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다음으로 원교의 행을 늘어세워 열로 한 것은 곧 *십법성승(十法成乘)이니, 자세히 논할 때는 고루 마하지관 제五의 처음으로부터 제七의 끝에 이르는 기술과 같아진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의 *본의는 *교문(敎門)을 논함에 있으니, 이런 까닭에 *관법(觀法)에 속하는 이것은 글의 양상이 약간 간략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다만 간략히 열거하여 *앞의 삼교(三敎)와 *비교해 그 관계를 결정함으로써, 경의 원교의 뜻을 드러내는 데 그친 것이었다.
次列圓行爲十者, 卽十法成乘. 廣論具如止觀第五初至第七末. 今此正意, 論於敎門. 是故觀法, 文相稍略. 故但略列, 與前三敎, 以爲比決, 顯經圓意.
13745십법성승. 4040의 ‘十法成觀’과 같다.
13746본의. 원문은 ‘正意’. 주(主)가 되는 뜻.
13747교문. 3302의 주.
13748관법. 2218의 ‘觀門’과 같다.
13749앞의 삼교. 원문은 ‘前三敎’. 삼장교․통교․별교.
13750비교해 그 관계를 결정함. 원문은 ‘比決’. 원교의 위계와 앞의 세 가르침의 위계가 어떻게 다른가를 결정하는 일.
[석첨] 이르되, ‘*일념(一念)에 평등한 진리가 고루 갖추어져 불가사의함을 알라. *자기의 혼침(昏沈)을 마음아프게 여겨 자심(慈心)을 일체중생에게 미치라. *또 이 마음이 상적상조(常寂常照)함을 알라. *적조(寂照)의 마음을 써서 일체법을 깨어 즉공(卽空)․즉가(卽假)․즉중(卽中)이게 하라. *또 일심(一心)과 제심(諸心)의 통(通)이기도 색(塞)이기도 함을 알라. *능히 이 마음에서 도품(道品)을 완전히 갖추어 보리(菩提)의 길로 향하라. *또 이 마음의 정조(正助)의 법을 이해하라. *또 제 마음과 범성(凡聖)의 마음을 알라. *또 마음을 편안히 하여 동요하지 말며 타락하지 말며 퇴전치 말며 산란해지지 말라. *비록 일심에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안다 해도 염착(染着)하지 말라’ 함이니, 이것으로 십심(十心)이 성취한다.
요약해 이르건대 그 마음이 염념(念念)에 모든 바라밀과 *상응(相應)함이니, 이를 원교의 *초수희품(初隨喜品)의 위계라 부른다.
謂識一念, 平等具足, 不可思議. 傷己昏沈, 慈及一切. 又知此心, 常寂常照. 用寂照心, 破一切法, 卽空卽假卽中. 又識一心諸心, 若通若塞. 能於此心, 具足道品, 向菩提路. 又解此心正助之法. 又識己心, 及凡聖心. 又安心不動不墮, 不退不散. 雖識一心無量功德, 不生染着. 十心成就.
擧要信之. 其心念念, 悉與諸波羅蜜相應, 是故圓敎初隨喜品.
13751일념에 평등한 진리가 고루 갖추어져 불가사의함을 알라. 원문은 ‘識一念平等具足, 不可思識’. 십승관법(십법성승)의 첫째인 관부사의경(觀不思議境)에 대한 언급이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일컬어지듯 일념에 온갖 진리가 포함돼 있음을 알라는 뜻. 이것이 원돈지관(圓頓止觀)의 유일한 내용이니, 제二 이하는 이것이 대번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세워진 보충적 설명이다.
13752자기의 혼침을……. 원문은 ‘傷己昏沈, 慈及一切’. 그 둘째인 기자비심(起慈悲心)의 내용이다. 일념삼천이라 안다 해서 그것이 일시에 성취됨은 아니므로, 좌절한 자기를 반성하는 것에 의해 자기와 동일한 처지에 있는 일체 중생을 건져야 되겠다고 서원을 일으키는 것이다. ‘혼침’은 침울한 마음의 작용이니, 행자를 게으름에 빠지게 하여 수행에 지장을 준다.
