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83유루의 인. 원문은 ‘有漏因’. 더러움(번뇌)이 있는 인. 미혹의 생존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행.
13784지금의 이 글은 의미의 편의를 좇음. 원문은 ‘今從義便’. 독송이 이관(理觀)을 돕는다는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원문의 순서를 바꾸어서 인용했다는 것.
13785또 오종법사에 비추어보건대 논에서는 두 글을 각각 쪼개어 둘로 하고, 다시 설법을 추가해 오법사라 함. 원문은 ‘又準五種法師, 於論二文, 各開爲兩. 更加說法, 名五法師’. 논에서는 수지를 수와 지로 나누었으니, 수는 신(信)의 힘으로 가르침을 받음을 뜻하고, 지는 염(念)의 힘으로 이를 보존해 지녀감을 이른다. 또 독송도 독과 송으로 쪼개어, 경의 글을 읽는 것은 독이요, 그것을 잊지 않음이 송이라 보았다. 그리고 이 수․지․독․송에 설법을 추가해 五법사라 한 것이다. 그런데 법화경에 의거한 천태대사는, 수지를 하나로 보고, 독송을 쪼개어 독과 송으로 함으로써 셋을 만들고, 여기에 설법과 서사를 추가해 오종법사의 개념을 만들었던 것이다.
13786잠시 자행을 보존하는 입장을 취함. 원문은 ‘且存自行’. 자행의 면을 위주하여 고찰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뜻.
13787안락행소. 법화문구의 안락행품의 해석을 이른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한 것이어서, 법사품의 해석 중에서 오종법사가 다루어졌다.
[석첨] 들음에 큰 이익이 있다 하는 그 뜻이 여기에 있다. 이를 제二품의 위계라 이른다.
聞有巨益, 意在於此. 此是名第二品位.
[석첨] 다음으로 ‘行者’ 아래서는 제삼품(第三品)을 밝힌 것에는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제삼품의 상(相)을 밝히고, 다음으로 ‘安樂行’ 아래서는 경을 인용하여 증명하고, 셋째로 ‘說法’ 아래서는 이 위계에 대한 해석을 맺었다.
次行者下, 明第三品爲三. 初明第三品相. 次安樂行下, 引證. 三說法下, 結位.
[석첨] 행자가 *안에서의 관법(觀法)이 더욱 강하며 *밖에서는 도움이 또 드러나, 원교의 이해가 품속에 있어 *홍서(弘誓)가 *불길 되어 널름대매, 다시 설법을 추가해 진실 그대로 *법을 설함이다.
行者內觀轉强, 外資又着. 圓解在懷, 弘誓熏動, 更加說法, 餘實演布.
13788안에서의 관법. 원문은 ‘內觀’. 2353의 주.
13789밖에서의 도움. 원문은 ‘外資’. 경전의 수지․독송을 이른다.
13790홍서. 4711의 ‘四弘誓願’의 주.
13791불길 되어 널름댐. 원문은 ‘熏動’. 불길같이 일어 움직이는 것.
13792법을 설함. 원문은 ‘演布’. 가르침을 설해서 펴는 일.
[석첨] 처음의 것은 글 그대로다.
初如文.
[석첨] 안락행품(安樂行品)에서는 이르되,
‘*다만 대승의 법으로 대답하라. 그리고 *설령 방편으로 수의설법(隨宜說法)한다고 해도 끝내는 대승을 깨닫게 하라.’ 하고, 유마경에서는
‘*설법이 청정하면 지혜도 청정하다.’
하고, *비담(毘曇)에서는 이르되,
‘*설법도 해탈하고 청법(聽法)도 해탈한다.’
고 했다.
安樂行云. 但以大乘法答. 設以方便隨宜, 終令悟大. 淨名云. 說法淨則智慧淨. 毘曇云. 說法解脫, 聽法解脫.
13793다만 대승의 법으로 대답하라. 원문은 ‘但以大乘法答’. 경의 원문은 ‘有所難向, 不以小乘法答. 但以大乘, 而爲解說, 令得一切種智’로 되어 있다.
13794설령 방편으로 수의설법 한다고 해도……. 원문은 ‘設以方便隨宜, 終令悟大’. 비슷한 표현이 몇 가지 있는 중, ‘爲是衆生, 說種種法, 以大方便, 說此諸經. 旣知衆生, 得其力已, 末後乃爲, 說是法華, 如王解髻, 明珠與之’가 가장 가까운 듯하다.
13795설법이 청정하면 지혜도 청정하다. 원문은 ‘說法淨則智慧淨’. 청정한 법을 설하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청정하게 할 뿐이 아니라, 설하는 그 사람의 마음도 청정해진다는 것. 13796비담. 아비담비바사론(阿毘曇毘婆沙論)이니, 2920의 주. 다만 이것은 그 구역(舊譯)을 이른다 한다.
13797설법도 해탈하고 청법도 해탈함. 원문은 ‘說法解脫, 聽法解脫’. 뛰어난 법을 설하면, 설하는 자도 해탈하고 듣는 자도 해탈한다는 뜻.
