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이때 두 아들이 그 아버지를 생각하여 허공으로 솟아올라가니 높이는
칠다라수로서 가지가지의 신통변화를 나타내되, 허공 중에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몸 위로 물을 뿜고 몸 아래로 불을 뿜으며, 몸 아래로 물을 뿜고, 몸 위로 불을 뿜으며, 혹은 큰 몸을 나타내어 허공 중에 가득 차게 하였다가 도로 작게 나타내며, 작았다가 다시 크게 나타내며, 공중에서 없어졌다가는 홀연히 땅에 있으며, 땅 속으로 들어가기를 물과 같이 하고, 물을 밟되 땅과 같이 함이라.
이와 같은 가지가지의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그의 부왕으로 하여금 마음을 깨끗이 하여 믿고 해탈케 함이니라.(금장본 묘장엄왕본사품 제27 p980)
어시 이자 염기부고 용재허공 고칠다라수 현종종신변 어허공중 행주좌와 신상출수 신하
於是 二子 念其父故 涌在虛空 高七多羅樹 現種種神變 於虛空中 行住坐臥 身上出水 身下
출화 신하출수 신상출화 혹현대신 만허공중 이부현소 소부현대 어공중멸 홀연재지 입지
出火 身下出水 身上出火 或現大身 滿虛空中 而復現小 小復現大 於空中滅 忽然在地 入地
여수 이수여지 현여시등종종신변 영기부왕 심정신해
如水 履水如地 現如是等種種神變 令其父王 心淨信解
[강의] 셋째, 아들이 아버지를 교화하기 위해 신통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낸 것은 부왕으로 하여금 마음에 깨끗함을 얻어서 올바르게 믿고 이해하도록 하려는 뜻이었다.
“높이는 칠다라수”란 한 다라수나무 높이가 7척(尺)정도이니 몸을 솟아 오른 높이가 5장(丈)이나 된다는 것.
“몸 위로 물(불)을 뿜고 몸 아래로 불(물)을 뿜음”이란 몸에서 물을 뿜는 것은 수광삼매(水光三昧), 불을 뿜는 것은 화광삼매(火光三昧)로 보기도 한다.
“가지가지의 신통변화”란 모두 18 가지 신통변화라고 하여 십팔변(十八變)이라고 한다.
[경] 이 때 아버지가 아들의 신통력이 이와 같음을 보고 마음에 크게 기뻐서 미증유를 얻음이라. 합장하고 아들에게 이르되,
“너희들의 스승은 누구이며 누구의 제자이냐.”
두 아들이 말씀하되,
“‘대왕이시여, 저 운뢰음수왕화지불께서 지금 칠보 보리수 아래 법좌에 앉으사, 일체 세간과 하늘과 사람들에게 널리 법화경을 설하시나니 이는 우리들의 스승이시요, 우리는 이의 제자이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일러 말씀하되,
“나도 지금 또한 너희들의 스승을 뵈옵고자 하니 함께 갈지니라.”
(금장본 묘장엄왕본사품 제27 p980~982)
시부견자 신력여시 심대환희 득미증유 합장향자언 여등사 위시수 수지제자 이자백언 대
時父見子 神力如是 心大歡喜 得未曾有 合掌向子言 汝等師 爲是誰 誰之弟子 二子白言 大
왕 피운뢰음수왕화지불 금재칠보보리수하 법좌상좌 어일체세간천인중중 광설법화경 시아
王 彼雲雷音宿王華智佛 今在七寶菩提樹下 法座上坐 於一切世間天人衆中 廣說法華經 是我
등사 아시제자 부어자언 아금 역욕견여등사 가공구왕
等師 我是弟子 父語子言 我今 亦欲見汝等師 可共俱往
[강의] 넷째, 교화받는 이의 이익을 설한다. 여기에는 열 부분으로 나눈다. 이 구절은 그 첫째, 부왕이 아들의 행동을 보고 믿음을 내어 그 스승에 따르기로 함이다. 수행의 단계로 보면 아들의 신통력을 본 아버지는 크게 환희하여 부처님을 보고자 했으므로, 제8아뢰야식(藏識)이 제6의식과 제7말라식의 지혜작용의 훈습을 받아 전변(轉變)의 기초를 이룩했음을 나타낸다.
“마음에 크게 기뻐서 미증유(未曾有)를 얻음”이란 일찍이 본적이 없는 희유한 일로 운뢰음수왕화불께 마음으로 굴복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함께 감[共俱往]”이란 묘장엄왕이 신통변화를 나타낸 아들을 믿으므로 그 스승인 운뢰음수왕화지불의 덕이 존엄함을 알았으므로 함께 가 보고자 한 것이다.
[경] 이에 두 아들이 공중에서 내려와 그 어머니 처소에 이르러 합장하고 어머니께 말씀하되,
“부왕(父王)께서 지금 이미 믿고 이해하시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셨나이다. 우리들이 아버지를 위하여 이미 부처님의 일을 하였으니, 원컨대 어머님께서는 저 부처님 처소에 가서 출가하여 수도(修道)할 것을 허락하옵소서.”
그 때, 두 아들이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어머니께 말씀하되,
“원컨대,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을 놓으사
출가하여 사문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부처님은 심히 만나기 어려우니
우리는 부처님을 따라 배우려 하나이다.
우담발화처럼 부처님 만나기는 이보다 더 어려우며
모든 환난을 해탈하기는 또한 어려움이라.
