지도론' 18공을 설하고 있다.
반야경의 수행계위는 육바라밀을 실천하여 자리이타행이 이루어지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성불하는데 목적이 있다. 바라밀행을 하면 간혜지(乾慧地) 성지(性地) 팔인지(八人地) 견지(見地) 박지(薄地) 이욕지(離欲地) 이작지(已作地) 벽지불지(辟支佛地) 보살지(菩薩地: 9지)를 거쳐 불지(佛地 제10지)에 오른다.
반야경에서는 명주공덕(明呪功德)을 강조하고, 수지(受持) 독송(讀誦) 서사(書寫) 해설(解說)을 설하여 경을 실천하도록 한다.
'소품반야경'에는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수지 독송하라. 네가 이것을 수지 독송하면 아수라가 생각을 내어… 그때에 너는 반야바라밀을 독송하라. 그러면 그 인연으로 아수라의 악심이 곧 멸하리라.⋯ 반야바라밀은 대명주며 무등등주니라. 왜냐하면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명주로 인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명주는 '반야심경'에도 “이는 대신주요 대명주요 무상주 무등등주이니 능히 일체의 고통을 제거하여 허망하지 아니하니라(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라고 설하고 있다.
3) 용수의 중관사상
용수의 공사상은 대승불교의 공관기초가 된다. 그의 공관을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용수(龍樹)의 공 : 대승(大乘)의 공관: 연기(緣起)⇒무자성(無自性)⇒공(空)
ⓐ연기(緣起)하는 것들은 상의상관(相依相關)관계가 있다.
ⓑ상의상관하므로 실체적 자성이 없다[무자성無自性].
ⓒ자성(自性)이 없어 무집착(無執著) 무소득(無所得)이므로 공(空)하다.
용수(龍樹 150-250)는 대승 8종의 조사로 일컬어지면서 대승불교의 건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 알려진 '대지도론(大智度論)'100권, '중론(中論)' '십이문론(十二門論)' '회쟁론(廻諍論)' '공칠십론(空七十論)'과 제바(提婆 170-270) '백론'2권은 특히 중국에서의 대승 종파의 토대가 되었다.
그의 공관을 가장 잘 나타내는 유명한 '중론'의 다음 구절은 대승불교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 나는 곧 공이라고 하네/ 또한 가명이며 또한 중도의 뜻이네/ 일찍이 어떠한 법도 인연으로 생기지 않은 법은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공하지 않음이 없네(衆因緣生法 我說卽是無(空)\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未曾有一法 不從因緣生\ 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中論' 「觀四諦品」
여기서 용수는 연기한 제법이 상의상관하므로 실체적인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으므로 무집착 무소득 공이라고 하는 공관을 적용하여 제법이 공하므로 곧 가이고 중이라는 삼제 삼관을 세우고 있다. 여기서 용수의 공관은 공 가 중의 중도로 귀착된다.
용수의 중관은 팔부중도론에서 일단 정리되고 있다.
② 중도(中道), 팔부중도론(八不中道論)
용수는 세상의 중요한 철학적 카테고리로서 생멸(生滅) 상단(常斷) 일이(一異) 거래(去來)를 취하여 이 8가지 극단적인 관점은 일종의 사견이며, 이를 파하므로써 바른 정도가 세워진다고 한다. 이는 사견을 시정하고 중도적인 진리를 올바로 관찰하는 지혜, 곧 파사현정(破邪顯正)과도 통한다(不生不滅 不一不異 不常不斷 不去不來). 팔부중도론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불생불멸(不生不滅): 생멸의 양극단을 부정. 제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나타난 것이며, 멸하는 것도 인연이 다 되어 사라지고, 생과 멸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데 인연의 유무에 따라 생과 멸이 있게 되는 연기를 모르고 범부들은 실제로 생(아주 생기고)과 멸(영원히 멸)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함을 파하고 있다.
ⓑ불일불이(不一不異): 일체 모든 법은 진리의 본체에서 보면 동일한 원리이지만 현상계의 사물이 서로 다른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다른 것처럼 집착하는 견해를 부정하는 것이다. 내면의 원리와 현상계의 모습이 영원히 다르다는 극단적인 편견을 버리게 하고 진리는 하나이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하나의 원리인 중도사상을 주장한다.
ⓒ불상부단(不常不斷): 범부는 현상계의 모든 것은 인연화합으로 생긴 것을 모르고 겉모습만을 믿으며 윤회상의 중생의 몸은 항상 생멸의 가능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인 줄을 모르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기대하고 집착하는 것을 부정한다. 생멸을 뒤풀이하면서 윤회하는 주체이므로 불상(不常)이다. 사람의 죽음은 인연이 흩어져 가는 현상이고 또 인연을 만나면 출생하는 것인데도 영원히 생명체가 단절되었다고 생각하는 사견을 부정하는 것이다. 상견과 단견을 타파하고 현상계는 무상한 것으로 변천하면서 존재하면 없어지는 것. 현상계는 무상한 것으로 변천하면서 존재하며 없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죽었다고 해도 다시 태어나고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상주하지도 단멸하지도 않는다.
ⓓ불거불래(不去不來): 삼계 육도를 윤회하는 중에 이 세상에 온 것으로 영원히 온 것으로 착각한다. 마음을 닦고 복잡한 번뇌를 끊음으로써 삼계윤회를 해탈하여 본원의 진여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망각한 중생들을 깨우치는 것. 본래 진리의 당체는 오고 감이 없는 여여한 것이라는 중도론이다.
이 팔부중도론은 전생과 현생과 후생의 관점으로 보면,
나는 전혀 무(無)에서 생긴 것인가 계속 전해져 내려온 것:불생(不生)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에서 나온 것이고 이전의 나는 아주 멸한 것이 아니다.:불멸(不滅)
이전의 나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고 항상 그 모습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불상(不常)
그 모습이 아니라고 아주 없어진 단절된 것이 아니다:부단(不斷)
단절되지 않았다고 같은 것은 아니다.:불일(不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다른 것은 아니다:불이(不異)
다른 것이 아니라고 거기에서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다.:불래(不來)
지금 내가 다른 것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불거(不去)
라고 보기도 한다.
③ 삼관[공가중空假中]과 일심삼관(一心三觀)
용수의 삼관은 대승불교 수행의 근본 관법(觀法)으로, 제법은 공(空)하고 가(假)이며 중(中)이라고 관(觀)하는 것. 인연에 의하여 이루어진 제법은 실체적 자성이 없으므로 그 본성이 공하다고 보는 것이 공관(空觀)이다. 이들은 또한 현상적인 존재하므로 현존하는 이것들은 가(假)라고 관하는 것이 가관(假觀)이다. 그런데 진실상(眞實相)에서 보면 공(空)이라고도 가(假)라고도 볼 수 없으니, 비공비가(非空非假)이고 공 가를 넘어선 중도제일의관(中道第一義觀)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중관(中觀)의 입장이다. 중관은 곧 정관(正觀)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