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시해탈아라한에 다섯 종류가 있는 것에 대해 살피건대, *바사론(婆沙論)에 의거해 간략히 해석하면 이런 말이 된다. 퇴법(退法)이라 함은 *얻은 법에서 퇴전함이니, 마음에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사법(思法)이라 함은 *칼을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기 때문이다. 호법(護法)이라 함은 제가 얻은 해탈에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잘 수호하기 때문이다. 주법(住法)이라 함은 *물러서지 않고 나아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진법(進法)이라 함은 *능히 나아가 부동(不動)에 이르기 때문이다. 부동이라 함은 *본래의 자리에 머물러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 ‘그렇다면 퇴법의 아라한은 반드시 퇴전한다는 것인가. 내지는 진법도 반드시 나아간다는 것인가.’
 대답. ‘혹은 그럴 수도 있음을 말한 것이니, 반드시 퇴전한다는 것은 아니며, 내지는 반드시 나아간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사실로 해서 아라한에 다섯 종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을 한 것이어서, 퇴법이라 해서 반드시 퇴전함은 아니고, 내지는 진법이라 해서 반드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질문. ‘그렇다면 무슨 까닭에 퇴법 내지는 진법이라 이름붙인 것인가.’
 대답. ‘퇴법이란 퇴전할 가능성이요, 내지는 진법이라는 것도 더 높은 데로 나아갈 가능성이니, 이런 다섯 가지 자질이 있기에 시해탈나한에는 다섯 종류가 있게 되는데, *법행(法行)의 일인(一人)을 부동이라 이르는 것을 합치므로 육종(六種)의 아라한이 존재함이 된다. 만약 아라한의 과(果)에서 퇴전한다면 *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의 두 과(果)를 끌어당겨서 또한 잃게 되나 *초과(初果)에 이르러는 머무르는 것이니, *저절로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퇴전한다 해도 *이 생(生) 중에서 반드시 불의(不疑)를 얻게 된다. 마치 *뛰어난 자질을 지닌 사람이라면 *평지에서 넘어지고 나서 사방을 돌아보고 멀리 바라보아 *타인이 내가 넘어지는 여부를 봄이 있지 않아도 곧 스스로 일어남과 같으니, *끝내 임종에 이르러서는 무학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멸진정을 얻은 사람은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념처․공념처를 닦았으므로, 과(果)에 이르렀을 때는 다만 구해탈의 사람일 뿐이어서, 아직 *연념처(緣念處)는 닦지 못했기에 끝내 *무의해탈(無疑解脫)인 것은 아니다.

羅漢有五種者. 依婆沙略釋云. 言退法者, 謂退思法, 心生厭故. 言思法者, 持刀欲自害故. 言護法者, 於己解脫, 心生愛樂, 善守護故. 言住法者, 不退不進故. 言進法者, 能進至不動故. 言不動者, 住本不動故. 問. 退法必退耶. 乃至進法必進耶. 答. 或有說者, 不必退, 乃至不必進. 以是事故, 羅漢有五種. 故作是說, 退不必退, 乃至進不必進. 問. 若然, 何故名退乃至進. 答. 退者是退性, 乃至進者是進性. 以有五種性故, 羅漢有五種. 幷法行一人, 名不動故, 有六種羅漢也. 若退果者, 牽於斯那二果亦失, 至初果住, 法爾然也. 此生之中, 必得不疑. 猶如勝人, 平地顚墜, 四顧遠望, 不有他人見我倒不, 卽能自起. 極至臨終, 亦得無學故也. 得滅定人, 因中旣修性共念處. 至果時, 但名俱解脫人. 以未修緣念, 終非無疑解脫也.

