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만일 세계가 시간적으로 유한하다면 어떻게 다른 세계(내세)가 존재하겠는가. 또한 만약 세계가 시간적으로 무한하다면 어떻게 다른 세계(내세)가 존재하겠는가.
* 만일 세간이 끝이 있다면 어떻게 後世(來世)가 있겠는가. 만일 세간이 끝이 없다면 어떻게 후세가 있겠는가(若世間有邊 云何有後世 若世間無邊 云何有後世).
 세간에 대해서 한계가 있다거나 한계가 없다는 논쟁에 대한 것이다. 만일 세계가 시간적으로 끝이 있다면 후세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세간은 후세가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으므로 유한하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또 세간이 시간적으로 끝이 없다고 한다면 무한히 계속되므로 역시 후세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후세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세간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극단의 견해는 옳지 않다.

22) 개체의 여러 가지 구성요소인 오온의 이러한 연속(상속)은 전등의 불빛이 연속으로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유한하다거나 무한하다거나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 오온(五蘊)은 항상 상속하여 마치 등불의 불꽃과 같다. 이런 까닭으로 세간은 한계가 있거나 한계가 없다고 해서는 안된다(五陰常相續 猶如燈火炎 以是故世間 不應邊無邊). 오온의 이런 연속(=相續)은 바로 등불의 불꽃과 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무한하다거나 유한하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23) 만일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전의 제요소가 괴멸하고, 그와 같이 하여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 제요소에 연해서 뒤의 제 구성요소가 생기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시간적으로 유한(有限)한 것이 될 것이다.
* 만일 선행하는 오음(五陰)이 괴멸해 버리고, 그 오음을 원인으로 하지 않고서 다시 나중의 오음이 생기는 것이라면 세간은 한계가 있다(若先五陰壞 不因是五陰 更生後五陰 世間則有邊). 만일 선행하는 오온(五蘊)이 괴멸해 없어지고, 이전의 오온에 인연하여 나중의 저 오온들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경우 세간은 유한(有限)하다고 할 수 있다.

24) 만일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전의 제요소가 괴멸하지 않고서, 그와 같이 하여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제요소에 연해서 뒤의 제 구성요소가 생기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세계는 시간적으로 무한한 것이 될 것이다.
* 만일 선행의 오음이 괴멸해 버리지 않고, 또 그 오음을 원인으로 하지도 않고서 나중의 오음이 생기는 것이라면 세간은 한계가 없다(若先陰不壞 亦不因是陰 而生後五陰 世間則無邊).
 만일 선행하는 오온(五蘊)이 파괴되지 않고 그 오온에 인연하여 나중의 이 오온들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경우 세간은 무한하다.

25) 만일 (세계가) 일부분은 시간적으로 유한(有限)하지만 일부분은 무한(無限)하다면 세계는 시간적으로 유한하면서 또 무한하기도 한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
* 만일 세간이 반은 유한하고 세간의 반은 무한하다면 이것은 유한하기도 하면서 또한 무한한 것으로, 그렇지 않다(若世半有邊 世間半無邊 是則亦有邊 亦無邊不然).
 세간이 일부는 유한하고 일부는 무한하다면 이것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는 것이 되므로, 하나의 존재에 두 가지 모습이 있는 것이 되어 합당하지 않다.

26) 우선 집착하여 취하는 주체(오온)가 그 일부분이 소멸하는데 다른 일부분이 소멸하지 않는 일이 어째서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것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
* 저 오음을 취한 자가 어떻게 일부분은 파괴되고 일부분은 파괴되지 않겠느냐. 이런 일은 그렇지 않다(彼受五陰者 云何一分破 一分而不破 是事則不然).
 우선 무엇보다도 어떻게 취하여 이루어지는 오온이라는 주체가 일부에서는 생로병사 하여 멸하는데, 다른 일부에서는 생멸하지 않고 상주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나의 오온에 생멸과 상주의 두 가지 모습이 있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27) 또한 집착하는 것의 일부분이 소멸하는데 다른 일부가 소멸하지 않는다고 하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은 성립하지 않는다.  
* 취함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어떻게 일부분은 파괴되고 일부분은 파괴되지 않겠는가. 이런 일은 또한 옳지 않다(受亦復如是 云何一分破 一分而不破 是事亦不然).
 取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일부분은 소멸되고 일부분은 상주하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28) 만약 시간적으로 유한하게 존재하고 무한하게 존재하기도 하는 양자가 있을 수 있다면 “시간적으로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고 하는 일이 성립하게 될 것이다.
* 만일 한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것, 이 양자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라면 한계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는 것, 이것도 역시 성립할 수 있다(若亦有無邊 是二得成者 非有非無邊 是則亦應成).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는 양자가 만일 성립한다면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역시 기꺼이 성립할 것이다.

