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찬드라키르티(월칭)의 반론
그런데 찬드라키르티는 바바비베카(청변)의 이러한 해석에 반대해서 ‘연기'라는 한 마디 말을 “연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두 가지 말로 분해해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뿌라산나빠다다).
곧 연해서 와 일어난다는 두 개의 말로 나누어 그것들이 각각 독립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연기라고 하는 하나의 말에 여러 법과 법의 논리적 상관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찬드라키르티에 의해 보면 불생불멸하는 연기라는 표현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해석은 연기라고 하는 말의 해석으로는 무리이다. 다만 찬드라키르티는 초기의 불교도가 막연하다고 생각했던 연기의 관념을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도달해서 이러한 결론에 이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찬드라키르티의 주석을 보면 일어난다(생기)는 것은 허망한 것이며 연기는 진리라고 생각하고, 일어남과 연기를 정반대의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현상들의 일어남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연기가 성립한다고 말하면서 불생(不生)이야말로 연기의 진정한 의미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보면 연기를 “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승불교와 청변의 해석과 연기를 “불생”으로 간주하는 찬드라키르티의 입장은 정반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4) 모순에 대한 세 가지의 해답
이와 같이 해서 우리는 연기라고 하는 말에 “일어남”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불생(不生) 불기(不起)라고 해석하는데서 느껴지는 표현상의 모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대답이 주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아상가(무착)는 사물의 생기는 일반적으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중론}이 연기를 설하더라도 그것은 생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둘째, 바바비베카(청변)는 연기는 세속제에서 말한 것이고 불생은 제일의제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므로 서로 모순된다고 볼 수 없다.
셋째 찬드라키르티의 주장은 연기라는 말은 ‘연’과 ‘기’로 분리해서 고찰해서는 안된다. 연기라는 하나의 말은 제법 현상 하나하나의 논리적 상관관계를 의미하며, 연기는 처음부터 생기라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상의 세 가지 입장에서 어떤 해석이 나가르주나의 원의에 가장 가까운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만 아마도 찬드라키르티의 해석이 가장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5) 바바비베카와 찬드라키르티의 중관론
<<중관학파의 사상계보>>
<초기>
[ 용수(龍樹), 제바(提婆), 라후라(羅喉羅), 청목(靑目), 바수(婆藪) ]
① 제바 (Arya -deva, 성천(聖天), 170∼270년 경)
'제바보살전'에 의하면, 제파(提婆 Aryadeva)는 남인도 바라문 출신이라고 하는데, '사백론(四百論)'에 대한 월칭의 주(註)에 의하면, 제바는 세일론 출신 왕자였으며,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남인도로 와서 용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대당서역기' 권10에는 제바가 주리야국(珠利耶國)의 성 서쪽에 있는 사원에 거주하면서 아라한과 논의하여 그들 이론의 잘못됨을 논파했다고 한다.
저서에 '백론 (S.atasastra)' 2권 20품 50게와 『사백론』(16품 400게), 『백자론' 및 그 주(註)등을 지었다. 스승 용수보살이 파사현정을 강조하였다면 제바는 파사적(破邪)에 주력하였다고 평한다.
② 라후라발타라(羅喉羅跋陀羅)(Rahulabhadra, 200∼300년 경): 인도의 부법장(付法藏) 15조로 용수와 제바의 제자 저서로는 찬반야바라밀게(讚般若波羅蜜偈), 묘법연화찬(妙法蓮花讚) 등이 있다. 티베트의 전승에는 라훌라바드라가 용수의 스승이었다는 설이 있다.
③ 청목(Pingala, 4c. 초) 중론송을 주석(註釋)하였다. 나집(羅什)삼장에 의해 그 게송과 해석문 장행석(長行釋)이 함께 "중론(中論)"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되어, 중론송의 주석서로는 가장 오랜 것으로 제일 많이 읽혀지고 있다.
④ 바수(婆藪)(Vasu) : 제바의 백론(百論)을 해석찬 백론소(百論疏) 9권을 지었다.
<중기>
(1) 귀류논증파 [ 불호(佛護) 월칭(月稱) 적천(寂天) ]
(2) 자립논증파 [ 청변(淸辨) 계통 ]
경량행 중관파(經量行中觀派)
유가행 중관파(瑜伽行中觀派)
① 불호(佛護 Buddhapalitaa, 470∼540년 경) : 귀류논증 형식으로 중론송 일부를 해석하여 (티벳역으로만 현존) 중관사상을 부흥시켰다.
