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이 아홉 부분의 글에 대해 생각건대, 그 하나하나는 다, 모름지기 중도의 도리에 입각해 무명을 깨어, 무연자비(無緣慈悲)를 가지고 타인을 구제하려 하기에 *발여(拔與)할 때에는 바야흐로 이 글에 응해야 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경에서는 성행(聖行)을 해석함에 제십삼권(第十三卷)을 다 소비하고, 제십사권(第十四卷) 첫머리에 이르자 범행품(梵行品)을 밝히기 시작하여 제십팔권(第十八卷)에서야 마치고 있다. 그리하여 범행품 첫머리에서는 *칠선(七善)을 밝히고, 다음으로는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대해 자세히 해석했는바, 이미 *중생연(衆生緣) 따위 셋으로 자무량(慈無量)을 해석했으니, *다른 셋도 그 예(例)에 준하건대 또한 응당 *셋 모두를 구비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중에서 인용된 것은 다 범행품 안에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차제행(次第行) 쪽을 드러내기 위해 구별해 복덕에 속한다 하고, *그러므로 법취(法聚)라 말한 것이다. 만약 무연자비가 삼제(三諦)의 도리에 어울린다면 *다시 복덕은 아니라 해야 하나, 낙을 주고 고를 제거하는 쪽에 입각할 때는 *그대로 복덕에 속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지금의 글에서는 잠시 복덕에 소속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 체(体)는 중도니, 그러므로 처음의 글에서 ‘이변(二邊)의 애견(愛見) 따위가 없다’고 말한 것이어서, 애견은 유(有)의 변견(邊見)이요 증득(證得)은 무(無)의 변견이다. 결국 초심(初心) 이래 *중도의 정덕(淨德)을 인식해 자비를 일으키니, 그러므로 범행이라 이르는 것이 된다. 그리고 희사(喜捨)라 말한 것에 있어서는, 모든 중생이 이미 *이사(二死)를 떠나 중도의 낙(樂)을 얻고 있음을 보고 기쁨을 낳음이 희(喜)요, 이변(二邊)에 떨어질까 두려워해 항상 중생에 대해 법계라는 생각을 일으키니, 이를 일러 사(捨)라 한다고 할 수 있다.

此之九文. 一一皆須約中理破無明, 無緣慈悲, 爲利他故, 而爲拔與, 方應此文. 經釋聖行, 盡第十三, 至第十四卷初, 明梵行品, 盡第十八卷. 品初釋七善. 次廣釋四無量心. 旣以衆生緣等三, 釋慈無量. 餘三準例, 亦應具三. 故此中所引, 竝在梵行品內. 顯次第邊, 判屬福德, 故云法聚. 若無緣慈, 稱三諦理, 則非福德. 約與拔邊, 仍屬福德. 故今文中, 須且屬福. 然體是中道, 故初文云, 無二邊愛見等. 愛見是有邊, 證得是無邊. 從初以來, 緣於中淨而起慈悲, 故名梵行. 言喜捨者, 見諸衆生, 已離二死, 得中道樂, 而生歡喜. 恐墜二邊, 常於衆生, 起法界想, 名之爲捨.

11912발여. 발고여락(拔苦與樂). 남을 교화해 그 고를 제거하고 낙을 주는 것.
11913칠선. 9770의 ‘七善法’의 주.
11914사무량심. 8227의 ‘無量’의 주.
11915중생연 따위 셋. 원문은 ‘衆生緣等三’. 10898의 ‘慈具三種’의 주 참조.
11916다른 셋. 원문은 ‘餘三’. 비무량․희무량․사무량.
11917셋 모두를 갖춤. 원문은 ‘具三’. 셋이란 삼연자비.
11918차제행 쪽. 원문은 ‘次第邊’. 차제행에 기운 도리. 차제행에 기운 변견. 차제행은 순서를 따라 수행하는 별교의 도리.
11919그러므로 법취라 말함. 원문은 ‘故云法聚’. 십지(十地) 이전(차제행)에서는, 여러 행이 모여서 반야지(般若智)를 돕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11920다시 복덕은 아니라 해야 함. 원문은 ‘非復福德’. 무연자비가 삼제의 도리에 어울리는 것은 중도의 반야지이기 때문이다.
11921그대로 복덕에 속함. 원문은 ‘仍屬福德’. 중도의 지혜에 도달한 초지 이상의 보살이라 해도, 중생을 교화하는데 있어서는 복덕(五바라밀)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1922중도의 정덕. 원문은 ‘中淨’. 중도에 갖추어진 청정한 성질.
11923이사. 9790의 주.

