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지도론(大智度論)
1) 성립과 전역
대지도론(大智度論)은 인도의 대승불교 승려인 용수(龍樹)가 서술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의 주석서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의 원래 이름은 마하프라즈냐파라미타샤스트라(Māhaprajñāpāramitaśāstra)라 하며, 지도론(智度論) 지론(智論) 마하반야석론(摩訶般若釋論) 등으로도 불리고, 약칭해서 대론(大論) 석론(釋論) 이라 한다.
이 논서는 나가르주나(용수)의 저술로 알려져 있으며, 2∼3세기 초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용수 단독 저술로 한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용수는 남인도에서 출생하여 주로 남인도에서 활동하였으며, 현 지명에도 나오는 나가르주나 콘다도 남인도 불교 중심지였던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도론』에서 인용하고 있는 본생담(本生譚) 등은 거의 서북인도를 중심으로 한 내용들이고 언급하고 있는 지명 지리 등이 서북인도에 위치하는 것들이어서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용수 저작을 부정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라모뜨(Etinne Lamotte)는 대지도론 의 대표적 연구가이고 주석가로 『대지도론』의 저자를 서북인도 출신의 누군(秦言云云)가로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지도론』은 번역에는 ‘진나라 말 운운’하는 구절이 적지 않게 등장하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구마라집이 첨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지도론의 번역은 원전에서 많은 분량이 삭제되었다고 하여 구마라집이 상당히 가감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혜원의 대지도론초서에는 “이 논서는 그 뜻이 깊고 넓어서 자세히 연구하기 어렵고 방언은 생략하기 쉽기 때문에 그 내용을 요약하여 100권으로 하였다. 누락된 것을 계산하면 거의 3배를 넘는다”고 하였다. 또한 승예 대지도론서에도 “인도말과 중국어는 서로 다르고 또한 번쇄하고 간략한 차이가 있어서 3분의 2는 제외시켜 200권을 만들었다. 만약 갖추어 번역했다면 대략 천여 권에 이를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어서, 원전 대지도론은 현전 한역본 100권의 10배였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지도론』의 성립과정은 그 핵심부분은 『중론』을 지은 용수가 저술하고, 그 후 그의 제자인 제바(Ārya-deva)와 나후라(Rāhulabhadra), 그리고 알 수 없는 밝히지 않은 후대인들이 가필하여 전해지다가 구마라집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다시 가감되어 현전 『대지도론』이 성립한 것이다.
현재 산스크리트 원전은 없고 티베트어역 판본도 존재하지 않으며, 구마라집(鳩摩羅什)의 한역본(漢譯本) 100권만이 전한다.
대지도론의 중국 번역은 대지도론기에 402년 소요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밝히고 있다.
구마라집은 홍시 4년(402) 여름 소요원에 있는 서문각에 있으면서 요흥왕(姚興王)을 위해 석론을 역출했다. 아울러 7년 12월 역출을 마칠 때에는 경본(經本) 선경(禪經) 계율 백론 선법요해(禪法要解)를 역출하여 50만언에 이르렀다. 석론은 150만언이나 되었는데 논의 초품은 34권으로 해석하였으니 전체를 논하여 근본을 갖춘 것이다. 2품 이하는 법사가 간략히 생략하여 그 요점만을 취했으니 문장을 열어서 해석하는 족할 뿐이다. 만약 이것을 모두 역출했다면 이것보다 10배에 이르렀을 것이다.(출삼장기집 제10권)
구마라집이 장안에 도착해서 활동할 무렵 중국에서는 대품반야경의 번역을 고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집은 대품반야경에 앞서서 대지도론을 역출하여 이에 부응하였다. 특히 승예의 대지석론서에는 당시 황제 요흥이 손수 이 번역장에 참가하여 500여 승려와 귀족들이 현장을 열람했다고 전하고 있어서, 최초로 요흥은 번역장에 초청되어 참관한 황제이며, 대지도론 당시 불교인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당시에 역출된 반야경류들은 다음과 같다.
