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처음의 지옥의 해석에서 ‘바수’라 말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방등다라니경(方等陀羅尼經) 제一권에서 이르되,
 ‘그때 바수(破籔)가 지옥으로부터 나와, 九십 二억의 여러 죄인들을 이끌고 사바세계에 오며, 시방세계에도 그러했느니라’ 하고,
 그때 문수보살이 사리불(舍利弗)에게 이르기를,
 ‘이 여러 죄인들은 부처님이 출현하지 않으셨을 때에 *악행을 지은 탓에 지옥을 거쳐, 이제 *화취(華聚)가 큰 광명을 놓음으로 말미암아 그 광명을 받아 *아비지옥에서 나오게 됨이다’
하자, 사리불이 이렇게 말했다 한다.
 ‘오랫동안 부처님께서 이 *바수선인이 악행을 지어 지옥에 떨어졌다고 설하심을 들어왔는데, 어떻게 지금은 지옥에서 나와 여래를 만나 뵙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온갖 중생들이 *틀림없이 과보를 받는다고 헤아림을 깨고자 하기에 지옥으로부터 나옴이니라. 선남자야. 바수를 지옥에 떨어진 사람이라 이르지 말라. 어째서 그런가. 바수의 <바>는 천(天)을 말하고 <수>는 혜(慧)를 말하니, 어떻게 *천혜(天慧)를 지닌 사람이면서 지옥에서 고를 받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또 <바>는 광(廣)을 말하고 <수>는 통(通)을 말하니, 널리(廣) 온갖 도리에 통달(通)했는데도 필경에는 지옥에 살면서 고를 받는다는 것은, 끝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는 또 <바>는 고(高)를 말하고 <수>는 묘(妙)를 말하며, <바>는 단(斷)을 말하고 <수>는 지(智)를 말하며, <바>는 강(剛)을 말하고 <수>는 심(尋)을 말하며, <바>는 자(慈)를 말하고 <수>는 비(悲)를 말한다. 운운(云云)하사, 자세함이 *초구(初句)의 경우와 같다 하신 끝에, 경은 자세히 바수가 *양을 죽이던 처음의 인연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지니, 바수는 결코 *우연히 그렇게 된 사람이 아닌 것이다. 또 *조달(調達)은 *삼역죄(三逆罪)를 지어 산채로 지옥에 떨어짐을 보이는 것에 의해 무량한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역죄(逆罪)를 짓지 못하게 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지니, 둘이 다 *무구(無垢)의 힘인 것이다.
 또 역죄를 보임에 있어 여러 행위가 동일하지 않다. 곧 *회심(廻心)하지 않음을 보인 것이 있으니 조달 ․ *가리(伽離)와 같음이 그것이요, 혹은 회심을 보이기도 했으니 *아사세왕 ․ *앙굴마라와 같음이 그것이다. 또 회심 중에서 업장(業障)이 흔들린 끝에 착한 근기가 생겨남이 있으니 아사세왕과 같음이 그것이요, 업장이 흔들리지 않은 채 착한 근기가 생겨남이 있으니 앙굴마라와 같음이 그것이다. 회심하지 않음을 보이는 중에 *발적(發迹)하는 경우가 있으니 조달과 같음이 그것이요, 같은 처지인데도 발적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가리와 같음이 그것이다. 또 발적 중에서 *기(記)를 주심이 있으니 조달과 같음이 그것이요, 같은 발적 중에도 기를 주시지 않음이 있으니 바수와 같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바수의 경우는 비록 기를 주시지는 않았다 해도, 지옥의 무리들을 이끌고 와서 *방등경(方等經)을 듣게 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이들은 다 정말로 악인임은 아니었던 것이니, 다른 것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하의 하나하나의 글 중에서 ‘과환’이라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살피건대, 만약 *삼혹(三惑)을 과환이라 한다면 *이십오유(二十五有)는 다름이 없는 것이 되나, 만약 자세히 논할 때는 사람의 *성행(性行)에 따라 곧 여러 경지에 차등이 없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견사(見思) 중에서라면 *견혹은 차등이 없지만, 사혹에는 약간 다름이 있을 것이다. 곧 *초선(初禪)으로부터 한 경지를 실현할 때마다 사혹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이니, 초선에 든 사람에게는 *욕계(欲界)의 사혹이 없고, 내지는 *비상(非想)의 경우라면 *팔지(八地)의 욕망이 없음이 그것이다. *만약 악업(惡業)을 논한다면 그 이름은 다시 가까워질 것이니, 도리에 의거해서는 다만 *사취(四趣)에만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글에서는 악업이라는 이름을 공통적으로 사용해 동서이주(東西二洲)에 이르고 있고, *북주(北洲)에서부터는 다만 과보라 이름했을 뿐인데, *과보라는 이름은 공통이나 악업이라는 이름은 무겁다. 그러므로 북주에 이르러서는 *특수함을 버리고 공통적인 이름을 쓴 것이니, *공통적인 이름은 가볍기 때문이다.
