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다음에서는 해석했다.
次釋.
[석첨] *어째서 그런가. *득도(得道)하신 밤으로부터 *열반하신 밤에 이르기까지에 설하신 바 *사아함경(四阿含經)을 *결집(結集)해 *성문장(聲聞藏)이라 하니, *처음의 가르침이 어찌 일찍이 폐기됨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앞사람의 사선(事善)을 이루고 뒷사람의 사선에 머물러 이익을 끼치리니, 그러므로 폐기함이 있고 폐기하지 않음이 있는 것이 된다. 통교가 앞사람의 선을 이루고 뒷사람의 선에 머뭄 또한 이와 같으며, 별교가 앞의 선을 이루고 뒷사람의 선에 머뭄도 또한 이와 같다.
何者. 從得道夜, 至泥洹夜. 所說四阿含經, 結爲聲聞藏, 初敎何曾廢. 成前人事善, 逗後人事善, 故有廢有不廢. 通敎成前逗後亦如是. 別敎成前逗後亦如是.
14969어째서 그런가. 원문은 ‘何者’. 이 아래의 글은 중아함경의 인용이다.
14970득도. 성도의 뜻. 정각을 얻는 일.
14971열반. 원문은 ‘泥洹’. 3438의 주.
14972사아함경. 9662의 ‘四阿含’의 주.
14973결집함. 원문은 ‘結’. 경전을 편찬하는 일.
14974성문장. 성문을 상대로 설해진 법장(法藏).
14975처음의 가르침. 원문은 ‘初敎’. 화법사교의 첫째인 삼장교.
14976앞사람의 사선을 이루고 뒷사람의 사선에 머뭄. 원문은 ‘成前人事善, 逗後人事善’. 경으로 정착된 바에는 옛사람의 사선을 이루게 했을 것이니 그러므로 가르침은 폐기함이 되나, 후세 사람의 사선도 일으키리니 그러므로 폐기되지 않음이 된다는 것. ‘사선’은 13806의 주.
[석첨] ‘득도의 밤으로부터 열반의 밤에 이르기까지’에서 내지는 ‘처음의 가르침이 어찌 일찍이 폐기되랴’라 말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처음에서 최후에 이르는 가르침을 함께 결집해 놓았으니, *그러므로 처음의 가르침도 폐기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더구나 결집되고 나서 머물러 말대(末代)에 혜택을 입힘에 있어서겠는가. 그러므로 곧 앞의 선을 이루고 뒤의 선에 머물러 이익을 끼침을 알게 된다. 그러나 결집돼 글로 남아 있다면, 마땅히 알라 법화경의 가르침이 일어났는데도 *이 가르침은 여전히 뒷사람에게 머물러 이익을 끼치고, 통교․별교도 함께 그러함이 되리니, 그러기에 법화경에 의거하면 폐기함이 되고, 그 가르침이 남아 있는 점에 의거하면 폐기되지 않음이 된다.
言從得道夜至泥洹夜. 乃至初敎何曾廢者. 初後俱集, 故知不廢. 況結集已, 留被末代, 故知卽是成前逗後. 旣結集在文, 當知法華敎興, 此敎仍須逗後. 通別俱爾. 據法華則廢, 據敎存則不廢.
14977그러므로 처음의 가르침도 폐기되지 않음을 알게 됨. 원문은 ‘故知不廢’. 삼장교 또한 결집되어 경전으로서 남아 있기 때문이다.
14978이 가르침. 원문은 ‘此敎’. 삼장교.
[석첨] 원교에서 *세움이 있고 세우지 않음이 있다. *처음에 고산(高山)을 비추심은 *이미 스스로 세움이 되나, 삼장교의 근기에 있어서는 세움이 되지 않는다. 또 경의 글에 이르되,
‘*처음으로 내 몸을 보고 여래의 지혜에 들었다.’