② 청변(Bhavaviveka, Bhavya, 490∼570년 경):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중관심론송(中觀心論頌)』(범어 티벳어본) '사택염(思擇炎)』중관심론주(中觀心論註), 장역(藏譯), 『대승장진론(大乘掌珍論)』, 자립적인 정언적 논증형식(Svatantr anum na) 구사하여 불호를 비판했다.
③ 월칭(月稱)(Candrakirti, 600∼650년경 ) : Prasannapad 라는 유일한 중론송 범어 주석서를 남겼다. (티베트역으로도 되어 있음). 그가 청변(淸辨)을 공박하고 스승 불호(佛護)를 옹호하였다.
④ 관서(觀誓 Avalokitavrata, 7c) : 불호(佛護)의 중론석 비판, 청변의 반야등론(般若燈論)을 주석하는 반야등론광석(般若燈論廣釋)』(Praj pradipat ka, 장역(藏譯)뿐)을 지어 인도철학이나 불교 각 학파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⑤ 적천(寂天 Shantideva, 650∼750년 경): '입보살행론入菩薩行論' 10품(品) 900여게(인도해설서 100여종). 티벳어 번역 원문 8종, 해설서도 20여 종이 있다. 이외에도 '일체학처집요一切學處集要', '학집론學集論', '경집론經集' 등이 잇다.
⑥ 뿌라갸까라마띠(Praj karamati(950∼1030년 경) : 위의 『입보리행론 』을 주석한 『입보리행론 세소(細疏)』(Bodhicaryavatrapanjika, 범본 현존)를 지어 경량부나 유식파 비판하였다.
<후기>
(1) 형상진실파(形象眞實派) [ 적호(寂護) 연화계(蓮華戒) ]
(2) 형상허위파(形象虛僞派)
유구론파(有垢論派)
무구론파(無垢論派)
즈냐나가르바(J nagarbha) ·슈리굽타 ·샨티라크시타(적호(寂護)) ·카말라실라(연화계(蓮華戒), 740-795년경) ·하리바드라...
① 즈냐나가르바(J nagarbha(700-760년경) : 적호(寂護)의 스승. 『이체분별론(二諦分別論)』(Satyadvayavibha ga, 46게, 티벳역뿐임 )과『이제분별주(諦分別註)』(satyadvayavibha g v t 티벳역뿐임) 및 『유가수습도(瑜伽修習道)』(Yogabhavanamarga, 티벳역 뿐임.) 등을 지었다.
② 산티라크시타(적호寂護 Santaraksi 728∼788년 경) : 외교제파(外敎諸派)와 유부 및 경량부 등의 이론을 소개 비판하는 『진실요의(眞實要義)』(Tattvasa graha, 3645게, 범장본 현존)와 『중관장엄론(中觀莊嚴論)(Madhyamak la k ra) 및 이에 대한 자주(自註)(∼vrti)를 지었고, 스승의 『 이제분별론』을 주석하였다. 날난다의 학자로 정명대사(靜命大師)라고도 부른다. 불교의 4대 학파와 지식론학파의 이론을 종합했다. 그는 바바비베카 학통(學統)에 속해 있었지만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과 논리학에 정통하였으며 유식학파의 장점을 잘 발휘하였다. 그는 유식의 이론을 중관교학의 일부로서 수용하였기 때문에 유가행(瑜伽行) 중관학파(中觀學派)라 불려지기도 하였다.
③ 카마라실라(연화계 蓮華戒 Kamalasita, 745∼795년경) : 스승 적호의 『진실요의(眞實要義)』와 『중관(中觀) 장엄론 』에 대한 주석서인 『진실요의세소(眞實要義細疎)』(범어본 티벳본 현존)와 『중관장엄론세소 (中觀莊嚴論 細疎) 』(티벳역뿐)를 지었다. 『중관명(中觀明)』(Madhyamak loka)와 『진실명』(Tattv loka) 그리고 『 일체법무자성논증』 등의 저서가 있다.
④비무크티세나(Vimuktisena 8c.) : Haribhadra의 스승. 이만오천송 반야경(般若經)을 해설한『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을 주석하는 『현관장엄론주(現觀莊嚴論註)』(Abhisamay -la k ra -vrti)을 지었다.
⑤ 하리바드라(Haribhadra 800년 경) :『팔천송반야해설(八千頌般若解說) 현관장엄(現觀莊嚴)의 광명(光明)』(범장본 현존)을 지었다.
