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41네 가지 것. 원문은 ‘四義’. 네 가지 사항. 도혜․도종혜․일체지․일체종지를 가리킨다. 13542인중의 총별. 원문은 ‘因中總別’. 인위(因位) 중의 총상․별상. 다음의 글 참조.
13543과상의 총별. 원문은 ‘果上總別’. 과상(果上)은 과위(果位)와 같으니, 깨달음의 경지. 곧 이어 그 설명이 나온다.
13544공가를 인이라 하고 중도를 과라 함. 원문은 ‘空假爲因, 中道爲果’. 인(因)은 수행의 단계니, 수행이 원인이 되어 깨달음이 나타나기 때문이요, 과(果)는 깨달음의 단계니, 수행의 결과가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관에서 볼 때, 공관․가관을 닦는 것은 인이요, 중도야말로 과임이 된다.
13545종가입공은 인중의 총상임. 원문은 ‘從假入空, 爲因中總相’. 공관은 중도 이전의 총상에 해당한다는 것. 총상은 일반적․전체적 특성이니, 공은 차별을 지우는 점에서 총상임이 된다.
13546종공입가는 인중의 별상임. 원문은 ‘從空入假, 因中別相’. 가관은 차별상이기 때문이다. 별상은 특수한 특질.
13547이제를 쌍조함. 원문은 ‘雙照二諦’. 공제․가제를 아울러 관조하는 것.

 [석첨] 셋째로 녈반경에서 성행(聖行)을 밝힌 것에 입각해 위계와 결부시키면, 처음의 *계성행(戒聖行)․정성행(定聖行)은 곧 십신(十信)의 위계다. *생멸(生滅)․무생멸(無生滅)의 사진제(四眞諦)의 혜성행(慧聖行)은 곧 십주(十住)의 위계다. *무량(無量)의 사성제(四聖諦)의 *혜(慧)는 곧 십행(十行)의 위계다. *일실제(一實諦)․무작사성제(無作四聖諦)를 닦음은 곧 십회향(十廻向)의 위계다. 다음으로 자기본유(自己本有)의 진성(眞性)을 발(發)하여 일실제를 보고 무작사성제(無作四聖諦)를 깨닫는다면, 곧 성행이 충족되어 *무외지(無畏地)에 머물며, *이십오삼매(二十五三昧)를 얻어 *이십오유(二十五有)를 깸이 될 것이니, 이를 *환희지(歡喜地)라 이르고, *오행(五行)의 구족(具足)함이 된다. 다음으로 뒤에서 *십공덕(十功德)을 설함은, 아마도 대녈반에 머무는 십지(十地)의 공덕을 나타냄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지나 불안(佛眼)의 밝고 밝음을 밝힘은 묘각(妙覺)의 경지다.
 셋째로 따로따로 *칠위(七位)를 해석하는 일은 *다른 책에 찾아볼 것이다. 이상으로 대수(大樹)의 위계에 관한 해석이 끝난다.

三約涅槃, 明聖行合位者. 初戒聖行․定聖行, 卽是十信位也. 生滅無生滅四眞諦慧聖行, 卽是十住位. 無量四聖諦慧, 卽是十行位. 修一實諦無作四聖諦, 卽是十廻向位. 次若發眞, 見一實諦, 證無作四聖諦, 卽是聖行滿, 住無畏地, 得二十五三昧, 能破二十五有, 名歡喜地, 五行具足. 次後說十功德者, 恐表住大涅槃十地之功德也. 過此明佛眼了了, 是妙覺位也.
 三別解七位, 餘本尋. 大樹位竟也.

