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연기의 12지 고찰[관십이인연품觀十二因緣品 9게]

1) 무명(無明)에 덮인 자는 나중의 생존(生存)을 위해 세 가지 형성작용(行)을 지어낸다. 그런 행위(業)에 의해 미혹의 영역인 육취로 간다.
* 중생들은 어리석음에 덮여 나중을 위해 세 가지 行을 지어낸다. 곧 중생들은 번뇌에 쌓인 미혹한 마음으로 신구의 삼업을 일으키고 이 업으로 십선업 십악업을 야기하면 의보 정보의 보 받음으로 이생이나 다음생 다다음생 어느 때이든지 생로병사의 육취중생의 세계로 가게 된다.[衆生癡所覆 爲後起三行 以起是行故 隨行墮六趣]

2) 잠재적인 형성작용들을 연(緣)으로 하는 인식작용(識)이 취(趣)에 들어간다. 그래서 들어간 심신(名色)이 그 취에서 나타난다.
* 諸行을 인연으로 識이 六道의 몸을 받는다. 識의 집착이 있기에 名色을 키운다.[以諸行因緣 識受六道身 以有識著故 增長於名色]
 제행을 인연으로 육식이 발생하여 삼선도 삼악도의 육도에 윤회하게 된다. 이는 육식이 육경을 상대로 집착을 일으켜 색·수·상·행·식의 오온(명색)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 십이인연법(법화경 화성유품)
 부처님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을 자세히 설하셨느니라. ‘무명(無明)으로 인연하여(말미암아) 행(行)이 생기고, 행으로 인연하여 식(識)이 생기고, 식으로 인연하여 명색(名色)이 생기고, 명색으로 인연하여 육입(六入)이 생기고, 육입으로 인연하여 촉(觸)이 생기고, 촉으로 인연하여 수(受)가 생기고, 수로 인연하여 애(愛)가 생기고, 애로 인연하여 취(取)가 생기고, 취로 인연하여 유(有)가 생기고, 유로 인연하여 생(生)이 생기고, 생으로 인연하여 노사(老死)와 우비(憂悲), 고뇌(苦惱)가 생긴다.
 그러므로 무명(無明)이 멸하면 행(行)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識)이 멸하며, 식이 멸하면 명색(名色)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육입(六入)이 멸하며, 육입이 멸하면 촉(觸)이 멸하고, 촉이 멸하면 수(受)가 멸하며,
수가 멸하면 애(愛)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취(取)가 멸하며, 취가 멸하면 유(有)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생(生)이 멸하며, 생이 멸하면 노사(老死)와 우비(憂悲), 고뇌(苦惱)가 멸한다.

(1) 역관(逆觀)과 순관(順觀): 십이연기를 노사 생으로부터 시작하여 무명까지 역으로 관하는 것(果를 따라 因을 탐구)을 역관(逆觀)이라 하고, 무명(無明)이 있음으로 행이 있고, 행이 있으므로 식이 있고, 식이 있음으로 명색이 있고, 내지 노사가 있음을 관하는 것을 순관(順觀)이라 한다. 무명 행 애 취 유의 다섯 지분은 집제(集諦)에 속한 것이고, 식 명색 육입 촉 수 생 노사의 일곱 지분은 고제(苦諦)에 속한다고 한다.

 (2) 십이연기의 별상(別相: 자세히 나눈 모습): 십이인연을 관하는 데에도 삼승이 다르다. 이승(二乘)은 생멸의 십이인연을 관하고, 보살을 위해서는 무생의 십이인연을 관한다. 첫째, 생멸(生滅)의 십이인연이란 무명에서 노사에 이르는 연기가 실제로 생기고 실제로 멸한다고 보는 견해이니 무명 내지 노사를 실체 시 하므로 삼장교의 견해라고 한다. 둘째, 무생의 십이인연은 무명 내지 노사가 실제로 생기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다고 보는 견해이다. 십이인연의 인과를 불생불멸하는 것으로 관하는 것이니 원교의 견해라고 한다.

 (3) 삼세양중인과설(三世兩重因果說): 십이연기의 십이지분 중에서 무명과 행은 과거의 인(因)이고, 식 명색 육입 촉 수는 현재의 과(果)이며, 애 취 유는 현재의 인(因)이고, 생 노사는 미래의 과(果)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무명과 행이 원인이 되어 현재 인식하고 감각하고 느끼는 작용이 일어나고, 현재 애착과 집착으로 인하여 미래의 고가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이를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친 인과관계라 하여 삼세양중인과설(三世兩重因果說)이라 한다.

 
 *십이인연의 삼세 양중 인과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
  (無明) (行) (識) (名色) (六入) (觸) (受)  (愛) (取)  (有) (生) (老死)
    
   과거 2인(因)        현재 5과(果)           현재 3인(因)  미래 2과(果)

    

3) 名色이 발생할 때에 마음작용이 성립하는 여섯 가지의 장 곧 육입이 생긴다. 육입이 생긴  감각과 대상에 의존하여 접촉 촉이 생긴다.
* 명색(名色)이 자라나기에 그것을 인(因)하여 육입(六入)이 생긴다. 육정(六情 곧 六根)과 육진(六塵 곧 六境)과 육식(六識)이 화합하여 육촉(六觸)을 生한다.[名色增長故 因而生六入 情塵識和合 而生於六觸]
 육근이 육경과 인연하여 육촉이 발생할 때, 육근과 육입은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이요, 입처의 문제는 심의식과 명색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왜냐면 전오입처와 의입처는 성질이 분명히 다른 것으로 경에서 설하고 있다. {잡아함경}에도 “6입처는 무상하고[無常], 함이 있으며[有爲],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心緣起法]이요, 그 접촉의 느낌과 행의 느낌도 또한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이라 하고 있다.