청변은 용수의 '근본중송'을 주석하여 '반야등론석'을 짓고 불호의 설을 비판하여 스바탄트라 아누마나를 주장하면서 중관파의 입장을 취하였다. 청변은 진나(陳那)의 추론방식에 따라 주장명제, 이유명제, 실례명제의 형식을 갖춘 논증식을 받아들여 논증하려고 했다.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청변의 중관학체계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는 비록 논리를 중요시했지만 공성 자체는 논리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공성은 논리적 사고로 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와 같이 승의(勝義)의 입장에서 논리학을 부정하면서도 세속의 범위 내에서는 공성을 논리로 증명하려고 했다. 청변의 이러한 사상은 기존학계와 달리 스바탄트리카 Svatantrika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학파에 대해서 "자재론증파(自在論證派)" 혹은 "자립파(自立派)"라고도 한다.
이 청변의 사상은 같은 시대 불교논리학의 대가였던 진나논사에 의해 인명 논리학이 크게 발전했는데, 여기에 영향 받아 중관사상에 논리학을 받아들여서 그의 주장을 확립하면서 중요한 학파가 되었다. 당시는 일반적으로 논증식에 의해 철학설을 표현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를 수용한 청변의 입장은 월칭의 입장보다도 유가행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불호는 공의 논증을 귀류논법으로 하려고 했다. 이에 비하여 청변은 '반야등론석'에서 귀류논법을 배척하고 인명(因明)의 추론형식에 따른 논증법으로 공을 증명해야 한다고 입장을 취하였다. 때문에 월칭은 청변에 반론을 펴서 불호를 옹호하였다. 이들의 논쟁을 통하여 중기 중관학파는 불호, 월칭 계통의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 Prasanghika)와 청변 계통의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 Svatantrika)로 나뉘게 된다. 이중에서 찬드라키르티는 귀류논증법의 교묘한 부정 논리를 종횡으로 구사하여 모든 사견(邪見)을 없애고자 했고, 특히 청변계(淸辨系)를 비판하였다.
찬드라키르티의 저작은 '중론' 주석서인 '명구론(明句論)'이 있는데, 이 책은 청변의 논증법을 비판한 것이다. 또 제바(提婆)의 '사백론(四百論'을 해석한 '보살유가행사백론주소(菩薩瑜伽行四百論註疏)' '입중론(入中論)' '오온론' 등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찬드라키르티는 바바비베카(청변)의 이러한 해석에 반대해서 ‘연기'라는 한 마디 말을 “연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두 가지 말로 분해해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뿌라산나빠다다).
곧 연해서 와 일어난다는 두 개의 말로 나누어 그것들이 각각 독립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연기라고 하는 하나의 말에 여러 법과 법의 논리적 상관관계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찬드라키르티에 의해 보면 불생불멸하는 연기라는 표현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해석은 연기라고 하는 말의 해석으로는 무리이다. 다만 찬드라키르티는 초기의 불교도가 막연하다고 생각했던 연기의 관념을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도달해서 이러한 결론에 이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찬드라키르티의 주석을 보면 일어난다(생기)는 것은 허망한 것이며 연기는 진리라고 생각하고, 일어남과 연기를 정반대의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현상들의 일어남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연기가 성립한다고 말하면서 불생(不生)이야말로 연기의 진정한 의미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보면 연기를 “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승불교와 청변의 해석과 연기를 “불생”으로 간주하는 찬드라키르티의 입장은 정반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4) 모순에 대한 세 가지의 해답
이와 같이 해서 우리는 연기라고 하는 말에 “일어남”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불생(不生) 불기(不起)라고 해석하는데서 느껴지는 표현상의 모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대답이 주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아상가(무착)는 사물의 생기는 일반적으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중론}이 연기를 설하더라도 그것은 생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둘째, 바바비베카(청변)는 연기는 세속제에서 말한 것이고 불생은 제일의제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므로 서로 모순된다고 볼 수 없다.
셋째 찬드라키르티의 주장은 연기라는 말은 ‘연’과 ‘기’로 분리해서 고찰해서는 안된다. 연기라는 하나의 말은 제법 현상 하나하나의 논리적 상관관계를 의미하며, 연기는 처음부터 생기라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상의 세 가지 입장에서 어떤 해석이 나가르주나의 원의에 가장 가까운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만 아마도 찬드라키르티의 해석이 가장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5) 바바비베카와 찬드라키르티의 중관론
<<중관학파의 사상계보>>
<초기>
[ 용수(龍樹), 제바(提婆), 라후라(羅喉羅), 청목(靑目), 바수(婆藪) ]
① 제바 (Arya -deva, 성천(聖天), 170∼270년 경)
'제바보살전'에 의하면, 제파(提婆 Aryadeva)는 남인도 바라문 출신이라고 하는데, '사백론(四百論)'에 대한 월칭의 주(註)에 의하면, 제바는 세일론 출신 왕자였으며,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남인도로 와서 용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대당서역기' 권10에는 제바가 주리야국(珠利耶國)의 성 서쪽에 있는 사원에 거주하면서 아라한과 논의하여 그들 이론의 잘못됨을 논파했다고 한다.