13753또 이 마음이……. 원문은 ‘又知止心, 常寂常照’. 그 셋째인 교안지관(巧安止觀)에 해당한다. 서원을 일으켜도 일념삼천의 진리가 체득되지 않는 것은 마음의 안정이 결여된 때문임을 알라, 마음을 진리 속에 안주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진리의 본체가 온갖 생사․번뇌 따위 분별에서 벗어나 영원히 고요한 상(相)을 띠고 있음이 ‘상적’이요, 그러면서도 절대적 지혜는 영원히 작용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상조’다.
13754적조의 마음을 써서……. 원문은 ‘用寂照心, 破一切法, 卽空卽假卽中’. 그 넷째인 파법변(破法遍)의 내용이다. 앞의 선교안심으로도 일념삼천의 도리가 체득되지 않기에 이것이 세워진다. 그러므로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지혜를 써서 온갖 법에 대한 집착을 두루 깨라는 취지다. ‘적조’는 앞의 주의 ‘상적상조’를 참조. ‘즉공즉가즉중’은 3983의 주.
13755또 일심과 제심의……. 원문은 ‘又識一心諸心, 若通若塞’. 이것은 다섯째인 식통색(識通塞)이다. 앞의 파법변의 내용대로 법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도 뜻대로 깨달음이 성취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법 자체에 통색이 있음이 아니라, 정지(情智)의 득실에 의해 부지불식 중에 통색이 생겨난 것이므로 이를 항상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심’이란 일심삼관을 닦는 일이요, ‘제심’이란 격력삼관을 닦음을 이른다. 또 ‘통색’에서는 중도의 원교의 지혜에 들어감이 ‘통’이요, 거기에 들지 못하고 지체함이 ‘색’이다.
13756능히 이 마음에서……. 원문은 ‘能語此心, 具足道品, 向菩提路’. 그 여섯째인 도품조적(道品調適)이다. 식통색으로도 뜻같이 되지 않으면, 자기가 쓰고 있는 법문이 과연 자기에게 적절한가 여부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품’은 4922의 ‘三十七品’의 주.
13757또 이 마음의 정조의 법을 이해하라. 원문은 ‘又解此心正助之法’. 그 일곱째인 조도대치(助道對治)에 대한 언급이다. 이는 정행(正行) 자체가 아니라, 그 진전을 방해하고 있는 조건을 제거하려는 노력이니, 구체적으로는 송경(誦經)․예배․지계․보시 따위를 행하는 것에 의해 깨달음을 도우려는 시도다. ‘정조’는 9652의 주.
13758또 제 마음과 범성의 마음을 알라. 원문은 ‘又識己心, 及凡聖心’. 그 여덟째인 지차위(知次位)다. 제 수행의 위계를 항상 알고 반성하여, 더욱 향상의 노력을 쌓아가는 일이다. 13759또 마음을 편안히 하여……. 원문은 ‘又安心不動不墮, 不退不散’. 그 아홉 번째인 능안인(能安忍)이다. 깨달음이 진전됨에 따라 세상의 존경과 명리(名利)가 일신에 모여들어 그것이 도리어 수행을 방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역순(逆順)의 어떤 환경 속에서도 동요함이 없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13760비록 일심에 무량한 공덕이……. 원문은 ‘雖識一心 無量功德, 不生染着’. 그 열 번째인 무법애(無法愛)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은 깨달음에도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는 충고다. ‘염착’은 대상에 오염되어 집착하는 일.
13761상응. 결합함. 합치함.
13762초수희품. 3155의 ‘五品弟子位’의 주 참조.