 또 *아래의 감응묘(感應妙) 중의 해석을 따르건대, *기(機)라는 이름과 응(應)이라는 이름에는 각각 세 가지 뜻이 있는 터이나, 지금은 잠시 간략한 쪽을 따라 해석했으므로 각각 *하나의 뜻이 있음이 되었다. 물론 아래의 이십오(二十五)의 감응 중에서는 하나하나 이를 말했으니, *가발(可發) ․ 관(關) ․ 의(宜)와 부(赴) ․ 대(對) ․ 응(應)이 이것이다. 또 보살의 *삼업(三業)은 중생을 이롭게 하지 않음이 없거니와, 지금의 글에서 다만 *몸을 보여 법을 설한다고 말하고 의업(意業)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것은, 저 *이업(二業)을 쓰되 중생의 근기에 어긋나지 않음은 곧 의업의 뛰어난 작용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묘음 ․ 관음 중에서 ‘*응당 어떤 몸으로 득도(得度)할 자는 곧 그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고 말한 것이요, 또 ‘응당 ……으로’라는 말을 의업이라 함은, ‘응당 ……으로’는 오직 중생의 근기와 어긋나지 않음을 보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아래의 감응묘의 부분에서 *자비가 삼세(三世)에 동일하지 않음을 요간(料簡)한 바에는, 응당 *법신 ․ 응신이 동일하지 않으며 중생의 근기 또한 선악의 차별이 있다 해야 하겠으나, 지금은 다만 *바로 나열했을 뿐이니, 마땅히 취지에 있어 통함을 알아야 할 것이요, 내지는 *십계(十界)의 교호(交互) 또한 그러하다……. 글은 비록 아래에 있다 해도 마땅히 미리 알아둠이 좋으니, 하나의 유(생존) 중에서 널리 그 상(相)을 생각한 끝에 열어서 널리 설하여 듣는 자로 하여금 널리 생각하게 한다면, 이십사유(二十四有)는 분명히 스스로 이해함이 될 것이다. 만약 그러하지 못한다면, 장차 어떻게 *무연자(無緣慈)를 배운다고 이를 수 있겠으며, 장차 무엇을 가지고 원융하게 유를 깨는 행(行)을 할 수 있겠는가. 내용은 비록 *차제(次第)의 차원에 있다 해도, *증도(證道)에 의거해 지레 설한들 무슨 지장이 생기랴. 하나하나에서 다 ‘깬다.’고 말함은, 차제의 수행은 초지(初地)에 있고, 초지는 부분적인 도의 성취인 까닭이다. 성취하면 *초심(初心)의 서원을 이루는 것이 되니, 그러므로 ‘본법(本法)의 공덕’이라 이른 것이다.

