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 

 용수 보살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는 이 게송집은 한역본으로는 558-569년에 진제(眞諦)(499-569)에 의해 1권[K-617 (17-626), T-1656(32-493)]으로 번역되었다. 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외에도 교왕보만론(教王寶鬘論), 중관보만론(中觀寶鬘論)으로도 불린다. 범어명으로는 Rājaparikathāratnamāla, 티벳어로는 rgyal po la gtam bya rin po che'i pheng ba라고 한다. 제목의 보행왕(寶行王)은 샤따바하나(Śātavāhana)의 한역이라고 하며, ‘황금 보석을 지닌 자’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샤따바하나 왕조를 스스로 높이기 위한 황금왕조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저작은 보행왕조의 왕인 자기 친구를 위하여 쓴 편지라는 뜻이다. 진제의 한역본에 원저자가 나와 있지 않아서 용수의 저작에 의심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용수의 저작이라고 분류한다. 
 이 저작은 한 논사가 보행왕(寶行王)에게 불교의 중요한 진리를 설하여, 이를 실천케 하고 이를 바탕으로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설파한 내용이다. 전체가 게송집이며, 그 내용에 따라 5품으로 구성하였다. 첫머리에는 일체 불보살께 정례하는 귀경게가 나오고, 제1 안락해탈품(安樂解脫品)부터 제2 잡품(雜品), 제3 보리자량품(菩提資糧品), 제4 정교왕품(正敎王品), 제5 출가정행품(出家正行品)까지 다섯 품을 통하여 보살도의 내용을 다른 저술에 비해 비교적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다. 이 안에는 불보살의 삼십이상 팔십종호와 대승불교의 주요 보살행, 사무량(四無量) 육바라밀 57추류혹(麤類惑) 등의 수행법과 단혹과 수행계위, 삼승(三乘) 십력(十力) 사변(四辨) 등 대승교설의 용어와 법수(法數) 등이 설해져 있다. 
 이 논서의 내용으로 보아 그 사상적 배경은 4~5세기의 대승불교사상이 반영되어 있어서 이 시기 편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제1 안락해탈품(安樂解脫品)의 내용은 앞에서 십선(十善), 십악(十惡) 등을 통하여 올바른 수행의 안내를 하고, 대승보살의 바라밀 수행으로 바른 정법을 실천하게 하며, 희론으로 간주되는 유무(有無)의 2변(邊)과 아유(我有), 아소(我所)의 2사견(邪見)을 타파하며, 삼세 실유(實有)의 논제를 해명하고 있다. 또한 외도의 사상들로 승거僧倨(Sāṁkhya), 위세사(衛世師; Vaiśeṣika), 니건자(Nirgrantha putra), 유아론(有我論), 자성론(自性論), 구의론(句義論) 등의 사상과 그 진리관을 논파하여 불교의 정법을 바로 세우고 있다.

○ 귀경게(歸敬偈)
 
모든 불보살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頂禮一切佛菩薩

안락해탈품 제1
安樂解脫品 第一

1. 모든 장애를 해탈하여 원만한 덕으로 장엄하신,
중생의 진실하고 훌륭한 벗인 온갖 지혜의 존자께 경례 드립니다.

