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갖가지 몸을 나타내 보이시되’라 말한 데서 ‘천치 같다’에 이르기 까지는 병행이 악과 함께하심을 이른 것이니, 처음에는 *아비지옥으로부터 내지는 등각(等覺)의 *일품(一品)의 무명 까지를 다 병행이라 이른다. 그리하여 그 중에서 극악의 몸을 나타내시니 그러므로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 같다’고 이른 것이며, 극악의 법을 설하시니 그러므로 ‘미치광이 같고 천치 같다’고 이른 것이다.
 ‘사자좌에 걸터앉았다……’라 말한 것에 있어서는, 원만한 *보신(報身)이 공의 도리에 앉아 계시매, 다시는 *통별(通別) 따위의 혹(惑)이 없으시고 또한 *팔마(八魔) 따위의 두려움도 없으심을 사자좌라 이른 것이며, ‘보배궤짝에 발을 놓았다’ 함은 정(定)․혜(慧)를 발로 하며 *실제(實諦)를 궤짝이라 한 것이니, 곧 *무생(無生)의 정과 혜가 진여(眞如)의 경지에 의지해 계시는 일이다.
 *경에서 또 ‘바라문’이라 말한 것은 팔지(八地) 이상의 보살이요, ‘*찰리(刹利)’라 함은 칠지(七地) 이하요, ‘거사’라 함은 범부다. 그리고 ‘상인’이라 함은 여러 보살들이 *삼토(三土)에 나타나,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기로 하며,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오기도 하면서 부처님의 교화를 돕는 일이다. 또 ‘이잣돈을 내고 들인다’ 함은, *二로되 二 아님이 ‘들임’이요 二 아니로되 二임이 ‘냄’이다. 또 *二 아니로되 二임이 ‘들임’이요 二로되 二 아님이 ‘냄’이다. 또 *무량(無量)이 도리어 一임을 ‘들임’이라 하고 또 一 중에서 무량임을 ‘냄’이라 한다. *응당 내는 까닭을 해석해야 한다…….

言示種種身至如癡者. 病行同惡, 始從阿鼻, 乃至等覺一品無明, 皆名病行. 能於其中, 顯極惡身, 故云如聾如瘂. 說極惡法, 故云如狂如癡. 言踞師子牀等者. 圓滿報身, 安處空理. 無復通別之惑, 亦無八魔等畏, 名師子牀. 寶几承足者. 定慧爲足, 實諦爲几. 卽無生慧, 依眞如境也. 經又云婆羅門者, 八地已上. 刹利者, 七地已還. 居士者, 凡夫. 商估者, 諸菩薩等, 現於三土. 此往他方, 他方來此. 出入者, 二而不二是出. 又無量還一爲入, 一中無量爲出. 應釋出所以云云.