[석첨] 다음으로 세 글을 인용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안락행품의 글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또 두 번째로 유마경에서 ‘설법이 청정하면’ 따위라 말함은, 오직 *원상(圓常)을 설하되 내심에서는 집착함이 없으므로 ‘청정하다’ 한 것이니, 안락행품에서 ‘다만 대승의 법으로 대답하라’고 말씀하셨음을 인용한 것과 내용이 같다. 그러므로 아노니 설법의 힘을 가지고 안으로 *자지(自智)에 영향을 주어 곱이나 더 청정하게 하는 것이어서, *교화의 공이 자기에게 돌아온다 함은 그 뜻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대승․소승이 한가지로 그러하니, 그러기에 비담을 인용하여 같은 종류의 예로 삼은 것이다. 다만 ‘청법하여 해탈을 얻는다’ 함은 *초수희품의 처음 단계에 있어서, *글의 뜻이 각각 다름이 되지만 *서로 맞물려 있는 것뿐이다.
次引三文者. 安樂行可見. 次淨名文云說法淨等者. 唯說圓常, 內心無着, 故名爲淨. 如引安樂行, 云但已大乘答等. 故知以說法力, 內熏自智, 令倍淸淨. 化功歸己, 意在於斯. 大小同然, 故引毘曇以爲類例. 若言聽法得解脫者, 在隨喜初. 文意各別, 相從來耳.
13798원상. 원만상주(圓滿常住)의 뜻. 완전하고 영원한 가르침.
13799자지. 자기의 지혜.
13800교화의 공이 자기에게 돌아옴. 원문은 ‘化功歸己’. 남을 교화하면 자신을 교화함이 된다는 것. 곧 남에게 청정한 법을 설하면 자기의 마음을 청정하게 함이 되는 까닭이다. 13801초수희품의 처음 단계에 있음. 원문은 ‘在隨喜位初’. 초수희품은 청법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13802글의 뜻이 각각 다름이 됨. 원문은 ‘文意各別’. 설법은 제삼품(第三品)에 속하지만 청법은 초품(初品)에 속하는 까닭이다.
13803서로 맞물려 있음. 원문은 ‘相從來’. 제三품에서 왜 초품에 속하는 청법을 등장시켰느냐 하는 의문에 대한 해명이다. 설법은 청법을 전제하고, 청법은 설법을 전제하는 까닭에, 설법의 해탈을 말할 때는 청법의 해탈에도 언급하게 된다는 것이다.
[석첨] 설법으로 *개도(開導)함은 *전인(前人)이 득도(得道)한 온 인연이었으니, 교화의 공이 자기에게 돌아와 *십심(十心)은 삼배(三倍)나 더 밝아지게 된다. 이를 제三품의 위계라 이른다.
說法開導, 是前人得道全因緣. 化功歸己, 十心則三倍轉明. 是名第三品位.
13804개도. 개발화도(開發化導)를 줄인 말. 인도해 깨닫게 하는 일. 교화.
13805전인이 득도한 온 인연. 원문은 ‘前人得道全因緣’. 세탁소 집 아들에게 백골관을 닦게 하고 대장간 집 아들에게 수식관을 닦게 한 고사가 그것이라는 해석이 있으니, 그 자세함은 2757의 ‘浣衣子’의 주. 그러나 이것은 설법해 남을 깨닫게 한 인연일 뿐, 설법이 원인이 되어 설법한 사람이 깨달은 인연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불경보살이 만나는 사람마다 예배하면서 ‘나는 당신을 업신여기지 않나니, 당신은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 설하니, 이 인연 탓에 성불하여 석가세존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 어울린다 하겠다. 또 제발달다가 과거세에서 석존께 법화경을 설했기에, 석존으로부터 수기(授記)된 사실도 이에 해당한다. 법화경의 상불경보살품․제바달다품을 참조할 것.
13806십심. 십승관법(십법성승)을 가리킨다.
[석첨] 다음으로 ‘上來’ 아래에서 *제四품을 밝힌 것에 네 부분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그 위계의 특성[相]을 밝혔다.
次上來下, 明第四品爲四. 初明位相.
13807제四품. 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을 이른다. 바른 관법을 닦으면서 六바라밀까지 곁들여 닦는 위계다.
[석첨] 위에서와 같이 앞에서는 관심(觀心)에 숙달하기는 하면서도 *차별적 수행에는 마음을 쓸 틈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관(正觀)이 얼마쯤 밝아졌으므로, 곧 곁들여서 *중생 구제를 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능히 적은 보시를 허공법계(虛空法界)와 같게 하며, *일체법(一切法)을 보시로 나아가게 하니, 보시를 법계로 삼는 것이다.
上來前熟觀心, 未遑涉事. 今正觀稍明, 卽傍兼利物. 能以少施, 與虛空法界等. 使一切法趣檀, 檀爲法界.