初地獄中云婆籔者. 方等陀羅尼經第一卷云. 爾時婆籔, 從地獄出. 將九十二億諸罪人輩, 來詣娑婆世界. 十方亦然. 爾時文殊語舍利弗. 此諸罪人, 弗未出時, 造不善行, 經歷地獄. 因於華聚放大光明, 承光從於阿鼻獄出. 舍利弗言. 久聞弗說此婆籔僊, 作不善行, 入於地獄. 云何今說出於地獄, 得値如來. 佛言. 爲欲破一切衆生, 計定受果報故. 善男子. 勿謂婆籔是地獄人. 何者. 婆者言天, 籔者言慧. 云何天慧之人, 地獄受苦. 又婆者言廣, 籔者言通. 廣通一切, 究竟住於地獄受苦, 終無是事. 又婆者言高, 籔者言妙. 婆言斷, 籔言智. 婆言剛, 籔言柔. 婆言慈, 籔言悲等. 廣如初句. 經仍廣明殺羊初緣. 當知婆籔, 非聊爾人也. 調達者. 示造三逆, 現墮地獄, 令無量人, 不敢造逆. 當知竝是無垢之力也. 又示逆中, 諸行不同. 有示不廻心者, 如調達伽離. 或示廻心, 如闍王央掘. 又廻心中, 有障動機發, 如央掘. 示不廻心中, 有發迹如調達, 有不發迹如伽離. 又發迹中, 有與記如調達, 有不與記如婆籔. 婆籔雖不與記, 引地獄衆, 聽方等經, 當知皆非實惡人也. 餘例可知. 下去一一文中言過患者. 若以三惑爲過, 二十五有無殊. 若委論之, 從人性行, 卽諸地不無差降. 於見思中, 見無差降, 思惑稍殊. 從初禪去, 地地漸輕. 如初禪人, 無欲思惑, 乃至非想, 無八地欲. 若論惡業, 其名更近. 據理秖在於四趣. 今文通至東西二洲, 北洲已去, 但名果報. 報名則通, 惡業名重. 故至北洲, 捨別用通, 通名輕故. 又準下感應妙中, 機名應名, 各有三義. 今且從略, 各存一義. 至下二十五感應中, 則一一言之. 可發 ․ 關 ․ 宜. 赴對應之. 又菩薩三業, 無非益物. 今文但云示身說法, 不云意者. 用彼二業, 不差物機, 卽意之善巧也. 故妙音觀音中, 云應以何身得度者, 卽現其身而爲說法. 又云應以之言爲意業者, 應以秖是與機不差故也. 又下感應中, 料簡慈悲三世不同. 應有法應不同, 機復仙惡差別. 今但直列, 當知意通. 乃至十界, 交互亦爾云云. 文殊在下, 應豫知之. 於一有中, 廣思其相, 開拓演布, 使聽者曠懷. 則二十四有冷然自照. 若不爾者, 將何得名學無緣慈. 將何以爲圓破有行. 義雖次第, 依於證道, 豫說何妨. 一一皆言破者. 次第在初地已上, 初地分成. 成遂初心, 故云本法功德.

11610악행. 원문은 ‘不善行’.
11611화취. 보살의 이름.
11612아비지옥. 원문은 ‘阿鼻獄’. 무간지옥. ‘아비’의 원어는 avici. 끊어질 사이 없이[無間] 고통이 계속되는 지옥. 오역(五逆) ․ 방법(訪法)의 죄인이 여기에 떨어진다. 八대지옥의 하나.
11613바수선인. 원문은 ‘婆籔僊’. 선(僊)은 선(仙)과 같은 글자. 출가한 수행자를 ‘선인’이라 한다.
11614틀림없이 과보를 받는다고 헤아림. 원문은 ‘計定受果報.’ 과보를 고정적인 것으로 아는 사견.
11615천혜. 천인(天人)의 지혜.
11616초구와 같음. 원문은 ‘如初句’. 첫째 구에서 ‘어떻게 지옥에서 고를 받겠느냐’고 하신 말씀.
11617양을 죽이던 처음의 인연. 원문은 ‘殺羊初緣’. 대지도론에서는 천신에 제사지내기 위해 살생을 해도 천상에 난다고 말했기 때문에 바수가 지옥에 떨어졌다 하고, 죽이는 희생이 양이라고 못 박지는 않고 있다. 이에 반해 방등다라니경에서는, 희생으로 바치려는 양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지옥에 떨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11618우연히 그렇게 됨. 원문은 ‘聊爾’ 어쩌다가 그렇게 되는 것. 여기서는 우연히 지옥에서 나오게 되는 일.
11619조달. 1156의 주.
11620삼역죄. 세 가지 대역죄. “문구”에서는 아세왕을 시켜 술 취한 코끼리를 내몰아 부처님을 밟아 죽이려 한 일과, 손톱에 독을 바르고 불족(佛足)에 예배하여 해코자 한 일과, 돌을 굴려 부처님의 발에서 피가 나게 한 일이라 했다.
