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그 때 대장엄보살마하살은 대중이 자리에 앉아 각각 뜻의 정함이 있음을 두루 살피고, 대중 가운데의 8만의 보살마하살과 함께 자리로부터 일어나, 부처님 앞으로 와서 두면으로 발에 예배하고 백천 번을 돌며,
(금장본 무량의경 덕행품 제1 p1030)
이시 대장엄보살마하살 변관중좌각정의이 여중중팔만보살마하살구 종좌이기 내예불소 두
爾時 大莊嚴菩薩摩訶薩 遍觀衆座各定意已 與衆中八萬菩薩摩訶薩俱 從座而起 來詣佛所 頭
면예족 요백천잡
面禮足 遶百千匝

 [강의] 서품에는 통서가 있고 별서가 있는데, 여기부터는 별서(別序)이다. 별서에는 삼업공양을 설하고, 이어서 게송으로 찬탄한다(덕행품 끝까지). 삼업공양은 신업 구업 의업을 다하여 부처님께 공양함이다. 여기서는 대장엄보살마하살을 비롯한 대중들이 두면예족하고, 백천 번 요잡하며, 공양을 올리고, … 무릎 꿇어 합장하기에 이른 것이 신업의 공경 공양이고, 일심으로 공양 올렸다고 하므로 의업공양이며, 한결같은 소리로 함께 찬탄하므로 구업으로 공경 공양하는 것이다.  
대장엄보살마하살은 대중을 대표하여 공양 올리는 보살이다. 대장엄이라고 말한 것은 이 보살에 두 가지 필경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구경필경이요, 둘째는 장엄필경이다. 지금은 장엄필경을 들어 그 이름으로 삼았다. 지금 이 보살이 대중 속에서 대직도(大直道)의 뜻을 묻게 되므로(설법품 제2에서) 이런 까닭에 대(大)라고 하였다. 마하살(摩訶薩)이란 자각 유정을 뜻하며 간략히 하여 마하살이라 더하여 부른 것이다.
“대중이 자리에 앉아 각각 뜻의 정함이 있음을 두루 살피고”란 앞으로 대법문에 대한 질문을 듣기 위해서 대중들을 먼저 두루 관하는 것이다. 대중들의 마음속 근기가 이미 성숙하여 밖으로 그 위의가 드러나 이미 정해졌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대중이 자리에 앉아 각각 뜻을 정하고 있음을 두루 살폈다고 했다.
“대중 가운데의 8만의 보살마하살과 함께 자리로부터 일어나”란 수 겁을 지내도 대직도(大直道)를 알지 못하니 이런 까닭으로 반드시 인·천의 대도사께 물은 것이다. 자리로부터 일어났다는 것은 제자가 경례를 취한 것이다.
“부처님 앞으로 와서”란 불과(佛果)가 가까운 것을 나타냄을 말한다.
“두면으로 발에 예배하고 백천 번을 돌았다”란 인도 나라에서 경례 드리는 법식이다. 그 예의에는 아홉이 있다. 첫째는 안부를 묻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요, 둘째는 머리를 구부려 경례를 보이는 것이며, 셋째는 손을 들고 손가락을 높이 세우는 것이요, 넷째는 합장하고 손가락을 모으는 것이다. 다섯째는 무릎을 굽히는 것이다. 여섯째는 길게 꿇는 것이다. 일곱째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는 것이다. 여덟째 다섯 곳을 함께 구부리는 것이다. 아홉째 오체투지 함이다. 무릇 이와 같이 아홉 가지가 똑같이 지극하여 오직 일 배 하니 무릎을 꿇으면서 덕을 찬탄 경례를 다하는 것이다. 멀리 있을 때는 이마를 조아리고 손을 모아 예배하고, 가까이 있을 때는 발에 머리를 대고 발꿈치를 쓰다듬는다. 보통 치사와 명을 받는 것은 옷을 두르고 길게 무릎 꿇는다. 존현께서 예배를 받으실 때는 반드시 안위의 말씀이 있다. 혹 그 정수리를 만지고, 혹은 등을 구부려 좋은 말로 가르쳐 인도하여 친후함을 나타낸다. 출가사문의 경례를 받을 때는 오직 훌륭한 원을 내어 무상의 무릎 꿇고 예배를 더한다. 요잡은 종사(宗事)를 따라 여러 번 돈다. 혹은 오직 한 번 혹은 다시 세 번 돌고 수효는 곧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른다. 지금 이 보살은 몸을 굽혀 경례를 나타내므로 두면예족이라 한다. 얕은 것을 잊고 깊은 것을 청하므로 백천 잡을 돈다고 한다. 백은 백계(百界)요 천은 천여시(千如是)이다. 경례를 올리는 도는 비록 세속법이지만 앞으로 교법을 배울 초문이니 이런 까닭에 숫자를 열거했다.  
 
