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모든 공덕을 닦아 부드럽고 화하며 질직한 자는
다 나의 몸이 곧 여기에 있어
설법함을 봄이니라.
어느 때는 이 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수명이 한량없다고 설하며
오랫동안 부처님을 친견하는 자에게는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 설하느니라.
나의 지력(智力)은 이와 같아서
지혜의 광명으로 한량없이 비치고
수명이 수없는 겁이니 오랫동안
업을 닦아 얻은 바이니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2~724)
제유수공덕       유화질직자
諸有修功德       柔和質直者
즉개견아신       재차이설법
則皆見我身       在此而說法
혹시위차중       설불수무량
或時爲此衆       說佛壽無量
구내견불자       위설불난치
久乃見佛者       爲說佛難値
아지력 여시      혜광 조무량
我智力 如是      慧光 照無量
수명 부수겁      구수업소득
壽命 無數劫      久修業所得

 [강의] 법신을 만나게 되는 인연을 밝혔다. 부처님께서 나타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부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에 따라 다르게 감응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공덕을 닦음(諸有修功德)”이란 온갖 선행을 닦아 익힌 것. 제유(諸有)는 모두의 뜻.
“오랫동안 부처님을 친견하는 자[久乃見佛者]”란 오탁의 번뇌가 무거운 중생.
“부처님 만나기 어렵다 설함”이란 오랜 만에 부처님 뵌 사람에게 만나 뵙기 어렵다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소중한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랫동안 업으로 얻은 바[久修業所得]”란 여래의 지혜와 복덕은 모두 인지(因地)에서 오랫동안 청정하게 업을 닦아 이루어 진 바라는 것이다.
 
 [경] 너희들 지혜있는 자는
여기에 의심을 내지 말라.
마땅히 죄업을 끊어 영원히 다할 지니라.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이고 헛됨이 없노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4)
여등유지자      물어차 생의     
汝等有智者      勿於此 生疑
당단령영진      불어 실 불허
當斷令永盡      佛語 實 不虛

 [강의] 중생 교화의 이익은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는 것을 노래했다.
“지혜있는 자”란 여래의 지혜의 힘은 부처님 만나기 쉽다고도 하고 어렵다고도 하며, 수명이 짧게도 말하고 길게도 말하는 등 방편이 자재하다는 것이다.
“마땅히 죄업을 끊어 의혹을 끊어 영원히 없앰[當斷令永盡]”이란 마땅히 의심의 그물을 끊어 생겨나지 않게 함.

 [경] 마치 의원이 좋은 방편으로
미친 아들을 다스리기 위하는 고로
살아 있건마는 죽었다 말하되
허망이라 하는 자 없음과 같이,(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4)
여의 선방편      위치광자고
如醫 善方便      爲治狂子故
실재이언사       무능설허망
實在而言死       無能說虛妄

