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해석 중에 둘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간략히 판별(判別)하고, 둘째로 ‘又三藏’ 아래서는 *위계를 비교하여 판별했다.
 처음의 글에 둘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일단 먼저 삼장교․통교는 추하며 별교․원교는 묘함을 밝히고, 둘째로 ‘而別’ 아래서는 거듭 별교는 추하며 원교는 묘함을 밝혔다.

釋中二. 初略判. 次又三藏下, 格位判. 初文二. 初一往先明藏通麤而別圓妙. 次而別下, 重明別敎麤而圓敎妙.

14679위계를 비교함. 원문은 ‘格位’.

 [석첨] *소초(小草)는 *다만 사취(四趣)를 면하는 것뿐이어서 *움직이지 않고 나가지 않으며, *중초(中草)는 비록 움직이고 나가기는 한다 해도 지혜가 근원을 다하지 못하여 *은혜가 중생에게 미치지 않으며, *상초(上草)는 비록 능히 널리 구제한다고는 해도 *색(色)을 멸하므로 *졸도(拙度)라 해야 하며, *소수(小樹)는 *비록 교도(敎度)이긴 하다 해도 공(功)이 *계내(界內)에 제한되니, 그러므로 그 위계들은 다 추하다. 그리고 *대수(大樹)와 *실사(實事)는 똑같이 중도(中道)를 *인식하여 다 무명을 깨어서 함께 *계외(界外)의 공용(功用)이 있으므로 이 위계들을 묘하다 해야 하나, 별교(別敎)는 *방편문(方便門)을 따라 *곡경우회(曲逕迂廻)함으로써 *근본이 되는 곳이 졸렬하니 그 위계 또한 추하며, 원교(圓敎)는 *직문(直門)이라 그러므로 묘하다 해야 한다.

小草止免四趣, 不動不出. 中草雖復動出, 智不窮源, 恩不及物. 上草雖能兼濟, 滅色爲拙. 小樹雖巧, 功齊界內. 故其位皆麤. 大樹實事, 同緣中道, 皆破無明, 俱有界外功用, 故此位爲妙. 而別敎從方便門, 曲逕紆廻, 所因處拙, 其位皆麤. 圓敎直門, 是故爲妙.

14680소초. 삼초이목(三草二木) 중의 그것. 곧 인천승(人天乘).
14681다만 사취를 면함. 원은 ‘止免四趣’. 인천승은 지옥계․아귀계․축생계․아수라계에 태어남을 면하는 데 그친다는 것.
14682움직이지 않고 나가지 않음. 원문은 ‘不動不出’. 범부의 경지에서 움직이지 않고, 삼계에서 나가지 않는 것.
14683중초. 이승(二乘)의 위계.
14684은혜가 중생에게 미치지 않음. 원문은 ‘恩不及物’. 물(物)은 중생.
14685상초. 삼장교의 보살.
14686색을 멸함. 원문은 ‘滅色’. 삼장보살은 설법 내용이 공을 관하여 생사를 멸하는 일이라는 것.
14687졸도라 해야 함. 원문은 ‘爲拙’. 졸도(拙度)는 2822의 주.
14688소수. 통교를 가리킨다.
14689비록 교도이긴 하다 해도. 원문은 ‘雖巧’. 교도(敎度)는 2828의 주.
14690계내. 3721의 주.
14691대수. 별교.
14692실사. 법화경의 원교. 신해품의 ‘但爲菩薩, 演其實事. 而不爲我, 說斯要眞’에서 나온 것. 14693인식함. 원문은 ‘緣’.
14694계외. 3723의 주.
14695방편문. 방편의 법문.
14696곡경우회. 굽은 길로 멀리 돌아감. 별교는 차별의 가르침이므로 바로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일.
14697근본이 되는 곳. 원문은 ‘所因處’. 소인(所因)의 용례로는 방편품의 ‘諸苦所因, 貪欲爲本’ 따위가 있다. 여기서는 그 행(行)을 이른다.
14698직문. 바로 진리에 이르는 법문. 비유품에서 ‘직지도량(直至道場)이라 하심이 그것이다. 원돈(圓頓)의 가르침.