12300아비지옥. 원문은 ‘阿鼻’. 11176의 ‘阿鼻獄’의 주.
12301등각. 1207의 주.
12302일품의 무명. 원문은 ‘一品無明’. 8346의 주.
12303보신. 3988의 ‘三身’의 주 참조.
12304통별 따위의 혹. 원문은 ‘通別之惑’ 통혹(通惑)과 별혹(別惑). 통혹은 이승과 보살에 공통되는 번뇌니, 견혹과 사혹이 그것. 별혹은 보살만의 번뇌. 삼혹(三惑)에서 볼 때, 견사혹은 통혹이요, 진사혹은 별혹이다.
12305팔마. 오음(五陰)․번뇌․사(死)․천(天)․무상. 고공(苦空)․무아(無我)․부정(不淨)을 마로 보아, 오음마․번뇌마 따위로 부른다.
12306실제. 진제(眞諦)와 같으니, 3051의 ‘二諦’의 주 참조.
12307무생. 6175의 주.
12308경에서 또 ‘바라문’이라 말함. 원문은 ‘經又云婆羅門’. 아들이 대문가에 서서 바라보자니, ‘그 아비 사자좌에 걸터앉아서 보배궤짝에 두 발을 놓았는데, 여러 바라문․찰리․거사가 다 그를 공경해 에워싸 모셨으며……’라고, 경에서 말한 일. 이는 본문에서 인용하지 않은 부분이나, “석첨”이 곁들여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12309찰리. ‘찰제리’의 준말. 왕족. 사성(四姓)의 하나.
12310삼토. 천태대사가 세운 네 종류의 불국토를 사토(四土)라 하니, (1)인천(人天)의 범부와 성문․연각의 성자가 함께 사는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와, (2)견혹․사혹을 끊어 삼계를 초월한 이가 쓰는 방편유여토(方便留餘土)와, (3)중도의 도리를 깨달은 보살이 거주하는 실보무장애토(實報無障礙土)와, (4)궁극의 진리를 체득하신 부처님들의 거처인 상적광토(常寂光土)가 그것이다. 지금 앞의 세 국토를 삼토라 한 것이다.
12311二로되 二 아님이 ‘들임’이요, 二 아니로되 二임이 ‘냄’이다. 원문은 ‘二而不二是入, 不二而是出’. 돈을 꾸어 주어서 이자를 취하는 비유에서, 교화를 베푸는 것은 ‘내줌’과 같으니 중생 쪽에서는 교화를 받는 일이요, 수행이 향상되면 부처님 쪽에서는 이자를 ‘받아들이는’ 일이 된다. 그리하여 가르침을 받는 중생 측의 경지를 ‘냄’이라 하고, 수행으로 얻어진 깨달음을 ‘들임’이라 한 것이다. 한편으로 二는 차별을 뜻하고, 이런 차별이 차변인 채 차별이 아님이 불이(不二)니, 불이는 곧 평등을 이른 말이어서 공(空)과 같다. 따라서 ‘二로되 二가 아님이 ‘들임’이다’ 함은, 차별의 공함을 이해함이 ‘들임’이라는 뜻이요, “二가 아니로되 二임이 ‘냄’이다” 함은 공한 것을 차별인 줄 알고 있는 것이 이들이었다 함이 된다. 그러므로 이는 공제의 도리에서 들이고 냄을 논한 것이 된다.
12312二 아니로되 二임이 ‘들임’이요, 二로되 二아님이 ‘냄’이다. 원문은 ‘不二而二是入, 二而不二是出’. 공에서 다시 차별로 들어감이 ‘들임’이요, 이들은 차별의 공한 면에 매어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 이는 곧 가제(假諦)의 ‘들고 남’이다.
12313무량이 도리어 一임을 ‘들임’이라 하고, 一 중에서 무량임을 ‘냄’이라 한다. 원문은 ‘無量還一爲入, 一中無量爲出’. 이는 중도제(中道諦)의 견해니, 무량은 가제의 무수한 차별을 나타내고, 一은 원융한 중도실상을 뜻한다. 그리하여 차별이 그대로 중도가 됨이 그 깨달음이요, 이들은 바로 전까지 중도실상을 무수한 차별로만 여겨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12314응당 내는 까닭을 해석해야 한다……. 원문은 ‘應釋出所以云云’. 뜻이 모호하다. 그래서 ‘出’ 밑에 ‘入’을 끼어 넣어서 읽어야 한다는 설도 있으나, 그런다 해도 꼭 필요한 말인 것 같지는 않다.

 [석첨] 가르침에 배당하는 것에 의해, 근기와 견해가 다르기에 법으로 하여 동일하지 않게 함을 밝히니, 그러므로 원교와 대립시켜 구별했다.

次對敎以明機見別故, 令法不同, 故與圓對辨.

 [석첨] 만약 *차례로 이끌어 원교에 들게 하는 일이라면 앞에서 설한 바와 같고, 만약 *급히 이끌어 원교에 들게 하는 일이라면 이제 설하는 바와 같아질 것이다. 그러나 *원교에 들어가면 똑같이 깨닫는 것이어서 다시 차별이 있음은 아니다. 다만 별교․원교의 초입(初入)의 문(門)을 드러내기 위해, *자선근(慈善根)의 힘이 *점돈(漸頓)의 사람으로 하여금 이 같은 설을 보게 하는 것뿐이다…….

若漸引入圓, 如前所說. 若頓引入圓, 如今所說. 入圓等證, 更無差別. 爲顯別圓初入之門, 慈善根力, 令漸頓人, 見如此說云云.

