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취산 참배와 바이살리 사리탑
이번 학술대회에 영취산에는 두 번 갈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2월 13일 오전에 학술대회 발표가 끝나고, 시간이 비어 영취산으로 가자고 본부에 건의해서 허락을 얻었다. 또 한 번은 2월 14일 학회 일정에 따라 참배하게 되었다. 숙소가 영취산 너머에 있어서 대회기간 내내 영취산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행운이라 생각했는데, 두 번이나 영축산을 찾게 되니 다른 어느 곳에 가는 것보다도 마음이 흥분되었다.
숙소에서 새로 포장된 도로로 10여분 달려 오른쪽으로 가면 날란다로 가고 왼쪽으로 가다보면 오밀 조밀한 동네들이 나오고, 양쪽 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왕사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왕사성 입구에서(왕사성의 북문에 해당) 오른 쪽으로는 칠엽굴이 있는 바이바라기리산과 그 옆의 와나기리산 우다아기리산, 기사굴산이 둘러쌓여 입구 왼쪽으로 비후라기리산까지 이어진다. <대당서역기>에는 비풀라산에는 500여개의 냉천과 온천이 있는데, 설산 남쪽 무열뇌지에서 발원하므로 냉천이 되었고 소열지옥의 열기가 발원하여 온천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들를 기회가 없어 확인하지 못했다.
영취산은 왕사성(王舍城)에 있다. 옛 왕사성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의 수도로 법화경에는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머무르시면서…”라고 하여, 이곳에서 법을 설하셨기 때문에, 이곳이 법화경 설법처로 유명하게 되었다. 경에서 설하는 기사굴산(Gṛdhrakūṭa parvata)이 한문으로 번역해서 영취산(靈鷲山)이라 한다. 이 산은 비하르주(Bihar) 파트나 동남쪽에 있어서 왕사성 동북쪽에 위치한다. 오늘날 왕사성은 인도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이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현장(玄獎)의 '대당서역기'에 촌락에는 많은 인가들이 있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농업이 성하여 진귀한 벼가 생산된다. 여기서 나오는 쌀을 향미라 했으며 이를 대인에게 바쳤다고 한다. 또 이 지역은 풍속이 순박하고 학문을 중시하며, 불법을 깊이 존경하여 50여 가람이 있고 1만여 승도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사성은 드넓은 평야 가운데 다섯 산으로 둘러쌓인 일종의 분지 속에 있다. <법화문구>에는 다섯 정사(精舍)가 있다고 하면서 다섯 산을 들고 있다. 그 다섯 산은 비바라발서(천주혈), 살다반나구하(칠엽혈), 인타세라구하(사신산), 살파서혼직가발바라(소독력산), 기사굴산(영취산)이다.
이 산을 영취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그 산의 봉우리가 독수리처럼 생겼다 해서 산 이름으로 삼았다 하고, 또는 이 산 남쪽에 시다림이 있어서 독수리들이 시신을 뜯어 먹고 이 산에 와 살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영취산이 신령스러운 영(靈)자를 쓰게 된 것은 전불(前佛)이나 금불(今佛)이 다 이 산에 거주하시고, 멸도하신 후에는 아라한이 거주하고, 법이 멸한 후에는 벽지불이 거주하며, 벽지불이 없을 경우에는 신(神)들이 거주하기 때문이라 한다.
영취산 입구 주차장에 내리자 상인들이 우루루 몰려와 염주와 기념품을 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도로변에는 상인들의 노점과 말마차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고 양쪽 길에는 기념품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한편에서는 새로 건물을 짓는 공사도 한창이어서 이곳이 관광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약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영취산의 다보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이고, 정면으로는 잘 포장된 오르막길이 나서는데 이 길이 그 유명한 부처님 당시의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뵙기 위해 닦았다고 하는 빔비사라 길이다. 이 길은 근래 다시 정비한 듯 폭 4~5m쯤 되 보이는 길이 영축산 향실까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먼저 케이블카를 타고 다보산에 올랐다. 그런데 이 케이블카는 1인용으로 마치 사람들의 담력 훈련용처럼 위험스러웠다. 타고 올라가면 아래로 영취산 계곡이 내려다보이면서 발바닥이 간질간질함을 느낄 수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서 왕사성 전체가 드러나 보인다. 영취산의 풍광은 빼어난 경치도 아닐뿐더러, 수림이 우거진 곳도 아닌 다소 황량하지만, 그러나 평온한 느낌이 풍겨나는 산이다. 케이블카를 내려 영축산에 공양할 향과 꽃을 샀다. 여기서 또 길이 갈라지는데 위쪽으로 올라가면 일본사람들이 지어놓은 일본산 묘법사로 가고 오른쪽 아랫길로 접어들면 부처님 설법처로 알려진 영취산 향실로 갈 수 있다. 처음에는 산꼭대기에 영취산 설법처가 있는 줄 알고 계속 올라갔다. 그런데 영취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일본의 일본산 묘법사에서 세운 사리탑이 있었다. 그 탑 아래쪽에 영취산 향실이 내려다보인다. 영취산 전체에서 보면 가장 꼭대기에 다보산(多寶山)이 있고 그 앞쪽에 제1, 2, 3봉이 있고 그 제3봉에 향실(香室)이 있다.
