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계금취견(戒禁取見)과 신견(身見) 및 의심[毗織吉蹉]의 세 결박이 해탈[木叉門]을 능히 결박함을 마땅히 알아야 하네.

戒禁見身見,及毗織吉蹉,應知三種結,能縛木叉門。

*우리가 수행하는 과정에 최대 장애법이 곧 계금취견과 살가야견(薩迦耶見)과 의혹(疑惑)의 번뇌이다. 결(結)이라고 한 것은 중생들이 삼계를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데 이러한 진실한 마음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여 삼계에 구속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삼계를 떠나고자 하면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을 실천해야 하는 데 이런 마음을 등지고 윤회의 세계로 치달리게 하는 것이다.  입중론 에도 “여래의 집에 태어나려면 일체의 세 가지 결박을 모두 끊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이들 번뇌는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삼계에 윤회하면서 생로병사의 고를 짓게 부리므로 사(使)라고도 한다.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번뇌로는 열 가지가 있다. 이들 번뇌는 십번뇌 십혹 십수면(十隨眠)이라고도 한다. 모든 번뇌 중에 가장 근본이 되는 번뇌 열 가지. 사제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세간 사물에 미혹하고 집착하여 일어난다. 근본번뇌 십사(十使)는 다음과 같다. ①탐(貪)은 탐내는 마음. ②진(瞋)은 화내는 마음. ③치(癡)는 어리석은 마음. ④만(慢)은 남을 업신여기고 우쭐대는 마음 자만심. ⑤의(疑)는 진리에 대한 의심 의혹심. ⑥신견(身見)은 이 몸을 나라고 여기는 것. ⑦변견(邊見)은 치우친 견해. ⑧사견(邪見)은 사특한 견해. ⑨견취견(見取見)은 비루한 생각을 옳다고 자기주장만을 세우는 것. ⑩계금취견(戒禁取見)은 삿된 도리를 고집하여 천상에 나는 도리라고 믿는 것. 이중에서 탐·진·치·만·의 다섯 번뇌는 오둔사(五鈍使)로 이들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항상 근심스럽고 번거롭게 한다. 이들 번뇌는 무딘 번뇌여서 끊기가 어렵다. 신견·변견·사견·견취견·계금취견의 다섯은 오리사(五利使)로 예리한 번뇌이므로 오둔사에 비해 쉽게 끊을 수 있다. 오리사로 인해 16지견 62견 등에 묶이어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계금취견은 5견(見)의 하나이며, 10수면(隨眠)의 하나이고, 4취(取)의 하나. 갖추어 말하면 계금등취견(戒禁等取見), 줄여서 계취견(戒取見), 계금취(戒禁取)라 한다. 계금에 대하여 생기는 그릇된 소견. 즉 인(因) 아닌 것을 인이라 하고, 도(道) 아닌 것을 도라 하는 잘못된 소견. 이를테면, 개나 소 따위가 죽은 뒤엔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여 개나 소처럼 풀을 먹고 똥을 먹으며, 개와 소의 행동을 하면서, 이것이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고,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따위를 말한다.
 신견은 살가야견(薩迦耶見, satkāya-darśana;satkāya-di)이라고도 한다. 5견(見)의 하나. 살가야달리슬치(薩迦耶達利瑟致)라 음역하고, 신견(身見)이라 번역한다. 이 몸은 5온으로써 가(假)로 화합한 것인데, 중생들은 실(實)의 자아(自我)가 있다고 집착하며, 내 몸에 부속한 모든 물건은 일정한 소유주가 없는 것인데, 아(我)의 소유물이라고 집착하는 견해. 범어에 가야는 신(身), 달리슬치는 견(見), 살은 유부(有部)에서는 유(有)의 뜻, 경부(經部)에서는 허위(虛僞), 혹은 괴(壞)의 뜻, 대승 유식가에서는 이전(移轉)의 뜻이라 함.
 의혹은 곧 유예(猶豫, 毗織吉蹉)라 한다. 진리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불법과 성과(聖果)에 대해 회의심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어두운 생각으로, 우리가 잘 닦아 지니면 불교에 이를 수 있을까하고 의심하거나 진리를 부정한다. 인과의 도리를 의심하고 유무의 도리에 대해서 판단을 유예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세 가지 결박의 번뇌를 끊는데 힘써야 해탈의 문을 열 수 있다.
 
