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첨] 처음의 글은 고루 *제교(諸敎)의 *차례로 점점 폐기됨을 밝혔으니, *그러므로 이 주장을 한 것이다. 만약 법화경에 이른다면 일체의 방편의 위계가 폐기될 것이니, 그러므로 이 속의 취지는 전적으로 법화경의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다.

初文者. 具明諸敎展轉漸廢, 故作此說. 若至法華, 一切權廢. 是故此中, 不全同法華.

14798제교. 법화경 이전의 삼장교․통교․별교.
14799차례로. 원문은 ‘展轉’.
14800그러므로 이 주장을 한 것임. 원문은 ‘故作此說’. 직역하면 ‘그러므로 이 설(說)을 한 것임.’

 [석첨] 둘째로 바로 해석한 것 중에는 둘이 있으니, 먼저 파립의 취지를 서술하고, 둘째에서는 바로 폐기함을 밝혔다.
 처음의 글은 삼승(三乘)을 폐기하고 일승(一乘)을 있게 하는 일인 바, 처음의 삼승을 폐기하는 것 중에 셋이 있으니, 첫째로 먼저 여래의 파립(破立)의 취지를 밝히고, 둘째로 *용수(龍樹)의 파립의 취지를 밝히고, 셋째로 *금사(今師)의 파립의 취지를 밝힘이 그것이다.

次正釋中二. 先叙破立之意. 次正明廢. 初立者, 則廢三存一. 初廢三中三. 一先明如來破立之意. 次明龍樹破立之意. 三明今師破立之意.

14801용수. 2729의 주.
14802금사. 지금의 스님. 곧 천태대사.

 [석첨] 왜냐 하면, 원래 여래께서 삼장교의 위계를 세우심은 방편으로 *사선(事善)을 생기게 하려 하심이라, 사선이 이미 생겨나 *제도(濟度)하는 작용이 만일 충족되고 난다면 곧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니, 통교․별교의 위계 또한 이와 같다. 이는 여래의 파립의 뜻이시다.

何者. 元夫如來立三藏位, 權生事善. 事善旣生, 濟用若足, 便須廢也. 通別位亦如是. 此是如來破立之意.

14803사선. 13806의 주.
14804제도하는 작용. 원문은 ‘濟用’. 중생 제도의 작용.

 [석첨] 처음의 글은, *비록 다시 오시(五時)에 증감(增減)함이 같지 않다 해도 본의는 오직 삼승을 깨고 一승을 있게 하기 위함이라 함이니, 그러므로 ‘여래의 파립의 뜻’이라 말한 것이다. 자세히는 가르침의 일어남이 *번갈아 일어남을 따라 작은 것에 이르는 것같이, 이렇게 점점 폐기되어 오직 *일극(一極)만이 있게 되는 것이다.

初文者. 雖復五時增減不同, 本意秖爲破三存一, 故云如來破立意也. 具如敎興, 迭興至小. 如是漸廢, 唯存一極.

14805비록 다시 오시에 증감함이 같지 않다 해도. 원문은 ‘雖復五時增減不同’. 화엄시에서는 원교․별교를 설하시고, 녹원시에서는 삼장교 하나를 설하시고, 통교에서는 사교(四敎)를 함께 설하시고, 반야시에서는 별교․원교를 설하셔서, 설하시는 가르침의 수가 들쑥날쑥한 일. 14806번갈아 일어남을 따라 작은 것에 이름. 원문은 ‘迭興至小’. 가르침이 번갈아 일어난 끝에 법화경에 이르러 원교 하나가 되는 일.
14807일극. 3625의 주.

 [석첨] *비담바사(毘曇婆沙) 중에서 보살의 뜻을 밝힌 것은 *용수(龍樹)가 왕왕 이를 깬 바 있는데, *부처님의 방편을 간과했으니 그러므로 깨야 하고, *부처님의 방편을 폈으니 그러므로 세워야 한다 함이었다. 이는 용수의 파립의 뜻이다.

若毘曇婆沙中, 明菩薩義. 龍樹往往破之. 謂其失佛方便, 是故須破. 申佛方便, 是故須立. 此是龍樹破立意.

14808비담바사. 비담은 논(論)을 이르고, 바사는 논에 대한 주석서. 소승의 논서(論書).
14809용수가 왕왕 이를 깸. 원문은 ‘龍樹往往破之’. 대지도론 二七에 그런 내용이 나와 있다. 14810부처님의 방편을 간과함. 원문은 ‘失佛方便’. 소승을 최고의 진리인 듯 알아, 그것이 방편의 설임을 놓치고 있는 점.
14811부처님의 방편을 폄. 원문은 ‘申佛方便’. 열등한 근기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그 나름의 이익을 주고 있음을 말했다.