‘인왕반야바라밀경 (仁王般若波羅蜜經)’ 2권(412년 번역),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1권(412년 번역), ‘대지도론(大智度論)’ 100권(402년 번역),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27권(404년 번역), ‘백론(百論)’ 2권(404년 번역), ‘소품반야바라밀경 (小品般若波羅蜜經)’ 10권(408년 번역), ‘중론 (中論)’ 4권(409년 번역), ‘십이문론(十二門論)’ 1권(409년 번역)
2) 구성과 내용
대지도론은 마하반야바라밀경 27권 90품(대정장8)에 대한 주석서로 근본불교부터 부파불교, 그리고 초기 대승불교에서 인도전통사상에까지 이르는 방대한 양의 인용과 관련 기사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 실존 인물과 지명, 부파명 및 경전명 그리고 전설과 비유를 설명하고 있어 당시의 불교백과사전이라고 불린다. 이 논서에는 반야사상의 잘 드러낸 중론(中論)과 마찬가지로 현상의 실재를 부정하는 공사상과 실상을 바로 보는 반야 지혜, 그리고 보살도를 널리 펴도록 하고 있다.
보통 대지도론의 제목을 해석하면, “智는 지혜, 즉 반야라는 뜻이며, 度는 건넌다, 즉 바라밀의 뜻이며, 論은 해설한 논서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반야공(般若空)의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을 구현하며 대승보살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반야경을 설명한 논서라는 뜻이다. 반야경(대반야바라밀다경)(현장역)은 총 600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그 반야경에서 중요한 내용을 취사선택해서, 자세히 설명한 것이 바로 대지도론(大智度論)이다.
이 논은 「대품반야경」의 90품을 모두 해석하고 있는데, 그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권에서 제34권까지는 이 경의 「초품」을 해석하고, 나머지 35권 이하에서는 대품반야경 제2품부터 나머지 89품을 해석하였다. 제1권에서 34권의 해석에서는 52개 항목에 걸쳐서 불보살 성문 등 같은 중요한 불교교학의 개념과 인연 반야 공 열반 등과 같은 불교철학사상을 선정하여 풀이하고 있다.
이 논서의 특징은 이와 같이 반야경의 경문에 의거하여 주제를 세분화하고 대승불교의 중요한 명제들을 뽑아서 정리하였다. 중요한 내용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연기(緣起), 총설여시아문(總說如是我聞), 바가바(婆伽婆), 주왕사성(住王舍城), 사중(四衆), 불보살, 성문,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십유(十喩), 불토원(佛土願), 방광(放光), 시방제보살래(十方諸菩薩來), 사리불(舍利佛), 인연(因緣), 공(空), 반야(般若), 열반, 계상(戒相), 찬제바라밀(羼提波羅密), 비리야바라밀(毘梨耶婆羅蜜), 선바라밀, 반야바라밀, 삼십칠품(三十七品), 삼삼매(三三昧), 팔배사(八背捨), 구상(九想), 팔념(八念), 십상(十想), 십일지(十一智), 십력(十力), 사무외(四無畏),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대자비, 대비(大悲)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대지도론은 반야경을 해석하면서 그 해석의 근거를 대소승 삼장에서 취하고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 인용된 경론을 들어보면, 「아함경」, 「육족아비담」, 「팔건도비바사」, 「아비담비바사」, 「중의경」, 「법화경」, 「중론」 화엄, 보적, 정토 등의 대승경전 등 비롯하여 백수십 여종의 경전들에 이른다. 경에 나오는 난해한 교리들은 설화와 비유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미진한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게 하고 있다. 이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불교의 대백과사전으로 알려 있듯이 그만큼 방대하고 불교의 핵심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또한 서술방식이 중요한 교리 사상들을 자문자답 형식을 이용해서 비교적 쉽게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용수의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라, 언제든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종류도 외도에서부터, 무신론자, 소승, 대승 등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망라되어 있다. 온갖 질문자들이 많지만, 모두 다 상세히 논리와 이치로써 설명해서 그들을 굴복시킨다.
