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질문. ‘계내(界內)에서는 반드시 먼저 견혹을 끊고, 다음으로는 사혹, 뒤에서는 *무지(無知)를 끊는데, 계외(界外)는 어찌해 순서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問. 界內必先斷見, 次思後無知. 界外何意不爾.
14564무지. 무명과 같은 말이나, 계내의 그것이므로 정도를 낮춰 ‘무지’라 한 것.
[석첨] 두 번째로는 대답했다. 대답 중에 넷이 있으니, 먼저 고(苦)의 가볍고 무거움에 입각해 대답하고, 둘째로 ‘又思’ 아래서는 *진리에 장애를 주는 일의 가깝고 먼 것에 입각해 대답하고, 셋째로는 *초과(超果)에 입각해 대답하고, 넷째로는 *결론지어 대답했다.
次答. 答中四. 先約苦輕重答. 次又思下, 約障理近遠答. 三約超果答. 四結酬.
14565진리에 장애를 줌. 원문은 ‘障理’.
14566초과. 앞의 과(果)를 뛰어넘어 뒤의 과를 깨닫는 일. 초월증(超越證). 12184의 주.
14567결론지어 대답함. 원문은 ‘結酬’. 수(酬)는 대답의 뜻.
[석첨] 대답. ‘계내는 *삼도(三途)의 고(苦)가 무겁기 때문에 먼저 견혹을 끊고, 다음에는 사혹, 뒤에는 무지에 미친다. 이에 비해 계외는 고가 가벼운지라, 그러므로 먼저 *지말(枝末)을 끊고 뒤에 *근본(根本)을 끊는 것이다.’
答. 界內爲三途苦重, 先斷見, 次思, 後及無知. 界外苦輕, 苦先枝後本.
14568삼도. 10669의 주.
14569지말. 원문은 ‘枝’. 오주지혹(五住地惑) 중, 제五의 무명주지(無明住地)를 근본번뇌라 하고, 앞의 사주지(四住地), 곧 견혹․사혹을 지말무명이라 한다.
14570근본. 원문은 ‘本’. 앞의 ‘지말’의 주 참조.
[석첨] 처음의 글에서 ‘계외(界外)는 고(苦)가 가벼운 까닭에 먼저 지말(枝末)을 끊고 뒤에 근본(根本)을 끊는다’고 말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무릇 *이(理)를 가로막는 혹(惑)을 일러 근본이라 하고, *사(事)를 가로막는 혹을 일러 지말이라 하니, *그러므로 계내에서는 견혹을 근본이라 하고 사혹을 지말이라 하며, *계외에서는 무명을 근본이라 하고 진사(塵沙)를 지말이라 한다. 이런 까닭에 계내에서 *차례를 따라 닦는 사람은 먼저 근본을 끊고 다음에 지말을 끊으며, 계외에서 차례를 따라 닦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지말의 혹(惑)을 끊고 다음에 근본의 혹을 끊어야 할 것이다. 계외는 이미 그 고(苦)가 가벼운지라 설사 *유전(流轉)한다 해도 퇴전해 아래의 경지로 되돌아가지는 않으니, *화도(化道)를 돕기 위해 먼저 진사를 끊고, 뒤에서는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바야흐로 무명을 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初文言界外苦輕, 故先枝後本者. 凡障理惑, 名之爲本. 障事之惑, 名之爲枝. 故以界內見惑爲本, 思惑爲枝. 界外無明爲本, 塵沙爲枝. 是故界內次第修人, 先於本, 次斷爲枝. 界外次第, 必須先斷枝惑, 次斷
根本. 界外旣其苦輕, 借使流轉, 不退歸下. 爲助化道, 故先斷塵沙. 後爲顯眞, 方斷無明.
14571이를 가로막는 혹. 원문은 ‘障理惑’. 진리에 도달함을 가로막는 근본무명(根本無明). 이장(理障).
14572사를 가로막는 혹. 원문은 ‘障事之惑’.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장애. 생사를 이어지게 하는 번뇌를 이른다. 사장(事障)이라고 하니, 이장(理障)의 대(對).
