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셋째로 ‘欲求’ 아래서는 폐기해야 함을 밝혔다.
三欲求下, 明須廢.
[석첨] 부처 되기를 구하는 자가, 악을 고쳐 선을 쫓는다면 선이 확립되어 가르침은 폐기되기에 이를 것이다.
欲求佛者, 改惡從善, 善立敎廢.
[석첨] 넷째로 ‘卽便’ 아래서는 폐기의 상(相)을 밝혔다.
四卽便下, 明廢相.
[석첨] 곧 논파(論破)해 말하노니, *어찌 보살이 결혹(結惑)을 끊지 않은 채, 그러면서도 보리(菩提)를 얻는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독기(毒器)는 음식을 담아두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과 같다. 이 가르침이 곧 폐기된다면 *행(行)도 위(位)도 다 폐기될 것이다.
卽便破曰. 豈有菩薩不斷結惑, 而得菩提. 毒器不任貯食. 此敎卽廢, 行位皆廢.
14870어찌 보살이 결혹을 끊지 않은 채 보리를 얻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원문은 ‘豈有菩薩不斷結惑, 而得菩提’. 삼장교의 보살은 번뇌를 억제할 뿐 끊지는 않는데, 그런 상태에서야 어떻게 성불하겠느냐는 것이다. 억제했으므로 번뇌는 여전히 남아 있는 까닭이다. ‘결혹’은 3136의 주.
14871독기는 음식을 담아두기에 어울리지 않음. 원문은 ‘毒器不任貯食’. 번뇌를 그대로 지닌 채로는 정각을 이룰 수 없다는 비유. “대지도론” 二七의 인용인데, 거기서는 ‘毒甁’으로 하고 있다.
14872행도 위도 다 폐기됨. 원문은 ‘行位皆廢’. 번뇌를 억제하는 수행으로는 성불할 리가 없다 하여 삼장교를 폐기하면, 행(行)․위(位) 또한 쓸 데가 없어진다는 뜻.
[석첨] 폐기하려 할진대 반드시 먼저 깨야 하기 때문이다.
欲廢, 必須先破故也.
[석첨] 다섯째로 ‘本淫’ 아래서는 폐기하는 뜻을 밝혔다.
五本淫下, 明廢意.
[석첨] *본래 과(果)를 바래서 인(因)을 행하는 터이므로, 과의 바랠 것이 없다면 불지(佛智)․불위(佛位)도 함께 폐기될 것이다.
本淫果行因. 無果可淫, 佛智佛位俱廢.
14873본래 과를 바래서 인을 행함. 원문은 ‘本淫果行因’. 성불을 바라기에 수행이 있는 것이라는 뜻. 수행과 성불은 인과의 관계다.
[석첨] 다음으로 이승(二乘)에 관한 글은 얼마 되지 않으나, 보살의 취지에 비추어보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次二乘文少, 淫菩薩意可知.
[석첨] 만약 이승(二乘)에 입각해 폐기를 가린다면, 본래 *사행(事行)으로 *마음을 억제하게 하고 *졸도(拙度)를 따라 *진제(眞諦)를 봄이니, *진제를 보고 나면 교의(敎意)는 곧 족해지는지라, 그러므로 *석교(析敎)는 폐기된다.
若約二乘辨廢者. 本令事行調心, 從拙度見眞. 見眞已, 敎意卽足, 是故析敎廢.
14874사행. 10071의 주.
14875마음을 억제함. 원문은 ‘調心’. 조(調)는 조복(調伏)․제복(制服)의 뜻. 악을 억제하여 마음을 조정하는 뜻.
14876졸도. 2821의 주.
14877진제를 봄. 원문은 ‘見眞’. 그러나 이 ‘진제’의 진리는 ‘속제’에 대립하는 진리이므로, 어디까지나 소승의 그것이다.
14878진제를 보고 나면 교의는 곧 족해짐. 원문은 ‘見眞已, 敎意卽足’. 이승(二乘)에게는 화타(化他)의 뜻이 없으므로, 제가 진리를 보는 것으로 그 가르침은 충족된다.