대승경전의 논서답게 필요에 따라서 소승의 교의를 채택하면서도 언제나 소승에 대한 대승의 우위를 선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지도론」은 파사(破邪)자를 위주로 하는 중론의 부정적인 입장에 비하여 「십주비바사론」에서와 같이 제법실상의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대승의 보살사상과 6바라밀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지도론이 아비달마의 교리를 소승이라 하여 일방적으로 배제하지도 않고 필요한 내용은 취하여 설명하고 있다. 곧 설일체유부의 주장인 일체법의 ‘실유론(實有論)’ 같은 사상은 강하게 비판하지만, 그 밖의 많은 교의는 반야바라밀의 입장에서 수용하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을 들어내는데 사용한다.
3) 천태학과 대지도론
「대지도론」은 「대품반야경」의 단순한 주석서에 머물지 않고 종파의 소의 논서이기도 하다. 중국의 삼론종(三論宗)에서는 「중론」·「백론」·「십이문론」에다 이 「대지도론」을 합하여 4론이라 하고 소의(所依)로 삼고 있다. 한·중·일 3국의 화엄종(華嚴宗)과 천태종(天台宗)에 사상적으로 특별히 큰 영향을 미쳤다.
『대지도론』은 후대의 여러 대승불교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용수를 “팔종(八宗)의 조사(祖師)”라고 하는 것도 사실 이 논서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대지도론은 인도 유식(唯識)사상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고, 『대승기신론』의 진여사상도 『대지도론』의 이론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한 이 논서의 불신관 특히 법신관(法身觀)은 밀교사상의 토대가 되고 진언다라니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는 아미타불국토를 찬탄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토사상의 흥기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대지도론』의 교의는 중국의 삼론학파(三論學派)는 물론, 천태교학과 화엄학, 나아가 선종의 성립에도 큰 영항을 끼쳤다.
천태종에서는 대지도론에 여러 경전의 공통된 교리를 말하고 있어서 대승통신론(大乘通申論)이라고 부르며 특히 존중하고 있다. 천태교학의 교학과 관법에서 「대지도론」 「중론」의 사상이 골격을 이루고 있다. 또한 사실단, 이제(二諦) 중론 삼관(三觀) 사성제, 사교(四敎) 등은 양쪽에서 그 이치가 같다.
천태교상에서 보면 반야경은 오시교에서 반야시로 통한다.
“제4 반야시”란 방등 이후 22년간 반야부 경전을 설한 시기. 경전의 명칭을 따라 시의 이름이 붙여졌다. 방등에서 소승을 배척하고 대승을 찬양한데 비해, 반야에서는 대승과 소승은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하여 반야 空으로 융통시키는 내용이다.
반야는 지혜이지만 번역하지 않고 반야로 쓴 것. 역경상 번역하지 않는 다섯 가지 원칙에 따른 것(五種不飜). ①다라니와 같이 뜻이 미묘하고 깊은 말(秘密故). ②한 말 가운데 여러 가지 뜻이 들어 있는 말(多含故). ③이곳에는 없는 특별한 문물의 이름(此方無故). ④보리와 같은 습관상 원어의 음을 그대로 쓰더라도 누구나 그 뜻을 알 수 있는 말(順古故). ⑤번역하면 그 뜻이 가벼워지는 말(尊重故). 반야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야부 경전에는 소품반야 방광(放光)반야 인왕(仁王)반야 도행반야(道行般若) 문수반야(文殊般若)가 있고, 마하반야경 광찬반야경 금강반야경 대품반야경 등의 경전들이 반야부 경전이 여기에 속한다. 이중에 “마하반야경”은 현장이 번역한 대품반야경 600권(大般若波羅蜜多經) 반야경의 설법은 이 대반야경에 모두 들어 있다. 구역(舊譯)에서는 광찬반야 금강반야 대품반야(혹은 마하반야바라밀경, 2만5천송) 등 여러 종류의 반야경을 따로따로 번역 유행하였다. 현장역에서 구역의 반야경을 모두 포함하므로 첫머리에 마하반야를 두었다. 마하(摩訶)는 대(大) 다(多) 승(勝)의 뜻이 있다. 마하반야 600권에는 16회에 걸쳐 설해졌으니 광찬반야(축법호역)는 그중 제2회에 속하고, 금강반야는 小般若(8천송반야)라고도 하며 제9회에 해당한다. 大品般若(라집역) 역시 제2회에 해당한다. 광찬(光讚)이란 光은 광명 찬(讚)은 강설을 뜻한다(광명이 비치자 황금연꽃이 생기고 그 속에 제불이 출현하여 강설). 금강은 일체의 번뇌를 끊고 집착과 의심을 끊는다는 뜻이 있다.