 [석첨] 처음의 글의 취지는, 잠시 전반적으로 실상(實相)을 인식함을 말했으나 *또한 멀리 증도(證道)에 붙여서 설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 교도(敎道)를 논한다면 중도의 진리에는 *단(但)과 부단(不但)의 차이가 있음이 되니, 그러므로 이를 판별해 묘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거듭 판별했으니, *대(帶)와 부대(不帶)의 차이를 따라 판별했기 때문이요, 추를 띰은 곧 교도(敎道)인 때문이다. 그리고 ‘방편’ 따위라는 말은 *다 진실에서 바라보고 설한 것이니, 그러므로 행(行)이 졸렬함이 된다.

初意者. 且言通緣實相, 亦遙寄增以說. 若論敎道, 中理則有但不但異. 是故不可判之爲妙. 爲是義故, 復更重判. 從帶不帶異故. 帶麤卽敎道故也. 方便等言, 竝淫實說, 故成行拙.

14699또한 멀리 증도에 붙여서 설함. 원문은 ‘亦遙寄證以說’. 지전(地前)을 지상(地上)에서 논하고, 별교와 원교를 합해서 말하는 일.
14700만약 교도를 논한다면. 원문은 ‘若論敎道’. 수행의 처지에서 논하는 것.
14701단과 부단. 원문은 ‘但不但’. 중도를 공(空)․가(假)와 다른 최고의 진리라고 인식함이 단중이요, 중도를 공․가와 상즉(相卽)하는 것으로 보는 원교의 중도관이 부단중이다.
14702대․부대. 방편을 띤 것과 띠고 있지 않은 것.
14703다 진실에서 바라보고 설한 것임. 원문은 ‘竝淫實說’. 증도(證道)에 입각해 바라보기에 지전(地前)은 다 방편을 띰이 된다는 뜻.

 [석첨] 둘째로 위계를 비교한 것 중에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삼장교․통교를 원교에 비교하고, 둘째로는 별교를 원교에 비교하고, 셋째로 ‘是知’ 아래서는 귀결(歸結)을 보였다.

次格位中三. 初以藏通格圓. 次以別格圓. 三是知下, 結歸.

 [석첨] 또 삼장교의 보살은 *전적으로 혹(惑)을 끊지 않는 바, 원교의 *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에 비교할 때는 동일한 점과 열등한 점이 있다. 똑같이 혹을 끊지 않으니, 그러므로 동일하다 말함이요, 오품제자위는 원만하게 *상주(常住)를 이해하건만 저 삼장교의 보살은 전혀 상주에 대하여는 듣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열등함이 된다. 만약 *삼장교의 불위(佛位)라면 *견사혹(見思惑)을 끊어 다하게 하는 바, 이를 *육근청정위(六根淸淨位)에 비교하면 동일한 점이 있고 열등한 점이 있다. 똑같이 *사주혹(四住惑)을 제거하니 이 점을 동일하다 함이요, 만약 무명을 억제하는 점에서라면 삼장교의 불위가 열등하니, 부처님조차 열등하다 한다면 이승(二乘)은 알만 할 것이다. 마땅히 알라 *삼초(三草)는 *몽롱(蒙籠)해서 낳는 작용이 얕고 짧으니, 그러므로 그 위계는 다 추하다.
 만약 *간혜지(幹慧地)․성지(性地)를 오품제자위에 비교할 경우라면 동일한 점이 있고 열등한 점이 있으니, 앞에 비추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팔인(八人)․육지(六地)에서 견사혹이 다하고, *칠지(七地)에서 방편을 닦아 *불지(佛地)에 이르러 습기를 끊어 다하게 함은, *원교의 사해(似解)에 비교할 때 동일한 점과 열등한 점이 있으니, 앞에 비추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땅히 알라 소수(小樹)의 위계는 아직 *간운파사(干雲婆娑)의 능력이 없으니, 그러므로 다 추한 것이다.

又三藏菩薩, 全不斷惑. 淫圓敎五品, 有齊有劣. 同不斷惑, 是故言齊. 五品圓解常住, 彼全不聞常住, 是故爲劣. 若三藏佛位, 斷見思盡. 淫六根淸淨位, 有齊有劣. 同除四住, 此處爲齊. 若伏無明, 三藏則劣. 佛尙爲劣, 二乘可知. 當知三草蒙籠, 生用淺短, 故其位皆麤. 若幹慧地性地, 淫五品位, 有齊有劣, 例前云云. 若八人六地見思盡, 七地修方便, 至佛斷習盡, 淫圓敎似解, 有齊有劣. 例前可解. 當知小樹之位, 未有干雲婆娑之能, 是故皆麤.