11621무구. 무구삼매를 이른다.
11622회심. 마음을 돌리는 것. 악을 참회하여 마음을 선한 쪽으로 돌리는 일.
11623가리. 구가리(瞿伽離)니, 제바달다(조달)의 제자. 스승의 악을 적극 돕다가 지옥에 떨어진 인물.
11624아사세왕. 원문은 ‘闍王’. 4337의 주.
11625앙굴마라. 원문은 ‘央掘’. 4431의 ‘殃掘摩羅’의 주.
11626발적. 1700의 주
11627기를 줌. 원문은 ‘與記’. 356의 ‘授記’와 같다.
11628방등경. 대승의 경전.
11629삼혹. 탐 ․ 진 ․ 치.
11630이십오유는 다름이 없는 것이 됨. 원문은 ‘二十五有無殊’. 삼혹을 지닌 점에서 이십오유는 동등하기 때문이다.
11631성행. 성질과 행위.
11632견사. 1098의 주.
11633견혹은 차등이 없지만, 사혹에는 약간 다름이 있음. 원문은 ‘見無差降, 思惑稍殊’. 진리를 모른 점(견혹)에서는 비슷하나, 감정적 번뇌(사혹)에 있어서는 차등이 난다는 뜻.
11634초선. 1383의 ‘四禪’의 주 참조.
11635욕계의 사혹이 없음. 원문은 ‘無欲思惑’. 욕계의 사혹을 끊고 색계의 선정에 들어간 첫 단계가 초선이기 때문이다.
11636비상. 비상비비상처정. 7918의 주.
11637팔지의 욕망이 없음. 원문은 ‘無八地欲’. 삼계(三界)를 욕계 ․ 사선(四禪) ․ 사무색정(四無色定)으로 나누면 구지(九地)가 성립하는데, 지금은 그 마지막인 비상비비상처정에 있으므로, 앞의 여덟 단계의 사혹은 없어진 것이 된다. 욕(欲)은 사혹.
11638만약 악업을 논한다면 그 이름은 다시 가까워짐. 원문은 ‘若論惡業, 其名更近’. 사혹의 이름이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처까지 이르는데 비해, 악업은 욕계에만 있는 까닭이다.
11639사취.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의 세계. 기준에 따라서는 축생계까지를 삼악도라 하듯 악행의 보로 칠 수 있으나, 여기서는 아수라까지도 거기에 포함시킨 것이다.
11640동서이주에 이름. 원문은 ‘至東西二洲’. 아래의 글에서 동주 ․ 서주까지 악업과 연관시켜 설명한 일.
11641북주에서부터는 다만 과보라 이름했음. 원문은 ‘北洲已去, 但名果報’. 사주(四洲)의 양상을 보이는 그에서, 동주 ․ 서주를 악업의 결과라 하고, 북주에서는 악업 ․ 과보라는 말도 쓰지 않았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과보에 해당한다. 봄이겠고, 남주에서는 업(業)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11642과보라는 이름은 공통이나 악업이라는 이름은 무겁다. 원문은 ‘報名則通, 惡業名重’. 과보는 삼계의 생존에 다 통하는데 비해, 악업은 욕계에만 통하는 점에서 과환(過患)의 뜻이 무겁다.
11643특수함을 버리고 공통적인 이름을 씀. 원문은 ‘捨別用通’. 악업이라 하지 않고 과보를 내세웠다는 뜻.
11644공통적인 이름은 가볍기 때문임. 원문은 ‘通名輕故’. 악업에 비해 과보 쪽은 과환이 가볍다는 것.
11645아래의 감응묘 중의 해석. 원문은 ‘下感應妙中’. 권륙(卷六)의 상(上)의 처음의 글을 가리킨다.