하심은 곧 앞에서 세움이요,
‘*소승을 배우던 자는 이제 부처님의 지혜에 든다’
고 하심은 곧 뒤에 세움이다. 그리고 중간은 알만 하다.
圓敎有立有不立. 初照高山, 已自是立, 於三藏者不立. 文云. 始見我身, 入如來慧, 卽是前立. 學小者今入佛慧, 卽是後立. 中間可知.
14979세움. 원문은 ‘立’. 미혹을 깬 끝에 진리를 확립하는 일.
14980처음에 고산을 비추심. 원문은 ‘初照高山’. 화엄경을 설하신 비유. 1447의 ‘高山頓說’의 주.
14981이미 스스로 세움이 됨. 원문은 ‘已自是立’. 화엄경을 듣고 깨달은 사람은 이미 원교의 진리를 확립한 것이 된다는 뜻.
14982처음으로 내 몸을 보고……. 원문은 ‘始見我身, 入如來慧’. 종지용출품의 ‘此諸衆生, 始見我身, 聞我所說, 卽皆信受入如來慧’의 인용이다. 이는 화엄경의 설법에서 깨달았음을 가리킨다.
14983소승을 배우던 자는 이제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감. 원문은 ‘學小者今入佛慧’. 종지용출품의 ‘除先修習學小乘者. 如是之人, 我今亦令得聞是經, 入於佛慧’의 인용이다.
[석첨] 다음으로 세우고 세우지 못함을 다룬 것 중에서, 세움과 세우지 못함이 있다 함은 곧 *소승의 근기를 가리킴으로써 *화엄경에 맞서게 한 것이니, 만약 법화경에 이르고 났을 때라면 *세우지 못하는 도리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세움과 세우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또 ‘중간은 알만하다’고 말함은, 처음은 화엄경을 이르고 끝은 법화경을 이르는 터에, *중간의 삼미(三味)에는 다 부처님의 지혜에 들 수 있는 도리가 있어, 이를 이름해 세운다고 한다는 것이다. *다만 녹원시(鹿苑時)는 남모래 들고 *다른 가르침은 드러내놓고 들어가는 차이가 있으니, 녹원시의 남몰래 들어감은 *대승․소승인 사람에 공통하나, 다른 시기의 드러내놓고 들어감은 *오직 대승인 사람에게만 있는 일이다. 만약 *다른 시기의 소승인 사람이 남몰래 들어가는 경우라면 도리가 녹원시의 그것과 같다.
次立不立中, 有立不立, 卽指小機以對華嚴. 若至法華, 無不立義. 故云亦立不立也. 言中間可知者. 始謂華嚴, 終謂法華. 中間三昧, 竝有得入佛慧之義, 名之爲立. 但鹿苑密入, 餘敎顯入. 鹿苑密入, 通大小人. 餘味顯入, 唯在於大. 若餘味小人, 於彼密入, 義同鹿苑.
14984소승의 근기. 원문은 ‘小機’. 소승의 중생.
14985화엄경에 맞서게 함. 원문은 ‘以對華嚴’. 소승의 근기가 화엄경의 가르침 속에서 어떤 이익을 얻는가를 검토했다 함이니,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설해진 원교는 그 차체로서 확립됐다 해도, 소승의 근기에서는 확립됨이 없다고 한 것이다.
14986세우지 못하는 도리가 없음. 원문은 ‘無不立義’. 개권현실에 의해 어떤 방편도 진실이 되는 까닭이다.
14987중간의 삼미. 원문은 ‘中間三昧’. 오미(五味)의 중간에 있는 낙미․생소미․숙소미니, 곧 녹원시․방등시․반야시. 88의 ‘五味’의 주 참조.
14988다만 녹원시는 남모래 들어감. 원문은 ‘但鹿苑密入’. 녹원시에서는 비밀리에 원교가 설해지는 까닭이다.
14989다른 가르침은 드러내놓고 들어감. 원문은 ‘餘敎顯入’. 생소미(방등시)․숙소미(반야시)의 가르침에서는 원교를 설하시는 까닭이다.