 [석첨] 셋째로 *천행(天行)에 대해 살피건대, *열반경은 이에 대해 해석하지 않고 잡화경(雜華經)에 있다고 가리키는데 그쳤으니, 곧 화엄경을 이른 말이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중에서는 화엄경을 가리켜 부사의경(不思議經)이라고도 일렀는바, 마땅히 알라. 모두 번역자가 이름을 취함에 각각 차별이 있는데서 온 결과일 뿐, 그 내용에 다름이 있음은 아니다. *그러므로 저 경에서는 초지(初地) 이상을 아울러 천행에 포함시켰는가 하면, 초주(初住)에서 이십오삼매(二十五三昧)를 얻는 경우에도, 곧 이 위계(位階)로부터 다 천행에 포함되는 것으로 쳤으니, *이 경은 두 취지를 겸하는 까닭에 *처음의 것과 뒤의 것이 서로 상대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차제행(次第行)의 취지에 선다면, 초지에 이르렀을 때에야 바야흐로 무생(無生)을 깨닫는 것이 된다.
 이 중에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이름을 해석함에 입각해 위계를 가리고, 다음으로 ‘菩薩’ 아래서는 천행에 이르는 경지를 밝히고, 셋째로 ‘天行’ 아래서는 다른 사행(四行)에 배당시키는 것에 의해, 행(行)이 있는 까닭을 가려 보였다.

三天行者. 涅槃不釋, 指在雜華, 卽華嚴也. 若大論中, 指華嚴經, 名不思議經. 當知竝是隨翻譯者取名各別, 其義不殊. 所以彼經, 從初地已上, 竝是天行所攝. 若從初住得二十五三昧, 卽從此位, 皆天行攝. 方證無生. 於中爲三. 初約釋名辨位. 次菩薩下, 明天行所到. 三天行下, 對餘四行, 以辨有行之由.

11924오행. 9589의 ‘五行’의 주 참조.
11925열반경은 이에 대해 해석하지 않고 잡화경에 있다고 가리키는데 그침. 원문은 ‘涅槃不釋, 指在雜華’. 열반경 범행품 끝에서 천행에 대해 설하지 않고, ‘천행품은 잡화경에서 설한 바와 같다’고 한 일. ‘화엄’의 원어 Gandavyuha는 ‘여러 꽃의 장식’이라는 뜻이어서, 한역으로는 잡화엄식(雜華嚴飾)이 된다. 그러므로 이를 줄여 잡화경이라 하나 화엄경이라 하나 무방한 것이다.
11926그러므로. 원문은 ‘所以’. 화엄경의 세 이름 중, 특히 ‘부사의경’에 연관시킨 이론이다. 11927이 경은 두 취지를 겸함. 원문은 ‘經兼二意’. 화엄경은 원교․별교를 겸하고 있는 경이다. 89의 ‘非兼非帶’의 주 참조.
11928처음의 것과 뒤의 것이 서로 상대를 나타냄. 원문은 ‘初後更顯’. 처음의 것은 초주요, 뒤의 것은 초지. 글로 치면 처음의 것은 십주품이요, 뒤의 것은 십지품. 그리하여 십주는 별교의 경지요 십지는 원교의 차원이나, 원교․별교가 겸해진 경이기에 십주에도 원교가 포함되고 십지에도 별교가 포함됨이 되었다는 뜻.
11929차제행. 원문은 ‘次第’. 별교의 수행.