54. 해탈은 궁극적으로 자신에 의지하는 것이며 다른 도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네.
부지런히 듣고 계율과 선정을 꾸준히 닦으면 사성제[四眞諦]가 거듭 생기네.

解脫終依己,不由他伴成,勤修聞戒定,四眞諦便生。

*도를 이루는 바른 길은 정진에 달려 있다. 이 게송은 불법을 닦아 지니는 것은 정진에 의거함을 열어 보인 것이다. 비록 본사이신 석가모니불과 제 선지식들이 무상의 대자비심으로 우리들을 위하여 깊은 전법륜을 굴려서 희유한 묘법의 진리를 들려주실지라도, 해탈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진하고 노력해야 도달할 수 있다. 만약 정진하는 데 힘쓰지 않는다면 삼계를 벗어나려는 마음과 보리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정진하는 데에는 계율을 지키는 수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방종한 생활을 하고 몸과 마음을 계율로 제어하지 않는다면 고요한 마음을 얻을 수 없어서 번뇌만 치성하게 된다. 계율로 삼가고 올바른 선정이 나와야 고제의 진리 집제의 진리 멸제의 진리 도제의 진리에 들어 갈 수 있다.  

55. 계율, 선정심, 지혜를 더 높이고 이를 배우며 항상 닦아서
백오십여 가지의 계율을 지키는 것 모두 이 세 가지에 섭수되네.

增上戒心慧,茲學可常修,百五十餘戒,咸歸此三攝。

*계 · 정 · 혜 삼학을 총설 하였다. 우리가 수행 중에 계를 청정히 하고 항상 선정삼매[心學]를 수습하여 제법실상의 지혜를 배워 성숙시켜야 한다. 우리가 항상 수습해 닦아야 이를 증장시킬 수 있다. 대 선지식과 석가모니부처님이 선설하는 불법의 내용도 모두 이 삼학 중에 귀결된다. 이 삼학 이외에 다시 어떠한 수행법이 있겠는가. 불교에 들어오려면 삼귀의계, 오계를 공통으로 지켜야 하고 비구니가 되면 구족계를 받는다. 구족계(具足戒)는 승가에서 사용하는 말로, 출가하여 정식 승려가 될 때 받는 계율을 말한다.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이다. 비구에게는 250계, 비구니에게는 348계를 주게 된다. 어려서 출가하면 사미계(沙彌戒)를 받게 되며, 구족계를 받게 되면 정식 승려가 된다. 비구가 지켜야 할 구족계를 특별히 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 비구니가 지켜야 하는 온갖 계율은 삼백사십팔계의 구족계를 가짓수가 많다는 뜻에서 오백계(五百戒)라고도 부른다. 출가자는 소승율전에 의한 비구 비구니계를 받는데 비해, 대승불교에서는 대승보살계가 모두 삼학에 섭수된다. 삼학을 증장하는 것이 불법을 닦아 수지하는 데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56. 몸에 신체에 대한 정념이 머물러서 이 길을 잘 닦아 한결 같네.
그와 같은 정념이 어그러지면 모든 법은 다 쇠망하네.

於身住身念,茲路善修常,如其虧正念,諸法盡淪亡。

*신체에 대한 정념이란 정념을 잘 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체에 대해서 항상 정념을 관조해야 한다. 우리의 몸이 인연에 의해 이루어져 인연 따라 변해서 인연 따라 소멸하는 무상하고 무아이며, 자성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어서 공함을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몸이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을 잘 살펴서 실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태대사는  차제선문 에서 우리 신체의 근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 몸의 수명은 선세에 오계를 지킨 업력이 죽음 때에도 끊어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유지되다가 부모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어 자손을 낳게 되면, 그 이어지던 업(業)의 힘이 식(識)의 상태로 변하여 곧 부모의 몸에 들어오게 된다. 부모의 몸에서는 일부의 콩알만 한 정혈이 자신의 소유로 인식하여 그 사이에 기탁하게 된다. 그때 신근(身根) 수명 마음[識心]이 다 갖추어지며, 식은 이 가운데서 오식(五識: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여야 하는 인식상태)의 성품을 갖춘다. 이 정혈 속에 들어온 오식은 7일 만에 일변하여 엷은 유즙이나 응고된 여유와 같게 된다. 이후 점차 자라서 계란 노른자만 해진다. 업력의 인연으로 변화하여 형체(身體)를 이루는데 안에서부터 먼저 오장(五臟)이 이루어져 오식(五識)이 안치되면 그때부터 보고 듣고… 지각하게 된다.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지킨 업력이 몸 내부에 작용하여 변화시켜 간장을 이루면 혼(魂)이 그것을 의지하고, 불투도를 지킨 힘이 몸의 내부를 변화시켜 신장을 이루면 지(志)가 그것에 의지한다. 불사음계(不邪淫戒)를 지킨 힘이 몸의 내부를 변화시켜 폐장을 이루면 백(魄)이 의지하고, 불망어계(不妄語戒)를 지킨 힘이 몸 내부를 변화시켜 비장을 이루면 의(意)가 의지하며, 불사음계(不飮酒戒)를 지킨 힘이 몸의 내부를 변화시켜 심장을 이루면 신(神)이 그것에 의지한다. 이 혼(魂) 지(志) 백(魄) 의(意) 신(神)의 오신(五神)이 곧 오식(五識)의 다른 이름이다. 오장의 기관이 이루어지면 신식이 깃들 곳이 있게 되며, 이들이 깃들면 곧 도울 것이 필요하게 된다. 오계를 지킨 업력이 다시 신체의 내부를 변화시켜 육부(六腑)의 신기(神氣)를 이루어서 오장 및 일신(一身)을 부양한다.