[석첨] 다음으로 ‘行者’ 아래서는 제이품(第二品)에 대해 밝혔다. 이 중에 넷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바로 제二품의 상(相)을 밝히고, 다음으로 ‘內外’ 아래서는 제二품 중의 십관(十觀)을 밝히고, 셋째로 ‘金剛’ 아래서는 경을 인용해 증명하고 넷째로 ‘聞有’ 아래서는 위계에 관해 맺었다.
次行者下, 明第二品. 於中爲四. 初正明第二品相. 次內外下, 明第二品中十觀. 三金剛下, 引證. 四聞有下, 結位.
[석첨] 행자(行者)에게 원교의 신심이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는 그 선(善)을 모름지기 *길러야 할 것이다. 만약 *차별적 현상에 매어서 마음이 어지럽게 동요한다면 *도심(道心)의 싹을 망가지게 하리니, 오직 안으로 *이관(理觀)을 닦고 밖으로는 대승경전을 수지․독송한다면, *듣는 것에는 관법(觀法)을 돕는 힘이 있으므로, *안팎이 서로 돕는 곳에 원교의 신심이 더욱 밝아져서 *십심(十心)이 견고하게 될 것이다.
行者圓信始生, 善須將養. 若涉事紛動, 令道芽破敗. 唯得內修理觀, 外則受持讀誦大乘經典, 聞有助觀之力. 內外相藉, 圓信轉明, 十心堅固.
13763기름. 원문은 ‘將養’. 기르는 것. 장(將)에도 ‘기르다’의 뜻이 있다.
13764차별적 현상에 매임. 원문은 ‘涉事’. 섭(涉)은 관계하는 뜻. 사(事)는 차별적 현상. 차별적인 외경(外境)에 마음이 끌리는 일.
13765도심의 싹. 원문은 ‘道芽’.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싹에 비유한 것.
13766이관. 마음속에서 고요히 진리를 관(觀)하는 일. 관법(觀法)과 같다.
13767듣는 것에는 관법을 돕는 힘이 있음. 원문은 ‘聞有助觀之力’. 대승경전을 독송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으므로 선정(관법)을 돕는 결과가 된다.
13768안팎이 서로 도움. 원문은 ‘內外相藉’. 안의 관법과 밖의 독송이 서로 돕게 되는 일. 13769십심. 열 가지 마음. 십신(十信)과 같은 말.
[석첨] 처음의 둘은 글 그대로다.
初二如文.
[석첨] 인용해 증명하는 글에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금강경을 인용해 *도움으로 삼았다.
引證文三. 初引金剛, 以爲能資.
13770도움. 원문은 ‘能資’. 돕는 구실을 하는 당사자.
[석첨] *금강반야경에서는 말했다.
‘*일일삼시(一日三時)에 항하사의 몸을 보신한대도 *일구(一句)를 수지(受持)하는 공덕만 못하다.’
金剛般若云. 一日三時, 以恒河沙身布施, 不如受持一句功德.
13771금강반야경에서는 이르되. 원문은 ‘金剛般若云’. 이는 금강경의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제一五의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以恒沙等身布施, 中日分復恒沙等身布施, 後日分亦以恒沙等身布施.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勝彼.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의 주 인용이다.
13772일일삼시. 하루의 낮을 셋으로 나눈 것이니, 곧 초일분(初日分)․중일분(中日分)․후일분(後日分). 초일분은 아침. 중일분은 정오. 후일분은 해질 녘.
13773일구. 금강경의 일구. 앞의 인용문에는 안 보이나, 유루심(有漏心)의 보시보다는 사구(四句)의 게송을 수지하는 쪽이 낫다는 따위의 표현을 금강경에 자주 나온다.
[석첨] 다음으로는 *두 번째 품(品)을 들어 *앞의 품을 돕는 뜻이 있음을 나타냈다.
次擧次品, 資於前品.
13774두 번째 품. 원문은 ‘次品’. 오품제자위의 둘째인 독송품.
13775앞의 품. 원문은 ‘前品’. 오품제자위의 첫째인 초수희품.