13548계성행․정성행. 계․정․혜에 의해 수행하는 보살의 정행(正行)이 성행의 내용임은 앞에서 설해진 바 있다.
13549생멸․무생멸의 사진제. 원문은 ‘生滅無生滅四眞諦’. 생멸사제와 무생사제니, 2759의 ‘四種四諦’의 주 참조.
13550무량의 사성제. 원문은 ‘無量四聖諦’. 무량사제니, 2759의 ‘四種四諦’의 주 참조. 13551혜. 혜성행(慧聖行).
13552일실제․무작사성제. 일실제와 무작사성제는 중도의 진리인 점에서 동일한 진리임이 된다.
13553무외지. 11410의 주.
13554이십오삼매. 10653의 주.
13555이십오유. 6087의 주.
13556환희지. 12491의 ‘初歡喜地’의 주.
13557오행. 9589의 주.
13558십공덕. 녈반경의 소(疏)에 나온다는 것인데, 참조하지 못했다.
13559칠위. 십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등각․묘각.
13560다른 책. 원문은 ‘餘本’. 사교의(四敎義)의 九를 가리킨다.

 [석첨] 따로따로 칠위(七位)를 해석한다 함은, 영락경 중에서 *육종성(六種性)을 밝힌 것 같음이 그것이니, 십주(十住) 이전의 십신위(十信位)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면 칠위(七位)가 된다. 영락경의 육위(六位)란, 십주(十住)의 습종성(習種性)․십행(十行)의 성종성(性種性)․십회향(十廻向)의 도종성(道種性)․십지(十地)의 성종성(聖種性)과 등각성(等覺性)․묘각성(妙覺性)이니, 이것들은 *사교(四敎)의 책에 가서 찾아보라는 뜻이다. 이것으로 삼초이목(三草二木)의 위계에 대한 해석이 끝난다.

別解七位者. 如瓔珞中, 明六種性. 兼於住前信位爲七. 瓔珞六位者. 謂十住習種性, 十行性種性, 十向道種性, 十地聖種性, 等覺性, 妙覺性. 應往四敎本中尋. 三草二木位竟.

13561육종성. 보살의 수행을 여섯 종류로 분별한 내용. (1)습종성(習種性). 공관(空觀)을 닦아 견혹․사혹을 깸을 이르니, 십주(十住)의 보살이다. (2)성종성(性種性). 공을 깨닫고도 그것에 머물지 않고 제법을 분별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단계. 십행(十行)에 해당한다. (3)도종성(道種性). 중도를 닦아 온갖 불법에 통달하되 원융하지는 못한 경지. 곧 십회향(十廻向)이 그것이다. (4)성종성(聖種性). 중도를 닦아 원융한 깨달음에 이른 성자의 경지. 곧 십지(十地)다. (5)등각성(等覺性). 십지의 깨달음이 더욱 원숙해져 성불 직전에 이른 경지. (6)묘각성(妙覺性). 부처님의 단계.
13562사교의 책. 원문은 ‘四敎本’. 천태사교의(天台四敎義)를 이른다.

 권오(卷五)의 상(上)

 [석첨] 다음으로는 *가장 진실한 위계에 대해 밝히니, 곧 *‘한 땅에서 나는’ *위계다. 그러므로 *앞에서는 삼교(三敎)와 인천(人天)을 세운 데 비해 지금은 오직 원교(圓敎)에 있을 뿐인 것이니, 법화경의 *개현(開顯)에 이르지 않았던들 어찌 ‘한 땅에서 난’ 것임을 알았겠는가. ‘*일불승에서 분별해 삼승을 설했다’ 함이 이를 이름이시다. 그러므로 아노니 삼초이목(三草二木)이 각각 자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 여기다가, *일미(一味)의 비에 젖고서야 바야흐로 ‘한 땅에서 난’ 줄을 이해함이, *저 가난한 아들이 부호의 임종 때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제 아버지임을 안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모름지기 *일실(一實)의 위계를 밝혀야 함이요, 아버지임을 알게 하고자 하니, 이런 까닭에 모름지기 앞의 모든 방편의 위계를 밝혀야 했던 것이다.
 이 중에서 먼저 이름을 표방했다.