이 거대한 하얀 사리탑
이번 학술대회에 영취산에는 두 번 갈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2월 13일 오전에 학술대회 발표가 끝나고, 시간이 비어 영취산으로 가자고 본부에 건의해서 허락을 얻었다. 또 한 번은 2월 14일 학회 일정에 따라 참배하게 되었다. 숙소가 영취산 너머에 있어서 대회기간 내내 영취산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행운이라 생각했는데, 두 번이나 영축산을 찾게 되니 다른 어느 곳에 가는 것보다도 마음이 흥분되었다.
숙소에서 새로 포장된 도로로 10여분 달려 오른쪽으로 가면 날란다로 가고 왼쪽으로 가다보면 오밀 조밀한 동네들이 나오고, 양쪽 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왕사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왕사성 입구에서(왕사성의 북문에 해당) 오른 쪽으로는 칠엽굴이 있는 바이바라기리산과 그 옆의 와나기리산 우다아기리산, 기사굴산이 둘러쌓여 입구 왼쪽으로 비후라기리산까지 이어진다. <대당서역기>에는 비풀라산에는 500여개의 냉천과 온천이 있는데, 설산 남쪽 무열뇌지에서 발원하므로 냉천이 되었고 소열지옥의 열기가 발원하여 온천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들를 기회가 없어 확인하지 못했다.
영취산은 왕사성(王舍城)에 있다. 옛 왕사성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의 수도로 법화경에는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머무르시면서…”라고 하여, 이곳에서 법을 설하셨기 때문에, 이곳이 법화경 설법처로 유명하게 되었다. 경에서 설하는 기사굴산(Gṛdhrakūṭa parvata)이 한문으로 번역해서 영취산(靈鷲山)이라 한다. 이 산은 비하르주(Bihar) 파트나 동남쪽에 있어서 왕사성 동북쪽에 위치한다. 오늘날 왕사성은 인도에서도 가장 빈곤한 지역이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현장(玄獎)의 '대당서역기'에 촌락에는 많은 인가들이 있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농업이 성하여 진귀한 벼가 생산된다. 여기서 나오는 쌀을 향미라 했으며 이를 대인에게 바쳤다고 한다. 또 이 지역은 풍속이 순박하고 학문을 중시하며, 불법을 깊이 존경하여 50여 가람이 있고 1만여 승도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사성은 드넓은 평야 가운데 다섯 산으로 둘러쌓인 일종의 분지 속에 있다. <법화문구>에는 다섯 정사(精舍)가 있다고 하면서 다섯 산을 들고 있다. 그 다섯 산은 비바라발서(천주혈), 살다반나구하(칠엽혈), 인타세라구하(사신산), 살파서혼직가발바라(소독력산), 기사굴산(영취산)이다.
이 산을 영취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그 산의 봉우리가 독수리처럼 생겼다 해서 산 이름으로 삼았다 하고, 또는 이 산 남쪽에 시다림이 있어서 독수리들이 시신을 뜯어 먹고 이 산에 와 살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영취산이 신령스러운 영(靈)자를 쓰게 된 것은 전불(前佛)이나 금불(今佛)이 다 이 산에 거주하시고, 멸도하신 후에는 아라한이 거주하고, 법이 멸한 후에는 벽지불이 거주하며, 벽지불이 없을 경우에는 신(神)들이 거주하기 때문이라 한다.
영취산 입구 주차장에 내리자 상인들이 우루루 몰려와 염주와 기념품을 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도로변에는 상인들의 노점과 말마차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고 양쪽 길에는 기념품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한편에서는 새로 건물을 짓는 공사도 한창이어서 이곳이 관광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약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영취산의 다보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이고, 정면으로는 잘 포장된 오르막길이 나서는데 이 길이 그 유명한 부처님 당시의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뵙기 위해 닦았다고 하는 빔비사라 길이다. 이 길은 근래 다시 정비한 듯 폭 4~5m쯤 되 보이는 길이 영축산 향실까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먼저 케이블카를 타고 다보산에 올랐다. 그런데 이 케이블카는 1인용으로 마치 사람들의 담력 훈련용처럼 위험스러웠다. 타고 올라가면 아래로 영취산 계곡이 내려다보이면서 발바닥이 간질간질함을 느낄 수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서 왕사성 전체가 드러나 보인다. 영취산의 풍광은 빼어난 경치도 아닐뿐더러, 수림이 우거진 곳도 아닌 다소 황량하지만, 그러나 평온한 느낌이 풍겨나는 산이다. 케이블카를 내려 영축산에 공양할 향과 꽃을 샀다. 여기서 또 길이 갈라지는데 위쪽으로 올라가면 일본사람들이 지어놓은 일본산 묘법사로 가고 오른쪽 아랫길로 접어들면 부처님 설법처로 알려진 영취산 향실로 갈 수 있다. 처음에는 산꼭대기에 영취산 설법처가 있는 줄 알고 계속 올라갔다. 그런데 영취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일본의 일본산 묘법사에서 세운 사리탑이 있었다. 그 탑 아래쪽에 영취산 향실이 내려다보인다. 영취산 전체에서 보면 가장 꼭대기에 다보산(多寶山)이 있고 그 앞쪽에 제1, 2, 3봉이 있고 그 제3봉에 향실(香室)이 있다.
이 거대한 하얀 사리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