14704전적으로 혹을 끊지 않음. 원문은 ‘全不斷惑’. 번뇌를 끊으면 다시 태어날 수 없어서 중생 교화가 불가능해지니, 그러므로 삼장보살은 번뇌를 억제할 뿐 끊지는 않는다는 것.
14705오품제자위. 원문은 ‘五品’. 3155의 ‘五品弟子位’의 주.
14706상주. 영원한 것. 구체적으로는 불성이나 진여의 영원성을 이르고, 열반의 그것이라 보아도 된다.
14707삼장교의 불위. 원문은 ‘三藏佛位’. 삼장교(소승)에서도 일단 불위를 설정하기는 하나, 실제로 삼장교의 부처님이 계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삼장교가 이해하는 부처님의 뜻으로 봄이 좋다.
14708견사혹. 원문은 ‘見思’. 1098의 주.
14709육근청정위. 7906의 주.
14710사주혹. 원문은 ‘四住’. 3699의 주.
14711삼초. 소초․중초․상초. 곧 인천승과 이승과 상장보살.
14712몽롱. 흐리터분한 것. 지혜가 밝지 못한 것. ‘朦朧’과 같다.
14713간혜지․성지. 통교의 삼승공십지(三乘共十地)의 첫째․둘째의 위계. 12415의 ‘三乘共位’의 주 참조.
14714팔인․六지. 삼승공십지의 셋째인 팔인지(八人地)와 그 여섯째인 이욕지(離欲地). 이것은 ‘팔인지에서 六지에 이르러’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14715칠지. 이변지(已辨地).
14716불지. 제십지(第十地).
14717원교의 사해. 원문은 ‘圓敎似解’. 원교의 상사즉(相似卽)이니, 곧 그 십신의 위계.
14718간운파사. 간운은 구름을 침범할 듯 높음을 형용함이니 자행(자기의 수행)이 매우 높음을 이르고, 파사는 춤추는 모양이니 교화하는 용(用)이 넓음을 말한 것이다. 뛰어난 대승의 수행과 이타(利他).

 [석첨] 처음의 글은 삼장교․통교의 *인과(因果)의 위계를 원교에서 바라보건대, 다만 *사위(似位)에 이름이 고작이라는 것인데, 그 하나하나에서 다 ‘동일한 점이 있고 열등한 점이 있다’고 말함은, ‘혹(惑)이 다하는 점을 동일하다 하고, *관행(觀行)과 *문교(聞敎), 이것은 열등하다고 한다는 것이요, *또한 불위(佛位)를 가져다 비교한 것은 *교도(敎道)를 따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初文意者. 以藏通因果之位, 淫於圓家, 但至似位. 一一皆雲有齊有劣者. 惑盡處齊, 觀行聞敎, 是則爲劣. 亦以佛位格者, 爲順敎道故也.

14719인과의 위계. 원문은 ‘因果之位’. 수행은 ‘인’이요 깨달음은 ‘과’이므로, 모든 위계는 뒤의 것에 대하여는 ‘인’이요 앞의 위계에 대하여는 ‘과’임이 되니, 불위(佛位)만이 ‘과’일 뿐 ‘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14720사위. 상사즉(相似卽). 2346의 ‘六根’의 주 참조.
14721관행. 관행즉.
14722문교.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다 함이니, 곧 명자즉(名字卽). 관행즉과 함께 2346의 ‘六卽’의 주 참조.
14723또한 불위를 가져다 비교함. 원문은 ‘亦以佛位格’. 삼장교․통교에서 다 부처님의 위계를 원교의 위계에 비교한 일.
14724교도를 따르고자 했기 때문임. 원문은 ‘爲順敎道故’. 삼장교에서나 통교에서나 각각 그 가르침의 처지에서 수행의 끝나는 위계를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곧 삼장교의 부처님이나 통교의 부처님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시나, 삼장교․통교의 처지에서는 자기네의 교리에 의해 설정한 부처님이 계신데, 잠시 이런 부처님을 원교의 위계와 비교해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