 [석첨] 둘째의 글 중에서 ‘비담바사에서 보살의 뜻을 밝힌 것’ 따위라 말함은, 잠시 *연문(衍門)에 대립시켜 *三승을 있게 하고 一승을 폐기한 것이니, 자세히는 마하지관 제三의 기술과 같다.

次文中, 云毘曇婆沙明菩薩義等者. 且對衍門, 存三廢一. 廣如止觀第三記.

14812연문. 대승을 가리킨다. 3455의 ‘摩訶衍’의 주 참조.
14813三승을 있게 하고 一승을 폐기함. 원문은 ‘存三廢一’. 소승도 그 나름의 교화의 이익이 있음을 인정해 줌은 ‘三승을 있게 함’이 되고, 소승의 방편임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은 ‘一승을 폐기함’이 된다.

 [석첨] 셋째로 금사(천태대사)의 파립(破立)의 뜻을 밝힌 것에 또 둘이 있으니, 먼저 깨고, 둘째로 ‘而圓’ 아래서는 세웠다.
 처음의 것에 또 둘이 있으니, 먼저 깨고, 둘째로 ‘往者’ 아래서는 파립의 뜻을 밝혔다.
 처음의 글에 또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대승 측의 소승을 세우지 않은 과실을 깨고, 둘째로 ‘常途’ 아래서는 소승의 학자의 그릇되게 대승을 쓴 과실을 깨고, 셋째로 ‘又別’ 아래서는 한 가지 별교가 집착하여 *실교(實敎)를 비난한 과실만을 깼다.

三明今師破立之意又二. 先破. 次而圓下, 立. 初又二. 先破. 次往者下, 明破立意. 初文又三. 初破大乘不立小失. 次常途下, 破小乘師謬用大失. 三又別下, 單破別敎執非實敎失.

14814실교. 진실의 가르침. 법화경(원교)의 가르침.

 [석첨] 만약 *보통의 대승의 학자들이라면 전혀 삼장교를 *정리(整理)하지 않으니, 이렇게 되면 부처님의 방편을 놓치는 결과가 온다.

若常途大乘師, 全不整理三藏. 此則失佛方便.

14815보통의. 원문은 ‘常途’.
14816정리. 닦아서 가지런히 하는 일. 여기서는 닦는 뜻. ‘보통의 대승의 학자’라 함은 화엄경․반야경을 닦아, 대승만을 높다 한 끝에 소승(삼장교)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석첨] 처음의 것은 글 그대로다.

初如文.

 [석첨] 둘째의 글 중에는 셋이 있으니, 처음에서는 전반적으로 소승을 버리고 대승만을 쓰는 점을 깨고, 둘째로 ‘此有’ 아래서는 바로 그 잘못 쓰는 과실을 깨고, 셋째로 ‘縱令’ 아래서는 그 대승을 모른 채 잘못 쓰는 과실을 *마음껏 비난했다.

次文中三. 初總破棄小用大. 次此有下, 直破其謬用之失. 三縱令下, 縱難其不識大乘謬用之失.

14817마음껏 비난함. 원문은 ‘縱難’.

 [석첨] 보통의 소승의 학자들은 *경의 뜻을 탐색해 취해다가 제가 펴는 논(論)을 해석함으로써 보살의 뜻을 가렸다. 그리하여 *비바사(毘婆沙)에서 스스로 보살의 뜻을 설하고 있건만 쓰려 하지 않고, 대승의 경전에서 취해다가 삼장교의 *공유(空有)의 이문(二門)을 이해하였으니, 어찌 *서로 회통(會通)되랴. 이것에는 두 과실이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의 방편을 매몰(埋沒)함이요, 둘째는 *논주(論主)의 보살의 뜻을 알지 못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깨야 하는 것이다.

常途小乘師, 探取經義, 釋所弘之論, 辨菩薩義. 毘婆沙自說菩薩義, 而不肯用. 取大乘經, 解三藏空有二門, 豈應相會. 此有二過. 一埋佛方便. 二彰論主不解菩薩義. 是故須破.

14818경의 뜻을 탐색해 취해다가. 원문은 ‘探取經義’. 소승의 논서에 더 깊은 뜻을 부여하기 위해 대승의 경전에서 편리한 것을 인용하는 일.
14819비바사. 소승의 논(論)을 이른다. 또 구체적으로 “비바사론”을 일컫는 뜻으로도 볼 수 있으나, 이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어느 것이라 단정키 어렵다.
14820공유의 이문. 원문은 ‘空有二門’. 5237의 주.
14821서로 회통됨. 원문은 ‘相會’. 둘 사이의 모순이 없어져 하나로 지양되는 것.
14822논주. 논서의 저자.

 [석첨] 처음의 글은, 당신이 소승을 버리고 대승을 쓴다면 *부처님이 소승을 대승의 방편으로 삼으신 취지가 없어지며, *또 당신이 굴복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않는다면 논서의 글에는 스스로 보살의 뜻이 있는 터에, 어찌 대승을 쓸 필요가 있느냐 함이니, 그러므로 두 과실이 있다 하여 이를 깬 것이다. 당신이 만약 논주(論主)의 이해하지 못함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어찌 이를 버릴 필요가 있단 말인가.

