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8 의정. 10625의 주.
11139 정전도. 10432의 ‘四倒’의 주 참조.
11140 제수. 수(受)는 외계의 것을 받아들여 고(苦)․낙(樂)․불고불락(不苦不樂) 등을 느끼는 일. 감각․지각․인상 따위에 해당하는 작용. 감수작용. ‘제수’는 모든 감수작용.
11141 삼고. 10659의 주.
11142 낙전도. 10432의 ‘四倒’의 주 참조.
11143 제행. 온갖 사물. 온갖 현상(존재).
11144 화합. 결합. ‘제행의 화합임을’이라 함은, 여러 물질적 요소의 결합에 의해 모든 존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11145 아전도. 10432의 ‘四倒’의 주 참조.
11146 제심. 온갖 마음의 작용.
11147 생멸. 마음이 순간적으로 생겼다가 없어졌다 하는 일.
11148 상전도. 10432의 ‘四倒’의 주 참조.
11149 별상․총상. 별상념처와 총상념처니, 2666의 ‘總相念處’의 주 참조.
11150 정근. 사정근(四正勤)이니, 3563의 ‘正勤’의 주.
11151 여의. 사여의족(四如意足)이니, 3564의 ‘如意’의 주
11152 근. 오근(五根)이니, 645의 ‘五根’의 주.
11153 역. 오력(五力)이니, 647의 ‘五力’의 주.
11154 각. 칠각지(七覺支)니, 2782의 ‘七覺分’의 주.
11155 도. 팔정도(八正道)니, 2569의 ‘八正’의 주. 사념처에서 팔정도에 이르는 이것들은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의 내용이다.
11156 육도제행. 10657의 주.
11157 대승의 상. 원문은 ‘大乘相’. 소승 중에서도 보살이 있어서 육바라밀을 듣는 것을 이른 것뿐이니, 대승에도 통하는 면을 지녔다는 뜻이어서, 결코 대승이라는 뜻은 아니다. 4611의 ‘六度菩薩’의 주 참조.
11158계정혜. 계율․선정․지혜의 삼학(三學).
11159 능제. 번뇌를 제거하는 주체.
11160 업. 악업. 악한 행위.
11161 적멸. 열반.
11162 제의 상. 원문은 ‘除相’. 번뇌가 제거된 양상.

 [석첨]*도제․멸제의 혜(慧) 중에서 함께 ‘제거하는 상’이라 한 것에 대해 살펴보자. *제거는 멸제(滅諦)의 상이니, 고제․집제는 *제거될 대상이요, 도제는 *제거하는 주체다. 그런데 멸제는 이미 번뇌를 제거해 마쳤으므로 ‘능(能)’이라는 글자가 따라붙음이 없는 것이며, 멸해진 것을 따라 이름을 삼았기에 ‘저가된 상(除相)’이라 말한 것이다.
 
道滅諦慧中, 俱云除相者. 除是滅家之相, 苦集是所除, 道是能除. 滅是除已, 故無能字. 從所滅爲名, 故云除相.

11163 도제․멸제의 혜. 원문은 ‘道滅諦慧’. 앞의 ‘전도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하의 글은 멸제에 관한 것이다.
11164 제거는 멸제의 상임. 원문은 ‘除是滅家之相’. 번뇌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멸제의 상이라는 것. 멸가(滅家)는 멸제의 뜻이다.
11165 제거될 대상. 원문은 ‘所除’.
11166 제거하는 주체. 원문은 ‘能除’. 번뇌를 제거하는 당사자.

 [석첨] 다음으로 *무생사제(無生四諦) 중의 글에 둘이 있으니, 먼저 사제를 다루고, 다음에서는 *원행(願行)을 밝혔다.
 처음의 사제의 글은 *스스로 넷이 되었던 바, 그 모두에 다 *표(標)․결(結)이 있으니, 글의 특질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 이하에서는 다시 글의 내용을 구별하지 않으나, 그 하나하나에 *법비(法譬) 따위가 있음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次無生中文二. 先四諦. 次願行. 初四諦中自四. 並有標結, 文相易知. 從此下, 不復分出, 一一並有法譬等. 可見.

11167 무생사제. 2759의 주.
11168 원행. 10056의 주.
11169 스스로 넷이 됨. 원문은 ‘自四’. 사제의 하나하나를 따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11170 포․결. 표명(標名)과 결어(結語). 이름을 나타내 보이는 것과, 전체를 맺는 말.
11171 법비. 190의 주.

 [석첨]무생사제(無生四諦)의 혜(慧)란 이렇다. *부정(不淨)의 색(色)을 관하건대 *색성(色性)이 스스로 공할 따름이니, 색이 멸하여 공이 됨은 아니다. 거울 속의 상(像)에 진실성이 없는 것과도 같아, 깊이 *오수음(五受陰)은 공해서 존재함이 없는 줄 통달함으로써, *고(苦)에 고가 없음을 이해하여 진제(眞諦)가 있으면, 이것이 고제(苦諦)의 혜(慧)다.
 *집(集)은 마음에 말미암되 마음이 *환화(幻化)같기에, 일어나게 되는 집도 환하다 같은 수밖에 없으니, 온갖 *애견(愛見)은 허공과 동등하다고 알면, 이를 집제(集諦)의 혜라 이른다.
 *도(道)는 본래 *집(集)을 대치(對治)하는 것이거니와, *대치되는 그것이 이미 환화 같으므로 *대치하는 이것도 환화 같을 수밖에 없으니, 이것을 도제(道諦)의 혜라 이른다.
 법에 만약 생(生)이 있다면 또한 멸(滅)도 있을 것이나, 법이 본디 생긴 바 없었다면 이제 멸하지도 않을 것이니, ‘만약 *어느 하나의 것이 열반보다 더한 것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나는 또한 환화 같다고 설하리라’ 한다면, 이를 멸제(滅諦)의 혜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