[석첨] 초품(初品)의 *관지(觀智)는 눈과 같고 차품(次品)의 독송은 해와 같으니, 해에 빛이 있는 까닭에 눈으로 갖가지 형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初品觀智如目. 次品讀誦如日. 日有光故, 目堅種種色.
13776관지. 마음을 관하는 지혜.
※이 글도 금강경의 ‘若菩薩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目, 見光明照, 見種種色’.의 인용이다.
[석첨] 셋째로는 *미륵보살의 논(論)을 인용하는 것에 의해 돕는 힘의 큼을 증명했다.
三引彌勒論, 以證能資力大.
13777미륵보살의 논. 원문은 ‘彌勒論’. 천친(天親)의 “금강반야바라밀경론”을 이른다. 미륵이 이 중의 77의 게송을 읊어 무착(無着)에게 전하고, 무착이 이를 문자로 옮겨 천친에게 전한 것이라 일컬어진다.
[석첨] 논에서는 말했다.
‘*실성(實性)의 행(行)을 *요인(了因)이라 하고, *기타의 행을 *생인(生因)이라 하니, 복덕(福德)의 행은 보리에 나아가지 못하되, *두 행은 능히 보리에 나아간다.’
論云. 於實名了因. 於餘名生因. 福不趣菩提. 二能趣菩提.
13778실성의 행. 원문은 ‘實’. 지혜와 관련되는 수행.
13779요인. 깨달음의 원인.
13780기타의 행. 원문은 ‘餘’. 복덕을 닦는 행.
13781생인. 복덕을 낳는 원인.
13782두 행. 원문은 ‘二’. 수지와 독송.
[석첨] 논에서 ‘실성의 행을 요인이라 한다’는 따위라고 말함은, 게송의 뜻인즉 반야경을 독송함이 실상을 도움이 됨을 바로 밝힌 것이다. 이런 까닭에 수지․독송을 요인(了因)이라 하니, 그러기에 ‘실성의 행’이라 말한 것이요, 이로부터 이외의 것은 다만 생인(生因)이라 하니, 생인이란 *유루(有漏)의 인(因)이라, 그러므로 ‘기타의 행’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복덕의 행은 보리에 나아가지 못하되, 두 행은 능히 보리에 나아간다’라 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칠보(七寶)를 보시하면 수미산 같은 복을 얻되, 수지와 독송의 이 두 가지는 보리에 나아가게 하니, 그러기에 이 둘을 일러 요인이라 한다는 취지다.
논의 글은 ‘복을 닦는 행을 보리에 나아가지 못한다’는 이구(二句)를 앞에 놓고, ‘실성의 행을 요인이라 한다’는 二구를 뒤에 놓고 있는 데 대해, *지금의 이 글은 의미의 편의를 좇아 그 순서를 바꾸어 놓았지만 도리에 있어서는 어긋남이 없다고 여겨진다. *또 오종법사에 비추어보건대 논에서는 두 글을 각각 쪼개어 둘로 하고, 다시 설법을 추가해 오법사(五法師)라 했거니와, 이제 논의 글을 인용함에 있어서는 *잠시 자행(自行)을 보존하는 입장을 취하니, 그러므로 설법이 없고, 또 사(師)라고도 이르지 않은 것이다. *안락행소(安樂行疏)에서 자세히 오종법사를 해석한 바 있다.
論云於實名了因等者. 頌意正明讀頌般若, 資於實相. 是故持誦名爲了因, 故云於實. 降斯已外, 但名生因. 生因者, 有漏因也, 故云於餘. 福不趣菩提二能趣菩提者. 布施七寶餘受彌山福也. 受持及讀誦, 此二趣菩提. 是故此二, 名爲了因. 論文福不趣菩提二句在前. 於實名了因二句在後. 今從義便, 於理不違. 又準五種法師, 於論二文, 各開爲兩. 更加說法, 名五法師. 今引論文, 且存自行, 故無說法, 又不名師. 安樂行疏, 廣釋五種法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