29) 그러면 일체의 존재가 공(空)하기 때문에 상주(常住) 등의 여러 가지 견해들이 어디에서, 무엇에 대해, 누구를 위해서, 어째서 일어날 수 있겠는가.
*일체의 존재가 공(空)하기 때문에 세간은 상주한다는 등의 견해, 어디서, 어느 때, 누가 이 모든 견해를 일으키겠는가(一切法空故 世間常等見 何處於何時 誰起是諸見).
 일체가 공하다는 것은 나와 남 일체가 공하니 견해를 내는 주체도 객체도 다 공하므로 여러 가지 견해들도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어디서 무슨 견해를 일으키겠느냐는 것이다.

30) 일체의 (잘못된) 모든 견해를 끊어주기 위해 연민을 가지고 바르게 진리를 설해 주셨던 고따마께 우리는 이제 귀명(歸命)합니다.
*구담(瞿曇) 대성왕(大聖王)께서 연민의 마음으로 이 法을 설하셔서 모든 견해를 다 끊어 주시니 저희는 이제 머리 조아려 예배드립니다(瞿曇大聖王 憐愍說是法 悉斷一切見 我今稽首禮).

 ※중론(中論)의 요지

 중론은 귀경게로부터 시작하여 제1 관인연품부터 제27 관사견품까지 모두 27장 448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대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관인연품(觀因緣品) : 인연에 대한 고찰(16게송)로 되어 있다. 제법(諸法)은 자생(自生)·타생(他生)·공생(共生)·무인생(無因生)이 아니므로 사종불생(四種不生)이라고 한다. 또한 연(緣)이나 인연(因緣)·차제연(次第緣)·연연(緣緣)·증상연(增上緣)의 사연(四緣)이 무자성으로 결과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비연(非緣) 또한 성립하지 않고, 결과(結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2. 관거래품(觀去來品) : 운동(오고 감)의 고찰(25게송)이다. 과거[過]·현재[現]·미래[未]의 삼시(三時)중 거(去, 감)가 없고, 3시중 감의 시발(始發)도 도착함[止息]도 없다.
 3. 관육정품(觀六情品) : 인식능력(六根)의 고찰(8게송)이다. 봄의 안근은 자신을 못 봄으로 타물(他物)도 못보고 과거 현재 미래에도 봄이라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는 자도 보여지는 것도 없다. 식(識)·촉(觸)·수(受)·애(愛)·취(取)도 마찬가지이고,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도 마찬가지이다.
 4. 관오음품(觀五陰品) : 집합체 오온의 고찰(9게송)이다. 물질적 요소 색온과 그 원인 곧 지·수·화·풍의 사대(四大)는 서로 떠나서 인식되지 않는다. 그 어느 쪽이 원래 먼저 존재하거나 원래 없거나 한 것도 아니며, 서로 상사(相似) 불상사(不相似)도 아니다. 수·상·행·식 내지 일체법(一切法)도 그러하다. 공(空)으로 논파(論破)하거나 비난해야만 과실이 없게 된다.
 5. 관육종품(觀六種品) : 요소(계界)의 고찰(8게송)이다. 허공(虛空)은 유(有)도 무(無)도 아니고 상(相-모습)도 가상(可相-상을 맺힐 대상)도 없다. 지·수·화·풍·식도 모두 이와 같다.
 6. 관염염자품(觀染染者品) : 탐욕에 물듦과 탐욕에 물들지 않은 자의 고찰(10게송)이다.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는 전·후에도 동시로 존재하지 않고 같지도 다르지도 아니하므로 합(合, 同) 불합(不合, 不同)은 성립하지 않는다.
 7. 관삼상품(觀三相品) : 지어진 것(유위)의 고찰(34게송)이다. 유위(有爲)의 생(生)·주(住)·멸(滅) 각각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유위(有爲)는 존재하지 않고 또한 무위(無爲)도 없다. 이와 같이 삼상(三相)은 환(幻)과 같고 꿈이나 아지랑이(건달바성)와 같다.
 8. 관작작자품(觀作作者品) : 행위와 행위자의 고찰(13게송)이다. 행위(업)와 행위자(작자) 각각은 4구로 사유하여 관찰해 볼 때 별개의 실체가 아니고 서로 연(緣)하는 것들이다. 수(受)와 수자(受者) 내지 일체법도 이와 같다.
 9. 관본주품(觀本住品) : 과거 존재의 고찰(12게송)이다. 안(眼)등 육근(六根)이나 고(苦)·락(樂) 등을 소유하는 주체는 안(眼)·수(受)에 과거에 본주(本住)하지도 않으며 또한 동시로도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무로 분별할 수 없다.
 10. 관연가연품(觀燃可燃品) : 불과 장작의 고찰(16게송)이다. 장작불은 불과 장작을 서로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느니, 불일불이(不一不異)이고 의존(依存) 비의존(非依存)도 아니며 삼세 중에 존재하지 않으며 어떻게 관찰해도 얻을 수 없다. 첫째 상호간 서로 같은 것인가. 둘째 서로 다른 것인가. 셋째 어느 하나는 다른 하나를 갖고 있는 것인가. 넷째 어느 하나 안에 다른 하나가 있는 것인가. 다섯째 반대로 다른 하나에 그것이 있는 것인가의 다섯 가지로 관찰해 보아도 동일(同一) 별이(別異) 소유(所有) 상호(相互)간 내재(內在)함도 아니므로 그 실체적 존재성을 부정한다.