12315차례로 이끎. 원문은 ‘漸引’. 순서를 따라 수행하는 일. 점교의 입장.
12316급히 이끎. 원문은 ‘頓引’. 급속히 깨닫는 수행 방법. 돈교적 수행.
12317원교에 들어가면 똑같이 깨달음. 원문은 ‘入圓同證’. 별교의 보살도 초지에 들어가면 원교의 깨달음을 얻어, 그때부터 원교의 보살이 된다.
12318별교․원교의 초입의 문. 원문은 ‘別圓初入之門’. 초지에 이르기 전의 두 법문.
12319자선근. 11520의 주.
12320점돈. 점교와 별교.

 [석첨] ‘원교에 들어가면 똑같이 깨닫게 된다’고 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앞글에서는 차례로 이끄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해 지금은 급히 일시에 끌어들이는 모습을 밝힌 것이어서, *교도(敎道)에는 비록 초지(初地)의 다름이 있다 해도, *증도(證道)에서 볼 때는 다를 것이 없어서 똑같이 하나의 원교를 이룬다는 취지다. 그리고 ‘별교․원교의 초입(初入)의 문을 드러내기 위해’라 함은, *지전(地前)에는 여전히 방편의 설이 남아 있으므로 전후의 두 글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앞글에 의존할 때는 차례로 *이관(二觀)을 닦기는 결과가 되고, 뒷글에 의거할 때는 삼관(三觀)을 원만히 닦는 결과가 되어, 이렇게 동일하지 않은 점이 있는 까닭에 두 가지 차별을 이룬다는 뜻이다.

入圓等證者. 前文漸引. 今明頓入. 敎道雖有初地之殊, 證道無別, 同成一圓. 爲顯別圓初入之門者. 地前仍前權說, 故立前後二文. 依前則次第修於二觀, 依後則三觀圓修. 有此不同, 故成二別.

12321교도. 247의 주.
12322증도. 3224의 주.
12323지전. 952의 주.
12324이관. 공관가 가관.
12325삼관을 원만히 닦음. 원문은 ‘三觀圓修’. 696의 ‘圓融三諦’의 주 참조.

 [석첨] 다음으로 전래(前來)의 모든 *경지(境智)에 대해 해석한 것에서는, 또한 앞에 나온 *증수(增數) 따위의 행(行)도 해석해야 할 것이나 글에 보이지 않는 것은 생략한 때문이니, 또한 이미 오행(五行) 속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본 것이겠다. 이제 해석함에 있어 처음에는 *인연으로부터 끝으로는 *일제(一切)에 이르기 까지를 다루었다. 앞의 모든 경지는 *개현(開顯)하고 나면 한가지로 한 법을 이루니, 그러므로 지금은 행을 밝힘에 있어, 도리어 전래의 모든 경(境)․모든 지(智)를 해석하여 지금의 불가사의의 행인 *일행일체행(一行一切行)에 대비함으로써, 한가지로 경지와 함께 *일체행일행(一切行一行)을 이루게 하였다.

次消前來諸境智者. 亦應消前增數等行, 文無者略. 亦可已在五行中收. 今始從因緣, 終至一諦. 前諸境智者, 若開顯已, 同成一法. 故今明行, 還消前來諸境諸智, 對今不可思議之行, 一行一切行. 令使同與境智, 俱成一切一行.

12326경지. 4286의 주.
12327증수. 9478의 주.
12328인연. 십이인연.
12329일제. 3035의 주.
12330개현. 251의 ‘開權顯實’의 주.
12331일행일체행. 9504의 주.
12332일체행일행. 한 행 속에 일체의 행을 갖춤이 ‘일행일체행’인데 대해, 모든 행이 한 행으로 돌아옴이 일체행일행이다.