반야부 경전의 특징은 첫째, 이승들이 본래 대승을 설할 수 있는 지혜가 없는데 부처님의 가피력을 입어서 반야경에서 전교(轉敎)가 이루어졌으니, 이는 마치 장자가 궁자에게 재산을 넘겨주었듯이 소승근기인 성문에게 부처님의 법재(法財)를 전해준 것, 곧 전교부재(轉敎付財)를 가리키는 비유이다.
둘째, 방등시에서 소승들은 ‘자신의 근기로는 대승에 미칠 수 없다고 참괴하였고, 대승은 보살의 법으로서 소승의 한계 밖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승들의 근기가 순숙하여 반야시에 이르러 이들에게 법재를 물려주셨으니, 이승은 소승의 근기이고 대승은 대기의 법문으로 미칠 수 없다고 격리된 관계의 대소승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격리된 상대적 간격을 반야의 법문으로 제거하고 융통시켰기 때문이다. 반야에서는 일체법은 다 불가득 空이라는 진리를 설하였으며, 대승법이든 소승법이든 일체법은 차별이 없는 도리로 대승과 소승의 차별을 끊어서 융통시켰다.
셋째, 반야시에서 공은 아집의 미정(迷情)을 완전히 없애어 절대공을 밝히고 있으므로 대소승의 차별이 끊어진 자리임을 비유한 말이다.
1) 성립과 전역
대지도론(大智度論)은 인도의 대승불교 승려인 용수(龍樹)가 서술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의 주석서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의 원래 이름은 마하프라즈냐파라미타샤스트라(Māhaprajñāpāramitaśāstra)라 하며, 지도론(智度論) 지론(智論) 마하반야석론(摩訶般若釋論) 등으로도 불리고, 약칭해서 대론(大論) 석론(釋論) 이라 한다.
이 논서는 나가르주나(용수)의 저술로 알려져 있으며, 2∼3세기 초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용수 단독 저술로 한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용수는 남인도에서 출생하여 주로 남인도에서 활동하였으며, 현 지명에도 나오는 나가르주나 콘다도 남인도 불교 중심지였던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도론』에서 인용하고 있는 본생담(本生譚) 등은 거의 서북인도를 중심으로 한 내용들이고 언급하고 있는 지명 지리 등이 서북인도에 위치하는 것들이어서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용수 저작을 부정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라모뜨(Etinne Lamotte)는 대지도론 의 대표적 연구가이고 주석가로 『대지도론』의 저자를 서북인도 출신의 누군(秦言云云)가로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지도론』은 번역에는 ‘진나라 말 운운’하는 구절이 적지 않게 등장하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구마라집이 첨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지도론의 번역은 원전에서 많은 분량이 삭제되었다고 하여 구마라집이 상당히 가감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혜원의 대지도론초서에는 “이 논서는 그 뜻이 깊고 넓어서 자세히 연구하기 어렵고 방언은 생략하기 쉽기 때문에 그 내용을 요약하여 100권으로 하였다. 누락된 것을 계산하면 거의 3배를 넘는다”고 하였다. 또한 승예 대지도론서에도 “인도말과 중국어는 서로 다르고 또한 번쇄하고 간략한 차이가 있어서 3분의 2는 제외시켜 200권을 만들었다. 만약 갖추어 번역했다면 대략 천여 권에 이를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어서, 원전 대지도론은 현전 한역본 100권의 10배였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지도론』의 성립과정은 그 핵심부분은 『중론』을 지은 용수가 저술하고, 그 후 그의 제자인 제바(Ārya-deva)와 나후라(Rāhulabhadra), 그리고 알 수 없는 밝히지 않은 후대인들이 가필하여 전해지다가 구마라집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다시 가감되어 현전 『대지도론』이 성립한 것이다.