14990대승․소승인 사람에 공통함. 원문은 ‘通大小人’. 녹원시는 대승이라 해도 삼장교의 대승이어서, 원교와는 멀기 때문이다.
14991오직 대승인 사람에게만 있는 일임. 원문은 ‘唯在於大’. 원접통․원접별은 보살에게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6682의 ‘圓接通’과 6683의 ‘圓接別’의 주 참조.
14992다른 시기의 소승인 사람. 원문은 ‘餘味小人’. 격력(隔歷)의 원교는 소승을 원교로 지양시킬 힘이 없는 까닭이다.
[석첨] 모든 행(行)․지(智)에 폐기함이 있고 폐기하지 않음이 이으며, 모든 과(果)․위(位)에 폐기함이 있고 폐기하지 않음이 있다.
諸行智有廢有不廢. 諸果位有廢有不廢.
[석첨] 다음으로 행(行)․지(智) 등에 대해 간략히 앞에 예(例)함을 보인 것 중에서 말한 ‘모든’이란, 또한 모름지기 *一과 三을 대립시켜 고찰해야 한다는 것인데, *앞에서 설해진 것과 같으므로 다시 논하지는 않았다.
次約行智等略例中, 所言諸者, 亦須一三相淫. 餘前所說, 故不復論.
14993一과 三을 대립시킴. 원문은 ‘一三相淫’. 진실인 一과 방편인 三승을 상대시켜 검토하는 일.
14994앞에서 설해진 것과 같음. 원문은 ‘餘前所說’. 교(敎)에 폐립(廢立)을 논하는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는 뜻.
[석첨] 다음으로 판별해 개현(開顯)한 것 중에 둘이 있으니, 먼저 *오시(五時)에 입각해 판별하고, 다음으로 ‘但說’ 아래서는 개현했다.
次判開中二. 先約五時判. 次但說下. 開
14995오시. 248의 ‘五時八敎’의 주 참조.
[석첨] 만약 *제미(諸味)에 걸쳐 논한다면, *유미(乳味)에는 *두 가르침이 있는 중, *하나의 교(敎)․행(行)․위(位)는 폐기되기도 하고 폐기되지 않기도 하며, *하나의 교․행․위는 폐기되지 않는다. *낙미(酪味)의 교․행․위는 폐기됨이 있고 폐지되지 않음이 있다. *생소미(生蘇味)의 네 가르침 중에서, *세 교․행․위는 폐기됨이 있고 폐기되지 않음이 있으며, *하나의 교․행․위는 폐기되지 않는다. *숙소미(熟蘇味)의 세 가르침에서, 두 교․행․위는 폐기됨이 있고 폐기되지 않음이 있으며, 하나의 교․행․위는 폐기되지 않는다. 그리고 법화경에서는 *세 교․행․위는 다 폐기되며, *하나의 교․행․위는 폐기되지 않는다.
若歷諸味. 乳味有兩敎. 一敎行位亦廢亦不廢, 一敎行位不廢. 酪敎行位有廢有不廢. 生蘇四敎中. 三敎行位, 有廢有不廢. 一敎行位不廢. 熟蘇三敎. 兩敎行位有廢有不廢, 一敎行位不廢. 法華三敎行以皆廢, 一敎行位不廢.
14996제미. 오미(五味)니, 곧 오시(五時)의 비유. 88의 ‘五味’의 주.
14997유미. 화엄시(華嚴時)를 이른다.
14998두 가르침. 원문은 ‘兩敎’. 별교와 원교. 화엄경은 원교가 주로 설해졌으나 별교인 부분도 있다.
14999하나의 교․행․위는 폐기되기도 하고 폐기되지 않기도 함. 원문은 ‘一敎行位亦廢亦不廢’. 별교는 앞사람의 선을 이루게 하므로 폐기되나, 뒷사람의 선에 머무는 점에서는 폐기되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행과 위에 있어서도 같다.
