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셋째로 ‘大經’ 아래서는 *지(地)의 이름을 맺는 것에 의해 그 공능(功能)을 드러냈다. 이것에 넷이 있으니, 먼저 경을 인용해 이름을 맺고, 다음으로 ‘地能’ 아래서는 지(地)의 공능을 밝히고, 셋째로 ‘一一禪中’ 아래서는 *결귀(結歸)를 보이고, 넷째로 ‘是故’ 아래서는 이름을 얻게 된 까닭을 맺었다.
三大經下, 結地名以顯功能. 於中四. 初引經結名. 次地能下, 明地功能. 三一一經中下, 結歸. 四是故下, 結得名.
10904지. 보살의 수행의 단계. 곧 십지(十地)의 ‘지’.
10905결귀. 귀착(歸著)된 곳. 귀착점. 귀결.
[석첨] *대경(大經)에 이르되, ‘보살은 선(禪)에 머물러 *감인지(堪忍地)를 얻는다.’
고 하시니, *지(地)는 능히 주지(住持)하며 능히 낳는 구실을 한다.
大經云. 菩薩住禪, 得堪忍地, 地能持能生.
10906대경. 대발열반경. 그 一二의 인용이다.
10907감인지. 십지(十地) 중의 첫째인 초지(初地). 보통 환희지(歡喜地)라 하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중생의 세계에 들어가 온갖 고뇌를 참아낼 수 있다 해서 감인지라고도 한다. 10908지는 능히 주지하며 능히 낳는 구실을 함. 원문은 ‘地能住能生’. 십지의 지(地)에는 머물게 하여 유지시키는 성질(能住)과, 어떤 결과를 낳는 성질(能生)이 있다는 것.
[석첨] 처음의 둘은 글 그대로다.
初二如文.
[석첨] 셋째의 글에 둘이 있다. 처음에서는 전반적으로 그 귀착점을 나타내 보였다
第三文二. 初總標.
[석첨] 하나하나의 선정 중에는, 다 자비․서원과 *도품(道品)의 *육도제행(六度諸行)이 있어서 갖추지 않음이 없다.
一一禪中, 皆有慈悲誓願, 道品六度諸行, 無不具足.
10909도품.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방법). 도(道)는 깨달음. 품(品)은 부분이니, 깨달음의 일부분.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을 이르나, 육도(六度)를 도품이라 하는 경우도 있다.
10910육도제행. 육도는 육바라밀. 육바라밀은 모든 선행의 근본이므로, 이를 확대하면 온갖 선행이 되고, 합치면 육바라밀이 된다는 뜻. 육도만행(六度萬行)이라고도 한다.
[석첨] 다음으로 ‘何者’ 아래서는 해석했다. 해석 중에 둘이 있으니, 먼저 관선(觀禪)의 *구법(具法)을 밝히고, 다음으로 연선(練禪) 따위도 그러하여 같은 예(例)에 속함을 보였다.
처음의 관선 중에도 둘이 있으니, 먼저 *삼종념처(三種念處)를 갖추고 있음을 밝히고, 다음으로 ‘又不淨’ 아래서는 *사념처(四念處)를 갖추고 있음을 밝혔다.
次何者下, 釋. 釋中二. 先明觀禪具法. 次例練禪等亦然. 初觀禪中二. 先明具三種念處. 次又不淨下, 明具四念處.
10911구법. 갖추고 있는 법. 다른 법을 갖추고 있음을 이른다.
10912삼종념처. 사념처(四念處)를 관함에 세 종류가 있다는 것. (1)성념처(性念處). 무생(無生)의 공(空)의 도리를 연으로 하여 번뇌를 끊는 경지. 곧 지혜 만에 의지해 사념처를 닦는 일인데, 지혜는 본디 자기에게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므로 성념처라 한다. (2)공념처(共念處). 계율․선정을 닦는 중에서 지혜로 관하여 삼명(三明)․육통(六通)을 얻는 경지. 계(戒)․정(定)과 혜(慧)가 어울림으로써 이루어지는 경지이기에 공념처라 한다. 물론 주(主)가 되는 것은 혜요 계․정은 종속적 위치인 데 머무르나, 양자가 함께 작용함에 특징이 있다. (3)연념처(緣念處). 널리 삼장(三藏)과 세속의 도리들을 대상으로 취하여 깨닫는 경지. 이 셋은 혜해탈(慧解脫)․구해탈(俱解脫)․아라한(阿羅漢)에 해당한다.
10913사념처. 2666의 ‘總相念處’의 주.
[석첨] 왜 그런가. 계(戒)․정(定) 중에서 *관혜(觀慧)를 밝힘은 곧 *공념처(共念處)요, *홀로 관(觀)을 논함은 성념처(性念處)요, 전반적으로 계․정 따위 경지문자(境智文字)들을 밝힘은 연념처(緣念處)다.
何者. 若於戒定中明觀慧, 卽共念處. 單論觀, 是性念處. 通取戒定等, 境智文字等, 是緣念處.
10914관혜. 관상(觀想)의 지혜.
10915공념처. 10659의 ‘三種念處’의 주 참조. 이하의 성념처․연념처도 같다.
10916홀로 관을 논함. 원문은 ‘單論觀’. 계․정과의 관련이 없이, 혜(관혜)만에 의거하는 것. 10917경지문자. 경(境)은 대상. 지(智)는 대상을 관조하는 지혜. ‘문자’는 가르침. 진리를 이해하도록 설해진 가르침.
[석첨] 처음의 글에서는 , *잠시 관선(觀禪)을 가리켜 이것을 선정이라 하고, *또 작법(作法)의 계율을 일러 계율이라 했다. 사념처(四念處)를 얻었기에, 다시 관선과 작법의 계율을 얻게 된 것이니, 그러므로 일러 공념처(共念處)라 한 것이다. 만약 궁극적인 차원에서 공념처를 논한다면, 반드시 *멸정(滅定)과 *무루도(無漏道)를 얻어야만 바야흐로 공념처라는 이름을 받을 수 있겠으나, 지금의 이것은 초심자(初心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