현재 산스크리트 원전은 없고 티베트어역 판본도 존재하지 않으며, 구마라집(鳩摩羅什)의 한역본(漢譯本) 100권만이 전한다.
대지도론의 중국 번역은 대지도론기에 402년 소요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밝히고 있다.
구마라집은 홍시 4년(402) 여름 소요원에 있는 서문각에 있으면서 요흥왕(姚興王)을 위해 석론을 역출했다. 아울러 7년 12월 역출을 마칠 때에는 경본(經本) 선경(禪經) 계율 백론 선법요해(禪法要解)를 역출하여 50만언에 이르렀다. 석론은 150만언이나 되었는데 논의 초품은 34권으로 해석하였으니 전체를 논하여 근본을 갖춘 것이다. 2품 이하는 법사가 간략히 생략하여 그 요점만을 취했으니 문장을 열어서 해석하는 족할 뿐이다. 만약 이것을 모두 역출했다면 이것보다 10배에 이르렀을 것이다.(출삼장기집 제10권)
구마라집이 장안에 도착해서 활동할 무렵 중국에서는 대품반야경의 번역을 고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집은 대품반야경에 앞서서 대지도론을 역출하여 이에 부응하였다. 특히 승예의 대지석론서에는 당시 황제 요흥이 손수 이 번역장에 참가하여 500여 승려와 귀족들이 현장을 열람했다고 전하고 있어서, 최초로 요흥은 번역장에 초청되어 참관한 황제이며, 대지도론 당시 불교인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당시에 역출된 반야경류들은 다음과 같다.
‘인왕반야바라밀경 (仁王般若波羅蜜經)’ 2권(412년 번역),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1권(412년 번역), ‘대지도론(大智度論)’ 100권(402년 번역),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 27권(404년 번역), ‘백론(百論)’ 2권(404년 번역), ‘소품반야바라밀경 (小品般若波羅蜜經)’ 10권(408년 번역), ‘중론 (中論)’ 4권(409년 번역), ‘십이문론(十二門論)’ 1권(409년 번역)
2) 구성과 내용
대지도론은 마하반야바라밀경 27권 90품(대정장8)에 대한 주석서로 근본불교부터 부파불교, 그리고 초기 대승불교에서 인도전통사상에까지 이르는 방대한 양의 인용과 관련 기사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 실존 인물과 지명, 부파명 및 경전명 그리고 전설과 비유를 설명하고 있어 당시의 불교백과사전이라고 불린다. 이 논서에는 반야사상의 잘 드러낸 중론(中論)과 마찬가지로 현상의 실재를 부정하는 공사상과 실상을 바로 보는 반야 지혜, 그리고 보살도를 널리 펴도록 하고 있다.
보통 대지도론의 제목을 해석하면, “智는 지혜, 즉 반야라는 뜻이며, 度는 건넌다, 즉 바라밀의 뜻이며, 論은 해설한 논서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반야공(般若空)의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을 구현하며 대승보살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반야경을 설명한 논서라는 뜻이다. 반야경(대반야바라밀다경)(현장역)은 총 600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그 반야경에서 중요한 내용을 취사선택해서, 자세히 설명한 것이 바로 대지도론(大智度論)이다.
이 논은 「대품반야경」의 90품을 모두 해석하고 있는데, 그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권에서 제34권까지는 이 경의 「초품」을 해석하고, 나머지 35권 이하에서는 대품반야경 제2품부터 나머지 89품을 해석하였다. 제1권에서 34권의 해석에서는 52개 항목에 걸쳐서 불보살 성문 등 같은 중요한 불교교학의 개념과 인연 반야 공 열반 등과 같은 불교철학사상을 선정하여 풀이하고 있다.