次明最實位, 卽一地所生之次位也. 故前立三敎及以人天, 今唯在圓. 若不至法華開顯, 安知一地所生. 於一佛乘, 分別說三. 此之謂也. 故知三草二木, 各謂自立. 蒙一味雨, 方知一地所生. 如彼窮子, 至臨終時, 乃識其父. 是故須明一實位也. 爲令識父, 是故須明前諸權位. 於中先標.

13563가장 진실한 위계. 원문은 ‘最實位’. 원교의 위계를 말함이지만, ‘가장 진실한’이라는 말은 약초유품 끝의 ‘今爲汝等, 說最實事’라는 말씀과 관련이 있다.
13564한 땅에서 남. 원문은 ‘一地所生’. 약초유품에서의 인용. 온갖 초목이 하나의 땅에서 난다 함이니, 온갖 중생이 같은 진여에서 생겨나는 비유.
13565위계. 원문은 ‘次位’. 위차(位次)라는 말과 같다.
13566앞에서는 삼교와 인천을 세움. 원문은 ‘前立三敎及以人天’. 소초는 인천, 중초는 이승, 상초는 삼장교의 보살, 소수는 통교의 보살, 대수는 별교의 보살에 비유한 일.
13567개현. 251의 ‘開權顯實’과 같다.
13568일불승에서 분별해 삼승을 설함. 원문은 ‘於一佛乘, 分別說三’. 비유품의 글.
13569일미의 비. 원문은 ‘一味雨’. 약초유품의 게송에서의 인용. 한 맛의 비라 함은 일불승의 비유다.
13570저 가난한 아들. 원문은 ‘彼窮子’. 이하의 글은 신해품의 궁자유의 내용.
13571일실. 701의 주.

 [석첨] 가장 진실한 위계를 밝힌다 함은, 곧 원교(圓敎)의 위계다.

明最實位者, 卽圓敎位也.

 [석첨] 다음으로는 해석했다. 해석 중의 글은 스스로 나뉘어서 십의(十意)가 됐다.

次釋. 釋中文自開爲十意.

 [석첨] 이를 *십의(十意)로 해석하니, 첫째로는 *명의(名義)를 가리고, 둘째로는 *위수(位數)를 밝히고, 셋째로는 *단복(斷伏)을 밝히고, 넷째로는 *공용(功用)을 밝히고, 다섯째로는 *추묘(麤妙)를 밝히고, 여섯째로는 위계의 일어남을 밝히고, 일곱째로는 위계의 폐기됨을 밝히고, 여덟째로는 *개추현묘(開麤顯妙)하고, 아홉째로는 경을 인용하고, 열째로는 *묘위(妙位)의 시종(始終)을 보인 일이 그것이다.

此爲十意. 一簡名義. 二明位數. 三明斷伏. 四明功用. 五明麤妙. 六明位興. 七明位廢. 八開麤顯妙. 九引經. 十妙位始終.

13572십의. 열 가지 취지.
13573명의. 명칭과 의미.
13574위수. 위계의 수효.
13575단복. 4603의 주.
13576공용. 4444의 주.
13577추묘. 418의 주.
13578개추현묘. 6366의 주.
13579묘위. 불가사의한 위계. 원교의 위계.

