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처음에 ‘화엄경에서는 법혜보살이……’ 따위라 말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저 경은 십신의 이름을 나열함이 없이, 오직 *주전(住前)에서 십종의 범행을 관하고 있을 뿐이나, 예로부터 경을 강의하는 이들은 판별해 십신을 이른다고 해온 터이므로, 이제 이를 인용해 십신의 위계로 삼은 것이다. 십종범행공은 자세함이 마하지관 제七의 기술과 같다.

初云華嚴法慧等者. 彼經不列十信之名. 唯於住前, 觀十梵行. 自古講者, 判爲十信. 故今引之, 以爲信位. 十梵行空, 具如止觀第七記.

13963주전. 초주 이전.

 [석첨] *대품(大品)에서는 이르되,
 ‘비유컨대 바다에 들어가려 할 때 먼저 *평평한 상(相)을 봄과 같으니, *또한 이 가르침에 의해 삼계(三界)로부터 나오게 된다.’
고 하셨다.

若大品云, 譬如入海, 先見平相. 亦是是乘從三界衆出也.

13964대품. 대품반야경 문지품(聞持品)을 가리키니, 대지도론으로는 六六에 해당한다.
13965평평한 상. 원문은 ‘平相’. 바다는 가장 낮은 데 있기 때문에, 바다 근처는 평지로 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13966또한 이 가르침에 의해. 원문은 ‘亦是是乘’. 이것은 대품의 출도품(出到品)․대지도론의 五0에 나오는 ‘佛言是乘, 從三界中出, 至薩婆若中住’의 인용이다. 이를 ‘亦乘是乘’으로 한 텍스트도 있으나 꼭 따르지 않아도 된다.

 [석첨] ‘비유컨대 바다에 들어갈 때 먼저 평평한 상을 보게 된다’ 함은 대지도론 六六에서 다음같이 말한 것을 이른다.  ‘*심심(甚深)한 반야바라밀을 듣고 나서 *내지는 *바르게 억념(憶念)한다면, 마땅히 이런 사람은 오래잖아 *수기(授記)될 줄 알아야 한다. 가령 바다를 보고자 마음을 일으켜 달려갈 때, 나무의 모습․산림(山林)의 모습이 안 보임과 같으니, 이 사람은 바다는 보지 못한다 해도 바다가 멀리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째서 그런가. 대해(大海)가 평지에 있기에 나무 따위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보살도 반야바라밀을 수지하여 바르게 억념하는 따위의 일을 해낸다면, 비록 아직 부처님 앞에서 *겁수(劫數)의 기(記)를 듣잡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스스로 보리(菩提)에 접근함이 오래지 않음을 아는 것이니, 나무니 산이니 하는 따위는 생사다. 또 봄 나무에서 *낡은 잎이 떨어지면 마땅히 이때에 새잎의 돋아남이 오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것과도 같으니, 심심한 반야바라밀을 들어 *관행(觀行)이 성취함은 또한 이와 같다.’

譬如入海先見平相者. 大論六十六云. 聞深般若, 乃至正憶念. 當知是人, 不久授記. 如欲見海, 發深欲趣, 不見樹相山林等相. 當知是人, 雖不見海, 知海不遠. 何以故. 大海處平, 無樹等相故. 菩薩受持般若正憶念等, 雖未佛前聞劫數記, 自知近於菩提不久. 樹山等者, 生死也. 又如眷樹, 陳葉若落. 當知是時, 新葉不久. 聞深般若, 觀行成就, 亦復如是.

13967심심한 반야바라밀. 원문은 ‘深般若’. 대지도론에서는 ‘甚深般若婆羅密’로 되어 있다. 매우 깊기 이를 데 없는 반야바라밀의 가르침.
13968내지는. 원문은 ‘乃至’. 대지도론에서는 ‘得聞得見得受, 乃至正憶念’으로 되어 있다. ‘……보고 수지하고’가 생략된 것.
13969바르게 억념함. 원문은 ‘正憶念’. 근원적 사유(思惟). 진리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내용을 지성(知性)을 통해 잘 검토함으로써 그 의미를 명확히 하는 거소가 동시에, 다시 그 진리를 몸소 체험하려고 사유하는 과정을 이른다. 여리작의(如理作意)라고도 한다.
13970수기. 356의 주.
13971겁수의 기. 원문은 ‘劫受記’. 몇 겁을 지나면 성불하리라고 밝히시는 수기. 성불의 시기를 명확히 밝히시는 예언.
13972낡은 잎. 원문은 ‘陳葉’.
13973관행. 4601의 주.