이 논서의 특징은 이와 같이 반야경의 경문에 의거하여 주제를 세분화하고 대승불교의 중요한 명제들을 뽑아서 정리하였다. 중요한 내용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연기(緣起), 총설여시아문(總說如是我聞), 바가바(婆伽婆), 주왕사성(住王舍城), 사중(四衆), 불보살, 성문,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십유(十喩), 불토원(佛土願), 방광(放光), 시방제보살래(十方諸菩薩來), 사리불(舍利佛), 인연(因緣), 공(空), 반야(般若), 열반, 계상(戒相), 찬제바라밀(羼提波羅密), 비리야바라밀(毘梨耶婆羅蜜), 선바라밀, 반야바라밀, 삼십칠품(三十七品), 삼삼매(三三昧), 팔배사(八背捨), 구상(九想), 팔념(八念), 십상(十想), 십일지(十一智), 십력(十力), 사무외(四無畏),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대자비, 대비(大悲)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대지도론은 반야경을 해석하면서 그 해석의 근거를 대소승 삼장에서 취하고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 인용된 경론을 들어보면, 「아함경」, 「육족아비담」, 「팔건도비바사」, 「아비담비바사」, 「중의경」, 「법화경」, 「중론」 화엄, 보적, 정토 등의 대승경전 등 비롯하여 백수십 여종의 경전들에 이른다. 경에 나오는 난해한 교리들은 설화와 비유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미진한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게 하고 있다. 이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불교의 대백과사전으로 알려 있듯이 그만큼 방대하고 불교의 핵심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또한 서술방식이 중요한 교리 사상들을 자문자답 형식을 이용해서 비교적 쉽게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용수의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라, 언제든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질문하는 사람들의 종류도 외도에서부터, 무신론자, 소승, 대승 등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망라되어 있다. 온갖 질문자들이 많지만, 모두 다 상세히 논리와 이치로써 설명해서 그들을 굴복시킨다.
대승경전의 논서답게 필요에 따라서 소승의 교의를 채택하면서도 언제나 소승에 대한 대승의 우위를 선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지도론」은 파사(破邪)자를 위주로 하는 중론의 부정적인 입장에 비하여 「십주비바사론」에서와 같이 제법실상의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대승의 보살사상과 6바라밀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지도론이 아비달마의 교리를 소승이라 하여 일방적으로 배제하지도 않고 필요한 내용은 취하여 설명하고 있다. 곧 설일체유부의 주장인 일체법의 ‘실유론(實有論)’ 같은 사상은 강하게 비판하지만, 그 밖의 많은 교의는 반야바라밀의 입장에서 수용하고 나아가 반야바라밀을 들어내는데 사용한다.
3) 천태학과 대지도론
「대지도론」은 「대품반야경」의 단순한 주석서에 머물지 않고 종파의 소의 논서이기도 하다. 중국의 삼론종(三論宗)에서는 「중론」·「백론」·「십이문론」에다 이 「대지도론」을 합하여 4론이라 하고 소의(所依)로 삼고 있다. 한·중·일 3국의 화엄종(華嚴宗)과 천태종(天台宗)에 사상적으로 특별히 큰 영향을 미쳤다.
『대지도론』은 후대의 여러 대승불교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용수를 “팔종(八宗)의 조사(祖師)”라고 하는 것도 사실 이 논서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대지도론은 인도 유식(唯識)사상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고, 『대승기신론』의 진여사상도 『대지도론』의 이론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한 이 논서의 불신관 특히 법신관(法身觀)은 밀교사상의 토대가 되고 진언다라니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는 아미타불국토를 찬탄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토사상의 흥기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대지도론』의 교의는 중국의 삼론학파(三論學派)는 물론, 천태교학과 화엄학, 나아가 선종의 성립에도 큰 영항을 끼쳤다.