解脫一切障  圓德所莊嚴 禮一切智尊  衆生眞善友 

*모든 허물과 환란을 벗어나서 갖가지 온갖 덕을 장엄하신 분, 중생에게 유일하게 친구이신 부처님 전에 저는 머리 숙여 경례 드린다는 것이다.
모든 장애를 벗어나서 원만한 덕을 갖추는 것은 자리(自利)의 원만한 덕을 말하고, 중생의 훌륭한 벗이 되어 교화하는 존자는 이타(利他)의 원만한 덕을 말한다.
자리의 덕이란 생사의 환란을 가져오는 중생의 갖가지 장애로 무명에서 인연하여 탐 · 진 · 치를 내고 미혹심과 분별 망상의 습기로 일체과환을 가져오는 소지장(所知障)이 있다. 이 장애는 대상을 실상 그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애욕의 편견으로 보아서 분별 집착하기 때문에 일어나므로 중생의 해탈을 방해하는 근본적 장애이다. 이러한 소지장은 지적인 편견과 무집착과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는 수행으로 타파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리적 수행에 밝은 연각 성문들이 이러한 번뇌를 끊고 보살행을 통해 일체공덕을 갖추므로 원만한 덕을 갖추신 분이 부처님이다.    
이타의 덕은 대자비심으로 일체 중생들이 생사의 환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하려고 중생에게 일체의 선공덕을 베푸는 것이다. 중생의 진실한 친구가 된 것은 구경의 지혜를 얻으신 존자가 중생을 친근히 하여 인도하려는 수승한 대도사의 교화행이다.

2. 정법은 결정코 선하니 법을 사랑하는 대왕을 위하여,
나는 마땅히 법을 설하여 법기(法器)의 사람 흘러들리라.
 
正法決定善  爲愛法大王 我當說由法  流注法器人

*왕을 위하여 닦을 법을 선설하니 이 법은 오직 선법으로 근기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법이니 이를 수행하여 장차 성취하도록 한다.
신행을 따르고 법행을 따르는 두 법기를 위하여 논전을 배우고 닦도록, 작자는 첫머리에서 우선 수승한 대상 경계인 복덕을 쌓으신 분께 머리 숙여 정례 드리고, 정법의 선으로 도를 펴왔다. 국왕이 정법에 나와서 법을 닦도록 내가 장차 처음도 중간도 끝도 청정한 선법을 선설하니 윤회하는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시종 여일하게 착하고 묘한 정법이다. 십선 등의 법으로 닦아서 진여와 지혜를 증득하면 인천의 과위에 오르고 삼보리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국왕은 전륜성왕과 같은 사륜(四輪)과 삼공덕(三功德)을 갖추어 인행을 감당할 법기이므로, 법을 강의 하는 것이다. 곧 국왕은 금·은·동·철의 정법으로 세상을 다스려서 굶주린 백성에게 음식을 베풀고, 헐벗은 백성에게 옷을 입혀주며, 집 없는 백성을 잠재워주는 세 가지 공덕을 베풀 수 있는 자라고 한다.        

3. 먼저 안락의 원인이 되는 법을 설하고 나중에 해탈의 법을 말하며,
중생을 먼저 안락하게 하고 그 이후에 해탈을 얻는다.

先說樂因法  後辯解脫法  衆生前安樂  次後得解脫

*보살은 우선 중생을 고해로부터 건져내고 자신은 그 후에 해탈을 얻는다고 한다. 온갖 중생의 종류에 따라 제도하는 것도 차이가 있다. 보살은 다음의 다섯 가지 삶을 받는다고 한다. 첫째는 세상의 굶주림과 괴로움을 구하는 식고생(息苦生)이고, 둘째는 일체 모든 중생의 종류에 따라서 그들을 제도하는 수류생(隨類生), 셋째는 형색(形色)이나 종족이 부귀한 승생(勝生; 뛰어나고 좋은 삶을 누리는 중생처), 넷째는 보살 초지(初地)에서 십지(十地)에 이르며 온갖 왕이 되는 증상생(增上生), 다섯째는 최후의 몸인 보살이 되는 최후생(最後生)을 말한다.

4. 선도(善道)의 갖춤을 안락이라 이름하며 해탈을 미혹(迷惑)이 다한 것이라 하네,
간략히 이 두 원인을 설하면 오직 믿음과 지혜의 두 가지 근기뿐이네.