 [석첨] 인왕반야경과 보현관경은 앞에서 인용한 것과 같다.

仁王般若, 普賢觀如前引.

 [석첨] ‘인왕반야경과 보현관경은 앞에서 인용한 것과 같다’고 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인왕반야경의 게송에서는 이르되,
  ‘십선의 보살이 대심(大心)을 발해
  길이 삼계 고륜해(苦輪海)와 헤어지도다’
라 한 바로 다음의 글에서,
  ‘*습종(習種)은 동륜왕(銅輪王) 되어 二천하 다스리니,’
라 했으니, 그러므로 십선보살은 철륜왕(鐵輪王)의 위계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보현관경에서 ‘십경계가 있다’고 한 것에 대해 생각건대, 그 뒤에서 또 이르되,
  ‘*삼매의 힘 때문에 육근이 점차로 청정해지니, 자세함은 경에서 설해진 바와 같다.’
하고,
  ‘*육근이 청정해지고 나면 온갖 여래에 의해 머리를 쓰다듬어 수기(授記)함이 된다.’
고 했으니, 수기는 곧 초주(初住)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아노니 육근청정은 곧 *주전(住前)의 십신의 위계인 것이다.  

引王普賢觀如前引者. 仁王偈云, 十善菩薩盤大心, 長別三界苦輪海. 次文卽云習種銅輪二天下. 故知十善是鐵輪位. 普賢觀云十境界等. 又云, 三昧力故, 六根漸淨, 具如經說. 六根淨已, 爲諸如來摩頭授記. 授記卽是入初住也. 故知六根, 卽是住前十信位也.

13974습종은 동륜왕 되어 二천하 다스리니. 원문은 ‘習種銅輪二天下’. 십주(十住)의 보살은 동륜왕이 되어 二천하를 다스린다는 뜻. 습종(習種)은 습종성(習種性)이니, 훈습(熏習)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무루의 종자. 십주의 보살은 공관을 닦는 것에 의해 견사의 혹을 끊어 이를 깨달음의 종자로 삼는다 하여, 습종성은 십주의 보살을 나타내는 데에 쓰인다. 동륜왕은 전륜왕 중 동으로 된 윤보를 얻은 왕이니, 그는 사주(四洲) 중 이대주(二大洲)를 다스린다는 것. ‘二천하’란 二대주. 이 일구(一句)는 십선을 닦는 것에 의해 도달하는 보살의 위계가 십주임을 보이는 표현이다.
13975삼매의 힘 때문에……. 원문은 ‘三昧力故, 六根漸淨, 具如經說’. 이는 ‘如是鐵悔一日至七日. 以諸佛現前三昧力故, 普賢菩薩說法莊嚴力故, 耳漸漸文障外聲, 眼漸見障外事, 鼻漸漸聞障外香. 廣說如妙法華經. 得是六根淸淨已, 身心歡喜, 無諸惡想’.의 인용이다. 따라서 ‘삼매의 힘’이란 제불의 그것이요, ‘경’이란 법화경의 법사공덕품을 이른다.
13976육근이 청정해지고 나면……. 원문은 ‘六根淨已, 爲諸如來摩頭授記’. 이는 ‘時十方佛, 各伸右手, 摩行者頭. 作如是言. 善哉善哉, 善男子……時諸世尊, 以大悲光明, 爲於行者, 說無相法. 行者聞說第一義空. 行者聞已, 心不驚怖, 應時卽入菩薩正位’의 인용인데, 수기했다는 명문(明文)은 없으나 넓은 뜻에서는 수기라 해석할 수도 있다.
13977주전. 초주 이전.

 [석첨] 아래의 글의 ‘*여래의 방에 들며, 자리에 앉으며, 옷을 입는’ 따위는, 곧 *사안락행(四安樂行)의 행처(行處)․친근처(親近處)를 닦는 일이다.

下文入如來室座衣等, 卽是修四安樂行行處近處.