천태종에서는 대지도론에 여러 경전의 공통된 교리를 말하고 있어서 대승통신론(大乘通申論)이라고 부르며 특히 존중하고 있다. 천태교학의 교학과 관법에서 「대지도론」 「중론」의 사상이 골격을 이루고 있다. 또한 사실단, 이제(二諦) 중론 삼관(三觀) 사성제, 사교(四敎) 등은 양쪽에서 그 이치가 같다.
천태교상에서 보면 반야경은 오시교에서 반야시로 통한다.
“제4 반야시”란 방등 이후 22년간 반야부 경전을 설한 시기. 경전의 명칭을 따라 시의 이름이 붙여졌다. 방등에서 소승을 배척하고 대승을 찬양한데 비해, 반야에서는 대승과 소승은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하여 반야 空으로 융통시키는 내용이다.
반야는 지혜이지만 번역하지 않고 반야로 쓴 것. 역경상 번역하지 않는 다섯 가지 원칙에 따른 것(五種不飜). ①다라니와 같이 뜻이 미묘하고 깊은 말(秘密故). ②한 말 가운데 여러 가지 뜻이 들어 있는 말(多含故). ③이곳에는 없는 특별한 문물의 이름(此方無故). ④보리와 같은 습관상 원어의 음을 그대로 쓰더라도 누구나 그 뜻을 알 수 있는 말(順古故). ⑤번역하면 그 뜻이 가벼워지는 말(尊重故). 반야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야부 경전에는 소품반야 방광(放光)반야 인왕(仁王)반야 도행반야(道行般若) 문수반야(文殊般若)가 있고, 마하반야경 광찬반야경 금강반야경 대품반야경 등의 경전들이 반야부 경전이 여기에 속한다. 이중에 “마하반야경”은 현장이 번역한 대품반야경 600권(大般若波羅蜜多經) 반야경의 설법은 이 대반야경에 모두 들어 있다. 구역(舊譯)에서는 광찬반야 금강반야 대품반야(혹은 마하반야바라밀경, 2만5천송) 등 여러 종류의 반야경을 따로따로 번역 유행하였다. 현장역에서 구역의 반야경을 모두 포함하므로 첫머리에 마하반야를 두었다. 마하(摩訶)는 대(大) 다(多) 승(勝)의 뜻이 있다. 마하반야 600권에는 16회에 걸쳐 설해졌으니 광찬반야(축법호역)는 그중 제2회에 속하고, 금강반야는 小般若(8천송반야)라고도 하며 제9회에 해당한다. 大品般若(라집역) 역시 제2회에 해당한다. 광찬(光讚)이란 光은 광명 찬(讚)은 강설을 뜻한다(광명이 비치자 황금연꽃이 생기고 그 속에 제불이 출현하여 강설). 금강은 일체의 번뇌를 끊고 집착과 의심을 끊는다는 뜻이 있다.
반야부 경전의 특징은 첫째, 이승들이 본래 대승을 설할 수 있는 지혜가 없는데 부처님의 가피력을 입어서 반야경에서 전교(轉敎)가 이루어졌으니, 이는 마치 장자가 궁자에게 재산을 넘겨주었듯이 소승근기인 성문에게 부처님의 법재(法財)를 전해준 것, 곧 전교부재(轉敎付財)를 가리키는 비유이다.
둘째, 방등시에서 소승들은 ‘자신의 근기로는 대승에 미칠 수 없다고 참괴하였고, 대승은 보살의 법으로서 소승의 한계 밖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승들의 근기가 순숙하여 반야시에 이르러 이들에게 법재를 물려주셨으니, 이승은 소승의 근기이고 대승은 대기의 법문으로 미칠 수 없다고 격리된 관계의 대소승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격리된 상대적 간격을 반야의 법문으로 제거하고 융통시켰기 때문이다. 반야에서는 일체법은 다 불가득 空이라는 진리를 설하였으며, 대승법이든 소승법이든 일체법은 차별이 없는 도리로 대승과 소승의 차별을 끊어서 융통시켰다.
셋째, 반야시에서 공은 아집의 미정(迷情)을 완전히 없애어 절대공을 밝히고 있으므로 대소승의 차별이 끊어진 자리임을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