저서에 '백론 (S.atasastra)' 2권 20품 50게와 『사백론』(16품 400게), 『백자론' 및 그 주(註)등을 지었다. 스승 용수보살이 파사현정을 강조하였다면 제바는 파사적(破邪)에 주력하였다고 평한다.
② 라후라발타라(羅喉羅跋陀羅)(Rahulabhadra, 200∼300년 경): 인도의 부법장(付法藏) 15조로 용수와 제바의 제자 저서로는 찬반야바라밀게(讚般若波羅蜜偈), 묘법연화찬(妙法蓮花讚) 등이 있다. 티베트의 전승에는 라훌라바드라가 용수의 스승이었다는 설이 있다.
③ 청목(Pingala, 4c. 초) 중론송을 주석(註釋)하였다. 나집(羅什)삼장에 의해 그 게송과 해석문 장행석(長行釋)이 함께 "중론(中論)"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되어, 중론송의 주석서로는 가장 오랜 것으로 제일 많이 읽혀지고 있다.
④ 바수(婆藪)(Vasu) : 제바의 백론(百論)을 해석찬 백론소(百論疏) 9권을 지었다.
<중기>
(1) 귀류논증파 [ 불호(佛護) 월칭(月稱) 적천(寂天) ]
(2) 자립논증파 [ 청변(淸辨) 계통 ]
경량행 중관파(經量行中觀派)
유가행 중관파(瑜伽行中觀派)
① 불호(佛護 Buddhapalitaa, 470∼540년 경) : 귀류논증 형식으로 중론송 일부를 해석하여 (티벳역으로만 현존) 중관사상을 부흥시켰다.
② 청변(Bhavaviveka, Bhavya, 490∼570년 경):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중관심론송(中觀心論頌)』(범어 티벳어본) '사택염(思擇炎)』중관심론주(中觀心論註), 장역(藏譯), 『대승장진론(大乘掌珍論)』, 자립적인 정언적 논증형식(Svatantr anum na) 구사하여 불호를 비판했다.
③ 월칭(月稱)(Candrakirti, 600∼650년경 ) : Prasannapad 라는 유일한 중론송 범어 주석서를 남겼다. (티베트역으로도 되어 있음). 그가 청변(淸辨)을 공박하고 스승 불호(佛護)를 옹호하였다.
④ 관서(觀誓 Avalokitavrata, 7c) : 불호(佛護)의 중론석 비판, 청변의 반야등론(般若燈論)을 주석하는 반야등론광석(般若燈論廣釋)』(Praj pradipat ka, 장역(藏譯)뿐)을 지어 인도철학이나 불교 각 학파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⑤ 적천(寂天 Shantideva, 650∼750년 경): '입보살행론入菩薩行論' 10품(品) 900여게(인도해설서 100여종). 티벳어 번역 원문 8종, 해설서도 20여 종이 있다. 이외에도 '일체학처집요一切學處集要', '학집론學集論', '경집론經集' 등이 잇다.
⑥ 뿌라갸까라마띠(Praj karamati(950∼1030년 경) : 위의 『입보리행론 』을 주석한 『입보리행론 세소(細疏)』(Bodhicaryavatrapanjika, 범본 현존)를 지어 경량부나 유식파 비판하였다.
<후기>
(1) 형상진실파(形象眞實派) [ 적호(寂護) 연화계(蓮華戒) ]
(2) 형상허위파(形象虛僞派)
유구론파(有垢論派)
무구론파(無垢論派)
즈냐나가르바(J nagarbha) ·슈리굽타 ·샨티라크시타(적호(寂護)) ·카말라실라(연화계(蓮華戒), 740-795년경) ·하리바드라...
① 즈냐나가르바(J nagarbha(700-760년경) : 적호(寂護)의 스승. 『이체분별론(二諦分別論)』(Satyadvayavibha ga, 46게, 티벳역뿐임 )과『이제분별주(諦分別註)』(satyadvayavibha g v t 티벳역뿐임) 및 『유가수습도(瑜伽修習道)』(Yogabhavanamarga, 티벳역 뿐임.) 등을 지었다.