우리는 신명은 이와 같이 자신의 업력에 의해 탁태하여 식의 상태로 형성되며, 오장육부 형성에 들어가게 된다. 한의학에서도 오장은 정·기·신·혈·혼·백의 저장소로서 생명의 근본이 된다고 하고 있다. 오장은 간·심·비·폐·신을 말하고 육부는 담·위·대장·소장·방광·삼초를 말한다. 이렇게 중생이 신명이 탄생하면 오온 십이 십팔계가 인연에 의해 다시 형성해 간다. 생의 주체인 인간은 오온의 육근에서 육경을 끊임없이 취하여 오온을 형성하는데, 이때 대상을 탐착하여 끊임없이 미혹의 번뇌를 내게 되고 이 번뇌는 身·口·意 三業을 일으켜 생사의 과보를 초래하는 혹·업·고의 과정이다.

57. 수명에 많은 재액이 있음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물거품 같아,
만약 재액이 있으면 순식간에 숨이 끊어지고, 누운 사람도 일어나게 하는 희유한 것이네.

壽命多災厄,如風吹水泡,若得瞬息停,臥起成希有。

*삼계 육도의 중생들은  생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일체가 모두 무상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경에서 말씀하기를, “인간의 수명은 호흡사이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아무리 강한 금강장사도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정지하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천태대사는  법화현의 에서 “호흡은 생멸의 의지처로 일단 호흡이 돌아오지 않으면 곧 생명이 다했음을 알 수 있다. 호흡과 생명은 위태롭고 연약하고 무상한 것임을 깨달아 애착과 자만심을 내지 않는다. 호흡이 내가 아님을 알면 곧 사견을 내지 않는다. 만약 호흡의 장단을 알면 욕계정에 대하고, 호흡이 몸에 두루 함을 알면 미도지에 대하고, 기쁨의 감수는 기쁨의 덕목에 대하고…버림을 관할 때 곧 삼승의 열반을 획득한다.”고 하여 호흡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호흡을 잘 관하여 생사를 건널 수 있다고 하였다.

58. 죽음에 이르면 재가 되고, 부패하여 문드러져서 똥과 오물 되어 오래 지니기 어렵네.
몸은 진실한 법이 아니어서 멸하고 무너지고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이네.

卒歸灰燥爛,糞穢難久持,觀身非實法,滅壞墮分離。

* 중생들은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매우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신체를 보호하고, 더위와 추위에 대해 방비하고 신체에 연속되게 하기 위하여 수많은 악업 짓는 것도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숨이 끊어지면 화장하여 한줌 재가 되고, 땅에 묻으면 썩어 문드러져 똥과 오물이 되니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체가 무상함을 관하라는 권계이다.
천태대사는  차제선문 에서 다음과 같이 죽음을 관하게 하였다.
      죽음이 찾아오면 빈부가 없고 힘을 다해 닦은 선법도 소용없네.
귀한 사람 천한 사람도 없고, 늙은이나 젊은이나 면할 이 없구나.
기구하고 간청해도 죽음에서 구제할 자 없고 속이고 도망갈 곳도 없네.
아무리 막으려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으니 아무도 모면할 길이 없네.
나는 이미 사람 몸을 받아 좋지만, 거친 것을 알아서 마땅히 죽지 않는 감로법 구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