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아일다야, 만일 내가 멸도한 후 모든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가져 읽고 외우는 자가 다시 이와 같이 모든 선공덕이 있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이미 도량에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워 도수(道樹) 아래에 앉음이라.
아일다야, 이 선남자 선여인이 혹 앉거나 혹 서거나 혹 가는 곳에 응당 탑을 세울지니, 일체의 하늘과 사람이 다 부처님의 탑과 같이 공양하리라.
(금장본 분별공덕품 제17 p756)
아일다 약아멸후 제선남자 선여인 수지독송시경전자 부유여시제선공덕 당지
阿逸多 若我滅後 諸善男子 善女人 受持讀誦是經典者 復有如是諸善功德 當知
시인 이취도량 근아뇩다라삼먁삼보리 좌도수하 아일다 시선남자 선여인 약
是人 已趣道場 近阿耨多羅三藐三菩提 坐道樹下 阿逸多 是善男子 善女人 若
좌 약립 약행처 차중 변응기탑 일체천인 개응공양 여불지탑
坐 若立 若行處 此中 便應起塔 一切天人 皆應供養 如佛之塔

 [강의] 이 경전을 수지하고 바르게 육바라밀을 수행하는 공덕을 헤아린 것이다. 이 경전을 수지하고 해설하며 육바라밀을 수행하여 이치와 행[理行]을 갖추니 도량에 나아가 보리에 가까워지고 보리수 아래서 장차 정각을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오묘한 행을 실천하므로 그의 행하는 곳마다 탑이 세워지게 되어 불탑과 같이 공양 받으리라. 마음과 행동이 구족한 까닭에 여래의 자리로부터 멀지 않으니 공양 받음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오품의 위계를 보면, 앞의 수희품 독송품 설법품의 세품은 문혜(聞慧)의 위계이다. 겸행육도는 사혜(思慧)의 위계이고, 정행육도는 수혜(修慧)의 위계이니 모두 십신(十信) 이전의 단계이다. 혹은 초 수희품은 십신위와 수희위로 나누기도 하며, 육근청정위는 십신의 위계로 하여 철륜위라 한다. 십신위는 처음으로 불법에 신심을 일으키는 계위로 육근청정을 얻으면 철륜위의 정위에 이른다고 한다. 「법사공덕품」에서는 법화경을 수지 독 송 해설 서사하면 육근이 청정해진다고 밝힌 것에 근거하여 법화경을 육근청정법문이라 한다. 실제 이 계위에서는 견혹과 사혹을 끊어 육근이 청정한 계위로, 보통 제7신위가 본격적인 위계라고 한다. 철륜위는 '영락본업경'에서 삼현십성의 과보를 여섯 윤왕에 비유한 것에 근거하여 설정한 것이다. 먼저 천륜왕을 십신에 배대하고, 동륜왕을 십주, 은륜왕을 십행, 금륜왕을 십회향, 유리윤왕을 십지, 마니윤왕을 등각에 배대한데서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선공덕[諸善功德]이 있으면”이란 경을 널리 펴는 일 외에 다시 육바라밀을 행하여 여러 가지 좋은 공덕을 닦는 것을 말한다.
“도량”이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적멸도량을 가리킨다.  
“도수(道樹)”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를 말한다.

 [경]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만일 내가 멸도 한 후
능히 이 경을 받들어 가지면,
이 사람의 복이 한량없음은
위에 설한 바와 같으리니,
이것이 곧 일체의 모든 공양을
구족함이 되느니라.
사리로 탑을 일으키되 칠보로 장엄하고
표찰(表刹)은 높고 넓되
점차로 작아져서 범천에 이르며,
보배 방울 천만억이
바람에 움직여 묘한 소리가 나며
또는 한량없는 겁에
이 탑과 꽃과 향과 모든 영락이며
하늘옷과 여러 가지 기악을 공양하며,
향유 소등을 켜서 항상 두루 밝힘이라.
말법 악한 세상에서
능히 이 경을 가지는 자는
곧 이미 위와 같은
모든 공양을 구족함이니라.(금장본 분별공덕품 제17 p756~758)
    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世尊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약아멸도후        능봉지차경
若我滅度後        能奉持此經
사인복무량        여상지소설
斯人福無量        如上之所說
시즉위구족        일체제공양
是則爲具足        一切諸供養
이사리기탑        칠보이장엄
以舍利起塔           七寶而莊嚴
표찰심고광        점소지범천
表刹甚高廣           漸小至梵天
보령천만억        풍동출묘음
寶鈴千萬億        風動出妙音
우어무량겁        이공양차탑
又於無量劫        而供養此塔
화향제영락        천의 중기악
華香諸瓔珞        天衣 衆伎樂
연향유소등        주잡상조명
然香油蘇燈           周匝常照明
악세법말시        능지시경자
惡世法末時        能持是經者
즉위이여상        구족제공양
則爲已如上        具足諸供養