12932바사론. 원문은 ‘婆沙’. 이것은 구바사(舊婆沙)라고 통칭되는 “아비담비바사론”을 가리킨다.
12933얻은 법에서 퇴전함이니, 마음에 싫증을 내기 때문임. 원문은 ‘謂退思法, 心生厭故’. 퇴법은 무학과를 얻고도 악연을 만나 다시 사혹을 일으킴으로써 퇴전하는 열등한 근기의 아라한인데, 이 설명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退’만이 설명의 글이어서 ‘퇴법이라 함은 퇴전함이다’로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그리고 ‘退法’은 잉문(剩文)이요, ‘心生厭’의 석 자는 다음 구(句)에 옮겨져야 한다는 것.
12934칼을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함. 원문은 ‘持刀欲自害’. 아라한과가 퇴전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자살하여 무여녈반에 들려 함이 사법아라한이다.
12935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킴. 원문은 ‘心生愛樂’. 직역하면 ‘마음에 사랑하고 즐기는 생각을 낳음.’ 아라한과를 잃을까 걱정하여 수호하는 것이 호법아라한이다.
12936물러서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음. 원문은 ‘不退不進’. 퇴전도 안하고 향상도 하지 않은 채 얻은 깨달음(아라한과)에 머무르는 것이 주법아라한이다.
12937능히 나아가 부동에 이름. 원문은 ‘能進至不動’. 더욱 정진해 부동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진법아라한이다.
12938본래의 자리에 머물러 동요하지 않음. 원문은 ‘住本不動’. 이것이 부동아라한의 경지다. 12939법행. 12033의 주.
12940사다함․아나함의 두 과. 원문은 ‘斯那二果’. 사과(四果) 중의 제二․제三의 과다.
12941초과에 이르러는 머무름. 원문은 ‘至初果住’. 일단 아라한이 된 사람은 어쩌다가 퇴전한다 해도 초과인 수다원과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음을 이른다.
12942저절로 그러함. 원문은 ‘法爾然也’. 한번 아라한과를 얻은 바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는 것. 이는 대학 졸업자라면 아무리 배운 것을 잊어도 일정한 수준의 교양은 갖추게 됨과 같다.
12943이 생 중에서 반드시 불의를 얻게 됨. 원문은 ‘此生之中, 必得不疑’. 아라한은 퇴전해 수다원과에 이른다 해도, 그 생애 중에 반드시 아라한과로 되돌아간다. 불의(不疑)는 무의해탈(無疑解脫)을 이르니, 구해탈의 아라한 중 사무애변을 얻은 성자.
12944뛰어난 자질을 지닌 사람. 원문은 ‘勝人’.
12945평지에서 넘어짐. 원문은 ‘平地顚墜’. 아라한이 어쩌다가 퇴전한 비유.
12946타인이 내가 넘어지는 여부를 봄이 있지 않아도. 원문은 ‘不有他人見我倒不’.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면 제 실수를 남이 목격했다 해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니, 그러므로 곧 일어난다. 그와 같이 아라한으로서 퇴전한 이는 이내 그 잘못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 곧 아라한의 경지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12947끝내 임종에 이르러서는 무학을 얻음. 원문은 ‘極至臨終, 亦得無學’. 앞에서 밝힌대로 아라한은 퇴전해도 그 생애 중에 반드시 아라한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늦는 경우라 할지라도 임종 때까지는 무학이 된다고 한 것이다. 무학은 아라한.
12948연념처. 삼종념처(三種念處)의 셋째. 성념처․공념처를 얻은 사람이 다시 삼장(三藏)․십이부경(十二部經)에 의해 깨닫는 경지.
12949무의해탈. 앞의 12318의 ‘此生之中, 必得不疑’의 주 참조.

 [석첨] 일곱째로 *불시해탈(不時解脫)의 아라한에 대해 살피건대, 이는 곧 *법행(法行)의 이근(利根)이 이루는 경지여서 부동법(不動法)의 아라한이라고도 이른다. 이 사람은 *수행할 때 도를 닦되 능히 온갖 시기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나아가 선업(善業)을 닦고 *온갖 인연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리지는 않으니, 그러므로 불시해탈이라 이르며, 이 사람은 번뇌 때문에 동요되지 않으니, 그러므로 부동이라 이르는 것이다. *부동이란 불퇴(不退)의 뜻이다. 삼지(三智)를 성취하니 *진지(盡智)․*무생지(無生智)․*무학등견(無學等見)이요, 능히 *중공삼매(重空三昧)를 써서 성스럽고 선한 법을 치니, *선정(禪定)으로 선정을 버리므로 ‘능히 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부동의 아라한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로 멸진정(滅盡定)을 얻지 못한 경우는 다만 혜해탈이라 이르고, 둘째로 멸진정을 얻었을 경우에는 곧 구해탈임이 된다. 그리고 만약에 부처님이 *삼장(三藏)의 교문(敎門)을 설하심을 듣고, *연념처(緣念處)를 닦아서 곧 *사무애변을 일으킨다면 *무의해탈(無疑解脫)이라 이르고, 이를 *바라밀성문(波羅蜜聲聞)이라고도 이르니, 능히 *극치에 이르러 온갖 아라한의 공덕을 남김 없이 갖춘 것이 된다. 또 *사문나(沙門那)라고도 이르니, 사문나란 *사문의 과(果)다.

七不時解脫羅漢者. 卽時法行利根, 名不動法阿羅漢也. 此人因中修道, 能一切時, 隨所欲進修善業, 不待衆具, 故名不時解脫. 是人不爲煩惱所動, 故名不動. 不動是不退義. 成就三智, 謂盡智無生智無學等見. 能用重空三昧, 擊聖善法. 以定捨定, 故言能擊. 是不動羅漢, 亦有二種. 一不得滅盡定, 但名慧解脫. 二得滅盡定, 卽時俱解脫. 若聞佛說三藏敎門, 修緣念處, 卽發四辯, 名無疑解脫. 是名波羅蜜聲聞, 能究竟具足一切羅漢功德也. 名沙門那. 沙門那者, 沙門果也.