 [석첨] 또 원교의 오행(五行)은 곧 *사종십이인연(四種十二因緣)의 지(智)의 행이니, *부사의(不思議)의 *식(識)․명색(名色) 따위가 청정함은 곧 계(戒)의 성행(聖行), *행(行)․유(有) 따위가 청정함은 곧 정(定)의 성행, *무명(無明)․애(愛) 따위가 청정함은 곧 혜(慧)의 성행이요, *십이지(十二支)가 *적멸(寂滅)하고, 또 앞의 삼종(三種)의 십이인연이 없기에 이름은 곧 천행(天行)이요, 능히 앞의 삼종의 십이인연의 멸(滅)에 동조함은 곧 영아행(嬰兒行)이요, 앞의 십이인연의 생(生)에 동조함은 곧 병행(病行)이다.

又圓五行, 卽是四種十二因緣智行. 不思議識名色等淸淨, 卽戒聖行. 行有等淸淨, 卽是定聖行. 無明愛等淸淨, 卽慧聖行. 十二支寂滅, 又無前三種十二緣, 卽天行. 能同前三種十二因緣滅, 卽嬰兒行. 同前十二因緣生, 卽病行.

12333사종십이인연. 권이(卷二)의 하(下)의 글 참조.
12334부사의. 사종십이인연 중의 부사의불생불멸(不思議不生不滅)의 십이인연을 이른 말이다.
12335식․명색 따위. 원문은 ‘識名色等’. 식․명색 따위는 삼도(三道) 중의 고도(苦道)에 해당한다.
12336행․유 따위. 원문은 ‘行有等’. 행과 유는 삼도 중의 업(業)에 해당한다.
12337무명․애 따위. 원문은 ‘無明愛等’. 무명과 애는 삼도 중의 혹도(惑道)에 해당한다. 12338십이지. 십이인연.
12339적멸. 십이인연이 소멸되어 절대적 안정이 실현된 일.

 [석첨] 처음에서 십이인연에 대비시킨 것에 관해 살피건대, *계(戒)는 명색(名色)에 관련되므로 부사의십이인연의 명색을 부사의의 계에 대비시키고, 부사의의 업(業)이 멸하면 부사의의 정(定)이 되고, 부사의의 혹(惑)이 멸하면 부사의의 *지(智)가 된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진리에 *다른 상(相)이 없으므로 천행(天行)이라 했을 것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初對因緣者. 戒是名故, 以不思議色, 對不思議戒. 不思議業滅, 成不思議定. 不思議惑滅, 成不思議智. 理名異相, 故名天行.

12340계는 명색에 관련되므로. 원문은 ‘戒是色故’. 직역하면 ‘계는 색이므로’. 명색은 정신(名)과 육체(色)의 복합체를 이르는 말이어서 오온(五蘊)으로 표현되는 우리들의 개인존재다. 그러나 계에서 문제 삼는 마음은 아직 육체에 지배되는 상태인 점에서 육체를 중요시하여 ‘색’만을 내세운 것이다. 그리고 계에도 탐․진․사견 따위 정신과 관련되는 것도 있으나, 그런 것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함이 계의 단계기에, ‘계는 색이다’라는 단정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12341지. 본문에서 혜(慧)라고 한 것에 해당한다.
12342다른 상. 원문은 ‘異相’. 대립의 양상.

 [석첨] 또 *사종사제(四種四諦)의 지(智)의 행이니, *무작(無作)의 *도(道)는 곧 계․정․혜의 성행, 무작의 *멸(滅)은 곧 천행이요, 자비로 고(苦)에서 건지는 것 중, *사종(四種)의 고에서 건져 사종의 낙을 줌은 곧 범행이요, 다만 비(悲)인 것은 곧 병행, 다만 자(慈)인 것은 곧 영아행이다.

又是種四切智行. 無作之道, 卽戒定慧聖行. 無作之滅, 卽天行. 慈悲拔苦, 拔四種苦, 與四種樂, 卽梵行. 直悲卽病行. 直慈卽嬰兒行.

12343사종사제. 2759의 주.
12344무작. 무작사제를 가리킨다.
12345도. 도제.
12346멸. 멸제.
12347사종의 고. 원문은 ‘四種苦’. 사종사제의 고제.
12348다만 비임. 원문은 ‘直悲’. 비의 한쪽만 발휘하는 것. 자비의 ‘비’의 일면.
12349다만 자임. 원문은 ‘直慈’. 자비의 ‘자’의 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