 [경] 하늘의 꽃을 흩고 하늘의 향을 피우고, 하늘의 옷과 하늘의 영락이며 하늘의 값을 메길 수 없는 보배구슬이 공중에서 빙빙 돌면서 내려오되 사면에서 구름같이 모여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며,(금장본 무량의경 덕행품 제1 p1030)
소산천화 천향천의 천영락 천무가보주 종상공중선전래하 사면운집이헌어불
燒散天華 天香天衣 天瓔珞 天無價寶珠 從上空中旋轉來下 四面雲集而獻於佛

 [강의] “천(天)”이란 제일의천(第一義天)으로 칠방편이 아님을 나타낸다. “화(花)”란 법성의 칠각을 나타낸다. “향(香)”은 법성의 오분을 나타낸다. “의(衣)”는 법성의 적멸을 나타낸다. “영락(瓔珞)”은 법성의 사섭법을 나타낸다. “값을 메길 수 없는 보배구슬”이란 법성의 원만한 구슬을 말한다. “위[上]”란 상적광토이고, “아래[下]”란 범성동거토를 나타낸다. “공중”이란 법성의 즉중을 나타낸다. 
“돌면서 내려옴”이란 법성이 연을 따라오니 즉가(卽假)이다. 이 다섯 가지는 안으로는 법신을 장엄함이요, 밖으로 더러운 때를 제거함이다. “사면”이란 십주․십행․십회향․십지를 말한다. “운집”이란 팔만의 외중(外衆)을 말한다. 
“부처님께 받들어 올린다”란 다섯 가지 공양 올리는 것을 말한다.

 [경] 천주(天廚) 하늘 그릇에다 하늘의 백 가지 음식을 가득히 채워 담음이라.
빛을 보고 향기를 맡으면 저절로 배부르고 족함이라.
(금장본 무량의경 덕행품 제1 p1030)
천주천발기 천백미 충만영일 견색문향 자연포족
天廚天鉢器 天百味 充滿盈溢 見色聞香 自然飽足

 [강의] “천주”란 하늘 부엌으로, 일심이 곧 중제(中諦)이며, 하늘의 발우 그릇이란 일심이 곧 공제(空諦)이고, 하늘의 백 가지 음식이란 일심이 곧 가제(假諦)임을 말한다. 본래부터 있어야 하므로 가득 채운다고 했고, 사용해도 다하지 않으므로 가득 넘친다[盈溢]고 했다. 빛을 본다고 말한 것은 법성(法性)의 물체를 보는 것이다. 향기를 맡는다는 것은 법성의 향기 맡음을 말한다. 법성의 색(色)·향(香)은 다 중도이니 사식(四食)을 여의더라도 능히 사대(四大)를 기른다. 일부러 먹지 않으므로 저절로 라고 했고 다시 음식을 구하지 않으므로 배부르고 만족한다고 했다. 

 [경] 하늘 깃대에 하늘 깃발을 날리고 하늘의 헌개(軒蓋)와 하늘의 묘한 악기를 갖추어서 곳곳에 두고 하늘의 기악을 지어 부처님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금장본 무량의경 덕행품 제1 p1030)
천당 천번 천헌개 천묘약구 처처안치 작천기악 오락어불
天幢 天幡 天軒蓋 天妙樂具 處處安置 作天伎樂 娛樂於佛

 [강의] 공양드리는 물건을 나타내었다.
“하늘 깃대에 하늘 깃발을 날린다”란 당번을 말한다. 당번은 보당(寶幢) 또는 천당(天幢) 번기라고도 하며, 기(旗)의 일종이다. 
“헌개”란 천장 덮개로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한 것이다.

 [경] 곧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일심으로 같은 소리로 함께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하되,(금장본 무량의경 덕행품 제1 p1030)
즉전호궤합장 일심구공 동성설게찬언
卽前胡跪合掌 一心俱共 同聲說偈讚言

 [강의] 곧은 도[直道]를 구하기 위하여 먼저 대도사(大導師)의 덕을 찬탄했다. “곧 앞에 나아가”라고 말한 것은 팔만의 보살들이 똑같이 도사이신 부처님 앞에 나아간 것이다. “호궤(胡跪)”란 우슬착지를 말한다. 합장이라고 말한 것은 십이합장 중에서 삼보타합장(三補吒合掌)이다. “일심”이라 말한 것은 삼계는 유심(唯心)이라는 뜻이다. “같은 소리로 함께”라고 말한 것은 8만(보살)이 함께 움직여 8만이 함께 같은 소리를 낸 것이다.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을 했다.”라고 말한 것은 뜻을 살펴본 것이다. 찬탄이란 찬탄의 뜻이다. 곧 앞에 나아가 무릎 꿇은 것은 몸의 공경을 나타내고, 합장하고 일심인 것은 마음의 공경이며, 게송을 설하여 찬탄의 말을 한 것은 입의 공경을 나타낸 것이다.
 