11646기라는 이름과 응이라는 이름에는 각각 세 가지 뜻이 있음. 원문은 ‘機名應名, 各有三義’. 기(機)는 중생의 근기요, 응(應)은 그것에 응하는 부처님의 작용. ‘기’의 세 뜻이란 미 ․ 관 ․ 의다. 미(微)란 기미니, 중생 쪽에 선으로 나아가려는 기미가 있으므로 부처님이 이에 응하사 제도하실 때는 선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활에 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 작용이 있는 것에 비유되는 점에서 가발(可發)이라고도 한다. 관(關)은 중생에 선이 있고 악이 있어서 부처님의 자비에 연관을 짓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의(宜)는 어울림이니, 무명의 고를 제거하려 하면 비(悲)에 어울리며, 법성(法性)의 낙을 주려 할 때는 자(慈)가 어울림과 같다. ‘응’에 따르는 세 뜻이란 부 ․ 대 ․ 응이다. 부(赴)란 중생 쪽에 선이 움직이려는 기미가 있을 때는 부처님이 달려가서 그 선이 발생하도록 해 주심을 이른다. 대(對)는 중생의 요구에 맞추어 대응하시는 일이다. 응(應)이란 어울리는 법으로 응하심을 이른다.
11647하나의 뜻. 원문은 ‘一義’. 중생 쪽에서 볼 때는 의(宜)가 있고, 부처님 쪽에서 말할 때는 응(應)이 있음이 된 일.
11648가발. 미(微)를 이르니, 앞의 11210의  주 참조.
11649삼업. 4461의 주.
11650다만 몸을 보여 법을 설한다고 말함. 원문은 ‘但云示身說法’. 몸을 보임은 신업이요 설법함은 구업이니, 그러기에 의업은 언급하지 않은 듯 여겨지기도 한다.
11651이업. 신업 ․ 구업.
11652묘음. 법화경의 묘음보살품 二四를 이른다.
11653관음.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 二五를 이른다.
11654응당 어떤 몸으로 득도할 자는…….’ 원문은 ‘應以何身而得度者, 卽現其身而爲說法’.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부처님의 몸으로 제도할 자란 관음보살이 곧 부처님의 몸 나투어 법을 설하며, 벽지불의 몸으로 제도할 자란 곧 벽지불의 몸 나투어 법을 설하며……’라 하여, 삼십삼신(三十三身)의 교화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일을 말한다.
11655자비가 삼세에 동일하지 않음을 요간함. 원문은 ‘料簡慈悲三世不同’. 과거 ․ 현재 ․ 미래의 삼세는 본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생의 차원에서 삼세가 있는 듯 설하시는 것뿐인데, 그런 처지에서 자비를 삼세별로 설하신 일을 이른다. ‘내가 본래 서원을 세워, 이 법을 얻게 하게 하고자 했다’고 하심은 과거의 자비로 응하심이요, ‘온갖 천인 ․ 아수라 등은 다 마땅히 이리로 오라, 법을 듣기 위해.’라 하심은 현재의 자비로 응하심이요, 미래의 자비는 수량품 기타에 널리 나타나 있다.
11656법신 ․ 응신이 동일하지 않음. 원문은 ‘法應不同’. 법신은 삼세를 초월하는 부처님이시요, 응신은 삼세에 나타나는 부처님이시다.
11657바로 나열함. 원문은 ‘直列’. 기와 응에 각각 여러 차별이 있으나, 공통적인 면만 취해서 설했다는 뜻.
11658십계의 교호. 원문은 ‘十界交互’. 십계가 서로 바뀌는 일. 십계의 하나하나에도 무수한 차별이 있다는 것.
11659무연자. 1239의 주.
11660차제. 순서를 따르는 수행.
11661증도. 3224의 주.
11662초심. 초발심(初發心). 처음으로 구도의 뜻을 일으키는 것.