 [석첨] 처음에서 십의(十意)를 나열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비록 똑같이 *원교를 해석한 것이긴 해도 작은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니, *처음의 네 가지 취지와 열 번째 취지가 바로 원교의 위계를 해석한 것인 데 대해, *다른 다섯의 취지는 이 상황에 근거해서 밝힌 내용들이다. 왜 그런가. *이는 이미 오직 일실(一實)의 위계를 밝힌 것뿐이라 할 때는, 곧 추묘(麤妙)를 밝힌 글 따위는 이와 결부 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런 글들은 *응당 결부시켜 묘행(妙行)의 글 뒤에 놓거나 위묘(位妙)의 글 처음에 두어서, 응당 ‘첫째로는 여러 위계를 밝히고, 다음으로는 추묘와 *흥폐(興廢)․*개현(開顯) 등을 밝힌다’고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여기에 놓인 것은 다시 거듭 *방편의 위계와 *비교해, 저 상대적 위계를 개현(開顯)코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원교의 위계를 해석하고 나서 거듭 추묘와 개현 따위를 판별한 것이다.
 질문. ‘이제 *처음에서는 통교․별교․원교의 셋에 입각해 삼구(三句)로 요간(料簡)하고, 아래의 맺는 글에 이르러서는 ‘삼장교․통교와 동일하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요간하는 중에서 어찌해 삼장교를 대상 속에 넣어 요간하지 않은 것인가.’
 대답. ‘첫째로 통교는 대승의 초문(初門)이라 *뒤의 가르침에 이끌어 들일만 하기 때문이요, 둘째로 *두 곳의 아라한의 이름이 같으므로 처음에는 통교를 상대하다가 뒤에서는 삼장교까지도 겸하게 한 것이다.’
 이 *십장(十章)의 순서에 대해 살피건대, 진리는 이름이 없되 진리는 이름을 빌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름 밑에는 뜻이 있어서 바야흐로 *표현된 내용을 드러내며, 뜻 위에는 이름이 있어서 바야흐로 표현된 내용이 딴 것과 다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명의(名義)의 일장(一章)이 맨 첫머리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미 원교의 명의를 안지라 다음에서는 표현된 위수(位數)를 구별하니, 이에 원교의 위계의 *개합(開合)이 동일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위수가 둘째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비록 위수를 알았다 해도 위수는 본래 *단복(斷伏)을 분별하기 위한 것일 따름이니, 만약 이를 알지 못한다면 공연히 위수를 만든들 무슨 소용에 닿겠는가. 그러므로 다음에서는 단복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이미 단복을 알았다면 응당 단복의 *공용(功用)의 동일치 않음을 밝혀야 하리니, 그러므로 이것이 넷째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미 원교의 단복의 공용을 알았다 해도, 앞의 여러 위계의 다 상대적임과 대비시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위계의 여러 위계 중에서 최상임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다섯째로는 추묘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이미 추묘를 알았다면 어찌해 순전히 일실의 위계만을 설하지 않고, 왜 앞의 방편의 가르침 속의 여러 상대적 위계를 쓴 것인가. 응당 *추묘가 다 연(緣)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알아야 하리니, 그러므로 여섯째로는 위계의 일어남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연이 이미 번갈아 일어난다면 *수행의 위계 또한 폐기되어야 할 것이니, 법화경 이전의 가르침들은 번갈아 일어났다가는 번갈아 폐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일곱째로 위계의 폐기가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입각해 생각할 때는 비록 폐기된다 해도 그 법은 남게 되는데, 하물며 대승․소승이 함께 일어나 이익을 받음이 동등하지 않음에 있어서겠는가. *현설(顯說)이건 밀설(密說)이건 *그 자리에서 근원을 달리하며, *횡설(橫說)이건 수설(竪說)이건 *법미(法味)에 차등이 생기지만, 시기가 성숙하고 교화가 마침에 있어서는 다 법화경에 통합되어, 근기와 연이 이미 같기에 응당 다른 가르침은 없으며, 온갖 상대적인 것이 여기에 이르러는 절대적인 진리가 균등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덟째로는 개현의 상(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처음으로 명의를 세움으로부터 끝으로는 *개권(開權)에까지 이른다 해도, 권실(權實)의 모든 위계는 도리에 있어 의지하는 근거가 있어야 하니, 아홉째로 경을 인용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경까지 인용했으니 *소홀함은 안된다 해도, 처음이 있고 끝이 있음이 오직 성인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는 묘위의 시종이 다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부처님의 본의(本意)인 바에는 자세히 그 *대체(大體)를 구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십문(十門)으로 부처님 일대(一代)의 교화를 포괄해야 바야흐로 법화경의 묘위(妙位)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