15000하나의 교․행․위는 폐기되지 않음. 원문은 ‘一敎行位不廢’. 원교는 더없는 진실이기에 폐기되지 않는 것이다.
15001낙미의 교․행․위는 폐기됨이 있고 폐기되지 않음이 있음. 원문은 ‘酪敎行位有廢有不廢’. 녹원시(낙미)의 가르침은 삼장교일 뿐이므로, 앞사람의 선을 이루게 하는 점에서는 폐기가 있으나, 뒷사람의 선에 머무는 면에서는 폐기되지 않음이 된다.
15002생소미의 네 가르침. 원문은 ‘生蘇四敎’. 방등시(생소미)에서는 삼장교․통교․별교․원교가 함께 설해졌다.
15003세 교․행․위는 폐기됨이 있고 폐기되지 않음이 있음. 원문은 ‘三敎行位, 有廢有不廢’. 삼장교․통교․별교에 폐기되고 폐기되지 않음이 있음은 유미․낙미의 그것과 같다.
15004하나의 교․행․위. 원문은 ‘一敎行位’. 원교의 그것이다.
15005숙소미의 세 가르침. 원문은 ‘熟蘇三敎’. 반야시(숙소미)의 가르침은 통교․별교․원교로 이루어져 있다.
15006세 교․행․위. 원문은 ‘三敎行位’. 법화경에서는 과거의 삼장교․통교․별교가 다 폐기되는 일.
15007하나의 교․행․위. 원문은 ‘一敎行位’. 원교는 폐기되지 않음을 이른다.
[석첨] 처음의 것은 글 그대로다.
初如文.
[석첨] 다음으로 ‘但說’ 아래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니, 처음에서는 개권(開權)해 원교의 교․행․위를 이루는 까닭에, 셋이 다 폐기되지 않음을 밝혔다.
次但說下, 爲二. 初開成於圓敎行位, 三皆不廢.
[석첨] *다만 무상도(無上道)를 설하사, *한가지로 하나의 보승(寶乘)을 타고, 함께 바로 도량(道場)에 이르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세 도리가 다 폐기되지 않는 것이다.
但說無上道, 同乘一寶乘, 俱直至道場. 故三義皆不廢.
15008다만 무상도를 설하심. 원문은 ‘但說無上道’. 방편품의 게송에서의 인용. 오직 원교만을 설하신 일. 이는 교․행․위 중의 ‘교’에 해당한다.
15009한가지로 하나의 보승을 타고, 함께 바로 도량에 이름. 원문은 ‘同乘一寶乘, 俱直至道場’. 비유품의 ‘乘此寶乘, 直至道場’의 인용인데, 같이 보승을 탐은 행(行)이요, 바로 도량에 이름은 위(位)를 타나낸다.
[석첨] 둘째로 ‘無量義’. 아래서는 다시 거듭 베푸는 것을 서술했다. 이것에 또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바로 밝혔다.
次無量義下, 更重叙施. 又三. 初正明.
[석첨] 무량의경(無量義經)에서 이르되,
‘이도(二道)․삼법(三法)․사과(四果)가 합치하지 않는다.’
고 했으나, 법화경에 이르러서는 다 합치되니, 그러므로 폐기를 논하지 않는 것이다.
無量義云. 二道三法四果不合. 至法華皆合, 故不論廢.
[석첨] 둘째로 ‘成道’ 아래서는 인용하여 증명했다.
次成道下, 引證.
[석첨] ‘*성도(成道) 이래 사십여년 동안 진실을 드러내지 않으시더니’, 법화경에서야 비로소 진실을 드러내신 것이어서,
成道已來, 四十餘年, 未顯眞實. 法華始顯眞實.
15010성도 이래……. 원문은 ‘成道已來, 四十餘年, 未顯眞實’. 무량의경의 인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