初文者. 汝棄小用大, 沒佛小乘爲大方便. 又汝若不伏不曉, 論文自有菩薩義, 何須用大. 故以二失破之. 汝若不嫌論主不解, 何須棄之.

14823부처님이 소승을 대승의 방편으로 삼으신 취지가 없어짐. 원문은 ‘沒佛小乘爲大方便’. 소승이 열등하다 하여 전적으로 배격할 때는, 소승을 방편으로 쓰신 부처님의 뜻이 무시된다는 것. ‘大方便’은 ‘큰 방편’의 뜻으로 해석돼도 무방하다.
14824또 당신이 굴복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않는다면……. 원문은 ‘又汝若不伏不曉, 論文自有菩薩義, 何須用大’. 대승의 가르침에 굴복하여 그 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소승의 논서에 있는 보살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마땅한데, 왜 대승경전의 취지를 빌어 보살을 해석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석첨] 설령 경을 인용해 대승의 뜻을 해석한다 해도, 이는 어떤 대승이라는 것인가. 만약 통교의 대승이라 한다면, *三승이 한가지로 진제(眞諦)에 들어가며, *부처님에 이르러서도 그러한 터에, 어찌 팔지(八地)에서 중도(中道)를 관(觀)하여 무명(無明)을 깨게 되랴. 통교의 뜻으로 함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러므로 깨야 한다. 또 만약에 별교의 대승의 뜻이라 한다면, 처음인 *초심(初心)으로부터 이승(二乘)과는 달랐거니, 어찌 육지(六地)에서 장차 아라한과 같아지게 되랴. 별교의 뜻으로 하는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러므로 깨야 한다.

縱令引經釋大乘義, 是何等大乘. 若作通敎大乘, 三乘同入眞諦, 至佛亦然. 那得八地觀中道破無明. 作通義不成, 是故須破. 若作別敎大乘義者. 始從初心, 與二乘異. 那得六地將羅漢齊. 作別義不成, 是故須破.

14825三승이 한가지로 진제에 들어감. 원문은 ‘三乘同入眞諦’. 통교는 三승에 공통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진제’는 3051의 ‘二諦’의 주 참조.
14826부처님에 이르러서도 그러함. 원문은 ‘至佛亦然’. 불위(佛位)도 삼승에 공통함을 이른다. 12415의 ‘三乘共位’의 주 참조.
14827초심. 3064의 주.

 [석첨] *셋째로 마음껏 비난하는 중에서 ‘설령 경을 인용해 대승의 뜻을 해석한다 해도’라 함은, 옛사람의 경을 인용함을 깨건대 그 취지를 알지 못하는지라 그러므로 깨야 하니, 그러므로 배격해 이르되 ‘어떤 대승이라는 것이냐’고 한 것이다. 그대는 비록 *팔지(八地)에서 무명을 깨는 글을 인용하면서도 이것이 통교의 하근(下根)의 *피접(被接)의 뜻임을 모르고 있는데, 통교 자체에서는 시종 무명을 깨지 못하여 *통교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러므로 깨야 함이요, 그대는 *육지(六地)에서 아라한과 같아진다 함을 인용하면서도 이것이 *명별의통(名別義通)임을 모르는데, 별교의 뜻에 의하면 초지(初地)에서 곧 무명을 깨는 것이니, 어찌 육지에서야 비로소 아라한과 같아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깨야 하는 것이다.

三縱中, 云縱令引經釋大乘者. 破舊引經. 不識義旨, 是故須破. 是故斥云, 何等大乘. 汝雖引八地破無明, 而不知是通敎下根被接之義. 當通始終不破無明. 通義不成, 是故須破. 汝引六地以齊羅漢, 而不知是名別義通. 別義初地卽破無明, 何得六地始齊羅漢. 是故須破.

14828셋째로 마음껏 비난하는 중에서. 원문은 ‘三縱中’. 이것은 ‘三縱難中’이라 해야 옳으니, ‘難’이 탈락한 것.
14829팔지에서 무명을 깸을 인용함. 원문은 ‘引八地破無明’. 인왕경(仁王經) 교화품의 인용. 14830피접. 1013의 주.
14831통교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음. 원문은 ‘通義不成’. 통교의 뜻이라 할 이론이 성립하지 못하는 것.
14832육지에서 아라한과 같아진다 함을 인용함. 원문은 ‘引六地以齊羅漢’. 이것도 인왕경의 인용이다.
14833명별의통. 이름은 별교 같으면서도 뜻은 통교인 것.

 [석첨] 다음으로는 한 가지 별교만을 깼다.

次單破別敎.