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해 간다라 지방에서 이란, 희랍, 인도, 그 밖의 여러 나라의 문명과 만나 세계적인 종교로 완성되었다.
불교의 번영에 기여한 민족은 바로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나 그 일대와 인도까지 지배한 쿠샨족이다. 간다라의 서쪽에 위치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의 핫다에서 15000의 불상이 발굴되었으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하여 그 중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 발견된 불상들에는 희랍적인 불상이 많았다. 그중에는 부처님을 수호하는 희랍여신상들, 헤라클레스상(像), 알렉산더 대왕상도 볼 수 있었다. 알랙산더 대왕은 자기가 정복한 중요한 요지에 자신의 병사를 주둔시키고 그곳의 여성들과 결혼을 시켰다. 희랍을 바탕으로 한, 세계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희랍과 아시아를 융합하는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려 한 것이다. 당시 희랍인들이 만든 도시의 대표가 지금의 파키스탄의 탁실라(Taxila)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인 시르캅(Sirkap)이다. 불교는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희랍, 이란, 인도의 문화가 혼합되어 새로운 문화를 이루었는데 우리는 그 상징적인 모습을 시르캅 쌍두(雙頭)의 독수리탑에서 볼 수 있다.

‘인생의 고뇌는 어디서 오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사후의 세계는 어떤 곳인가.’ ‘인간은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 것인가.’ 희랍인은 불교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포교를 하였다. 그 대표적 예가 고대 희랍의 미린다 왕과 인도의 현자(賢者), 나가세나 승려와의 대화 속에 가장 잘 나타나 있으며 그것은 오늘날 <미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으로 전해지고 있다.
필자가 시알코트(옛이름은 사카라)를 방문했을 때, 미린다 왕의 흔적은 볼 수 없었다. 인도에 가서 아잔타 석굴을 방문했을 때는 1000년에 걸쳐 만든 길이 500m나 되는 가장 오래된 석굴의 벽화에서 불교도가 합장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모습은 볼 수 없었고, 법륜法輪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희랍, 이란, 중앙아시아의 문화를 접하기 이전의 인도 불교의 모습이다. 이러한 초기 불교의 모습은 필자가 스리랑카에 갔을 때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출가자는 극도로 엄한 수행을 하고 계율을 철저히 지키며 탁발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수행자는 산악에 머물며 엄격한 수행을 통해 인간의 고뇌를 초탈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해탈에 이른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기원 1세기경 불교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간다라 지방에서 대승불교가 일어난 것이다. 이 지방에 처음 불교가 들어온 것은 인도의 아쇼카왕 때였으며 스와트 지방을 바탕으로 불교가 퍼져 나갔다. 수많은 불교사원들이 세워지고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 이곳이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라니가드의 유적을 들 수 있다.
대승불교가 크게 일어난 때가 쿠샨왕조 시대인데, 새로운 불교가 갑자기 크게 성하게 된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또한 쿠샨족은 어떠한 민족인가.
쿠샨족을 알기위해선 오늘날 쿠샨인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민족이자 중앙아시아를 휩쓴 유목 기마민족 우즈베키스탄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은 원래 조로아스터(拜火敎) 교도로 불을 숭배하여 모든 행사에 있어 불이 중심이 되었다. 결혼식 때는 불을 피우고 신랑 신부가 불 주위를 돌고 사람들은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그동안의 모든 죄를 태우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사막 전투에 매우 뛰어났는데, 전투가 벌어지면 달리는 말의 배에 매달려 적군을 앞질러 간 다음에 말 위로 올라 활이나 창으로 적의 목과 가슴을 쏘고 찌르는 전법을 써서 도저히 다른 유목민이 이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힌두크시 산맥을 넘었다.
쿠샨의 기마 군단은 카브르(=카불)를 지나 간다라에 자리 잡는다. 이리하여 쿠샨 제국은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지배하고 로마와 후한을 연결하는 요지를 지배하게 된다.

아프카니스탄 탈레반 이슬람 정권이 버미안의 거대한 불상을 파괴한 후 인근 동굴에서 마른 야자수 잎에 기록된 수많은 최초의 불교문서가 발견되었다. 간다라 지방에선 불상이 많이 발견되었으나 불교 문서가 나타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문서들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로 옮겨졌다. 노르웨이의 과학 아카데미 연구소에는 11개국의 학자들이 모여 문서 연구에 착수하였다. 카로시티 문자의 대가인 미국의 리차드 솔로몬이 가장 오래된 이 경전에서 육바라밀과 법화경 내용의 일부를 해독하였다.

지금까지 대승 경전, 반야심경이나 법화경은 현장玄奘이나 구마라집에 의해서 소개되었는데, 이 문서가 발견됨으로써 쿠샨조 시대에 대승불교가 시작되고 경전이 기록되었다는 것이 확증된 것이다.
쿠샨의 조로아스터(拜火敎) 교도들은 자신의 종교가 가르치는 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