13978여래의 방에 들며……. 원문은 ‘入如來室座衣’. 부처님 멸도 후에 사부대중을 위해 법화경을 설하는 사람은, 여래의 방에 들며[入如來室], 여래의 옷을 걸치며[着如來衣], 여래의 자리에 앉음[坐如來座]이 되니, 여래의 방이란 일체중생에 대한 대자비심이며, 여래의 옷이란 유화인욕심(柔和忍辱心), 여래의 자리란 일체법공(一切法空)이라 하신 일. 법사품에서 설해졌다.
13979사안락행의 행처와 친근처. 원문은 ‘四安樂行行處近處’. 초심의 보살이면서도 안락하게 악세에서 법화경을 편안하게 설할 수 있는 네 가지 행. 법화경의 안락행품에서 설해졌다. 신안락행(身安樂行)․구안락행(口安樂行)․의안락행(意安樂行)․서원안락행(誓願安樂行)이 그것인데, 이 중 신안락행은 행처와 친근처(親近處)로 나뉜다. 행처란 제법의 여실의 상(진리)을 깨달아 그것을 의거해 행동함이어서, 인내하고 유화(柔和)하여 조급함이 없어야 한다는 따위의 내면적인 규정이요, 친근처란 수행의 장애가 될 대상에는 접근하지 말라는 외면적 규정이니, 국왕과 대신 따위 권력가․외도와 문필가와 악한 사상을 지닌 자․씨름과 높이․백정과 어부와 사냥꾼․소승의 무리․여인과 중성인 남자 따위와 가까이하지 말고, 늘 좌선을 즐겨 제법은 공하다고 관하는 일이다.

 [석첨] *금경(今經)을 인용한 뜻을 살피건대, 이미 안락(安樂)의 행(行)이라 말했는데, *안락은 녈반을 이르는 터이므로 *곧 초주(初住) 이상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앞에서는 공통적인 시각에 서서 위계를 바라보았기에 비록 오품(五品)을 원교의 행(行)이라 한 바 있기는 해도, *이제 이것은 깨달음을 바라보아 이를 원교의 행이라 한 것이니, 그러므로 *원교의 행을 밝힘이 반드시 초주(初住) 이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행은 공통해서 *오품과 십신에 통하게 된다.
 이에 비해 친근처의 근(近)의 이름에는 공통적인 것과 차별적인 것이 있다. *소(疏)에서 해석해 이르되, ‘*원(遠)에 입각해 근(近)을 논함은 곧 *십뇌란(十惱亂)을 떠남을 가리키며, *근에 입각해 근을 논함은 곧 *공한처(空閑處)에서 그 마음을 닦아서 거둠을 가리키며, *원도 아니요 근도 아님에 입각해 근을 논함은 곧 *부동(不動)․불퇴(不退) 따위 십팔공(十八空)을 가리킨다’고 했다. 보살은 응당 이 같은 *세 가지 법을 관찰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러므로 함께 친근처라 이르는 것이다. 이는 곧 *접근하게 되는 법에 가까움이 있고 먼 것이 있음이 되기에 공통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이니, 공통적인 것은 멀고 개별적인 것은 멀기 때문이다.

引今經意者. 旣云安樂行. 安樂名涅槃, 卽指初住已上. 前通淫位, 雖以五品爲行, 今此淫證爲行, 故知明行必在住前. 行處則通, 通於五品十信. 近名有通有別. 如疏釋云. 約遠而論近, 卽離十惱亂. 約近而論近, 卽指在空閑處, 修攝其心. 約非遠非近而論近, 卽指不動不退等一十八空. 菩薩應修觀察如是三法, 故俱名近. 是則所近之法有親有疏, 故云通別. 通疏別深故也.