14879석교. 분석적 가르침. 소승은 석공(析空)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2823의 ‘析法入空’의 주.
[석첨] 다음에서는 맺었다.
次結.
[석첨] 이 여러 뜻 때문에 삼장교를 폐기하고 통교를 세운다고 말하는 것이다.
爲此諸義, 故言廢藏立通.
[석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可見.
[석첨] 둘째로 통교에 관한 것을 밝힌 것 중에 둘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바로 해석하고, 둘째로 ‘此通’ 아래서는 공(共)과 불공(不共)을 가렸다.
처음의 것에 또 세 부분이 있으니, 먼저 보살을 다루고, 둘째로는 불(佛)을 다루고, 셋째로는 이승(二乘)을 다루었다.
처음의 보살에 관한 것에 또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일반적으로 폐립(廢立)의 뜻을 말하고, 둘째로 ‘立通’ 아래서는 폐기의 뜻을 밝히고, 셋째로 ‘智者’ 아래서는 바로 폐기하는 상(相)을 밝혔다.
次明通中爲二. 初正釋. 次此通下, 辨共不共. 初文爲三. 先菩薩. 次佛. 三二乘. 初菩薩又爲三. 初總述廢立意. 次立通下, 明廢意. 三智者下, 正明廢相.
[석첨] 원래 통교를 받아 삼장교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 사람에 있어서는 위계의 폐기를 논하지 않는다.
元稟通敎, 不學三藏者, 不於此人論廢.
14880이 사람에 있어서는 폐기를 논하지 않음. 원문은 ‘不於此人論廢’. 폐립은 가르침이 순서를 따라 이어지고 있을 대에만 행해진다. 그런데 지금은 삼장교를 안 거치고 처음부터 통교를 받아들인 경우이므로 폐기할 것이 없는 것이다.
[석첨] 처음의 것은 글 그대로다.
初如文.
[석첨] 통교를 세우는 뜻은 *이선(理善)을 낳게 하기 위함이니, *체법(體法)으로 혹(惑)을 끊으며 *교도(巧度)를 따라 진제(眞諦)에 들면 통교의 뜻은 곧 충족된다.
立通之意, 爲生理善. 體法斷惑, 從巧度入眞, 敎意卽足.
14881이선. 13807의 주.
14882체법. 2829의 ‘體法入空’의 주.
14883교도. 9876의 ‘巧拙’의 주 참조.
[석첨] 둘째의 글에서 통교를 세운다고 말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만약 사실(四悉)이 이루어진다면 곧 진제를 볼 것이므로, 이를 일러 ‘가르침이 충족된다’ 한 것이다.
次文言立通者. 若成四悉, 卽以見眞, 名爲敎足.
[석첨] 지자(智者)는 공(空)을 보고 나면 다시 응당 *불공(不空)을 보리니, 어떻게 항상 공에만 머물러 있을 수 있으랴. 그러므로 통교는 폐기된다.
智者見空, 復應見不空, 那得恒住於空. 通敎則廢.
14884불공. 5039의 주.
[석첨] 셋째 부분에서 바로 폐기하는 상(相)을 밝힌 것에 대해 살피건대, *통교의 진제(眞諦) 중에는 이미 불공(不空)을 포함하고 있는 터이므로 *다만 진제이기만 한 것은 지극한 진리인 것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책망해 이르되 ‘어떻게 항상 공에만 머물러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이근(利根)의 보살은 곧 불공을 보는 것인데, 불공을 보고 나면 불지(佛智)도 오히려 폐기되거니 하물며 삼승(三乘)이겠는가. 불지도 폐기된다 함은 저 통교 중에서는 *저 부처님이 무명을 깬다고는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명을 깨는 단계니, 그러기에 공통적으로 ‘통교는 폐기된다’고 말한 것이다.
