次文言本愛味心中修等者. 前已約次第法, 以判五味. 此中若人判五味可然. 如何九種大禪, 得以愛味心中修等耶. 答. 名同義異. 如六度名, 本在於大. 名下之義, 亦徧世間, 及界內外, 巧拙不同. 六中禪度, 豈局於大. 故使九禪, 愛味心修, 便成有漏. 雖用九意, 不能利他, 卽成自度. 故知非但令法體不同, 亦及由心而由差別. 以此差別, 是故從心, 更判五味.
11041 차제의 법에 입각함. 원문은 ‘約次第法’. 단계적으로 보는 법. 법을 순서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일.
11042 만약 사람에 입각해 오미를 구별한대도 그러한 결과가 됨. 원문은 ‘若約人判五味可然’. 앞에서 근본선은 유미요 연선은 낙미라 하는 따위의 판단을 내린 것은, 선정의 종류를 오미와 결부시킨 것이므로 법에 입각한 구별이다. 이에 비해 하나의 선정도 닦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오미의 구별이 지어진다는 것이다.
11043 육도. 육바라밀.
11044 내외. 불교 안과 불교 밖. 불교와 외도(外道). 혹은 내범(內凡)의 뜻으로도 볼 수 있다.
11045 교졸. 뛰어남과 졸렬함. 뛰어난 육바라밀과 졸렬한 육바라밀. 교도(巧度)와 졸도(拙度)로도 볼 수 있으니, 5876의 ‘巧拙’의 주.
11046 선도. 선정바라밀.
11047 유루. 2962의 주.
11048 이타. 남을 구제하는 일. 중생의 구제.
11049 자도. 10602의 주.
11050 법체. 법 자체.
[석첨] 다음으로 개현(開顯)을 밝힌 것 중에 셋이 있다. 처음에서는 바로 개현을 밝혔다.
次開中三. 初正明開.
[석첨] 만약 *개추현묘(開麤顯妙)한다면, *아나바나(阿那波那)가 곧 *마하연(摩訶衍)이다. 법계실상(法界實相)은 온갖 법을 *거두어서 지니는 터이므로, 이를 떠난 바깥의 어디에도 다시 별도의 묘(妙)는 없다고 해야 한다.
若開麤顯妙者. 阿那波那, 卽是摩訶衍. 法界實相, 攝持諸法. 離此之外, 更無別妙.
11051 개추현묘. 6366의 주.
11052 아나바나. 8257의 ‘安般’과 같다.
11053 마하연. 3455의 주.
11054 법계실상. 법계와 실상. 법계나 실상은 본원적인 진리를 이르므로, 이 둘은 거의 동일한 말이다.
11055 거두어서 지님. 원문은 ‘攝持’.
[석첨] 다음으로 ‘故知’ 아래서는 맺어서 보였다.
次故知下, 結示.
[석첨] 그러므로 아노니, 모든 부처님의 *성도(成道)․*전법륜(轉法輪)․*입열반(入涅槃)이 *다 사선(四禪)에 있었던 것이다.
故知諸佛成道轉法輪入涅槃, 皆在四禪.
11056 성도. 불도의 완성. 깨달음. 성불.
11057 전법륜. 2825의 주.
11058 입열반. 열반에 드시는 것. 부처님이 돌아가시는 것. 입멸.
11059 다 사선에 있었음. 원문은 ‘皆在四禪’. 부처님(석존)은 사선에 드신 상태에서 열반에 드셨다고 전해진다.
[석첨] 셋째로 ‘四禪’ 아래서는, 추리(推理)함을 들어 맺었다.
三四禪中下, 擧況結.
11060 추리. 원문은 ‘況’. 이를테면 어릴 때가 이러하므로 어른이 된 뒤에도 이럴 것이라고, 미루어 아는 일.
[석첨] 사선(四禪) 중에서 실상(實相)을 봄을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이라 이르는 것이니, 하물며 다른 선정들이겠는가. 이것이 *절대묘(絶待妙)의 도리다. *정성행(定聖行)의 해석이 끝난다.
四禪中見實相, 名禪波羅蜜, 何況餘定耶. 此卽絶待妙義. 定聖行竟.
11061 절대묘. 7174의 주.
11062 정성행. 선정에서 본 성행. 성행에는 계(戒)․정(定)․혜(慧)의 세 가지 면이 있었다.
법화현의 석첨 권제오(卷第五)의 상(上)
[석첨] 다음으로 *혜성행(慧聖行)을 밝히는 중에 둘이 있다. 먼저 표시해 이름을 세웠다.
次明慧聖行中二. 先標列.
11063 혜성행. 지혜의 성행.
[석첨] 혜성행(慧聖行)이란 *사종사제(四種四諦)다…….
慧聖行者, 謂四種四諦之慧云云.
11064 사종사제. 2759의 주.
[석첨] 다음에서는 해석했다. 해석하는 중에서 다만 *사종사제(四種四諦)를 해석함에 그치고, 다시 *판별(判別)․개현(開顯)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앞의 두 행(行)은 모두가 *외범(外凡)의 위계(位階)에 있는 터이므로, 비록 그 얕고 깊은 상(相)을 판별한다 해도 *초심(初心)에서 신심을 확립하여, 모름지기 *농담(濃淡)을 밝히는 것에 의해 원대한 뜻을 나타내도록 유도하고자 함이 그 취지였다. 그러나 지금 혜성행(慧聖行)은 처음에는 *초주(初住)로부터 시작하여 끝으로는 *초지(初地)에 이르는 단계여서, 행(行)이 스스로 친히 증득(證得)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판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위계를 거침에 따라 새로 깊어져서 내용이 *사교(四敎)와 같아지므로 이미 판별에 해당하고, *초지는 깨달음이 동일하므로 내용이 개현한 것에 해당하니, 그러므로 *이 행에서는 다시 판별하고 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굳이 이를 판별하려 한다면, *주전(住前)은 *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