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신세계나 영적 문제가 새롭게 문제시 되고 있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이러한 것은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었다.

인간이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가, 사후의 세계, 전생의 문제 등 인간의 진리를
가르치는 면을 서양의 종교가 다루지 않고 오직 조직화된 종교가 개인과 신과의 
관계를 다루는 일을 단절하였기 때문이다.

유럽을 지배한 기독교 교회는 로마제국 붕괴후 교육, 과학 기술, 예술,
산업의  분야를 파괴해 버렸다. 1000년이 지나고 암흑시대가 지난 후에도
교회는여전히 권위와 특권을 지키기에 몰두하였다.

그것이 비판받자 이번에는 외적을 만들어 민중의 불만으로 넘친 사회를 통일하여
이슬람교, 동방 교회, 유태인을 공격하도록 시도하고 이교도의 정복에 실패하자
다시 유럽 사회에 눈을 돌려 이단심판, 마녀 재판, 종교 전쟁 등 민중에게 공포와
불안을 강요함으로써 계층 제도를 확립하여 영적 세계를 말살하였다.

게다가, 종교와 대립한 과학마저도 인간만을 위한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추구하는 유물론의 경향으로 나가 이 세상의 진리 탐구의 중요한 부분을 외면하였다.
영적 타락, 자연 파괴의 오늘날의 문명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돌이켜 볼 때 그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나간 20세기는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한 시대이기는 하지만 또한 지구의 대량 파괴나 인류의 대량학살이 가장
심했던 시대이기도 하다.

300년간 이 세계는 유럽인의 천하였다.

자본주의, 공산주의의 탄생, 산업 혁명의 시작, 국민 국가의 성립, 즉 물질문명의
절정에 이른 것들이 유럽인의 힘이었다.

이러한 서구 문명의 토대가 된 것은 그 이외 지역에 대한 식민지의 수탈이었고, 그 시대는 범죄로 지배 점거한 유럽인의 범죄 행위의 총결산의 세기였다.

유럽에서 파시즘이  대두하자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그의 <역사의 연구>에서
이를 비판하고 무솔리니는 여기에 반발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탈리아를 위하여 하고 있는 일은 대영 제국을 건설한 영국인이 영국을
사랑하고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사가 프랑스를 위한 것처럼 나도
이탈리아를 위해 일할 뿐이다."

토인비는 서구인이 인류를 불행하게 하고 영국인도 과오가 많음을 인정하였다.

그레이브는 영국 장군으로 인도 정복의 기초를 닦은 악명 높은 인물이며
드레이크는 영국 해적 출신의 군인으로 서인도의 스페인 식민지를 약탈하고
호프킨스는 노예 무역으로 거만의 부를 얻었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인류 문명의 길을 배반한 야만인>이 아니고
<뒤늦게 악에 눈뜬 문명인>인 셈이다.

히틀러 역시 뒤늦게 악에 눈뜬 인간이지만 그에게는 역사의 미래를 꿰뚫어보는
고도의 예지 능력이 있었다.

그가 패망할 무렵에 쓴 <히틀러의 유서>를 보면 “세계는 앞으로 미국과 소련의
 지배를 받지만 서로 다투어 결국 공산주의 소련은 붕괴되고 더 과격한 슬라브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미국은 유태인이 지배하지만 그 힘을 꺾지 못하면 미국의
백인 지배는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리안 족의 세계 지배를 꿈꾸었던 히틀러가 자기 꿈이 깨진 후의
세계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히틀러는 1921년 테러와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나치스의 돌격대를 만들었다.

그는 <나의  투쟁>안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100명이나 200명의
대담한 공모자들의 비빌 집회 운영이 아니라 힘찬 민중의 대행진이다.
우리의 운동은 칼, 독약, 권총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거리를 정복하는
일로써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돌격대들은 당시 직장을 잃은 600만의 구 병사와 노동자로 구성되었는데
단체 행동을 즐기는 독일 국민에 있어서는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해 이뤄진 돌격대는 나치스 운동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인물, 정당을 없이하고,
신문사, 학교, 공공 기관에서 강연회, 데모 행진을 촉진하여 폭력적으로
민중을 협박하였는데 이것은 공산주의와 매우 유사한 수법이었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인류를 문화 창조자, 문화 지지자,
문화 파괴자의 3종류로 나누었다.

아리아인만이 <고도의 인간성의 창조자>이며 그 이외의 인종은 거의가
문화 지지자라고 하였다. 유태인은 문화 파과자라고 하였다.

유태인의 문화는 그들 주위의 문화권의 문화를 날조한 것으로 他민족의
체내에 사는 기생충이라고 하였다.

히틀러가 말하는 <기생충>박멸 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1938년 11월 9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 해였다.

이때부터 유태인의 교회당을 중심으로 수많은 유태인 점포 주택이 약탈당하고
유태인들도 강제 수용소에 보내지고 학살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