三正明廢相者. 通眞諦中, 旣含不空. 故但眞諦, 仍爲未極. 是故責云, 那得恒住於空. 利根菩薩, 卽見不空. 見不空已, 佛智尙廢, 何況三乘. 以彼敎中, 不云彼佛破無明故. 今破無明, 是故通云通敎則廢.
14885통교의 진제 중에는 이미 불공을 포함하고 있음. 원문은 ‘通眞諦中, 旣含不空’. 통교의 진제의 내용은 공의 도리이나 공을 불공과 다른 줄 아는 일, 곧 단공(但空)인 점에 그 한계가 있다. 그러나 공을 보고 있는 점에서는 불공의 도리도 알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니, 원래의 공에는 공과 불공의 차별 또한 없기 때문이다.
14886다만 진제이기만 한 것. 원문은 ‘但眞諦’. 곧 단공(但空)을 이른 말.
14887이근의 보살은 곧 불공을 봄. 원문은 ‘利根菩薩, 卽見不空’. 피접이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1013의 ‘被接’의 주 참조.
14888저 부처님이 무명을 깬다고는 말하고 있지 않음. 원문은 ‘不云彼佛破無明’. 통교의 위계인 삼승공십지(三乘共十地)에서는 견혹․사혹을 끊고 서부습생(誓扶習生)을 설하는 데 그치니, 불위(佛位)에도 무명혹을 끊는다는 말은 안 보인다. 물론 이근의 보살은 피접되어 원교․별교도 들어가는 터이므로, 통교에서는 불위를 일단 설정은 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실현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석첨] 보살의 행(行)․지(智)가 다 폐기되고, 부처님의 지(智)․위(位) 또한 폐기된다…….
菩薩行智悉廢, 佛智位亦廢云云.
[석첨] 둘째로 ‘菩薩’ 아래서 통교의 부처님의 과(果)가 폐기됨을 밝힌 것에 대해 살피건대, *보살의 인(因)이 이미 폐기된 바에야 부처님의 과(果)라는 것이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次菩薩下, 明通佛果廢者. 菩薩之因旣廢, 佛果豈存.
14889보살의 인이……. 원문은 ‘菩薩之因旣廢, 佛果豈存’. 보살의 수행의 결과가 부처님이요, 부처님의 원인이 보살의 수행이기 때문이다.
[석첨] *이승(二乘)은 다만 가르침이 폐기될 따름이니, 다른 것은…….
二乘但敎廢, 餘者云云.
14890이승은 다만 가르침이 폐기될 따름임. 원문은 ‘二乘但敎廢’. 보살은 보다 높은 가르침으로 들어감을 따라 지금까지의 가르침은 폐기되고 가르침이 폐기됨을 따라 행(行)과 위(位)도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승은 공을 깨닫는 것으로 그 가르침(삼장교)은 폐기되지만, 그 행과 위는 여전히 소승의 그것에 머물러 있게 된다는 것. 그 행과 위의 폐기는 개권현실이 설해지는 법화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현된다.
[석첨] 다음으로 공(共)…불공(不共)을 밝힌 것 중에는 넷이 있다. 처음에서는 둘을 아울러 표시했다.
次明共不共中四. 初雙標.
[석첨] 이 통교는 *통교에도 통하고 별교에도 통한다.
此通敎, 通通通別.
14891통교에도 통하고 별교에도 통함. 원문은 ‘通通通別’. 통교에 통한다 함은 三승에 공통하는 단공(但空)의 입장이요, 별교에 통한다 함은 통교면서도 이근(利根)은 불공(不共)을 보는 점에서 별교와 같아진다는 뜻이다.
[석첨] 둘째로는 분별했다.
次分別.
[석첨] *공반야(共般若)의 뜻은 위에서 설한 바와 같거니와, 불공반야(不共般若)의 뜻은 폐기되지 않음이 있다…….
共般若意, 如上說. 不共般若意, 則有不廢云云.
14892공반야. 다음의 ‘불공반야’와 함께 6793의 ‘不共般若’의 주.
[석첨] 셋째로 ‘故知’ 아래서는 그 뜻을 상실하고 있음을 가렸다.
三故知下, 辨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