 [경] 크심이여, 크게 깨달으신 대성주시여,
더러움도 없고 물들음도 없고 착하는 바도 없음이라.
하늘이나 사람이나 상마(象馬)를 길들이는 스승이시여
도덕의 바람과 향기가 일체를 감돌며(금장본 무량의경 덕행품 제1 p1030)
대재대오대성주 무구무염무소착 천인상마조어사 도풍덕향훈일체
大哉大悟大聖主 無垢無染無所著 天人象馬調御師 道風德香薰一切

 [강의] 첫째, 찬탄게이다. 게송은 불신을 찬탄하고 귀경(歸敬)을 찬탄하고 부처님 덕을 찬탄한다. 먼저 불신을 찬탄한다. 불신의 찬탄에는 먼저 진신과 보신을 찬탄한다.
 
법신(法身)의 체(體)가 치우침이 없어 마치 허공과 같으니, 그러므로 ‘크심이여’라고 했다. 삼제(三諦)의 경계에 비치지 않음이 없어 마치 큰 해와 같으니 그러므로 크게 깨달으셨다고 했다. 사성(四聖)중 부처님은 성인의 주인이시니 그러므로 진불(眞佛)을 대성주(大聖主)라고 부른다. 영원히 여섯 번뇌[六垢]의 때를 여의었으므로 때가 없다 했고, 영원히 여섯 물듦[六染]을 여의었으므로 물듦이 없다 했고, 모든 경계에 집착하지도 않고 모든 땅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분단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승(乘)에도 집착하지 않으니 이런 까닭으로 진불을 집착함이 없다고 한다.
“하늘 인간 상마를 길들이시는 스승이시여”라고 말한 것은 그 누구도 삼계의 하늘과 삼계의 사람과 상마를 조련하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 한 사람만이 능히 조련하고 제어하신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이 조련하고 제어하신다고 이름 한다.
“도덕의 바람과 향기가 일체를 감돌며”란 일도(一道)의 바람과 삼덕(三德)의 향기 오승(五乘)에 불어와 일체에 풍기니 이런 까닭에 법이 바람이 되고 향기가 일체에 풍긴다고 한다.

[경] 지혜는 밝고 정(情)은 맑고 생각은 고요하여,
뜻도 멸하고 식(識)도 없고 마음 또한 적멸하니,
꿈같은 망상의 생각을 영원히 끊어
다시 모든 대(大) 음(陰) 입(入) 계(界)가 없음이라.
(금장본 무량의경 덕행품 제1 p1032)
지념정박려응정 의멸식망심역적 영단몽망사상념 무부제대음입계
智恬情泊慮凝靜 意滅識亡心亦寂 永斷夢妄思想念 無復諸大陰入界

 [강의] 둘째, 보신(報身)을 찬탄한다.
“지혜와 정과 생각이 고요함”이란 몽상같이 흐릿했던 사지(四智)가 사라졌으므로 지혜가 밝다고 했고, 눈 같이 허망한 육정(六情)이 녹아 없어졌으므로 맑다고 한다. 생각(사려)이란 정려(靜慮)이니 세간의 정려를 여의어 고요하다고 한다.
“뜻과 식과 마음이 적멸함”이란 사량의식을 여의었으므로 의식이 멸했다고 한다. 요별식을 여의었으므로 인식이 없어졌다고 했다. 집기심(集起心)을 여읜 것을 마음이 또한 적멸했다고 한다. 생사의 큰 밤에서 무명의 눈을 깨어나니 영원히 망상을 끊었다고 한다. 생각[思]이란 7심사(尋思)이고, 상념(想)이란 8망상이며, 념(念)이란 잡념을 말하니 이와 같은 생각과 상념 기억들을 여의므로 허망한 사 상 념이라 한다.
“다시는 모든 사대 오음 십이입 십팔계가 없다”란 무명에서 일어난 사대 · 오음 · 십팔계 · 십이입처를 여의므로 다시 대 · 음 · 입 · 계가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