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죽음은 ‘열반에 드셨다.’고 표현한다. 열반(涅槃)은 깨달음의 경지를 일컫는 말로 부처님의 죽음을 경전에서는 진리와 일체가 되어 시공(時空)을 초월한 존재가 된 부처님께서 생사의 본질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상(無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계가 있는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께선 쿠시나가라 숲 속 두 그루의 사라나무 아래에서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셨다. 날이 새자 아난다는 부처님의 입멸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모두가 놀라고 슬퍼했지만 이윽고 향과 꽃다발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의 유체(遺體)에 바치고 악기를 연주하며 6일 동안 성대히 장례식을 치렀다. 먼 곳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제자, 마하가섭이 뒤늦게 도착해 슬피 울었다. 마하가섭의 울음이 그치지 않자 이변이 생겼다.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 보이신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열반이 죽음도 소멸도 아님을 가르치신 것이었다.
화장(火葬) 뒤 유골은 수습되어 사리함에 담겨졌다. 한 조각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사리함은 꿀로 채워졌다. 유골은 다시 삼등분 되었다. 하늘에서 신들이 내려와 한 부분을 하늘로 모셔갔다. 또 한 부분은 용왕이 모셔다가 지하세계에 보관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8명의 왕들이 나누어서 각각 자기의 왕국에 사리탑을 세웠다.
부처님의 입멸을 지켜보지 못한 많은 참배객들은 가장 가까운 사리탑으로 가서 참배하였다. 이때 건립된 불사리탑 8개 중에서 오늘날 분명히 확인된 것은 2개뿐이다. 이후로는 타다 남은 재를 안치하여 탑을 건립하기도 하고, 또는 부처님의 수염과 머리카락을 안치한 탑이 세워지기도 하여 인도 전역에 11개의 탑이 건립되어 사리탑 숭배가 시작되었다.
부처님의 죽음은 보통 사람의 죽음과 달리 열반의 달성을 말하며, 열반의 상징적 표현으로 불탑을 만든 것이다. 그 후, 인도에서 이것을 수용하여 조형하기에 이르지만 거의 발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간다라의 열반도(涅槃圖)는 처음으로 부처님의 현실적인 죽음의 장면을 표현한 점에서 획기적이다.
조각에서는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 부처님께서 누워 계신다. 뒤쪽에는 쿠시나가라의 귀족이 비탄에 젖어있다. 부처님의 발쪽에는 마하가샤파가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발을 만져보고 있다. 방금 전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귀의한 수바드라는 땅에 앉아 좌선을 하고 있고, 아난다는 기절하여 다른 비구의 부축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에는 바즈라파니가 오른손을 머리에 대고 비탄에 젖어있다.
열반도뿐 아니라 화장하는 장례식과 사리 분배에 관한 부조도 많이 보이다.
부처님의 다비를 위해 향나무 장작더미 위에 관을 올리고 불을 붙였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 그러다 마하가섭이 500의 비구를 이끌고 도착하여 부처님의 관 앞으로 가자 관 밖으로 부처님의 두 발이 나왔다가 마하가섭이 예배를 마치자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불이 붙어 화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각의 아랫면 왼쪽에는 두 귀족이 불타고 있는 유골에 긴 손잡이를 단 작은 물병으로 물을 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만큼의 유골을 수습하여 안치하고 7일 동안 경배를 했다.
전기적인 불전미술에서는 <탄생>(또는 연등불수기)이나 <탁태영몽>에서 열반 또는 사리분배까지의 석가의 생애에 관한 관심이 축이 된다. 인도에서는 이와 같은 석가의 일대기를 표현하는 것은 거의 볼 수 없고, 간다라 미술 계통에 이와 같은 불전미술의 성격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간다라 미술에서는 석가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 서술적, 서사적으로 표현하였다.
단편적으로 출토된 불전 부조를 정리하면 120개의 장면을 볼 수 있어 간다라 미술이 얼마나 <석가의 생애>를 그려내는데 정열을 쏟았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간다라인은 윤회전생의 신화적 세계보다는 현실적인 역사 세계에 중점을 둔 것이다.
간다라 불전미술의 양상은 2개의 측면에서 관찰할 수가 있다. 하나는 연속하는 장면이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가가 중시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각 개의 장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표현상의 문제다.
간다라의 불전부조의 대부분은 원래 스투파의 기단이나 동체부에 끼어 있던 것으로 처음에 그것이 어떠한 배열 아래 제작되었는지는 현존하는 스투파의 부조 조각이 완전한 형(形)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복원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봉헌소탑>이라는 신자가 기증한 작은 스투파(사리탑)에 관해서는 일련의 부조가 완전히 남아 있는 것이 몇 개 있다. 이것을 기초로 하여 당시의 불전부조의 전체 구성을 생각할 수가 있다. 페샤바르의 예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20개의 화면을 볼 수 있다.
불전부조의 구성을 보면 1.연등불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