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행위와 행위의 주체의 고찰
1. 이러한 이미 결정적으로 실재하는 행위주체는 이미 실재하는 행위를 짓지 못한다. 아직 실재하지 않는 행위주체도 아직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짓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미 유위법 무위법이 실재하지 않음을 논파하였으므로, 지금 유위의 행위주체와 무위의 행위주체가 행위를 짓지 못한다고 밝히고 있다.
2. 이미 실재하는 하는 것은 작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행위는 행위와 행위주체를 있지 않은 것이 되게 할 것이다. 이미 결정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그 작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행위주체는 행위를 있지 않은 것이 되게 한다.
*이미 행위와 행위주체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을 행하는 작용도 존재할 수 없다. 이미 결정적으로 행위와 행위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것을 행하지 못한다.
3. 만약 아직 실재하지 않는 행위주체가 아직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이룬다고 한다면 행위(업)는 원인을 있지 않은 것이 되게 한다. 그래서 행위주체도 원인을 또한 있지 않은 것이 되게 한다.
4. 원인(예를 들면 니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능동인(예를 들어 바퀴 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작용도 행위주체도 또한 능동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주체와 행위가 미리 존재한다면 이는 원인 없이 존재하는 것이 되므로, 행위 없이도 행위주체가 존재하고, 행위주체 없이도 행위가 존재하게 되어 인연에 의하여 존재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5. 작용 등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 없이 행하는 것도 비법의 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없이 행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비법의 행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서 생기는 과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행위 등의 법이 없다면 죄와 복 등의 업이 존재하지 않게 되고, 이러한 업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죄와 복의 과보도 없게 된다. 결국 원인이 없다고 한다면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어서 행위도 행위주체도 없게 된다.
6. 과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해탈에 이르는 길도 천계에 이르는 길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체의 행위는 무의미 하게 되어 버린다.
7. 이미 결정적으로 존재하면서 또한 존재하지 않는 행위 주체자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의 두 가지 행위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호 모순되는 유와 무가 어떻게 한 가지로 될 수 있겠는가.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상태의 행위주체는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없다. 곧 한 곳에서 동시에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8. 실재하고 있는 행동주체에 의해서는 무(無)는 만들어질 수 없다. 또한 없는 행동주체에 의해서 유의 존재가 만들어 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의 그와 같은 설에 있어서는 일체의 오류가 부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유가 무를 만들 수 없고, 무가 유를 만들 수 없다. 만일 이러한 행위와 행위주체가 있다면 그것은 오류의 과실에 떨어진다.
9. 이미 결정적으로 실재하는 행위주체는 아직 결정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지을 수가 없다. 또한 이미 결정적으로 실재하고 또한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서술한 이유 때문이다.(제8장 제2게송 등)
10. 아직 실재하지 않는 행위주체도 또한 이미 결정적으로 실재하는 행위를 만드는 것은 없다. 또한 이미 결정적으로 실재하면서 아직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이루는 것도 없다. 그것은 이미 서술했던 이유에 의한다.(제8장 제7게송 등)
11. 이미 결정적으로 실재하고 또는 실재하지 않는 행위주체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행위를 이룰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것은 이미 결정적으로 이미 서술했던 이유(제8장 제7게송 등)에 의해 알 수 있다.
12. 행위에 의해서 행위주체가 있게 되고, 또한 그 행위주체에 의해서 행위가 존재한다. 그밖에 성립의 원인을 우리는 보지 못하였다.
13. 이와 같이 행위와 행위주체를 배척하는 것에 의해서 집착(취)하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행위와 행위주체를 고찰하는 것도 이것에 의해서 알 수 있고, 그 외의 것에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행위와 행위주체가 논파되듯이 일체의 존재도 이와 같이 논파된다. 집착과 취함도 자성이 없으므로 마찬가지이니 오온 십이처 십팔계, 행위나 행위주체도 인연으로 생하는 것이니 응당 논파될 것들이다.
제9장 과거존재의 고찰
1. 보는 것 듣는 것 등 또는 감수작용 등을 소유하는 자(주체 또는 영혼)는 이런 것을 작용하는 것도 미리 존재하는 누군가에 속해 있다고 어떤 사람은 주장한다.