13808차별적 수행에 마음을 씀. 원문은 ‘涉事’. 섭(涉)은 관계하는 것. 사(事)는 차별적 현상. 그리고 이 ‘사’는 여러 뜻으로 쓰일 수 있으나, 여기서는 차별적․상대적 수행인 사행(事行)을 이른다. 관심(觀心)은 본래부터 우리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절대적 진리를 보는 수행인 데 대해, 六바라밀을 하나하나 닦는 것은 차별적인 수행이다.
13809정관. 관심․관법과 같다.
13810중생의 구제. 원문은 ‘利物’.
13811능히 적은 보시를 허공법계와 같게 함. 원문은 ‘能以少施, 與虛空法界’. 적은 보시계와 같아짐은 그 행이 도리에 어울리기에 한정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허공법계는 허공의 세계. 13812일체법을 보시로 나아가게 함. 원문은 ‘使一切法趣檀’. 원교에서 보기에 온갖 사물은 대립을 초월한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단(檀)은 보시니, 보시의 원어 dana의 음사인 단나(檀那)를 다시 주린 말.
[석첨] 다음으로 ‘大品’ 아래서는 경을 인용해 증명했다.
次大品下, 引證.
[석첨] *대품반야경에서 이르되,
‘보살이 적은 보시로 성문․벽지불 위를 *넘어서려거든,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우라.’
고 함이, 곧 이 뜻이다. 다른 다섯 바라밀도 이와 같으니, 비록 *사상(事相)은 적다 해도 *움직이는 생각은 심히 크다 해야 한다.
大品云. 菩薩少施, 超過聲聞辟支佛上, 當學般若. 卽此意也. 餘五如是. 事相雖少, 運懷甚大.
13813대품반야경에서 이르되. 원문은 ‘大品云’. 대지도론 二八에 해당하는데, 그 원문은 ‘菩薩摩訶薩, 欲勝一切聲聞辟支佛智慧, 當學般若波羅密’이어서 인용문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13814넘어섬. 원문은 ‘超過’. 초월함.
13815사상. 구체적인 차별상. 수행의 차별적 양상.
13816움직이는 생각. 원문은 ‘運懷’.
[석첨] 셋째로 ‘此則’ 아래서는 이 위계의 뜻을 밝혔다.
三此則下, 明位意.
[석첨] 이렇다면 *이관(理觀)을 *주(主)로 하고 *사행(事行)을 *부수적인 것으로 함이 되니, 그러므로 ‘*겸하여 보시를 행한다’라 말하는 것이다.
此則理觀爲正, 事行爲傍, 故言兼行布施.
13817이관. 마음속에서 고요히 진리를 관하는 일. 관심․관법과 같다.
13818주로 함. 원문은 ‘正’. 2519의 ‘傍正’의 주 참조.
13819사행. 10071의 주.
13820부수적인 것. 원문은 ‘傍’. 2519의 ‘傍正’의 주 참조.
13821겸하여 보시를 행함. 원문은 ‘兼行布施’. 관심이 주인 데 대해 보시는 부수적 수행인 까닭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다른 바라밀에도 적용되리니, 그러기에 겸행육도(兼行六度)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석첨] 넷째로 ‘事福’ 아래서는 이 위계에 대해 맺었다.
四福下, 結位.
[석첨] 사행(事行)의 복이 이관(理觀)을 돕는다면 십심(十心)이 더욱 커질 것은 당연하니, 이를 제四품의 위계라 한다.
事福資理, 則十心彌盛. 是名第四品位.
[석첨] 다음으로 ‘行人’ 아래에서 제五품을 밝힌 것 중에는 둘이 있으니, 먼저 위계의 상(相)을 밝히고, 두 번째인 ‘具足’ 아래서는 위계에 대해 맺었다.
이 처음의 글에 또 둘이 있으니, 먼저 일반적으로 밝혔다.
次行人下, 明第五品中二. 亦先明位相. 次具足下, 結位. 初文二. 先總明.
[석첨] *행자(行者)의 *원관(圓觀)이 점차로 성숙해감을 따라 *사리(事理)가 원융해지려 할 때는, 사행(事行) 속에 있어도 이관(理觀)을 방해하지 않으며, 이관 속에 있어도 사행과 별개인 것은 되지 않으리니, 그러므로 *고루 육도(六度)를 닦는 것이다.
行人圓觀稍熟, 事理欲融. 涉事不妨理, 在理不融事, 故具行六度.
13822행자. 원문은 ‘行人’. 수행하는 사람.
13823원관. 원교의 관법. 원돈(圓頓)의 지관(止觀).
13824사리가 원융해지려 함. 원문은 ‘事理欲融’. 사행과 이관의 차별이 없애려 하는 것.
13825고루 육도를 닦음. 원문은 ‘具行六度’. 제四의 겸행육도품은 사행과 이행이 갈라진 속에서, 이관이 주가 되고 육도의 수행은 부수적 위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은 사행․이행이 원융해지려는 차원이니, 그러기에 이관을 닦는 것과 육바라밀을 닦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육바리밀을 고루 닦음이 되는 것이어서, 이 품의 이름이 정행육도(正行六度)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