② 산티라크시타(적호寂護 Santaraksi 728∼788년 경) : 외교제파(外敎諸派)와 유부 및 경량부 등의 이론을 소개 비판하는 『진실요의(眞實要義)』(Tattvasa graha, 3645게, 범장본 현존)와 『중관장엄론(中觀莊嚴論)(Madhyamak la k ra) 및 이에 대한 자주(自註)(∼vrti)를 지었고, 스승의 『 이제분별론』을 주석하였다. 날난다의 학자로 정명대사(靜命大師)라고도 부른다. 불교의 4대 학파와 지식론학파의 이론을 종합했다. 그는 바바비베카 학통(學統)에 속해 있었지만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과 논리학에 정통하였으며 유식학파의 장점을 잘 발휘하였다. 그는 유식의 이론을 중관교학의 일부로서 수용하였기 때문에 유가행(瑜伽行) 중관학파(中觀學派)라 불려지기도 하였다.
③ 카마라실라(연화계 蓮華戒 Kamalasita, 745∼795년경) : 스승 적호의 『진실요의(眞實要義)』와 『중관(中觀) 장엄론 』에 대한 주석서인 『진실요의세소(眞實要義細疎)』(범어본 티벳본 현존)와 『중관장엄론세소 (中觀莊嚴論 細疎) 』(티벳역뿐)를 지었다. 『중관명(中觀明)』(Madhyamak loka)와 『진실명』(Tattv loka) 그리고 『 일체법무자성논증』 등의 저서가 있다.
④비무크티세나(Vimuktisena 8c.) : Haribhadra의 스승. 이만오천송 반야경(般若經)을 해설한『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을 주석하는 『현관장엄론주(現觀莊嚴論註)』(Abhisamay -la k ra -vrti)을 지었다.
⑤ 하리바드라(Haribhadra 800년 경) :『팔천송반야해설(八千頌般若解說) 현관장엄(現觀莊嚴)의 광명(光明)』(범장본 현존)을 지었다.
청변은 용수의 '근본중송'을 주석하여 '반야등론석'을 짓고 불호의 설을 비판하여 스바탄트라 아누마나를 주장하면서 중관파의 입장을 취하였다. 청변은 진나(陳那)의 추론방식에 따라 주장명제, 이유명제, 실례명제의 형식을 갖춘 논증식을 받아들여 논증하려고 했다.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청변의 중관학체계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는 비록 논리를 중요시했지만 공성 자체는 논리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공성은 논리적 사고로 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와 같이 승의(勝義)의 입장에서 논리학을 부정하면서도 세속의 범위 내에서는 공성을 논리로 증명하려고 했다. 청변의 이러한 사상은 기존학계와 달리 스바탄트리카 Svatantrika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학파에 대해서 "자재론증파(自在論證派)" 혹은 "자립파(自立派)"라고도 한다.
이 청변의 사상은 같은 시대 불교논리학의 대가였던 진나논사에 의해 인명 논리학이 크게 발전했는데, 여기에 영향 받아 중관사상에 논리학을 받아들여서 그의 주장을 확립하면서 중요한 학파가 되었다. 당시는 일반적으로 논증식에 의해 철학설을 표현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를 수용한 청변의 입장은 월칭의 입장보다도 유가행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불호는 공의 논증을 귀류논법으로 하려고 했다. 이에 비하여 청변은 '반야등론석'에서 귀류논법을 배척하고 인명(因明)의 추론형식에 따른 논증법으로 공을 증명해야 한다고 입장을 취하였다. 때문에 월칭은 청변에 반론을 펴서 불호를 옹호하였다. 이들의 논쟁을 통하여 중기 중관학파는 불호, 월칭 계통의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 Prasanghika)와 청변 계통의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 Svatantrika)로 나뉘게 된다. 이중에서 찬드라키르티는 귀류논증법의 교묘한 부정 논리를 종횡으로 구사하여 모든 사견(邪見)을 없애고자 했고, 특히 청변계(淸辨系)를 비판하였다.
찬드라키르티의 저작은 '중론' 주석서인 '명구론(明句論)'이 있는데, 이 책은 청변의 논증법을 비판한 것이다. 또 제바(提婆)의 '사백론(四百論'을 해석한 '보살유가행사백론주소(菩薩瑜伽行四百論註疏)' '입중론(入中論)' '오온론' 등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