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그때 오백만억의 모든 범천왕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각기 부처님께 말씀하되,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법륜을 전하시면
안온할 바가 많을 것이며
제도하사 해탈케 하실 바가 많으오리다.
이때 모든 범천왕이 게송으로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법륜을 전하옵소서.
감로의 법고(法鼓)를 울리사 괴로운 중생을 제도하시고
열반의 도를 열어 보이시옵소서.
오직 원컨대 우리의 청을 받아주시어,
불쌍히 여기사 크고도 미묘한 음성으로
한량없는 겁에 익히신 법을 널리 펴 주시옵소서.
(금장본 410p)
이시오백만억제범천왕 게찬불이 각백불언 유원세존
爾時五百萬億諸梵天王 偈讚佛已 各白佛言 惟願世尊
전어법륜 다소안온 다소도탈 시제범천왕 이설게언
轉於法輪 多所安隱 多所度脫 時諸梵天王 而說偈言
세존전법륜 격감로법고 도고뇌중생 개시열반도
世尊轉法輪 擊甘露法鼓 度苦惱衆生 開示涅槃道
유원수아청 이대미묘음 애민이부연 무량겁습법
惟願受我請 以大微妙音 哀愍而敷演 無量劫習法
[강의] 범천왕이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것이다.
‘감로의 법고, 괴로운 중생 제도하시고’란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어 번뇌를
없애 주심을 말한다. 타는 듯한 열뇌를 없애 주시므로 감로라 하고, 미혹한 자를
일깨워 주시므로 법의
북을 울린다고 한다.
‘열반의 도 열어 보이시옵소서.’란 하늘과 인간의 적멸한 길을 열어 보여 달라는 것.
개시(開示)를 가리킨다.
[경] 그 때 대통지승여래께서 시방의 모든 범천왕과 십육왕자의
청을 받으시고, 즉시 십이행의 법륜을 세 번 설하셨느니라.
혹은 사문(沙門) 바라문(婆羅門) 혹은 하늘 마(魔) 범천(梵天)
또는 다른 세간에서는 능히 설하지 못하느니라.
이르시되, 이것이 고(苦)며, 이것이 고(苦)의 모인 것이며, 이것이
고의 멸(滅)이며, 이것이 고를 멸하는 도(道)라 하시고
(금장본 410p)
이시대통지승여래 수시방제범천왕급십육왕자청
爾時大通智勝如來 受十方諸梵天王及十六王子請
즉시삼전십이행법륜 약사문 바라문 약천마범급여세간
卽時三轉十二行法輪 若沙門 婆羅門 若天魔梵及餘世間
소불능전 위시고 시고집 시고멸 시고멸도
所不能轉 謂是苦 是苦集 是苦滅 是苦滅道
[강의] 대통지승여래께서 제자들과 묘법으로 인연 맺은 가까운 연유를
설하신 것이다. 곧 범천과 16왕자들이 대통지승여래께 불법을 청하여
묘법을 들었고, 여래가 선정에 들자 대신하여 16왕자가 묘법을 설한 바가
있는데, 이 16왕자가 마침내 아뇩보리를 얻어 16방의 부처님이 되신 후
계속해서 묘법을 설하였다. 그때 제 16불인 석가불도 많은 제자에게
묘법을 설하셨으니, 이때의 인연이 지금 영취산 설법도량에 스승과 제자로
만나게 되는 연유가 된다는 취지이다.
대통지승여래께서 청을 받아들여 법륜을 굴리시게 되는데 그 법을
청하는 취지로 보면, 16왕자가 법을 청한 것은 만자교를 설하시도로
청한 것으로 ‘화엄경’을 설한 것과 같다.
또 동방과 동남방의 범천이 권청한 것은 반자교를 청한 것으로 지금의
‘삼장교’를 설한 취지가 된다. 나머지 7방의 범천의 권청은 반자교에
대립시켜 만자교를 밝혀주시기를 청한 법문으로 ‘방등경’을 설한 취지가
된다. 또 상방의 범천이 권청한 것은 반자교를 띤 만자교를 밝혀 주도록
청한 것으로 이는 ‘반야경’을 설한 취지이다. 뒤에서 16왕자(사미)들이 법을
청한 것은 반자교를 폐기하고 만자교를 설해주실 것을 청한 것으로 ‘법화경’을
설하신 것과 같다.
먼저, 반자의 법륜을 굴리는 데에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①대통지승불께서 청을 받아들이고, ②바로 법륜을 굴리시며, ③법을 듣고
도를 얻은 일을 설한다.
이 단락은 부처님께서 범천의 청을 받고서 점교의 법륜을 굴리시는 내용이다.
법륜은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중에 먼저 성문을 위하여 사제법을 세 번 굴려
교화하신 내용이다.
‘십이행의 법륜을 세 번 설함’이란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을 가리킨다.
이것은 성문을 위해서는 사제법을 세 번 굴리시고(三轉), 연각을 위해서는
연기법을 두 번(再轉) 굴리시며, 보살에게는 육바라밀을 한 번 굴리신다(一轉)고
한데서 온 것이다. 사제법을 세 번 굴리신 것은 시상전(示相轉) ․
권수전(勸修轉) ․ 인증전(引證轉)이라 한다.
시상전(줄여서 示轉)이란 사제의 연이 인과법임을 밝힌 것이니, 사제의 이치를
깨달아 도에 나아갈 곳을 알기 때문에 견도위(見道位)다. 곧 ‘이것은 고이고,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