*주로 외도들은 우리를 이루는 사대 육근 등이 앞선 존재 예를 들면, 영혼 등에 소속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2.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 것에 실로 보는 작용 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러한 작용보다도 이전에 거기에 결정적으로 주하고 있는 것이 존재한다고 한다.
3. 보는 작용 듣는 작용 등도, 또한 감수작용까지도 앞서 정주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일 보는 감각 기관과 듣는 감각기관을 떠나서 앞서 존재하는 주체가 있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보는 작용 듣는 작용 등의 감수작용에 앞서 정해져 주하고 있는 존재,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보는 기관 듣는 감각기관 감수작용과 별도로 앞서 별도로 존재하는 어떤 것도 없다는 것.
4. 만약 보는 작용 등이 없다고 해도, 또는 앞서 결정적으로 주하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미리 존재하는 자가 없어진다고 해도 그러한 보는 작용이나 듣는 작용 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만일 눈 귀 등의 감각기관 등을 떠나서 본래의 어떤 주체가 존재한다면 응당 그 본래 주체를 떠나서 눈 귀 등의 감각기관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5. 혹은 사물에 의해서 혹시 어떤 사람이 표시되고, 혹 어떤 사람에 의해서 사물도 표시된다. 혹은 사물이 없는데 어떻게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혹은 어떤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어떤 사물이 있을 수 있는가.
6. 일체의 보는 작용 등보다도 앞서서 존재하는 어떤 사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보는 작용 등의 상호 서로 다른 것에 의해서 시간을 달리해서 나타난다.
*보는 작용 등의 감각기관에 이미 앞선 어떤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보는 작용 등은 그 감각이 다르다는 것에 의해 그 작용하는 시기가 다름으로 해서 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7. 만약 일체의 보는 작용보다도 앞서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는 작용 등의 하나하나에 앞서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보는 것이나 듣는 것 등에서 감각기관과 감수작용에 앞서는 무엇이 존재한다면 지금의 우리의 육근의 감각기관은 어떻게 능히 대상을 알 수 있겠는가. 눈이나 귀 등의 모든 감각 기관에는 주체적인 사유작용이 없기 때문에 대상을 인지할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각기관에서 대상을 지각하여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눈이나 귀 등의 모든 감각기관을 떠나서 능히 대상을 지각하는 주체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8. 만약 그가 곧 보는 주체이고, 듣는 주체이고 감수하는 주체라면, 하나하나의 작용보다도 이전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이와 같은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일 눈에서 대상을 보고 들을 때, 보는 주체가 바로 듣는 주체이며 이 주체가 전체를 아는 감수작용의 주체라면, 육경의 대상을 아는 기관이 각각 별도로 존재하지 않아서 한 주제가 대상을 모두 인지하게 된다. 예를 들면 눈에서 색 성향 미 촉 법을 모두 한 주체가 인식하는 것이 된다.
9. 또한 만약 보는 주체와 듣는 주체와 감수하는 주체가 서로 상호가 다르게 존재한다면 보는 주체가 있을 때에는 별도의 듣는 주체가 있다고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트만(주체)이 다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될 것이다.
10. 그런데 보는 작용 듣는 작용 등과 감수작용 등이 모든 원소에서 생기는데, 약간의 논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러한 제 원소들에는 아트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작용 듣는 작용 등의 감수작용을 하는 감각기관의 경우 그 주체로서 아트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그 원인이 되는 사대(四大) 등에도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 만약 이러한 보는 작용 듣는 작용 등과 감수작용이 그러한 아트만에 의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러한 눈 귀 코 등도 아트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12. 보는 작용 듣는 작용 보다도 이전에 있는 자는 현재에도 또한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든가 없다든가 하는 상정은 여기서는 그 본체가 사라져버린다.
*보는 작용 듣는 작용 등의 이전부터 본래의 주체는 없다. 곧 이전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주체, 그것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분별은 사라지니 희론이 없어져 공한 것임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