12950불시해탈. 때를 기다림 없이 해탈하는 일. 때나 인연을 기다림 없이 선정에 들어 번뇌에서 해탈하는 부동아라한(不動阿羅漢).
12951법행. 수법행(隨法行)을 이르니, 12033의 주.
12952수행할 때. 원문은 ‘因中’. 12295의 주.
12953온갖 인연이 갖추어짐. 원문은 ‘ 衆具’.
12954부동이란 불퇴의 뜻임. 원문은 ‘不動是不退義’. 번뇌 때문에 동요되지 않는 것과 퇴전하지 않는 것은, 기실 같은 말이다.
12955진지. 4551의 주.
12956무생지. 4552의 주.
12957무학등견. 12290의 주.
12958중공삼매. 공을 거듭 공으로 돌리는 삼매. 공 또한 공이라고 보는 삼매. 석첨은 삼삼매(三三昧)의 하나하나를 거듭 부정하는 뜻으로 해석했다.
12959선정으로 선정을 버림. 원문은 ‘以定捨定’. 선정(삼매)은 귀중하나 이것마저 초월할 때에 진정한 선정은 성립한다.
12960삼장의 교문. 원문은 ‘云藏敎門’. 삼장교. 소승의 가르침.
12961연념처. 12324의 주.
12962사무애변. 원문은 ‘四辯’.
12963무의해탈. 12085의 주.
12964바라밀성문. 대지도론 五三에 차별적인 제법을 원리(遠離)함이 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라한은 반야바라밀의 성문임이 된다.
12965극치에 이르러. 원문은 ‘究竟’.
12966사문나. 팔리어의 samana 범어의 sramana의 음사. 이를 다시 줄여서 사문(沙門)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현의”는 사문과 사문나를 다르게 보아, ‘사문나는 사문의 과(果)다’ 했는데, 이는 사문과(沙門果)의 뜻인 팔리어 samanna와 혼동한 때문인 듯 보인다. 12967사문과. 구사론에서는 사과(四果)를 사문과로 쳤다. 여기서는 제사과(第四果).

 [석첨] 진지(盡智)란 *고(苦)를 보고 이미 끊으며, 내지는 도(道)에서도 이같이 한 일이다. 무생지(無生智)란 *또 다시는 끊지 않는 일이다. *무학등견(無學等見)이란 *세지(世智)를 얻었을 때도 등지(等智)라 이를 수 있다.
 바사론(婆沙論)에서는 말했다.
 ‘*해야 할 일을 이미 한 것을 진지라 하고, *무학(無學)의 인(因)으로부터 생겨남을 무생지라 한다. 또 *일찍이 얻었던 것을 얻음을 진지라 하고, *일찍이 얻지 못했던 것을 얻음을 무생지라 한다.’
 또 말했다.
 ‘*해탈도(解脫道)에 포함되는 것을 진지라 하고, *승진도(勝進道)에 포함되는 것을 무생지라 한다.’
 또 말했다.
 ‘진지에는 *오종(五種)의 아라한이 있고, 무생지에는 오직 일종(一種)이 있을 뿐이니 부동(不動)의 아라한이다.’
 *이는 근기를 위주로 한 설이어서, 해탈도 따위는 논하지 않은 것이다.
 또 무학등견이라 함은, 온갖 아라한들에 이 견해가 있다. 곧 스스로 나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하여, 똑같이 이 견해를 지니므로 등견이라 이르는 것이다.
 *중공삼매(重空三昧)라 함은, *공공삼매(空空三昧)와 *무상무상삼매(無相無相三昧)와 *무작무작삼매(無作無作三昧)다. 공은 성스러운 법이로되, 다시 공을 닦아 앞의 성스러운 법을 쳐부수므로 중공이라 하는 것이다.
 사문나(沙門那)라 함은, *‘사문’은 이곳 말로 핍(乏)을 이르고, *‘나’는 이곳 말로 도(道)를 이른다.

盡智者, 謂見苦已斷, 乃至道亦如是. 無生智者, 不復更斷. 無學等見者, 得世智, 亦名等智. 婆沙云. 所作已辦, 名盡智. 從無學因生, 名無生智. 又曾得而得, 名爲盡智. 未曾得而得, 名無生智. 又云. 解脫道所攝, 名爲盡智. 勝進道所攝, 名爲無生智. 又云. 盡智有五種羅漢. 無生智唯一種, 謂不動. 此卽從根, 不論解脫道等. 又無學等見者. 一切羅漢, 等有此見. 自知我是阿羅漢果. 等有此見, 故名等見. 重空三昧者. 謂空空三昧, 無相無相三昧, 無作無作三昧. 空是聖法. 復修於空, 擊前聖法, 故名爲重. 沙門那者. 沙門, 此云乏. 那者, 此云道.