 [강의] 간략히 의사의 비유를 들어 노래했다. 의사가 방편으로 죽었다고 한 것은 여래께서 실제로는 멸도에 들지 않으셨으나 입멸에 드신 것을 보인 것을 비유했다.
“미친 아들”이란 실성한 아들. 원문은 광자(狂子). 삿된 견해에 빠져 본심을 잃은 중생을 가르킨다.
※장자의 아들
장자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다고 하였다. 법화가 개현된 이후이므로 성문 벽지불 보살이 모두 다 아들이 된다. 그러므로 앞의 경문에서 “그 사람은 자식이 많아서 혹은 10, 20으로부터 백이라”('법화삼부경', p.712)라고 하였다. 여기서 10명의 아들은 성문을 가리키고, 20의 아들은 벽지불을 가리키며, “백명”은 보살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여기서 보살인 아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법화문구'에서는 모두 세 종류 아들을 들고 있다.
첫째, 일체중생들에게 모두 세 종류 성덕(性德)의 불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곧 불자(佛子)가 됨이다. 그런 까닭에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그 가운데 중생 모두 나의 아들”(비유품 게송) 이라고 말한 것이며, 이 글에서도 “그 사람은 자식이 많아서” 라고 하였다.
둘째, 옛날에 결연한 측면에서 불자라 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열여섯 왕자가 법화경을 복강(覆講) 하였을 때 이 법문을 들은 사람도 역시 미미한 이해가 생겼으니 이것은 곧 요인불성(了因佛性)이 이루어짐이다. 옛날에 미미하게 수행하였음은 연인불성이 되고, (이들은) 정인불성[正性]을 근본으로 한다. 이 삼인불성(三因佛性)은 모두가 연인불성에 속하는데, 오늘날 일승의 깨달음을 내도록 돕는다. 그런 까닭에 옛날 결연한 것이 불자(佛子)가 된다. 이는 곧 불난 집의 비유에서 서른 명의 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를 십신(十信)과 결부시키면 일신(一信)이 일어날 때는 곧 나머지 아홉 가지 믿음을 갖추게 됨으로 문득 백 가지 믿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결연한 것이 불자가 된다고 한다.
셋째, 요인불성(了因佛性)의 불자이다. 이는 곧 오늘 법화경의 설법을 듣고, “참된 지혜[眞智] 가운데에 편안히 머무르니, 저는 결정코 성불하여”(비유품 게송) 라고 하였고, “성문법(聲聞法)을 결정코 마치니, 이 경은 모든 경의 왕이니라.”(법사품 게송) 라고 하였으며,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고, 부처님 법의 유산 얻었나이다”(비유품 제3단)고 하니, 그러므로 진실한 불자[眞子]라 한다. 이 또한 삼인불성이 있으니, 이제 이미 환하게 불성을 보았으므로 모두가 요인불성의 불자에 속하게 된 것이다.
“살아 있건마는 죽었다 말하되[實在而言死]”란 실제로는 살아 있으면서 죽었다고 말한 것.
 
 [경] 나도 또한 세상의 아버지가 되어
모든 고통을 구하는 자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4)
아역위세부        구제고환자
我亦爲世父        救諸苦患者

 [강의] 비유의 뜻을 합하여 노래했다. 위 구절은 과거 중생을 교화한 이익을 노래했다. 과거 세간의 자부로써 중생을 교화 한 일.
"세상의 아버지[世父]"란 세간의 아버지, 혹은 중생의 아버지.
“모든 고통[諸苦患]”은 괴로움과 재앙.

 [경] 전도된 범부(凡夫)를 위해 실은 있건마는
멸한다고 말함이니라.
항상 나를 보는 까닭으로
교만하고 방자한 마음을 내며,
방일하고 오욕에 착해서
악도 중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나는 항상 중생이
도를 행하고 행치 아니함을 알아서
응하여 제도될 바를 따라
가지가지 법을 설함이니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4~726)
위범부전도       실재이언멸
爲凡夫顚倒       實在而言滅
이상견아고       이생교자심
以常見我故       而生憍恣心
방일착오욕       타어악도중
放逸著五欲       墮於惡道中
아 상지중생      행도불행도
我 常知衆生      行道不行道
수소응가도       위설종종법
隨所應可度       爲說種種法

 [강의] 현재 중생을 교화한 이익을 나타낸다. 범부의 뒤바뀐 생각으로 실제로는 상주하지만 입멸을 설해 멸도를 보이신 것은 부처님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중생이 교만한 마음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멸도를 보이어 중생을 제도한 것이다.  
  “전도된 범부 위해[爲凡夫顚倒]”란 범부가 전도된 망상 때문에.
  “방일하고 오욕에 착해서[放逸著五欲]”란 방탕하고 안일하게 세속의 오욕락에 탐착함을 말한다.
  “응하여 제도될 바를 따라[隨所應可度]" 제도할 근기에 따라.
 
 [경] 매양 스스로 이 같은 생각을 하되,
어떻게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도(無上道)에 들어
속히 불신(佛身)을 이룩하게 할까하노라.(금장본 여래수량품 제16 p726)
매자작시념       이하령중생
每自作是念       以何令衆生
득입무상도       속성취불신
得入無上道       速成就佛身

 [강의] 거짓되지 않은 뜻을 합하여 노래했다. 방편을 설한 까닭을 노래했다. 가까운 것을 열어 먼 것의 진실을 드러낸 것[開近顯遠]은 중생들이 속히 부처님 지혜에 들도록 하는 것이었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