13980금경. 법화경.
13981안락은 녈반을 이름. 원문은 ‘安樂名涅槃’. 절대적인 편안함이란 녈반일 수밖에 없다는 뜻. 극락정토를 안락세계니 안양세계(安養世界)니 하는 것도 동일한 발상이다.
13982곧 초주 이상을 가리킴. 원문은 ‘卽指初住已上’. 원교의 초주에서는 부분적으로 무명을 끊어 부분적으로 중도의 도리를 깨달아, 별교의 초지(初地)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13983앞에서는 공통적인 시각에 서서 위계를 바라봄. 원문은 ‘前通淫位’. 앞에서 오품(五品)을 십신의 인(因)이라 한 글을 가리킨다.
13984이제 이것은 깨달음을 바라보아 이를 원교의 행이라 함. 원문은 ‘今此淫證爲行’. 여래의․여래실․여래좌는 인행(因行)이 아니라 과덕(果德)인 까닭이다.
13985원교의 행을 밝힘이 반드시 초주 이전에 있음. 원문은 ‘明行必在住前’. 원교에서는 일행일체행(一行一切行)이므로 초주 이전의 위계에서 원융의 행이 밝혀진다는 뜻. ‘일행일체행’은 9504의 주.
13986오품과 십신에 통함. 원문은 ‘通於五品十信’. 신안락행의 행처라 할 때의 행(수행)은, 원교의 그것이기에 오품제자위․십신위에 다 해당된다는 것.
13987소. 법화문구(法華文句)를 가리킨다.
13988원에 입각해 근을 논함. 원문은 ‘約遠而論近’. 도를 방해하는 요소를 멀리하는 것에 의해 도에 접근해감을 논하는 일. 이는 처신을 바로 하여 악에 떨어지지 않는 일이므로 계(戒)에 해당한다.
13989십뇌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열 가지 일. 경에서 설해진 다음 같은 일. (1)호세(豪勢). 국왕․대신 따위 권력가. (2)사인법(邪人法). 외도․문필가 따위의 주장. (3)흉험희(凶險戱). 씨름․연극 따위의 흥행. (4)전다라. 사형 집행자와 축산업자․사냥꾼․어부 따위. (5)이승중(二乘衆). 소승의 수행자들. (6)욕상(欲想). 여인에게 설법하면서 애욕을 품는 일과, 과부․처녀 따위와 함께 이야기하는 일. (7)불남인(不男人). 중성인 남자. (8)위해(危害). 혼자 남의 집에 들어가는 일. 이는 위해를 자초할 가능성이 있다. (9)기혐(譏嫌). 여인에게 설법하면서 웃거나 가슴을 드러내거나 하여, 비방을 사는 일. (10)축양(畜養). 나이 어린 사미를 기르지 않는 따위의 일.
13990근에 입각해 근을 논함. 원문은 ‘約近而論近’. 도를 돕는 일에 가까이하는 것에 의해 도에 접근해감을 논하는 것. 곧 선정을 닦는 일.
13991공한처에서 그 마음을 닦아서 거둠. 원문은 ‘在空閑處, 修攝其心’. 이는 안락행품에 나오는 글 그대로다. ‘공한처’는 고요하여 수행하기에 적합한 장소. ‘그 마음을 닦아서 거둔다’ 함에 좌선으로 마음을 통일하는 일.
13992원도 아니요 근도 아님에 입각해 근을 논함. 원문은 ‘約非遠非近而論近’. 중도에 입각해서 친근처의 행을 논하는 것.
13993부동․불퇴 따위의 십팔공. 원문은 ‘不動不退等一十八空’. 신안락행의 제二친근처를 말씀한 글의 ‘如實相’ 이하에 십팔구(十八句)가 있는 것을 대품(大品)의 십팔공(十八空)의 도리로 해석하여, 전도되지 않음은 내공(內空), 부동은 외공(外空), 불퇴는 내외공(內外空) 등이라 한 일. 법화문구를 참조할 것.
13994세 가지 법. 원문은 ‘三法’. 여래의․여래실․여래좌를 이른다. 이는 계․정․혜라 볼 수 있고, 또 법화문구에서 해석된 대로 삼제(三諦)로 해석해도 된다.
13995접근하게 되는 것에 가까움이 있고 먼 것이 있음. 원문은 ‘是則所近之法, 有親有疏’. 계․정․혜는 진리에서 보기에 가깝고 먼 차이가 있다. 곧 계는 멀고, 정은 계에 비해 가깝고, 혜는 가장 가깝다. 또 오품제자위는 멀고, 십신위는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석첨] 녈반경에서는 말했다.
 ‘*다시 한 행(行)이 있으니, *여래행(如來行)이어서 소위 대승이다.’

涅槃云. 復有一行, 是如來行, 所謂大乘.

13996다시 한 행이 있으니. 원문은 ‘復有一行’. 오행(五行) 외에 또 하나의 행이 있다는 뜻. 다음의 주 참조.
13997여래행이어서 소위 대승임. 원문은 ‘是如來行, 所謂大乘’. 녈반경 一一 첫머리의 ‘菩薩摩訶薩
當於是大般涅槃經, 專心思惟五種之行. 何等爲五. 一者理行. 二者梵行. 三者天行. 四者嬰兒行. 五者病行. 善男子. 菩薩摩訶薩, 常當修習是五種行. 復有一行, 是如來行. 所謂大乘大涅槃經’에서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대승’이라 함은 대승의 대녈반경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