 [강의] 게송은 모두 19행 반으로 오품을 노래했다.(초수희품은 제외) 이 게송은 오품중 제이 독송품을 노래했다(5항 반).
“내가 멸도(滅道)한 후”란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신 후 중생들이 법화경을 수행하는 공덕을 밝힘이다.
 “표찰(表刹)”이란 탑 위에 세운 장대. 당간(幢竿)이라고도 한다.
 “보배방울”이란 보령(寶鈴)의 번역. 보배로 된 방울 소리는 미묘법문을 연설하는 것과 같다.
“향유 소등(香油蘇燈)”이란 유락(乳酪)에 향유를 섞어 만든 등불을 가리킨다.

 [경] 만약 능히 이 경을 가지면
곧 부처님이 계실 때
우두전단으로 승방을 일으켜 공양하되
당각 32가 있어 높이는 8다라수며,
좋은 음식과 묘한 의복과
평상이며 와구를 다 구족하며
백천의 대중이 머물를 처소와
원림과 모든 욕지(浴地)와
경행하는 선굴을 가지가지로
장엄하게 꾸밈과 같음이라.(금장본 분별공덕품 제17 p758~760)
   약능지차경    즉여불현재
若能持此經       則如佛現在
이우두전단    기승방공양
以牛頭栴檀       起僧坊供養
당유삼십이    고팔다라수
堂有三十二       高八多羅樹
상찬 묘의복   상와 개구족
上饌 妙衣腹   牀臥 皆具足
백천중주처    원림제욕지
百千衆住處       園林諸浴池
경행급선굴    종종개엄호
經行及禪窟       種種皆嚴好

 [강의] 둘째 제삼 설법품을 노래했다(3항).
 “부처님이 계실 때”란 현재(現在) 부처님이 멸도 하지 않으신 때. 멸후 이 경의 수지 공덕을 밝 히기 위함이다.  
 “우두전단”이란 우두산(牛頭山)에만 나는 향나무 적전단(赤栴檀)이라고도 한다. 전단향으로 정을 세워 스님에게 공양하는 것은 몸으로 불법을 떠맡아 바른 생각을 지니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8다라수”란 여덟 다라(tāla)나무 높이 만큼.     
 “선굴(禪窟)”이란 좌선 수행하는 석굴을 말한다.

 [경] 만일 신해(信解)하는 마음이 있어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혹은 또 남에게 가르쳐 쓰게 하며
경권을 공양하되
꽃과 향과 말향을 흩고
수만(須曼) 첨복 아제목다가로
기름을 짜서 항상 불을 켜고
이와같이 공양하는 자는
한량없는 공덕을 얻되,
허공이 가이 없음과 같이
그 복이 또한 이와 같으니라.
또한 이 경을 가지고도
더욱 보시 지계를 겸하며
인욕하고 선정을 즐기고 성내지 않고
악한 말을 하지 않으며,(금장본 분별공덕품 제17 p760~762)
약유신해심   수지독송서
若有信解心   受持讀誦書
약부교인서   급공양경권
若復敎人書      及供養經卷
산화향말향   이수만첨복
散華香末香      以須曼瞻蔔
아제목다가   훈유상연지
阿提目多伽   薰油常然之
여시공양자   득무량공덕
如是供養者      得無量功德
여허공무변   기복역여시
如虛空無邊      其福亦如是
황부지차경   겸보시지계
況復持此經      兼布施持戒
인욕낙선정   부진불악구
忍辱樂禪定      不瞋不惡口