4) 눈이 형상(色)들과 대상에 대한 주의력을 연하여, 곧 그와 같이 名色을 연하여 인식이 생긴다.
* 육촉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에 곧 세 가지 감수가 생긴다. 이 세 가지 감수를 원인으로 하기 때문에 갈애가 생기는 것이다.[因於六觸故 卽生於三受 以因三受故 而生於渴愛]

5) 형상(色)과 인식과 눈의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 그것이 곧 접촉이다. 또한 그 접촉으로부터 感受작용이 발생한다.

* 갈애를 원인으로 하여 네 가지 취(取)가 발생한다. 취를 원인으로 유(有)가 존재한다. 만일 취하는 자가 취착하지 않으면 바로 해탈하여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因愛有四取 因取故有有 若取者不取 卽解脫無有]

6) 감수 작용에 연(緣)하여 맹목적 충동 애(욕망=갈애)가 있다. 왜냐하면 감수된 대상을 애욕하기 할 때에 네 가지 종류의 집착 곧 취(取)함이 있게 된다.
* 取함이 존재할 때에 取하는 자에게서 생존(有)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만일 취함이 없다면 해탈할 것이며 생존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7) 취함이 존재할 때 주체에 대해서 생존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만약 취함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은 해탈하고 생존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有로부터 生이 존재한다. 生으로부터 老死가 존재한다. 老死로부터 憂와 悲 및 모든 苦惱가 존재한다.[從有而有生 從生有老死 從老死故有 憂悲諸苦惱]

8), 9) 그 생존(有)은 곧 다섯 가지의 구성요소 五蘊이다. 생존에서 생(태어남)이 발생한다. 老死와 苦 등, 우(優) 비(悲) 뇌(惱) 실망-이러한 것들은 생에서 생긴다. 이와 같이 하여 망상뿐인 괴로움의 덩어리 고음(苦陰)이 생기는 것이다.
* 낙담(落膽)과 초조, 이것들은 生(태어남)에서 나타난다. 이처럼 오직 苦뿐인 집합체(蘊)가 발생한다. 이런 모든 일들은 다 生으로부터 존재한다. 단지 이런 까닭으로 막대한 苦의 蘊이 모인다.[如是等諸事 皆從生而有 但以是因緣 而集大苦陰]

10) 그래서 무지한 자는 생사윤회의 윤회의 근본이 되는 형성작용들(諸行)을 짓는다. 그러므로 무지한 자는 그러한 업을 짓는 자이다. 지혜로운 자는 진리를 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업을 만드는 주체가 아니다)
*이것을 生死하는 諸行의 근본이라고 한다. 無明한 者가 짓는 것이지만 지혜로운 者가 하는 것은 아니다.[是謂爲生死 諸行之根本 無明者所造 智者所不爲]

11) 무명이 멸할 때에 여러 가지 형성작용들(諸行)은 성립하지 않는다. 무명이 멸하는 것은 지혜에 의하여 이 십이연기의 지혜를 수습(修習) (연속적 념상念想)에서 오는 것이다.
*{중론}은 연기의 역관(逆觀)을 성립시키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12) 십이연기의 여러 가지 항목 속에서 이것저것 앞의 지분들이 소멸함에 의해 이것저것이(후지분 後支)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오직 고온(苦蘊, 괴로움의 개인적 존재)이 완전히 멸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라지므로 이것이 생하지 않는다. 오직 고뿐인 이 음(陰)의 덩어리가 그렇게 하여 제대로 사라진다.[以是事滅故 是事則不生 但是苦陰聚 如是而正滅]


제27장 잘못된 견행의 고찰[관사견품觀邪見品 30게]  


1) 내가 과거세에 존재했나 또는 존재하지 않았나 등등, 이러한 세간은 상주하는가 라고 하는 등의 두 종류 네 가지 견해는 모두 과거세 일방적 견해에 의존한 것이다.
* 내가 과거세(前生)에 존재했었나 존재하지 않았었나, 세간은 상주했는가 등의 見解들은 과거세(以前의 限界)에 의거해 있다.[我於過去世 爲有爲是無 世間常等見 皆依過去世]

2) 미래의 세상에서 내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존재하겠는가, 혹은 다른 것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닌가, 또는 세계는 끝이 있는가 없는가 등의 여러 가지 견해(다른 2종류 4가지 견해)는 후세(미래의) 일방적 견해에 의존해 있다.
*내가 미래세를 짓겠는가 짓지 않겠는가, 有邊인가 등의 여러 견해는 다 미래세에 의존한 것이다.([於未來世 爲作爲不作 有邊等諸見 皆依未來世]

3) 과거세에 내가 존재했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전의 생애들에서의 존재한 것들 그런 것들은 결코 이것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 과거세에 내가 있었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과거세에서의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않는다.[過去世有我 是事不可得 過去世中我 不作今世我]

4) 전세에 있었던 아트만(自我)이 지금의 바로 나가 되었다고 한다면, 집착에 의해 생긴(개인 존재를 구성하는 5요소 오취온)것과는 (아트만은)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집착되어 생긴 나를 떠난(그러한 것과 구별되는) 그대의 나(아트만)는 존재하는 것인가.
*내가 바로 그것이지만 몸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만일 그러한 몸을 떠난다면 어느 곳에 그것과 다른 내가 존재하겠는가.[若謂我卽是 而身有異相 若當離於身 何處別有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