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승교학의 수학
 
 당시 사거왕자(莎車王子)와 참군왕자(參軍王子), 형제 두 사람이 나라를 버리고 사문(沙門)이 되었다. 형은 자(字)를 수리야발타(須利耶跋陀)라 하고, 아우는 자를 수리야소마(須利耶蘇摩)라고 하였다.
수리야소마는 재주와 기량이 남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 그는 오로지 대승(大乘)으로써 교화하였다. 그의 형과 여러 학자들이 모두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구마라집도 역시 수리야소마를 존숭하고 받들었다. 또한 가까이 하여 좋아함이 더욱 지극하였다. 수리야소마는 뒤에 구마라집을 위하여 『아뇩달경(阿耨達經)』을 설해 주었다.
 구마라집은 스승에게서 “음(陰)·계(界)·제입(諸入)은 모두 공(空)하고 무상(無相)하다”는 설법을 들었다. 그는 (소승을 공부했기 때문에) 괴이하게 여겨 질문했다. “이 경에는 다시 어떤 뜻이 있어서, 이처럼 제법(諸法)의 현상을 모두 파괴해 버립니까?” 수리야소마는 답하였다. “안(眼) 등의 제법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구마라집은 이미 안근(眼根)이 존재한다고 집착하였다. 수리야소마는 이런 것들은 인연(因緣)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 실체는 없다는 데에 의거하였다. 여기서부터 라집은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을 깊이 궁구하여 밝혀서, 서로 주고받는 문답이 오랜 시일 동안 계속되었다.
 구마라집이 비로소 이치가 돌아가는 곳을 알고는 마침내 오로지 방등(대승)경전을 힘써 공부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탄식하기를, “내가 옛날에 소승(小乘)을 배운 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황금을 알지 못한 채 놋쇠를 가지고 가장 훌륭한 것으로 여긴 것과 같구나.”라고 했다. 그리고는 대승에서 중요한 것들을 널리 구하여, 『중론(中論)』·『백론(百論)』 두 논(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을 외웠다.
 얼마 후, 어머니를 따라 나아가 온숙국(溫宿國)에 이르렀다. 바로 구자국의 북쪽 경계였다. 당시 온숙국에는 한 도사(道士)가 있었다. 신묘(神妙)한 말솜씨가 빼어나서 명성을 여러 나라에 떨쳤다. 그는 제 손으로 왕의 큰 북을 치면서 스스로 맹세하여 말하였다. “논쟁으로 나를 이기는 자가 있으면 내 목을 잘라서 사죄하겠다.”
 구마라집이 이른 뒤에 두 가지 뜻으로 서로 다른 논쟁을 벌였다. 도사는 헷갈려 혼미해져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곧 불교에 머리를 조아리고 귀의(歸依)하였다. 이리하여 구마라집의 명성이 파미르 고원 동쪽에 가득하였다. 또한 명예가 황하(중국) 밖에서도 널리 퍼졌다.


*주석
1) 곧 음(陰)은 오온, 계(界)는 십팔 계, 제입(諸入)은 십이처를 말한다.

 4. 구자국 귀국

 구자국 왕은 몸소 온숙국까지 가서 구마라집을 맞이하여 구자국으로 돌아왔다. 널리 여러 경들을 강설하니, 사방의 먼 지방에서 존숭하고 우러러 아무도 그를 대항할 자가 없었다.
 그 당시 한 왕녀(王女)가 비구니가 되었다. 자(字)를 아갈야말제(阿軻耶末帝)라고 한다. 그 비구니는 많은 경전들을 널리 보았다. 특히 선(禪)의 크나큰 요체를 깊이 알았으며, 이미 이과(사다함과 곧 일래과)를 증득했다고 하였다. 그 비구니는 구마라집의 법문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였다. 이에 다시 큰 모임을 마련하고, 대승 경전의 심오한 이치를 열어줄 것을 청하였다. 구마라집은 이 법회에서 제법은 다 공하여 나라는 실체가 없음[皆空無我]을 미루어 변론하였다. 오온과 십팔계는 임시로 이름한 것이요 실제가 아님[假名非實]을 분별하였다. 그때 법회에 모인 청중들이 지난 일을 생각하여 슬프게 느끼며, 늦게야 깨달은 것을 한탄해 마지않았다.
 구라마집의 나이 스무 살이 되어 왕궁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비마라차(卑摩羅叉)에게 『십송률(十誦律)』을 배웠다. 얼마 후, 구마라집의 어머니는 구자국을 하직하고 천축국(天竺國)으로 가서 구자국왕 백순(白純)에게 “당신의 나라는 얼마 안 되어 쇠(衰)할 것입니다. 나는 이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천축국에 가서 삼과(아나함과 곧 불환과)를 증득하도록 힘쓸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라집의 어머니는 이별에 임하여 구마라집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대승 경전의 심오한 가르침을 중국에 널리 펼치도록 하라. 그것을 동쪽 땅에 전하는 것은 오직 너의 힘에 달려 있을 뿐이다. 다만 너 자신에게만은 아무 이익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하겠느냐.”
 이에 구마라집은 대답하기를, “보살의 도는 중생의 이익(利益)을 위해 자신의 몸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반드시 불법의 큰 교화[大化]를 널리 펴서 몽매한 속세 중생을 깨닫게 할 수 있다면, 비록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는 고통을 당한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구마라집은 구자국에 체류하여 신사(新寺)에 거주하였다. 후에 절 옆에 있는 오래된 궁중에서 처음으로 『방광경(放光經)』을 얻었다. 즉시 경을 펴고 읽으려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