14573그러므로 계내에서는 견혹을 근본이라 하고 사혹을 지말이라 함. 원문은 ‘故以界內見惑爲本, 思惑爲枝’. 견혹은 사상적 미혹이라 이장(理障)에 해당하고, 사혹은 감정․의지의 미혹이라 사장(事障)에 해당하는 까닭이다. 원문은 ‘以’는 온당치 못하니, ‘見惑’ 위에 있는 것이 필사(筆寫)의 과정에서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잉자(剩字)일 것이다.
14574계외에서는 무명을 근본이라 하고 진사를 지말이라 함. 원문은 ‘界外無明爲本, 塵沙爲枝’. 무명혹은 이장에 해당하고 진사혹은 사장에 속하기 때문이다. 무명혹․진사혹은 457의 ‘障中道微細無明’의 주 참조.
14575차례를 따라 닦는 사람. 원문은 ‘次第修人’. 증도(證道)․단혹(斷惑)을 순서대로(단계적으로) 닦아가는 행자.
14576유전. 윤회와 같다.
14577화도. 1616의 주.
[석첨] ‘또 사혹과 무지는 *편진(偏眞)을 가로막지 않으니, 진리를 보기 위해 먼저 견혹을 제거하며, 계외의 진사혹은 *체상(體上)의 혹(惑)이라 *멀리 능히 진리를 가로 막으니, 그러기에 먼저 먼 장애를 물리치고 다음에 *가까운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다…….’
又思無知, 不障偏眞. 爲見眞理, 故先除見. 界外塵沙, 是體上惑, 遠能障理. 先能障理. 先却遠障, 次除近障云云.
14578편진. 편벽된 진리. 소승의 진리를 이른다.
14579체상의 혹. 원문은 ‘體上惑’. 진리의 본체에서 일어나는 번뇌. 진사혹은 견혹․사혹을 끊어 중도를 보고는 있으나, 막상 다양한 현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일이니, 그러므로 ‘체상의 혹’이라 한 것이다.
14580멀리 능히 진리를 가로막음. 원문은 ‘遠能障理’. 차별상에 걸려 원융한 중도와 하나가 되지 못하기에 진사혹을 먼 장애라 한 것.
14581가까운 장애. 원문은 ‘近障’. 진사혹에 비해 무명혹은 가까운 장애니, 이는 중도 자체에 대한 미혹이기 때문이다.
[석첨] ‘또 다음으로 삼장교(三藏敎) 중의 *후신(後身)의 보살과 *초과(超果)의 이승(二乘)은 견혹․사혹을 *한가지로 끊으며, *또한 먼저 사혹을 끊기도 한다……. 그러나 불초과(不超果)인 자는 *앞뒤에서 끊을 뿐이다.
*통교(通敎)에도 초과․불초과의 두 뜻이 있고, *별교(別敎)는 앞뒤에서 끊고, *원교(圓敎)는 한가지로 끊는다.’
復次三藏中後身菩薩, 及超果二乘, 見思同斷, 亦先斷思云云. 不超果者, 前後斷耳. 通敎亦有超不二義. 別敎前後斷. 圓敎同斷.
14582후신의 보살. 원문은 ‘後身菩薩’. 뒤의 위계에 있는 보살. 삼십사심(三十四心)의 보살을 이른다. 팔인(八忍)․팔지(八智)의 십륙심(十六心)과 구무애(九無礙)․구해탈(九解脫)의 십팔심(十八心)이 三四이니, 一六초심에서 견혹을 끊으며 一八심에서 사혹을 끊는다는 것. 그런데 삼장교의 보살은 이 三四심에 의해 견혹․사혹을 동시에 끊어 성도한다 함이 천태종의 주장이다.
14583초과의 이승. 원문은 ‘超果二乘’. 위계의 순서를 뛰어넘어서 대번에 깨닫는 성문과 연각. 부처님의 ‘잘 왔다(善來)…’는 한 마디 말씀을 들은 것만으로 아라한이 된 것 같음이 초과의 이승이다.
14584한가지로 끊음. 원문은 ‘同斷’. 같이 끊음. 동시에 끊음.
14585또한 먼저 사혹을 끊기도 함. 원문은 ‘亦先斷思’. 초과(超果)에는 견사를 일시에 끊는 것이 있는가 하면, 사혹을 먼저 끊는 것도 있다는 것.