 [석첨] 축생(畜生)의 유(有)를 *불퇴삼매(不退三昧)로 깬다 함에 대해 살피건대, 축생은 *참괴(慚愧)함이 없는지라 *선도(善道)를 *퇴실(退失)하니, 곧 악업 때문에 퇴실하며, 견사(見思) 때문에 퇴실하며, 진사(塵沙) 때문에 퇴실하며, 무명(無明) 때문에 퇴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 같은 온갖 퇴실을 깨기 위해, 앞의 지계(持戒)를 닦아 악업의 퇴실을 깨며, 선정을 닦아 견사의 퇴실을 억제하며, *생(生)⋅*무생(無生)의 지혜를 닦아 견사의 퇴실을 깨며, *무량(無量)의 지혜를 닦아 진사의 퇴실을 깨며, *무작(無作)의 지혜를 닦아 무명의 퇴실을 깨는 것이니, 견사가 깨지기에 *위불퇴(位不退)를 얻어 *진제삼매(眞諦三昧)가 이루어지며, 악업⋅진사가 깨지기에 *행불퇴(行不退)를 얻어 *속제삼매(俗諦三昧)가 이루어지며, 무명이 깨지기에 *염불퇴(念不退)를 얻어 *중도삼매(中道三昧)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본디 여러 수행을 닦을 때 다 자비의 서원이 있어 암묵리에 법계에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니, 만약 기연(機緣)이 있어서 자비에 관련된다면, 왕삼매(王三昧)의 힘으로 법성(法性)을 움직이지 않은 채 달려가서 이에 응하게 된다. 그렇다면 의당 어떤 몸을 보이며, 의당 어떤 법을 설해야 할 것인가. 용이 되고 코끼리가 되며, *탈조(鵽鳥)가 되고 *대취(大鷲)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도(善道)의 근기가 있으면 계(戒)⋅정(定)의 자비를 가지고 응해 고에서 나와 낙을 얻게 한다. 입공(入空)의 근기가 있으면 생⋅무생의 혜(慧)의 자비를 가지고 응해 유(有)에서 나와 *무(無)를 얻게 하니, 진제삼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입가(入假)의 근기가 있으면 무량의 혜의 자비를 가지고 응해 공(空)을 벗어나 가(假)를 얻게 하니, 속제삼매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입중(入中)의 근기가 있으면 무작의 혜의 자비를 가지고 응해 *변견(邊見)에서 나와 중도에 들게 하니, 왕삼매(王三昧)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살은 자기가 이미 퇴실하지 않으므로 타인을 퇴실치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불퇴삼매라 이른다.

畜生有用不退三昧破者. 畜生無慚愧, 退失善道. 則是惡業故退. 見思故退. 塵沙故退. 無明故退. 菩薩爲破諸退, 修前持戒, 破惡業退. 修於禪定, 伏見思退. 修生無生慧, 破見思退. 修無量慧, 破塵沙退. 修無作慧, 破無明退. 見思破故, 得位不退, 眞諦三昧成. 惡業塵沙故, 得行不退, 俗諦三昧成. 無明破故, 得念不退, 中道三昧成. 本修諸行, 皆有慈悲誓願, 冥熏法界. 彼畜生中, 若有機緣關於慈悲, 以王三昧力, 不動法性而往應之. 宜示何身, 宜說何法. 爲龍爲象, 鵽鳥大鷲. 若有善機, 以戒定慈悲應之, 令出苦得樂. 有入空機, 以生無生慧慈悲應之, 令出有得無, 眞諦三昧成. 有入假機, 以無量慧慈悲應之, 令免空得假, 俗諦三昧成. 有入中機, 以無作慧慈悲應之, 令出邊入中, 王三昧成. 菩薩自旣不退, 令他不退, 故名不退三昧也.

11663불퇴삼매. 퇴실(退失)하지 않는다는 이름의 삼매.
11664참괴. 부끄러워함. 제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
11665선도. 육도(六道) 중, 비교적 살기 좋은 곳. 천상⋅인간을 이르고, 혹은 아수라계까지 포함시켜 三선도라 하기도 한다.
11666퇴실. 잃어버리는 것.
11667생. 생멸사제.
11668무생. 무생사제.
11669무량. 무량사제.
11670무작. 무작사제.
11671위불퇴. 얻은 위계로부터 퇴전하지 않는 일. 삼불퇴(三不退)의 하나.
11672진제삼매. 공제의 삼매.
11673행불퇴. 얻은 수행에서 퇴전함이 없는 것. 三불퇴의 하나.
11674속제삼매. 가제(假諦)의 삼매. 가관.
11675염불퇴. 정념(定念)에서 퇴전하지 않는 일.
11676중도삼매. 중도제의 삼매. 곧 왕삼매.
11677탈조. 북방의 사막에 있는 참새.
11678대취. 큰 독수리.
11679무. 공(空)의 뜻.
11680변견에서 나옴. 원문은 ‘出邊’. 한쪽에 치우친 견해가 변견이니, 성자의 공제⋅가제도 변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