12968고를 보아 이미 끊으며, 내지는 도에서도 이같이 함. 원문은 ‘見苦已斷, 乃至道亦如是’.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의 권전(勸轉)과 관련이 있다. 곧 사제(四諦)를 관함에 있어, 고(苦)를 알아 그 원인인 집(集)을 끊으며, 멸(滅)을 실현해야 할 것임을 알아 그 원인인 도(道)를 닦는 일. 진지는 고를 모두 끊은 지혜요, 사제를 성취하는 지혜다.
12969또 다시는 끊지 않음. 원문은 ‘不復更斷’. 이미 고를 끊어 사제를 성취했으므로 다시는 끊어야 할 것이 없다고 아는 지혜가 무생지이기 때문이다.
12970무학등견. 12290의 주.
12971세지를 얻었을 때도 등지라 이름. 원문은 ‘得世智, 亦名等智’. 아라한으로서 이근(利根)인 자는 무생지를 얻고 나서 무학등견을 일으키나, 혹은 세속지를 일으키는 일도 있으므로 등지라 하기도 한다는 것. 등지는 세속의 일을 아는 지혜니, 등견과 등지는 내용이 다르다.
12972해야 할 일을 이미 함. 원문은 ‘所作已辦’. 수행해야 될 일을 마친 것.
12973무학의 인으로부터 생겨남. 원문은 ‘從無學因生’. 무학(아라한)이 되게 한 원인인 진지로부터 생긴 것이 무생지인 까닭이다.
12974일찍이 얻었던 것을 얻음. 원문은 ‘曾得而得’. 진지는 이근과 둔근에 통한다. 그리하여 둔근인 자는 퇴전했다가 거듭 무학을 실현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12975일찍이 얻지 못했던 것을 얻음. 원문은 ‘未曾得而得’. 무생지는 이근에만 국한된다. 그러므로 이를 얻을 때는 전에 얻지 못했던 것을 얻음이 된다.
12976해탈도. 구사론에서는 번뇌를 끊는 수행을 네 단계로 나누니, 이를 사종도(四種道)라 한다. (1)가행도(加行道). 번뇌를 끊기에 앞서 그 예비단계로서의 수행. (2)무간도(無間道). 근기가 성숙해져서 이제 바야흐로 번뇌를 끊으려는 단계. (3)해탈도. 번뇌를 떠남에 따라 나타난 진여를 체득하려는 단계. (4)승진도(勝進道). 정진을 거듭하는 것에 의해 향상해 녈반으로 나아가는 단계.
12977승진도. 앞의 ‘解脫道’의 주 참조.
12978오종의 아라한이 있음. 원문은 ‘有五種羅漢’. 육종아라한(六種阿羅漢) 중 부동아라한을 제외한 다섯 가지 아라한이 진지에 속한다는 뜻.
12979이는 근기를 위주로 한 설이어서, 해탈도 따위는 논하지 않았음. 원문은 ‘此卽從根, 不論解脫道等’. 이 부동아란에는 선천적인 종성(種性)에 의해 이 경지에 이르는 것과, 후천적인 수행으로 열등한 종성에서 뛰어난 종성으로 전환하여 여기에 이르는 두 종류가 있는데, 지금은 전자를 위주로 해 부동아라한을 논하고, 열등한 자가 해탈도 따위에서 전근(轉根)하는 것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2980중공삼매. 12333의 주.
12981공공삼매. 공에 집착하지 않고 공 또한 공이라 하여 참다운 공을 실현하는 삼매. 12982무상무상삼매. 공이므로 어떤 형상도 없다는 것이 무상삼매인데, 형상 없는 그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삼매다.
12983무작무작삼매. 형상이 없으므로 무엇도 바랄 것이 없다 함이 무작삼매인데, 나아가 바랄 것이 없다는 것도 있는 것이 아니라고 관함이 무작무작삼매다.
12984사문은 이곳 말로 핍을 이름. 원문은 ‘沙門此云乏’. 사문을 ‘가난한 자’의 뜻으로 본 것. 이것은 비구를 걸사(乞士)라 함과도 통해 도리로서는 타당하나, 어원적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분명치 않다.
12985나는 이곳 말로 도라 이름. 원문은 ‘那者此云道’. 이것도 근거가 분명치 않다. 혹은 실단문자의 na를 ‘拏’라 음사하여 온갖 번뇌를 제거하는[除諸煩惱]라 해석해 온 것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