14586앞뒤에서 끊을 뿐임. 먼저 견혹을 끊고 뒤에 사혹을 끊는 일.
14587통교에도 초과․불초과의 두 뜻이 있음. 원문은 ‘通敎亦有超不超二義’. 통교에도 이승(二乘)이 있기 때문이다.
14588별교는 앞뒤에서 끊음. 원문은 ‘別敎前後斷’. 별교는 격별(隔別)의 가르침이기 때문임. 14589원교는 한가지로 끊음. 원문은 ‘圓敎同斷’. 원교는 원융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석첨] ‘*앞뒤의 물음은 다만 *일도(一途)를 본 것임을 뿐이다…….’
前後之問, 但見一途耳云云.
14590앞뒤의 물음. 원문은 ‘前後之問’. 먼저 견혹을 끊고 뒤에 사혹을 끊음을 전제한 질문. 14591일도. 일부의 뜻.
[석첨] ‘앞뒤의 물음은 다만 일도(一途)를 본 것뿐이다’ 함은, 위에서 물음을 설정해 이르되, 앞에서 견혹을 끊고 뒤에서 사혹을 끊는다 한 것은, 다만 일부분인 *차례를 따라 수행하는 취지일 뿐, 여러 가르침의 초과(超果)의 뜻도 아니며, 또한 *통방(通方)의 *원돈(圓頓)의 도(道)도 아니라는 것이다.
前後之問, 但見一途者. 上設問云, 前斷見惑, 後斷思惑, 斷是一途次第之意. 非是諸敎超果之義. 亦非通方圓頓之道.
14592차례를 따라 수행함. 원문은 ‘次第’. 앞에 나온 차제수(次第修)의 뜻.
14593통방. 시방(十方)에 통달하는 것. 도(道)에 통달하는 뜻.
14594원돈. 2836의 주.
[석첨] *대장(大章)의 제四에서 공용(功用)을 밝히는 중에 둘이 있으니, 먼저 이름을 해석했다.
大章第四明功用中二. 先釋名.
14595대장의 제四에서 공용을 밝힘. 원문은 ‘大章第四明功用’. 대장(大章)은 문장을 크게 나누는 일. 큰 분과(分科). 이는 원교의 위계를 밝힘에 있어서 십의(十意)를 나누는 중, 이 ‘공용’이 그 넷째에 해당함을 말한 것이다. 이제껏 명의(名義)․위수(位數)․단복(斷伏)이 설해지니, 이제부터 넷째인 공용의 차례라는 뜻.
[석첨] 넷째로 *공용(功用)을 밝히건대, 만약 *글자를 나누어 뜻을 해석하면 *공(功)은 스스로 나아감을 말하고 *용(用)은 남들을 교화함을 말하며, *글자를 합쳐서 해석하면 *바로 화타(化他)를 말함이 된다.
四明功用者. 若分字解義, 功論自進, 用論益物. 合字解者, 正語化他.
14596공용. 노력․동작․작용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14597글자를 나누어 뜻을 해석함. 원문은 ‘分字解義’. 합성어(合成語)의 글자 하나하나를 떼어내 뜻을 해석하는 일.
14598공은 스스로 나아감을 말함. 원문은 ‘功論自進’. 공용의 ‘공’은 자행(自行)의 공덕을 말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14599용은 남들을 교화함을 말함. 원문은 ‘用論益物’. 공용의 ‘용’은 화타(化他)의 작용이라는 해석이다. 익물의 ‘물’은 중생의 뜻. 이같이 하나는 자행을 나타내는 하나는 화타를 나타내는 점에서, 이 분자해의(分字解義)는 육합석(六合釋) 중 의주석(依主釋)에 해당한다.
14600글자를 합쳐서 해석함. 원문은 ‘合字解’. 복합어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뜻을 합쳐서 해석하는 일.
14601바로 화타를 말한 것임. 원문은 ‘正語化他’. 하나는 공덕의 뜻이요 다른 하나는 작용의 뜻이라 할 때, 이 두 가지 뜻은 똑같이 화타에 의지해 있음이 되니, 이는 지업석(持業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