 [강의] 이 게송은 제사 겸행육도품을 노래하였다(4항).
“수만나꽃(須曼, sumanas)”이란 수마나화라고도 하는데 꽃은 황백색이고 향기가 강하다.
“첨복화(瞻蔔, campaka)”란 황화수 금색화라 번역. 노란꽃이 피며 향기가 강하다.
“아제목다가(阿提目多伽, atimuktaka)”란 모양은 삼과 같고, 꽃은 붉고 잎은 푸르다 씨로는 기름을 짜고 향의 원료로도 쓰인다.    
 
 [경] 탑묘를 공경하고 모든 비구에게 겸손하며
스스로 높다는 마음을 멀리하고
항상 지혜로 생각하며,
어려운 질문이 있더라도 성내지 않고
순함을 따르고 해설하는,
만일 이같은 행을 능히 행하면
공덕은 가히 헤아리지 못하리라.
만약 이 법사가 이와 같은
공덕 성취함을 보거든,
응당 하늘의 꽃을 흩고
하늘옷으로 그 몸을 덮어 주며
두면으로 발에 예배하되
부처님을 생각함 같은 마음을 내라.
또 응당 이런 생각을 하되,
오래지 않아 도수(道樹)에 나아가
무루무위(無漏無爲)를 얻어서
널리 모든 사람과 하늘을 이롭게 하리라.
그가 머물러 있는 처소에서
경행하거나 앉거나 누워서라도
오로지 한 게송을 설하거든
여기에 마땅히 탑을 일으켜
장엄하고 묘하고도 좋게 하여
가지가지로 공양할지니라.
불자가 이같은 경지에 이르면,
이는 곧 부처님이 수용(受用) 하심이니
항상 그 가운데 계시어
경행하시며 혹은 앉거나 누우시리라.(금장본 분별공덕품 제17 p762~764)
공경어탑묘 겸하제비구   
恭敬於塔廟 謙下諸比丘
원리자고심 당사유지혜    
遠離自高心    常思惟智慧
유문난부진 수순위해설    
有問難不瞋    隨順爲解說
약능행시행 공덕불가량    
若能行是行    功德不可量
약견차법사 성취여시덕   
若見此法師    成就如是德
응이천화산 천의부기신    
應以天華散    天衣覆其身
두면접족례 생심여불상    
頭面接足禮    生心如佛想
우응자시념 불구예도수    
又應作是念    不久詣道樹
득무루무위    광리제인천
得無漏無爲    廣利諸人天
기소주지처 경행약좌와    
其所住止處    經行若坐臥
내지설일게 시중응기탑    
乃至說一偈 是中應起塔
장엄영묘호 종종이공양    
莊嚴令妙好    種種以供養
불자주차지 즉시불수용    
佛子住此地    則是佛受用
상재어기중 경행급좌와    
常在於其中    經行及坐臥

[강의] 이 게송은 제오 정행육도를 노래하였다(7항).
“겸손하며”란 원문은 겸하(謙下). 겸허하고 공순하게 자신을 낮추는 예의를 말한다.
 “스스로 높다는 마음”이란 교만한 마음. 오만한 마음.
  “어려운 질문”이란 힐난하는 질문[問難] 질문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것.
  “순함을 따르고 해설함”이란 뜻에 따라 적절히 해설함을 말한다.
  “두면으로 발에 예배함”이란 두면접족례(頭面接足禮)라고 한다. 머리를 상대의 발에 대고 경의를 표하는 예법이다.
 “도수(道樹)”란 보리수.
“무루무위를 얻음”이란 무루(無漏)의 지혜와 무위(無爲)의 열반을 얻는 것. 곧 깨달음 얻는 것.
“탑을 일으킴”이란 탑을 세움을 뜻한다. 법화경을 실천하는 법사가 머무는 곳, 곧 경행하고 머물고 누워서라도 경전에 나오는 한 수의 게송을 설하는 곳에 탑을 세워 장엄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