 [석첨] 셋째로 천행(天行)이란 *제일의천(第一義天)이다. *천연(天然)의 도리 바로 그것, 이는 *도전(道前)을 말함이며, 도리에 말미암아 행(行)을 성취하는 것, 이는 *도중(道中)을 말함이며, 행에 말미암아 도리가 드러나는 것, 이는 *도후(道後)를 말함이거니와, 지금은 도리에 말미암아 행을 성취하는 면에 서니, 그러므로 천행이라 말하는 것이다.

三天行者, 第一義天. 天然之理, 此語道前. 由理成行, 此語道中. 由行理顯, 此語道後. 今約由理成行, 故言天行.

11930제일의천. 11132의 주.
11931천연의 도리. 원문은 ‘天然之理’. 인위(人爲)가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도리. 사람 쪽에서 깨닫고 안 깨닫고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도리는 본래부터 그렇게 존재한다는 견해다.
11932도전. 도리를 깨닫기 이전의 위계(位階). 천연의 도리가 천연의 도리인 채로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단계다.
11933도중. 도리를 깨닫는 위계.
11934도후. 깨달은 이후의 위계.

 [석첨] 처음의 글에서 도전(道前) 따위라 말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도(道)란 *자행(自行)의 진실의 도다. 그런데 진실의 도에 *계합(契合)하지 못해서 진여(眞如)가 *번뇌 속에 있으므로 이름해 도리라 함이니, 그러기에 *지전(地前)을 일러 도전(道前)이라 한다. 이에 비해 초지(初地) 이상은 이미 진실의 도를 깨닫고, 다시 이 도리에 말미암아 *뒤의 행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니, 처음으로 깨달은 이후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기 이전을 아울러 도중(道中)이라 이르고, 이 경지의 행으로 말미암아 도리가 구경에 이르러 드러나면, 이 드러난 도리를 일러 도후(道後)라 하는 것이니, 자행의 깨달음의 뒤에 나타나는 경지이므로 도후라 이른다 할 수 있다. 지금은 초지에서 드러난 도리를 가지고 다시 제이지(第二地)의 행을 *결성(結成)했으니, 그러므로 천행이라 이른 것이다.

初文言道前等者. 道謂自行眞實之道. 未契實道, 眞如在纏, 故名爲理. 故以地前, 名爲道前. 初地已上, 已證實理. 復由此理, 成於後行. 初證已後, 究竟已前, 竝名道中. 由此地行, 理究竟顯. 已顯之理, 名爲道後. 自行證後, 故名道後. 今以初地所顯之理, 復結成於第二地行, 故云天行.

11935자행. 243의 주.
11936계합함. 원문은 ‘契’. 어울리는 것. 일치하는 것.
11937번뇌 속에 있음. 원문은 ‘在纏’. 2041의 주.
11938지전. 952의 주.
11939뒤의 행. 원문은 ‘後行’. 초지(初地) 이상의 행.
11940결성. 637의 주.

 [석첨] 보살은 비록 초지(初地)에 들어간다 해도 초지에 머물 수는 없으니, *얻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위의 십지(十地)의 지혜를 닦아 *십중(十重)으로 *진수(眞修)의 지혜를 일으키는 것이니, 도리에 말미암아 행을 성취함을 일러 천행이라 하는 것이다.

菩薩雖入初地, 初地不應住, 以有所得故. 後上十地慧, 十重發眞修慧. 由理成行, 名爲天行.

11941얻은 것이 있기 때문임. 원문은 ‘以有所得故’. 처음으로 중도를 깨달아, 그 깨달음에 매이는 것이 초지이기 때문이다.
11942위의 십지. 원문은 ‘上十地’. 제이지(第二地)에서 묘각(妙覺)에 이르기 까지는 십일지(十一地)임이 되나, 이 천행은 전적으로 화엄경의 취지를 따르고 있는데, 그 경에서는 등각(等覺)을 세우지 않았으므로 십지임이 된다.
11943십중. 열 단락. 열 단계. 중(重)은 겹치는 것을 헤이는 말.
11944진수. 진실한 수행. 바르고 철저한 수행.