善道具名樂  解脫謂惑盡  略說此二因  唯信智二根

*중생의 삶은 선업을 지음에 따라 점차 좋은 안락을 누리게 되며, 무아의 지혜와 생사고해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끊으면 해탈이라고 한다. 안락을 얻는 수행에는 오계 십선법이 있어서 중생이 안락을 얻게 되고, 사제 십이인연법으로 번뇌를 끊고 지혜를 얻는다. 업과(業果) 등의 청정한 믿음과 욕락의 믿음과 성실한 믿음을 닦으며, 제법의 공함과 실상을 깨닫는 지혜를 닦아야 안락을 얻고 해탈을 얻을 수 있다.

5. 믿음으로 인하여 법을 잘 지닐 수 있고 지혜로 말미암아 여실하게 요달 한다네,
두 가지 중에서 지혜가 가장 수승하지만 먼저 믿음을 빌어서 행을 발해야 하네.

因信能持法  由智如實了 二中智最勝  先藉信發行

*수행자가 신심을 갖추어 법에 의지하게 되고, 지혜를 갖추어 제법의 진실을 알게 된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지혜가 주체이지만, 이보다 앞서 신심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행자는 먼저 신심을 갖추어야 성실이 법을 닦을 수 있다. 불교에서의 신심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올바른 신심이 있어야 법에 대한 이해가 있게 되고,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교법을 실천하여 증득이 일어나게 된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지혜가 주도하지만 이보다 앞서 신심이 나와 실천이 이루어질 때 지혜가 개발된다. 나와 세계를 비추어 보고 미혹한 마음을 가려내어 삼계에 윤회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도 지혜이다. 삼계의 고해로부터 신심을 개발하여 선법을 얻어서 안락을 얻고, 생로병사 윤회하는 제법의 인연을 깨닫는 수승한 지혜를 닦아 성문 연각 보살 부처에 이른다.

6. 어리석음 · 탐욕 · 성냄 · 두려움으로써 법을 훼손시킬 수 없음은
마땅히 알라 이것은 믿음이 있음이니 길상(吉祥)의 안락을 법기(法器)라 이름하네.

由癡貪瞋怖  而能不壞法  當知是有信  吉祥樂名器

*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으로 법을 뛰어넘지 않는 것은 신심이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이 신심이 있어서 이로 말미암아 마음을 점차 해탈로 향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신심이야말로 수승한 법기가 되게 하는 결정적인 근기이다.

7. 몸과 입과 생각의 세 가지 업(業) 이미 잘 익히고 간택하여,
항상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니 이 사람을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네.

已能熟簡擇  身口意三業  恒利益自他  說為有智人

*누가 능히 몸으로 업을 짓고 입으로 업을 짓고 뜻으로 갖가지 업을 지어서 생사고해의 과보 받음을 잘 관찰하면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로움을 아니 항상 이와 같이 실천하면 이를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한다.

8. 살생 · 도둑질 · 사음 · 거짓말과 이간질 하는 말,
욕지거리 · 아첨하는 말과 탐욕 · 성냄과 삿된 견해

殺生盜邪婬  妄言及兩舌  惡罵不應語  貪瞋與邪見 

* 십악업을 닦아서 십선을 행하도록 한 것이다. 상생을 경계하고 도둑질하는 것을 끊으며, 진실로 거짓말과 이간질하는 말을 삼가고 욕지거리와 꾸미는 말을 하지 않으며,  철저히 탐욕심과 해치는 마음 삿된 견해를 끊는 일을 십악을 파한다고 하고 반대로 행하면 선업을 쌓는 것이 된다.  

9. 이 법을 열 가지 악업이라 이름하며 이것을 뒤집으면 십선업(十善業)이라 하네.

此法名十惡  翻此卽十善 

10. 술을 마시지 않는 청정한 생활과 핍박의 괴로움이 없는 마음의 베풂과
공양하고 공경받는 것 간략하게 법(法)을 말하면 이와 같으니,
만약 고행만을 행한다면 결코 착한 법이 생기지 않네.

離酒清淨命  無逼惱心施  供養所應敬  略說法當爾 
若但行苦行  決不生善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