원컨대 우리의 출가를 허락하시옵소서.“
어머니가 곧 일러 말하되,
“너희들의 출가를 허락하노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부처님을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니라.“(금장본 묘장엄왕본사품 제27 p982~984)
어시이자 종공중하 도기모소 합장백모 부왕금이신해 감임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아등
於是二子 從空中下 到其母所 合掌白母 父王今已信解 堪任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我等
위부 이작불사 원모견청 어피불소 출가수도 이시이자 욕중선기의 이게백모
爲父 已作佛事 願母見聽 於彼佛所 出家修道 爾時二子 欲重宣其意 以偈白母
원모방아등 출가작사문
願母放我等 出家作沙門
제불심난치 아등수불학
諸佛甚難値 我等隨佛學
여우담발화 치불부난시
如優曇鉢華 値佛復難是
탈제난역난 원청아출가
脫諸難亦難 願聽我出家
모즉고언 청여출가 소이자하 불난치고
母卽告言 聽汝出家 所以者何 佛難値故
[강의] 둘째, 부왕이 이미 믿음을 내어 발심하고 궁중의 팔만 사천 후궁들도 근기가 성숙했으므로 어머니께 아뢰어 기쁨을 말하고 출가를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니 이에 어머니도 허락한 것이다. 수행에서 보면 마음 깊이 믿어 이해해야만 마침내 부처님 지혜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가리킨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셨나이다”란 불도에 발심하였다는 것이다. 보리심을 “일으킴”이란 감당할만하다[勘任發…] 일으킬만 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일”이란 불사 곧 중생을 제도 하는 일. 신통변화를 보인 일이 불사라는 것이다.
“출가하여 사문이 됨”이란 불교에 귀의하여 출가 승려가 됨을 말한다. 사문(沙門, samaṇa)은 원래 인도에서는 출가 고행자를 뜻하였는데 불교에서는 불도의 수행자, 곧 승려를 뜻한다.
“우담발화”란 산스크리트 우둠바라(udumbara)의 음역. 한자로는 優曇婆羅, 優曇波羅, 優曇跋羅華, 優曇鉢華, 優曇華 등 여러 가지로 사용된다. 서응(瑞應)이라 번역. 이 나무에 꽃이 필 때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다고 하여 흔히 없는 일을 비유할 때 쓴다. 우담화(優曇華)라고 써서 우담바라의 꽃을 뜻하기도 한다. 불경에서 여래(如來)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나타날 때만 핀다는 상상의 꽃이다. 또는 3000년에 한 번씩 피어나는 꽃으로, 지혜의 왕 전륜성왕(轉輪聖王)과 함께 나타난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우담바라는 흔히 '부처님을 의미하는 상상의 꽃'이라 하여 상서로운 징조로 받아들여 왔으며, 아주 드문 일을 비유하기도 한다.
실제로 인도엔 우담바라란 이름을 지닌 나무가 있다. 뽕나무과의 교목인 무화과 속에 딸린 한 종이다. 남방의 따뜻한 기온에서 자라는 활엽수로서 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은화식물인데 꽃이 보이지 않는 건 항아리 모양의 꽃받침에 가려 있어서다. 인도에서는 옛부터 우담바라와 함께 보리수를 신성한 나무로 쳤다.(네이버 지식백과)
“우리의 출가를 허락하시옵소서[願聽我出家]”란 아들들이 출가를 원하니 들어달라고 청하는 내용이다.
“너희들의 출가를 허락함[聽汝出家]”이란 너희들 출가의 뜻을 따라 허락한다는 것이다.
[경] 이에 두 아들이 부모님에게 말씀하되,
“거룩하도다. 부모님이시여, 원컨대 이 때 운뢰음수왕화지불 처소에 가셔서 친견하고 공양하시옵소서.
어찌하여 그러한고. 부처님을 만나기가 어려움이 우담발화와 같으며, 또는 외눈의 거북이가 바다에 뜬 나무토막의 구멍을 만남과 같나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숙세에 복이 심히 두터워서 이생에서 부처님과 법을 만났나이다.
이런 고로 부모님께서는 우리들이 출가하도록 허락하시옵소서. 어찌하여 그러한고. 모든 부처님은 만나기가 어려우며 이때도 또한 만나기 어렵나이다.“(금장본 묘장엄왕본사품 제27 p984)
어시이자백부모언 선재부모 원시왕예운뢰음수왕화지불소 친근공양 소이자하 불난득치 여
於是二子白父母言 善哉父母 願時往詣雲雷音宿王華智佛所 親近供養 所以者何 佛難得値 如
우담발라화 우여일안지구 치부목공 이아등 숙복 심후 생치불법 시고 부모 당청아등 영득
優曇鉢羅華 又如一眼之龜 値浮木孔 而我等 宿福 深厚 生値佛法 是故 父母 當聽我等 令得
출가 소이자하 제불 난치 시역난우
出家 所以者何 諸佛 難値 時亦難遇
[강의] 셋째, 두 아들이 부모를 거듭 재촉했다. 왜냐하면 부처님을 만나뵙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라 했다. 이제 수행자는 지혜로 관한 것이 훈습을 받아 마음과 경계가 일여(一如)하게 되니 비로소 부처님 지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함께 가서 뵙자고 했다. 부처님을 친견하기 어렵다는 말은 불성의 뜻을 알고자 할 때 때와 인연을 살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외눈의 거북이가 바다에 뜬 나무토막의 구멍을 만남과 같음[一眼之龜 値浮木孔]”이란 외눈박이 거북이가 큰 바다를 떠다니다 나무토막에 난 구멍을 만나 몸을 편안히 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처럼, 사람들이 편견으로 생사의 바다에 빠지면 응신應身을 만나 법을 얻어 해탈하고 싶어도 매우 어려움을 의미한다. “맹구우목盲龜遇木”의 고사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