 [석첨] 두 번째의 이 글에 대해 살피건대, 십중(十重)을 깨서 미치면 천행은 바야흐로 그친다 할 수 있다.

次文破十重已, 天行方息.

 [석첨] *천행은 곧 지혜장엄(知慧莊嚴)이다. 위로 불도(佛道)를 구하므로 성행․천행이 있으며,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범행․병행․영아행이 있는 것이다.

 天行, 卽智慧莊嚴. 上求佛道, 破聖行天行. 下化衆生, 故有梵行病行嬰兒行也.

 11945천행은 곧 지혜장엄임. 원문은 ‘天行, 卽知慧莊嚴’. 천행은 천연의 도리를 드러내 체득하는 수행인 까닭이다. ‘지혜장엄’에 대하여는 4713의 주.

 [석첨] 셋째의 이 글에서 지혜장엄 따위라 말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하나하나의 경지 중에서 다 중도의 지혜로 *중도의 도리를 장엄(莊嚴)해, 진실에 의거해 수행하는 까닭이다.

第三文言慧莊嚴等者. 一一地中, 皆以中慧, 莊嚴中理, 依眞修行也.

11946중도의 도리를 장엄함. 원문은 ‘莊嚴中理’. 장엄은 미화의 뜻이니, 여기서는 중도의 도리를 실현함이 장엄이다.

 [석첨] 넷째로 *영아행(嬰兒行)에 대해 살피건대, 열반경의 제십팔(第十八)의 글 끝에 나와 있다. 그리하여 지금의 글에서 나열된 것도 고루 열반경의 글과 같으나, 다만 대열반경의 글은 불차제행(不次第行)을 늘어놓고 다음에 차제행(次第行)을 밝힌데 대해, 지금의 글에서 먼저 차제행을 밝히고 있는 것은 점교(漸敎)를 앞에 하고 돈교(頓敎)를 뒤에 하는 취지를 성립시키고자 한 까닭이다. 그러나 비록 앞서고 뒤섬이 동일하지는 않다 해도 다 불차제행을 드러내기 위한 취지일 뿐이다.
 이 중에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바로 해석하고, 다음에서는 *구별하고, 셋째부분에서는 *개현(開顯)했다.
 처음의 글에 다섯 부분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바로 행(行)의 체(体)를 밝히고, 다음으로 ‘天行’ 아래서는 천행과 대립시켜 *명현(冥顯)의 동일치 않음을 구별하고, 셋째로 ‘衆生’ 아래서는 행을 쓰는 취지를 밝히고, 넷째로 ‘慈善’ 아래서는 *기감(機感)의 양상을 밝히고, 다섯째로 ‘漸修’ 아래서는 바로 행의 양상을 내보였다.

第四嬰兒行者, 在第十八文末. 今文所列, 具如經文. 但大徑文, 善列不次第行, 次明次第. 今文先明次第者. 成前漸後頓故爾. 雖前後不同, 竝是爲顯不次第耳. 於中爲三. 初正釋. 次判. 三開. 初文爲五. 初正明行體. 次天行下, 與天行對冥不同. 三衆生下, 冥用行意. 四慈善下, 明機感之相. 五漸修下, 正出行相.

11947영아행. 9589의 ‘五行’의 주 참조.
11948점교를 앞에 하고 돈교를 뒤에 함. 원문은 ‘前漸後頓’.
11949구별함. 원문은 ‘判’. 사교(四敎)로 구별한 것. 곧 판교(判敎).
11950개현. 원문은 ‘開’. 6366의 ‘開麤顯妙’의 주.
11951명현. 명익(冥益)과 현익(顯益). 명익은 불․보살이 남모르게 주시는 이익. 현익은 드러나게 주시는 이익.
11952기감. 7074의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