 11. 관본제품(觀本際品) : 전후의 구경에 관한 고찰(8게송)이다. 생사윤회 시종의 구경(본제本際)도 그 중간도 없다. 이들에게 전후 동시의 순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인(因) 과(果)나 상(相)과 가상(可相) 및 수(受)와 수자(受者)의 관계에도 이와 같다.
 12. 관고품(觀苦品) : 괴로움[苦]의 고찰(10게송)이다. 괴로움[苦]은 스스로 지음도 남이 지음도 함께 지음도 원인 없이 지음도 성립하지 않는다[자작自作·타작他作·공작共作·무인작無因作].
 13. 관행품(觀行品) : 형성됨의 고찰(8게송)이다. 집착하여 취하는 것은 허망하다고 세존께서 설하셨으니 제행(諸行)을 허망하고 변이(變異)하며 무자성(無自性)이라고 설하신 것은 공(空)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공(空)함은 제견(諸見)을 버리고 떠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에 오히려 집착하면 부처님도 교화시킬 수 없다.
 14. 관합품(觀合品) : 집합(集合)의 고찰(8게송)이다. 봄[能見]과 볼 것[可見]과 보는 주체[見者], 번뇌에 물들음[染]과 물들여질 대상[可染]과 물들이는 주체[染者]는 셋으로도 둘로도 화합 않는다. 번뇌(煩惱)와 다른 감관(육입)도 그러하다.
 15. 관유무품(觀有無品) : 자성의 고찰(11게송)이다. 존재자체(자성自性)는 인연(因緣)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타성이나 유(有)·무(無)도 성립하지 않는다.
 16. 관박해품(觀縛解品) : 계박과 해탈의 고찰(10게송)이다. 제행(諸行)은 윤회(輪廻)하지 않는다. 개인의 존재라고 하는 푸드갈라(윤회하는 주체)는 온(蘊)·처(處)·계(界) 가운데 오종으로 추구해 보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계박되지도[縛]) 해탈되지도[解] 않는다.
 17. 관업품(觀業品) : 업과 과보의 고찰(33게송)이다. 업(業)도 행위주체도 그 실재도 실체도 없으니 그 과보나 과보를 받는 자도 있을 수 없다. 모든 번뇌나 업의 작자와 과보는 환(幻)과 같고 꿈[夢]과 같고 염(炎-아지랑이), 향(響-메아리)과 같아서 실체가 없다.
 18. 관법품(觀法品) : 아뜨만의 고찰(12게송)이다.  모든 것에 고유한 본성이 없다는 사실을 고찰하여,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은 아(我)·아소(我所)의 관념을 여읜 희유한 자에게만 보인다는 것이다.
 19. 관시품(觀時品) : 시간의 고찰(6게송)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은 그 실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중하, 같음과 다름, 시간의 머무름과 지나감도 얻을 수 없고 시간의 모습도 존재 등의 실재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 관인과품(觀因果品) : 원인과 결과의 고찰(24게송)이다. 삼세 중 인과관계를 고찰하면 원인[因]은 삼세 중 각 결과[果]와 화합하지 않고, 인과(因果)는 불일불이(不一不異) 화합·불화합으로는 결과를 낳지 않는다. 연(緣)·과(果)의 화합(和合)은 존재하지 않는다.
 21. 관성괴품(觀成壞品) : 생성과 괴멸의 고찰(21게송)이다. 생성과 소멸 서로 떠나서도 함께한다 해도 성립되지 않는다.
 22. 관여래품(觀如來品) : 여래의 고찰(16게송)이다. 여래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논하고 만유의 진실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23. 관전도품(觀顚倒品) : 전도된 견해의 고찰(25게송)이다. 전도된 견해에서는 자성이 없다. 육근 육경도 환과 같고 그림자와 같이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24. 관사제품(觀四諦品) :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고찰(40게송)이다. 일체법이 공이고, 공하므로 일체법의 현상이 나타남을 네 가지 진리에 적용하여 설명한다.
 25. 관열반품(觀涅槃品) : 열반에 대한 고찰(24게송)이다. 열반도 공이어서 현실 세계와 열반은 다를 것이 없음을 고찰한다.
 26. 관십이인연품(觀十二因緣品) : 연기의 십이지의 고찰(12게송)이다. 십이인연의 유전문(流轉門)과 십이인연법의 환멸문(還滅門)의 고찰이다.
 27. 관사견품(觀邪見品) : 잘못된 견해의 고찰(30게송)이다. 이 세상과 자아에 대해서 유·무나 상(常)·무상(無常)이나 변(邊)·무변(無邊) 등을 사구의 사유(思惟)로 고찰하여 무의미함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